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 괴테와 마주앉는 시간
전영애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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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게 두어라! 밤에 에워싸여
끝없는 사막에서.
낙타들이 쉬고 몰이꾼도 쉬는데,
돈 셈하며 고요히 아르메니아인 깨어 있다
그러나 나, 그 곁에서, 먼먼 길을 헤아리네
나를 줄라이카로부터 갈라놓는 길, 되풀이하네
길을 늘이는 미운 굽이굽이들.
나를 울게 두어라! 우는 건 수치가 아니다.
우는 남자들은 선한 사람.
아킬레스도 그의 브리세이스 때문에 울었다!
크세르크세스 대왕은 무적의 대군을 두고도 울었고
스스로 죽인 사랑하는 젊은이를 두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울었다.
나를 울게 두어라! 눈물은 먼지에 생명을 준다.
벌써 푸르러지누나.

아르메니아 사람은 대체 어디에 있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하는 낯설음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었고, 무

끄러운 돌들에다 상상 속에서 얼음까지 얹어보니 고개가 절로 가로저어지기도 했고요.
당시 다시 그곳을 향해 떠나는 만용은 거두었지만, 여름에도 독특하게 황량했던 그 풍경이 자주 떠올라 눈앞에 펼쳐집니다.
거대한 하르츠 산맥, 그 산맥 중의 브로켄산은 마녀들이 집결한다는, 파우스트」의 ‘발푸르기스 밤‘의 무대입니다. 대체 지형이 어떻기에 그런 전설이 생겨났고 또 괴테가 파우스트의 한 주요 장면을 할애했을까 하는 궁금함도 없지 않긴 했지만, 그곳이 그토록 마음을 끈 건그보다 한 편의 시 때문이었습니다. 

「겨울의 하르츠 여행」이란 시인데 자신의 소명을 깨닫는 순간이 그 안에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방황에 빠져 허우적이기도 하는 젊은 날, 겨울산을 오르며 자신의 운명을 헤아려보는 성찰이 두드러진 시편입니다. 이 시는 문득 절로 터져나온 듯한 외침으로 시작됩니다.

매처럼,
무거운 아침 구름 위에
부드럽게 날개 펴고 가만히 뜬 채로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떠돌아라 나의 노래여
문득 이런 어떤 깨달음의 순간이 있어, 깨어나고, 똑바로 서는 한 순간은 누구에게서든 참 아름답습니다. 
거기에 자신만이 아니고 주변의 둘러봄이 있을 때는 더더욱그렇지요
하지만 저기 외따로 가는 자 누구인가?
그가 걷는 길은 덤불숲 속으로 사라진다
그 뒤에서 덤불들이
다시 얽히고
풀이 다시 무성해지고 이윽고
황야가 그를 삼켜버렸다
그럼에도 그런 이까지 눈여겨보는 사람이 시인이겠지요.
그대의 현금을 퉁겨
사랑의 아버지여, 음 하나라도
그의 귀에 들리게 해서 그 마음에 생기를 주소서!
흐린 시선을 열어

황야의
목마른 자 곁에 있는
샘물을 보게 하소서!

그것이 어디쯤에서였을까요. 한 사람에게서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순간이, 그러면서도 대승적인 순명의 의식이기도 한 그런 순간이, 누군가의 마음 속 어느 굽이에서인지 제가 가볼 수 없지만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리적으로 어디쯤인지는가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그때 저의 출발의 모든 이유였습니다.
산인데 고작 고도 300여 미터, 웃음부터 나오는 높이라 듣기만 했을 때는 그저 우습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읽은 글들에서 그 산의 위용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막상 가보니 과연 그렇지 않았지요. 높지 않은 대신 아주 넓은 지역에 걸쳐 펼쳐져 있었고, 무엇보다 길바닥이 독특했습니다. 전부 돌이 깔려 있는데, 그 커다란 검은 돌덩이들이 강물 속 차돌처럼 반들반들했습니다. 그런 돌덩이들이, 당연히 불규칙하게, 그러나 빈틈없이 빼곡하게 바닥을 메우고 있어 산의 초입만 조금 걷는 것도 여간 힘

미국인 교수가 얘기했습니다.
그 모든 건, 세상의 보이는, 또 보이지 않는 많은 장벽들이며 그것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는 자리였습니다. 나홀간 길게 논의된 것이, 9일 기념일에 독일 대통령의 한마디로 요약되었습니다.
"베를린장벽은 무너졌지만, 우리는 많은 내적 장벽을 세웠습니다. 그걸 허물 사람도 우리입니다."
당장 뾰족한 수야 있으랴만, 이렇듯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는 것이 그 많은 문제들을 조금이나마 완화하는 길 아닐까요. 그래서 다들 쉬는 시간, 먹는 시간까지도 이야기를 그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분단국일뿐더러 사회의 내분, 내홍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곳에서 사는 저야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러나 좋은 연구가들, 젊은이들을 만났고, 아주 좋은 것 한 가지가 남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는 사진 한 장입니다.
앞서 말했듯 이 학회 주최자는, 예전에 제가 뮌헨대학에서 독일교수와 함께 분단문학 수업을 했을 때 수업을 들었던 독일학생입니다. 그후 서울에 있는 저의 학교까지따라와서 최인훈의 『광장』으로 멋진 석사논문을 써서두 대학의 학위를 받았고, 이어 미국으로 건너가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이제 제 나라 독일로 돌아가 한국학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학의 한 코너가 그이 덕분에 앞으로 탄탄해질 것만 같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선생을 찾아 땅끝까지도 달려갈 줄 알았던 그 독일 소녀 비르깃이, 이제 자기 나라 학계에서 자리 잡았다고 세 대륙, 네 나라에 있는 스승 넷을 모두 모으고, 많은 전문가들을 더하고, 또한 세계 젊은이들을 모아 이런 야무진 공부 자리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곱고 똑똑한 비르깃과 네 명의 선생들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 그녀는 이를 "학문의 가족사진"이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에서 쉽사리 찍히기 어려운 것이라 자꾸 보게 되고,
보고 있노라면 많이 기쁩니다. 언젠가 그녀도 우정에 와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가리라는 생각에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참 설레는 마음입니다.

제가 서원에 지은 이 작은 집은 소박하지만 거기서 비롯된 기쁨과 의미가 정말이지 너무나 커서, 더 크게 짓는다고 해서 더 나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도 제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 우정에 방문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갈 사람들의 환한 얼굴을 가만히 떠올려 봅니다.

편지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그침 없는 활동과 연구의 생애, 성찰의 생애가 반영되어 있는데,
막바지로 갈수록 오히려 가열한 정신이 선명하게 빛납니다. 임종을 닷새 앞두고 큰 학자 훔볼트에게 쓴 긴 편지의 끝부분, 마지막 몇 문단만 가져와봅니다. 
이 빛나는정신의 편린이 조금이나마 엿보일까 해서입니다.

파우스트의 콘셉트는 내게서 젊어서 이미, 상세하게는 아니지만 처음부터 명확하게, 전체 순서대로, 앞에 놓인 지 60년이 넘었습니다. 그 의도와 내가 늘 살며 역시 함께 왔지요. 다만 그때그때 마침 가장 관심 있는 부분들을 하나씩 써갔고요. 그러다보니 2부에서는 빈틈들이 남아 있어, 그때는 균일한 관심으로 틈을 메워 나머지와 연결시켜야 하게 되었죠. 그러자니 물론, 원래는 다만 자발적이고 행동적인 자연에 따라 이루어져야 할것에 원칙과 성격을 통해 도달해야 하는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래 활동적인 삶, 숙고하는 삶을 살고도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것 또한 좋지 않을겁니다.
그렇게 평생 쓴 『파우스트』를 괴테는 1831년 8월

82세 생일을 앞두고 최종 마무리를 하여, 봉인해두었다가 1832년 정월에 다시 꺼내어 고치고 또다시 봉인한 후 타계했습니다.

내 귀한, 흩어져 있는 친구들에게 생시에 이미 이 매우 진지한 농담을 헌정하고, 알리고, 응답을 듣는다면 그건 내게, 의문의 여지 없이 큰 기쁨일 겁니다. 그러나 시절이 어처구니없고 혼란스러우니, 이 기이한 건축물을 이루기 위해 오래도록 쏟아온 나의 정직한 노력은 제대로 보답받지 못하고, 난파선처럼 해변으로 쓸려가 부서져 놓여 있다가 시간의 모래 더미에 파묻혀버리고 말겁니다. 혼란스러운 행함을 부르는 혼란스러운 가르침이 세상을 휘젓고 있습니다. 나는 나에게 있고, 늘 있어온 것을 될 수 있으면 증진시키고 나의 특질을 정화하는 것 이상으로 절박한 할 일은 없습니다. 그대가 기품 있는 친구여, 그대의 성에서 그렇게 하고 계시듯. 그러니 그대의 작업도 좀 알려주십시오. 잘 아시다시피리머가 같거나 비슷한 연구에 매달려 있어서 우리의 저녁 대화는 자주 그 분야의 경계로 나아갑니다. 이 늦은 답장을 용서하십시오. 독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생의 비밀들을 생생히 떠올려 볼 수 있는 한 시간

은 잘 없습니다. 변함없이 그대의 J. W. v. 괴테

죽음을 목전에 둔, 닷새 앞둔 시인이 자기수양의 절박함을 이야기하고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을 피력합니다. 또 60년 공을 들인 대작을 "진지한 농담"이라고 부를 여유와 더불어, 마지막 공을 들이고도 그 어떤 이해도 기대할 수 없어 봉인을 해버리는 절망이 함께 거기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마지막 힘까지 쏟아부어 한작품을 완성한 힘 역시 같은 절망에 닿아 있을 것입니다.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닦는 것이, 거짓 가르침이 횡행하는 시대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현실적 저항으로 읽힙니다.
그 큰 사람에게도 그랬습니다. 시대의 혼란과 몰이해에 홀로 마주선 이 마지막 외로움이 읽는 이의 가슴을 칩니다. 
작품만이 아니라 그 많은 편지로써 가 닿으려 했던 것도 결국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아득한 예전에 세상 이곳저곳에 보내어진 그 많은 낱장 편지들을 사람들은 왜 또 그렇게 모았을까요. 인류의 큰 업적들은 어쩌면 이런 절망과 외로움의 힘으로 길어올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시간들 속에서 찾아낸
반짝이는 보석 같은 순간들
종이시대의 가장 생산적인 문인 괴테가 들려주는간명한 지혜의 말

"지향이 있다는 것은 갈 곳이 있고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표가 있는 한 방황한다니. 갈 곳이 있기에 길을 잃는다니. 방황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방황이 바로, 목표가 있고 지향이 있기 때문이라니! 
지금 방황해도 괜찮아. 다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언젠가 어디인가에 닿아. 그런 쉬운 말보다, 말이 될 듯 말 듯한 이 위로가 주는 여운이 큽니다."
_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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