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받기로 했죠."
그가 말했다.
"맘이 편해졌을 것 같은데요."
이로 씨가 말했다.
편해졌다면 그건 체념해서가 아니라 나를 내 속에서 없앴기 때문이었겠지요. 체념이기도 했겠네요. 내가 나를 체념한 거니까"
"비우는 거네요."
"그때 알았죠. 선택과 결정은 저 작품들의 몫이었던 거라는 거.
내가 아니라, 나는 작품들한테 불려 나온 거였어요. 스승님도 스승님 스승의 작품들로부터 선택당한 삶을 사셨다는 걸 돌아가신뒤에 깨달았고요."
사물의 의지가 대를 이어 인간을 숙주로 만들어버린다는 식으로 이로 씨에겐 들렸다. 이로 씨는 김재원의 옆모습을 물끄러미바라보았다.
정선에서 선배 원로 작가의 작품을 말할 때도 김재원은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갈등과 번민을 삶의 자양으로 삼으려는 뜻을 내비쳤었다. 스승의 전각 작품을 물려받게 되었다는 영원의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은 얘기였다.

"벚꽃이 피고 질 때까지는 이곳에 있을게요"

사랑하는 한 여자를 지키고자 결탁하는전직 경찰과 수배자, 다정한 전쟁의 기록

남해안 동쪽 언덕에 위치한 카페 Tolo주인장 희린은 운두가 깊은 프라이팬에 생두를 볶고,
산양유로 부드러운 셔벗을 만들어낸다.
벚나무 꽃망울이 움트는 이른 봄날,
소설가 이로가 Tolo에 찾아오고,
커피와 셔벗의 특별한 맛에 녹아든깊은 사연을 음미하기 시작한다.

단단히 얽힐 대로 얽혀버린 관계 속에 스며든사랑과 증오, 뜨거움과 차가움, 기다림과 서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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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하지 마 엄마가 이렇게 하는 게 나는 어색해서 불편해."
그 말의 의미를 나는 금방 알아들었습니다. 그 순간 정말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딸을 키우면서 내가 얼마나 배 한번 문질려 주지 않았으면 그렇게 말했을까요? 그 말을 듣고 너무나 슬프고 마음 아팠습니다.

나는 혼자 가만히 있는 시간이 그냥 멍하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본 속 여자가 머릿속에 가득이었습니다. 날마다 그러했기 때문에, 어린 딸이 배 아프다고 하면 "아가, 이리 와." 하고 안아 주었지만, 대본 속 역할을 생각하듯이 그만큼 온 마음을 다해 대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른이 된 딸은 나를 다 용서해 주었습니다. 고맙고 미안합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아이들을 낳긴 낳았지만 내가 하는 배역을 더 많이생각하느라 아이들에게 전력투구하지 않았습니다. 엄마라고할 수도 없었습니다.
생에 감사합니다. 나는 그런 행복을 누릴 자격이 천성적으로 없는 사람입니다. 내 딸 임고은이 언젠가 내 대본 뒤에 써 놓은글이 있습니다.
‘나는 엄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이라고 생각해. 나도 엄마 같은 인간으로 성장하고 싶어.‘

그 대본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내 딸은 모든 것이 부족한 이 엄마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현모양처인 줄로만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살림도 못하고, 대본만 받으면 그날부터 대본 속 인물이 되어 버려서 식구들은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남편과 아이들은 내가 배우이니까 당연하다고 인정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배우로서 잘해야만 했습니다. 내가 가족에게 남긴 자잘한 상처들이 흐지부지 묻히지 않도록 가족에게 상처를주면서 배우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배우로서 떳떳하지 못하면정말 면목이 없는 일입니다. 나를 배우로 인정해 주는 가족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가족에게 미안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연기에 집중하면서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신도 나에게 싫증날 것 같았습니다. 날마다 잘못했다고 하면서 용서해 달라고 하고, 그 말이 사라지기도 전에 또 잘못하고 실수를 저지르는 나를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고개를 저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나를 여태까지 살게 하셨는지,
나는 그것이 의문입니다. 잘못한 것도 많고 실수한 것도 많은데 신은 나를 왜 이렇게 오래 살게 하실까요? 

어른들에게 실망한 오스카는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소아병동의 가장 나이 많은 간호사인 장미 할머니에게 의지하게 됩니다.
장미 할머니는 일주일에 두세 번 병원을 찾는 호스피스 자원봉사 간호사입니다. 그녀를 장미할머니라고 부르는 사람은 오스카밖에 없습니다. 병동에서 일할 때 핑크빛 감도는 장미색 가운을 입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전직 프로 레슬링 선수라고 소개하는 그녀는 프로 레슬링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어 오스카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 줍니다. 장미 할머니는 오스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생각을 고백하렴.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생각들, 그것들은 너에게 들러붙고 너를 짓눌러 꼼짝 못 하게 한 다음, 새로운 생각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서 너를 썩게 만들지. 고백하지 않으면 너는 구닥다리 생각들로 가득 찬 악취 나는 쓰레기장이될 거야"

장미 할머니의 권유에 따라 소년은 하루를 10년이라고 생각하고 살기로 합니다. 

마치는 날까지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열흘째 되던 날, 다시 말해 죽기 이틀 전 오스카는 이렇게 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오늘 난 백 살이 되었어요. 장미 할머니처럼요. 계속 잠이 쏟아지지만 기분은 좋아요. 난 엄마랑 아빠에게 삶이란 참 희한한 선물이라고 얘기를 해 줬어요.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 선물을 과대평가해요. 영원한 삶을 선물받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나중엔 과소평가해요. 지긋지긋하다느니 너무 짧다느니 하면서 내동댕이치려고 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선물받은 게 아니라 잠시 빌린 거라는 사실을 알게 돼요. 그래요, 삶은 선물이 아니에요. 잠시 빌린 것이죠. 빌린 거니까 잘써야죠. 함부로 쓰면 안 되는 거예요."

삶은 그냥 살아가는 것밖에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픈 오스카만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게 아닙니다. 몸이 성한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매일 처음 보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너무 낭비할 때가 많습니다. 며칠을살더라도 얼마만큼 가득 차게 사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삶은선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삶과 죽음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고 이 연극은 말합니다.

"네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 가고 나서 내가 몇날 며칠을 울었는지 아느냐?"라고 말하는 순정파입니다. 
옛날 애인인데도 늘 와서 나를 보호해 주고, 다정하게 대해 주고, 여행도 데려갑니다. 
그리고 군불 때는 방에서 가운데에다 가방으로 금을 그어 놓고 둘이서 잡니다. 그때 남자가 말합니다.
"참 세월이란 게 웃기다. 젊었으면 뺨을 맞아도 너를 으스러지게 안았을 텐데, 지금은 졸려서 못 안겠다"
그런 장면들이 무척 좋았습니다.
그 방에서 자고 일어나 아침에 해 뜨는 것을 둘이서 바라봅니다. 그때 내가 손을 내밉니다. 남자는 이 여자가 하도 새침데기이니까 가만히 있습니다. 여자가 말합니다.
손 잡아 무안하게 손 잡으라고 내밀었는데, 왜 안 잡아?"
그러니까 손을 잡습니다. 또 내가 친절하게 해 주니까 남자는 너무 좋아서 춤추는 걸음걸이로 담 옆을 걸어갑니다. 내가 안 보는 데서 막 춤을 추면서 갑니다.
대본 속 인물이지만 그런 남자가 곁에 있어서 마음이 따뜻하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바라는 것은 큰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다정하게 어루만져 주는 것,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 어려움 속에서 서로를 보호해 주는 것이 전부일는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들의 삶을 보는 게 흥미롭고 진력나지 않았습니다. 또 다섯 명의 여자가 연결된 신이 많아서 한두 마디 하려고 다 함께 기다리며 촬영할 때가 많았는데, 그동안 조연과 단역들이 주연인 내가 연기하는 동안 이렇게 기다렸겠구나 싶은 생각에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PD 저널의 방연주 객원기자라는 분은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고 리뷰에 노벨문학상을 탄 쉼보르스카의 시를 인용했습니다(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 중에서).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어떻게 사는가보다 어떻게 죽는가가 중요해지는 순간이 인생에는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희경 작가가 한 말처럼,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젊은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치열함을 살고 있는 ‘나의 친애하는 친구들‘
과 함께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희망을 세상에 전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많은 배우들이 함께 나옵니다. 그럼에도 노희경 작가는 배우를 살릴 줄 압니다. 나의 경우에 혼자서 거의 3분을 떠들게 했습니다. 
회자는 치매에 걸려서 어릴 때 죽은 아들을 생각합니다. 아들 잃었던 그 순간이 마음속 한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살던 데를 찾아가서 베개를 업고 포대기까지 하고 돌아다닙니다. 아기가 아프니까 혼자서 아기를 업고 돌아다니던 것을 그대로 재연합니다. 
치매 걸린 내가 사라진 것을 알고 친구들이 찾아옵니다. 그때 내가 베개를 업고 친구 정아에게 오열하며 소리칩니다.

"나쁜 년, 네가 여길 어떻게 와? 네가 감히 여기를 어떻게 와? 이 물어뜯어 죽일 년아…………. 내가 너한테 전화했지. 내 아들이 열감기인데 도와달라고, 약 먹었는데 안 낫는다고, 무섭다고 와 달라고 했지. 왜 맨날 너는 그렇게 사는 게 힘들어? 왜 맨날 힘들어서 내가 필요할 때는 없어. 남편한테도 전화 안 되고,
그 밤에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전화했더니 기껏 나보고 ‘나도 힘든데 징징대지 마‘라고 그러고 너 전화 끊었지. 난 너밖에 없었는데……. 니네들은 왜 그렇게 사는 게 힘들어? 맨날 힘들어. 그래서 내가 맘 놓고 기대지도 못하게‥…내, 이년아. 나쁜 년. 넌 친구도 아냐. 내 아들이 내 등에서 죽었어. 내 아들 살려내."

"누가 벽에 요정들을 그려도 된다고 그랬지?"
여자는 말합니다.
"요정이 아니라 새예요."
"새든 요정이든 누가 허락했느냐고?"
"당신이 집을 보기 좋게 만들어 놓으라고 해서요. 내가 보기엔 이것이 좋아 보여서요."
선천적인 장애에다 관절염, 폐기종을 앓고 있던 여자의 건강은 나빠져만 갑니다. 나중에는 허리가 완전히 굽고 발목에 힘이 빠져 제대로 걸을 수도 없습니다. 붓을 쥐어도 손가락이 아프지만 그녀는 매서운 추위 속에서 그림을 그려 나갑니다. 결국 여자는 건강이 악화되어 쓰러집니다. 
병원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내가 왜 당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하고자책합니다. 그 말에 여자는 남자의 손을 잡고 말합니다.
"나는 사랑받았어요. 나는 충분히 사랑받았어요."
그렇게 말하며 마지막 눈을 감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남자는 여자가 그린 그림으로 가득한 집에서 쓸쓸하게 물건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여자가 처음 상점에서 발견한 구인 쪽지를 평생 보관했음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캐나다 영화 「내 사랑」(에이슬링 월쉬 감독의 2016년 개봉작, 샐리호킨스 · 에단 호크 주연, 캐나다인들이 사랑하는 여성 화가 모드 루이

「엄마의 바다」 「여」「그대 그리고 나」 「장미와 콩나물」「엄마가 뿔났다」「청담동 살아요」 「디어 마이 프렌즈」 「눈이 부시게」 「우리들의 블루스」등 100여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연극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사할린스크의 하늘과 땅」 「19 그리고 80 셜리 발렌타인」「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 등의 주인공 역을 했으며, 영화로는 「만주」 「마요네즈」 「마더」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있다.
작품을 선택할 때는 비록 현실이 고통스럽고 절망적이더라도 그 사이에서 바늘귀만 한 희망의 빛이 보이는가를 기준으로 삼았다. 연기를 하는 동안 살아 있음을 느꼈고, 동시에 보는 사람들을 살리고 싶었다. 1966년제2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연기상을 시작으로 MBC 연기대상,
KBS 연기대상, 마닐라 국제영화제, 부일영화상, LA 비평가협회상 등에서 수차례 수상했으며,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대상 4차례, 여자최우수연기상 4차례를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삼십 대 끝자락이던 때, 혜자 님과 산으로 들로 긴 여행을 다녔습니다. 영화 마더」촬영지가 전국에 흩어져 있었던 덕분이었는데, 그만큼 저나 촬영감독, 프로듀서 모두 아름다운 로케이션 찾기에 한껏 욕심을 낸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완성된 영화를 보았을 때, 모두가 단번에 깨닫고 말았습니다. 이 영화 최고의 풍광은 무엇보다도 혜자 님의 얼굴 그 자체라는 것을.
그리고 카메라는 점점 더 혜자 님의 커다란 두 눈을 향해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는것을 그 신비로운 두 눈을 통해 그분의 영혼을 들여다보았다. 라는 식의 상투적인 표현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해 가을과 겨울, 그분의 두 눈이 어떻게 시네마스코프의 드넓은 캔버스를 집어삼켜 버리는지 카메라를 통해 생생히 지켜보았습니다. 경이로웠습니다.
수십 년간 수많은 사람이 칭송해 온 혜자 님의 명연기에 대해 제가 굳이 어떤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그 놀라운 섬광 같은 순간들이 필름에 담겨지기도 전에, 이 세상 누구보다 가장 먼저 맨눈으로 목격했다는 것은 저에게 분명 크나큰 행운이었습니다. 저는 또 한 번의 행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혜자 님의 눈빛에 어울리는 맑고 깊은 이야기를 써낼 수 있기를 꿈꾸면서 말입니다. - 봉준호(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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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대본을 쓴 이남규, 김수진 작가에게 허락을 받아 이곳에 옮겨 놓습니다. 
내레이션 녹음을 위해 수십 번 읽고,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을 위해서도 여러 번 반복해 읽었지만 다시 읽어도 좋은 글입니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박완서 선생의 단편소설에 어떤 나들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알코올 중독자인 여자가 나옵니다. 남편이 출근하면 여자가 찬장안 간장병, 참기름병 뒤에 감춰 둔 소주병을 꺼내서 마십니다.
남편만 나가면 술 먹을 생각에 신이 나서 청소를 합니다. 그다음에 의식을 치르듯 소주를 꺼내 마시고 외출을 하는데, 버스에 앉아 내려다보면 지나가는 차들이 다 자기를 호위하는 것처럼 느끼는 장면 묘사가 탁월합니다.
「전원일기」에도 내가 남편 김회장이 마시다 남은 소주를 찬장에 숨겨 놨다가 혼자 곳간에 들어가서 마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시골 촌부라 해도 똑같이 인생의 허무를 느낍니다. 배운 게 없어도 생각이 없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은 배움이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누구나 있습니다. 공부 많이 안 했다고 인생에 대해 모를 리 없고, 하버드대학 나왔다고 더 알 리도 없습니다.
혼자 곳간에 들어가서 쌀가마니 같은 데 기대 앉아서 술을 마실 때의 표정이 나의 허무와 섞여 있습니다. 김정수 작가는 나를 깊이 이해했기 때문에 내가 역을 맡은 엄마의 공간을 잘 만들어 주었습니다.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공감 가는 대본을 써 주었는지 참으로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작가들이 자주 교체되면서 나중에는 맨날 "이제 오니? 밥 먹었니?" 하는 대사나 하고, 아버지는 날마다 숫돌에낫이나 갈고 있었습니다. 나는 드라마 속 여자를 10년 넘게 살고 있는데 그 여자가 할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하고, 그 여자가 할 행동이 아닌 행동을 하게 되는 대본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점점 대사도 줄어들고・・・・・…. 그때는 정말 번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드라마 하차라는 어려운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시집 간 막내딸이 잘 못 살아서 엄마가 뭐만 생기면 막내딸네챙기러 가곤 했는데, 가는 길에 교통사고 나서 죽는 걸로 해 달라고 제안했습니다. 엄마 역은 거기까지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전원일기」 출연료로 생활하는배우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드라마와 관계된 많은 사람들의생계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걸 알고는, 그냥 계속하겠다고 했습니다. 내 생각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김수미 배우도 고두심 배우도 다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어떻게 우리 생각만 할 수 있겠느냐고. 그래서 자존심 하나로 버티며 계속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22년을 했습니다.

나에게 언제나 얌전한 역만 시켰는데, 그런 역을 하라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흥행 실패 때문에 잠시 기가 죽긴 했지만, 그것은 머리에서 지워 버렸습니다. 내가 흥행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나는 아주 깍쟁이입니다. 내가 그것을 왜 신경 써서 스스로를 기죽여야 하는가? 이것은 어쩔 수 없어, 하고 생각했습니다. 내가조금 더 예쁜 배우였으면 반응이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간단히 했습니다. 나는 그 영화 촬영하면서 즐거웠고, 가슴이 뛰었고, 좋았습니다. ‘그럼 된 거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나그렇듯이, 내일 일은 신의 몫입니다.
김수용 감독이 특별히 칭찬해 준 것이 있습니다. 내가 몇 걸음 걸어가다가 남자 주인공을 뒤돌아보는 장면이 있는데, 몇 번을 다시 해도 매번 정확하게 똑같이 하더라고 했습니다. 감독은 ‘저 여자가 저것을 계산하고 하는구나‘ 하고 느꼈다고 했습니다. 나는 계산은 할 줄 모르고 그 순간의 느낌에 따라 속으로 ‘저 남자 쳐다보지 마 쳐다보지 마, 쳐다보지 마. 이제 쳐다봐‘ 하면서 남자를 뒤돌아보았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똑같이 하느냐고 감독은 말했지만, 나는 미리 계산한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서 ‘저 남자 쳐다보지 마. 저 남자와는 끝이야. 아냐, 돌아서!‘ 하고 부르짖으면서 하니까 똑같아진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변호사 남편 김진현(박근형)의 외도에 분노하고 좌절하는 아내 현주가 내가 맡은역입니다. 남편이 젊고 예쁜 여자와 바람난 것을 확인하고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늙고 주름진 자신의 모습이 서글픈 그녀가 거울 보며 이를 닦다 말고 달려가 남편에게 퍼붓는 대사가 있습니다.

"그래, 난 이렇게 너한테 다 주고 늙어가는데, 넌 나가면 충분한 보수, 인정받는 실력, 몰두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집에 들어오면 건강한 자식, 수족처럼 시중 잘 들어주는 아내, 그리고그것도 부족해 정부까지 가졌는데, 난 내가 가진 게 뭐야? 난가진게 뭐냐고?
결혼하면 자기 여자기만 하면 된다고 딴 남자 눈길받는 거 싫다고, 더듬이도 날개도 잘라 가둬 놓고, 20년 화대 안 주는잠자리 상대, 월급 안 주는 가정부, 게다가 유모, 그렇게 샅샅이 알뜰하게 파먹고 뜯어먹고 써먹더니, 이제 와서 뭐?
난 이제 뭘 붙들고 살아야 돼? 
김진현 말해봐 우리가 처음만났을 때부터 내가 이렇게 늙고 초라했었니? 나도 스무 살도있었고 서른 살도 있었어, 당신은 스무 살 적 그대론 줄 알아?
나 늙었으면 당신도 늙었어. 나만 늙었어? 난 이제 뭘 붙잡고 살아야 해? 난 그렇게 성실했는데 내 성실은 하늘도 부정할 수

남편을 용서하지 못한 현주는 결국 이혼을 하고 자신의 길을 갑니다. 남자는 아내에게 버림받고 자식들에게도 외면당하는 결말입니다. 김수현 작가는 그렇게 끝까지 밀고 가서,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비틀어 버립니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가 가죽 타이트 스커트 입고 가죽 부츠 신고 냉정하게 운전하고 떠납니다. 운전하고 가다가 백미러를 한번 봅니다. 그렇게 가는데 차 뒤로는 낙엽이 휘날립니다. 그것이 끝입니다. 그런 것도 나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래성」이 그토록 유명한 드라마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제목도 얼마나 잘 붙였는지, 드라마 내용 자체가 모래성입니다. 공들여 쌓아올린 것이 한순간에 전부 허물어집니다. 김수현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작품입니다.

윤여정 배우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명대사로 모래성」에서 내가 하는 대사를 꼽았다고 합니다.

"누구도 누굴 함부로 할 순 없어. 그럴 권리는 아무도 없는거란다. 그건 죄야!"


나에게 연기는 직업이 아니라 삶이며 모든 것입니다. 배우는
‘이만큼 하면 됐다‘거나 ‘이 정도면 성공했다.‘라고 멈춰서는 안됩니다.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삶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연기자로 살아가다 보니까 일반 가정주부처럼 해 주지못했습니다. 앞에 앉아서 예쁘게 웃어 주지도 않았고, 음식을 앞에 놓아 주면서 "이거 먹어 봐요. 내가 만들었어요." 하는 말을 평생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내가 만들어서 준 게 없으니까 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만들었으니까 보통의 부인들이 날마다 남편에게 할 수 있는 말을 나는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떨 때는 너무 미안해서 예쁘고 젊은 여자랑 연애하라고 얘기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면 남편은 "사람, 참." 하며 웃을 뿐이었습니다.
가끔 남편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하고 전화해서 물으면나는 대개 "없어요." 하고 말했는데, 어떤 때는 "순대가 먹고 싶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 북창동(조선시대 각 지방에서 공물로 걷은 쌀, 천, 돈을 관리하던 선혜청의 북쪽 창고가 있던 곳이라서붙은 이름으로, 서울 중구에 위치한 동네) 올라가는 길에 좋은 순대집이 많았습니다. 남편은 그곳까지 가서 나를 위해 순대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곳 순대가 맛이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너무 고급 순대였습니다.
나는 남편에게 투정을 부렸습니다.
"아니, 이런 순대 말고 

남편이 떠나고 나는 조금 이상해졌습니다. 
남편과 연관된 사람만 만나도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그 사람과 남편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닌데도 그랬습니다.
"저 사람하고 우리 남편이 아는 사람이지저 사람도 우리 남편하고 대화를 했겠지.
이런 생각이 들면 밑도 끝도 없이 눈물부터 흘렸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가끔 사람들로부터 ‘저렇게까지 세상물정을 모를 수 있나?‘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들 임현식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 주었습니다. 그런 일들로 내가 속상해하고 있을 때 아들이 뒤에 와서 나를 가만히 안아주며 말했습니다.
"엄마가 얼마나 순진한지는 아빠랑 나만 아는데... 아빠는저세상으로 떠나고, 우리 엄마 어떡하나......"
정말 그랬습니다.
어떤 한 분야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뒤에서 희생한 다른 이들이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반드시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산도 좋고 물도 좋고 정자까지 좋은곳은 없습니다. 내가 남편에게도 잘했고, 아이들에게도 너무나좋은 엄마였고, 그리고 연기도 빼어나게 잘했다? 그런 건 있을수 없습니다. 나는 배우로서 살아온 것 말고는 모든 부분에서부족한 여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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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으로 만든 방망이에도 상처를 받게 되는 법입니다.
즉, 행복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상처를 받기 전에 빨리 헤어지고 싶어 안달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써먹던 수법인 익살로 연막을 쳤습니다.
"왜 속담에 ‘돈이 떨어지면 연인도 떠나간다‘는 말이 있잖아? 세상에서는 이 말을 ‘남자가 돈이 떨어지면 여자한테서 차인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잘못된 해석이야. 원래남자는 돈이 떨어지면 스스로 의기소침해지고, 소심해지면 웃음소리에도 힘이 없어지고, 또 묘하게도 삐뚤어지는법이지. 결국 나중에는 자포자기가 되어서는 남자 쪽에서여자를 차버리는 거야. 즉, 반미치광이가 되어 뿌리치고찬다는 뜻인 거야. ≪가네자와 대사전>이라는 사전에 그렇게 쓰여 있다더군. 안타깝게도 나는 그 기분을 이해하거든."
분명히 이런 얼토당토않은 말로 쓰네코를 웃게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궁둥이가 너무 무거우면 안 되는 법이지‘
나는 뒤가 무서워서 세수도 하지 않고 잽싸게 그 자리를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때 내가 ‘돈이 떨어지면 연인도 떠나간다‘라고 한 말이 훗날 의외의 사건을 만들었습니다.

누구보다 인간이기를 원했으나 끝내 인간의 자격을박탈당한 한 인간 실격자의 처절한 고백

"부끄럽게 살아왔습니다."
뭐든지 간에 그냥 웃게만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인간들은내가 삶이라는 것의 밖에 있어도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인간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
나는 무無다.
바람이다.
허공이다.
- <인간실격> 본문 중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데 있어 다자이보다뛰어난 작가는 드물다.
-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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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혜자에게서 저는 구도자의 모습을 봅니다. 연기라는 화두를 잡고 일생을 살아오신 분, 애초에 삶이라는 것이 드라마임을 알아차린 것인지...…. 작품마다그 배역이 되기 위한 열정과 노력은 구도자의 수행, 그것이었습니다. 연기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그리고 모든 아픔 뒤에 항상 기다리고 있는 희망을 표현하고 싶어한 진정 아름다운 수행자입니다.
그녀가 세상을 보는 시선은 누구보다 솔직합니다. 꾸밈이 없어 때로는 가차 없기까지 한 솔직함이 오히려 마음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연기로써 세상을 알아 버린 큰 배우, 세상 속 여러 인물을 훌륭하게 살아 낸 배우

미국 소설가 이디스 워튼이 말한, 
빛을 퍼뜨릴 수 있는 두 가지 방법- 촛불이 되거나 또는 그것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 
저는 그녀의 인생이 촛불이고 동시에그녀의 연기가 거울이었다 생각합니다. 모든 이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마치 스며드는 빛처럼, 비교 불가한 김혜자만의 매력과 힘, 
함께 작업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앞으로 또 같이할 생각에 가슴이 설렙니다.
- 김석윤(청담동 살아요」 「눈이 부시게 연출가)

여기까지 오는 데 참으로 오래 걸렸습니다.
연기라는 세상 밖으로 나가 본 적 없는 바보라
가볍게 휙 떠나올 수 없었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게 인생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살아 볼 만한 거겠지요.
이 길에서 자꾸만 나의 지난 일들이 겹쳐집니다.
하늘이 허락해 주시지 않는다 해도괜찮을 것 같습니다.
80을 눈앞에 둔 내 인생의 길 끝에서나는 내 꿈 앞에 서 있습니다.

광고에서 이 내레이션이 끝나고, 저쪽 하늘에서 이쪽 하늘까지 펼쳐진 오로라를 바라봅니다. 
‘나를 믿고 걸어갑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내가 읽는 마지막 내레이션이 곧 나 자신의 말이기도 합니다. 

예측불허의 날씨 탓에 비행기가 결항되거나 지연되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원래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에 모든 순간이 소중했습니다. 
구태의연하지 않은 멋진 기획을 생각해 낸 한경애 씨와 백지현 씨, 코오롱스포츠사, 박수를 쳐 드리고 싶은 카피라이터 원혜진 씨, 그리고 함께 머나먼 아이슬란드까지 가서 멋진 촬영을 해준 스태프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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