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생각을 들려줘

생활속 제국주의는 가스라이팅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말한다. 흔히 서양의 강대국을 먼저 발전한 나라라는 뜻에서 선진국, 그 밖의 나라들을 후진국이라고 표현한다.

나라마다 고유의 문화와 강점이 있을 텐데 이런 표현은 서양의강대국처럼 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뒤처진 것처럼 생각하게 한다. 새로운 제국주의는 문화적으로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고, 이건 과거의 제국주의보다 더 교묘하고 무섭게 느껴진다. 타인이 자신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문제가 스스로에게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저항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아이돌 문화에서도 제국주의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아이돌이 미국에 진출해 미국 음원차트에서 1위를 하면 국내 음원차트 1위를 한 것보다 언론의 주목을 더 많이 받는다. 이는 미국에서 인정받는 것이 더 값진 일처럼 느끼게 한다. 그리고 국내에서인기를 얻은 아이돌도 해외 진출을 하면 꼭 영어 이름을 짓고 영어로 노래를 부른다. K-pop이 정말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라면아이돌이 해외 진출을 하더라도 우리말로 된 이름과 노랫말을 유지하고 그것을 전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영어권 문화가 글로벌 문화라는 이름으로일상 속에 많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최근 우리 반 친구들은졸업 사진을 어떤 콘셉트로 찍을지 고민이 많다. 단연 하이틴, 해리포터, 디즈니 공주가 대세다. 여기서 하이틴은 미국 10대들의패션이고, 해리포터는 영국 영화이며, 디즈니는 미국 애니메이션 회사다. 우리는 모두 이것을 예쁘다고 좋아하며 따라하려고한다. 또 10대들은 아이폰을 쓰지 않으면 촌스럽고 뒤처진다고여긴다. 실제로 10~20대가 애플사의 기기를 사용하는 비율이높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처럼 미국과 서양의 문화를 동경하는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만들어진건 아닐까?

한국 사회가 외국인을 대하는 방식에서 제국주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등 약소국 출신의 노동자들을 ‘이주노동자‘라고 부르면서 차별하고 혐오하는 경우가 많다.
똑같이 외국에서 온 노동자인 백인 영어 강사는 이주노동자라고부르지 않으면서 말이다. 또 외국인이 도움을 요청할 때 그 사람이 당연히 영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내가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도 제국주의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조선을 서양처럼 만들고 싶었던 엘리트와 점점 악화하는 현실을 바꾸고 싶었던 민중이 추구하는 세상은 비슷했다. 하지만그 세상을 만들어 가는 방법과 가치관이 달랐기 때문에 대립할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런 대립이 있어야 우리 사회가 발전할수 있다고 본다. 정당이 하나밖에 없으면 독재국가인 것처럼민중과 엘리트도 항상 협력하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
민중과 엘리트는 협력적인 관계가 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고,
될 수도 없었다. 엘리트는 소수인 데다 경제적으로 유복해서 민중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민중을 멋대로 추측하여 판단한다. 오늘날에도 사회 지도층은 완전히 다른 세대인 M세대와 Z세대를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MZ세대라고 이름 붙여 부른다. 계급사회의 문제는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사이에 솔직한 대화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솔직하고 심도 있는대화를 나누었다면 민중들이 까닭도 모르고 반대했을까? 가장중요한 건 소통할 수 있는 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훌륭한 엘리트라면 민중의 지지를 얻어 내야 한다. 급진개화파는 특권과 차별이 없는 사회를 추구했다지만 민중을 교육 대상으로 보았다. 정말 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민중과 엘리트가 협력할 수 있도록 동등한 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민중을무식하다고 무시하지 않고, 민중의 의견이라고 색안경 끼고 보지 않으며, 민중의 의견이 합리적이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엘리트들이 민중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면 자신들이 바라는 사회를 맞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든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왜 의병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민중이 무기를 들기 전에 국가의 위기를 누가 막을 수 있었는지,
어떻게 예방할 수 있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당시 권력을잡고 있던 사회 지도층이 일본과 맞서 싸울 의사를 보였더라면심각성을 느낀 민중이 그들과 협력하며 일제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했을 것 같다. 나라가 식민지가 되기 직전에도 그저 개인의 지위와 재산을 보전하는 데에만 급급했던 태도는 비판받아마땅하다. 이러한 사회 지도층의 이기적인 행동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의병의 교훈이다.

의병의 교훈은 의병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지배층이 비겁한 모습을 보였기에 의병들은 더욱 빛난다. 하지만 이런점만 기억한다면 현대사회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자신보다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일이 어느 순간 당연시되어 바꿀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지배층이 자신들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의병의 교훈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있다. 사회 지도층은 큰 힘을 누리고 있는 만큼 위기에도 솔선수범의 자세를 가지고 민중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오늘날에도 사회 지도층이 권력과 돈을 이용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이익을 좇는 행태가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다. 그런 모습들을지난 역사와 관련지어 비판적으로 배우는 것이 역사 교육에서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학교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규칙적인 생활을 반복하고 정해진 교칙을 어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것들이 우리 생활을 통제한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통제가 없다면 몇백 명이함께하는 학교생활이 가능할까? 그리고 학교가 없다면 우리가가치관을 형성하고 자신의 성장을 위해 노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학교의 일과는 습관의 힘을 길러 준다. 시간표에 맞춰 생활하는 것은 시간표가 나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시간에맞춰서 생활하는 연습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학교가 성적을 이용해 학생들을 통제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학교는 학생을 성적으로 평가한다. 성적이 좋은 아이는 선생님과친구들에게 좋은 학생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성적이 우수한 학생만이 성장한 학생일까?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도 자신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어 나름대로 성장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은무시한 채 결과만을 중시한다면 학생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정체성을 형성할 성장기에 친구들과 성적을 비교하며 스스로를깎아내리는 것은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학교에서 높은 시험 점수를 받으려고 노력한다. 학교가성적이 곧 성공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 개인의 소질이 계발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해마다 희망하는 직업을 써내야 한다. 20대 때 다양한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선택하면 안 되는 것일까? 또 우리는 교칙으로 통제받는다. 사복을 금지하는 이유가 학생 간에 차별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성적으로 학생을 차별하는 것은괜찮은 걸까? 학생들이 사회의 흐름을 강제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꿔 나갈 수 있도록‘ 학교가 달라졌으면 좋겠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나는 유관순이 3·1운동을 대표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는 어른이 아닌 어린 여학생으로서 만세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 당시 잔인무도한 일본에 대항해 싸우는 것은 큰 용기가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남녀차별이 지금보다 심하던 시절에 여학생이 독립운동을 이끈 것은 대표적으로 기억할 만한 일이다. 3·1운동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시 억눌렸던 민중이 스스로 독립 의지를 표현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소외되어 있던 많은 이가 동참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어느 시대나 소외되어 관심받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들 스스로 주체가 되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은 우리의 의지와 긍지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민중들의 숨어 있는 힘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촛불집회와 같은 불꽃을 밝힌 게 아닐까? 유관순은 이런 소외된 민중의 대표 자격이 있다.

유관순이 학생이었음에도 3·1운동을 앞장서 이끌고 일제의 잔혹한 고문에도 굽히지 않은 것은 무척 훌륭하다. 하지만 한 인물이 3·1운동 자체를 대표한다고 보는 것은 맞지 않다. 3·1운동을 대표하는 것은 독립운동에 힘을 보태고 일제의 탄압에 대해
‘목소리를 낸 조선인 모두라고 생각한다. 일제에 저항하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많은 사람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위험을 무릅쓰고 만세 운동을 했다. 그분들이 원했던 자유, 그리고 그 자유를 위해 행동으로 나선 것을 오래도록 기억해야 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3·1운동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역사적 인물인 것은 맞지만 3·1운동을 대표한다고는 볼 수없다. 3·1운동은 우리 민족 모두가 힘을 합쳐 이뤄 낸 것인데,
유관순만 기억한다면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은 보이지 않게되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을 어떤 인물과 동일하게 여기는 것은 시험 때 외우기 쉬운 것 외에 다른 좋은 점은 없는 것 같다.
유관순 열사도 3·1운동에 대한 기억이 축소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나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수많은 사람이 독립을 위해 힘썼다는 사실이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독립유공자 후손 예우에 관한 법을 바꿔야 한다. 정부에서는 지금도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훈장을 준다는 뉴스를 봤다. 당연한일이지만 일찍 인정된 독립유공자에 비해 경제적 혜택을 덜 받는 셈이니 형평성이 부족한 것 같다. 독립군 후손들이 증거가 부족해서 뒤늦게 인정받는다면 손자 이후의 후손이라고 해도 지나간 시간을 고려하여 보상금, 생활 지원, 교육 지원 등 혜택을 모두 주는 것이 독립군에게 늦게라도 감사의 의미를 표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10대들 사이에는 조선족 비하가 심각하다. 조선족이라는단어를 비속어로 사용하는 친구도 많다. 사실 나도 왜 그들이 중국에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은 광복 후 귀국한 줄 알았는데 중국에 남아 고향으로 돌아오지못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게 안타까웠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이생계가 어렵다는 기사가 나오면 사람들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조선족이라면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건 모순인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식민지에서 선진국이 된 자랑스러운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우리나라 경제력이 세계 10위라고 하는데, 그 정도면 국가를 위해 힘쓴 분들의 후손에 대해 예우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자식에게만, 그것도 남녀를 따져서 혜택을 주었다는 게 너무나 황당하다. 재정적 지원이 힘들다면 그분들이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훈장이라도 드려야 하며독립군이 기억될 수 있도록 후손들을 만나 증언을 듣고 기록해책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독립군이 자신들의 희생과헌신에 보람을 느끼지 않을까? 지금의 우리 또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일제강점기는 권력이 사람을 점령한 시대 같다. 학교 칠판에 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체포한 것을 보면 권력에 조금이라도 반발하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탄압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일본인 중에도 사회적 약자들은 조선에 취업하러 오기도 했고 조선인 중 권력에 가까운 사람은 부를 쌓고 백화점, 스키장 같은 문화생활을 누리며 지냈다.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가중요한 것이 아니라 권력과 가까운지 아닌지가 중요했던 것 같다. 권력이 사람을 지배해선 안 되며 사람이 권력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일제강점기의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는 정의가 흔들린 시대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일본에 넘긴 사람 중에는 조선인도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만큼 식민 지배 협력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힘없는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었다는걸 보여 준다. 그리고 조코 요네타로는 일본인인데도 조선을 도왔다는 이유로 감옥에 갔다. 이런 걸 보면 일제강점기는 일본인을 위한 시대도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일제강점기에서 배울수 있는 교훈은 일본에 대한 적대심을 키우는 게 아니라 정의를흔드는 위험한 가치관에 대한 적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는 모순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흔히 일제강점기를일본인이 한국인을 점령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일제를 도와권력을 누리며 살아간 사람도 있고, 일본인인데도 불구하고 식민지 조선인을 도왔던 사람도 있다. 또 일본군 ‘위안부‘처럼 조선인을 성의 도구처럼 생각한 사람도 있다. 상반되는 일들이 많아서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이를 통해 일본인을 무조건 나쁘게만봐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나쁜 것은 일본이라는 국적이 아니라 시대를 이용해서 이익을 보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기심인 것 같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당시 사람들에게 8월 15일은 빛을 되찾았다는 의미가 컸을 것같다. 물론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정부를 세우는 일은 상상하지못했던 데다 완전한 회복도 아니다. 그래도 35년이라는 기나긴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간의 독립운동이 결실을맺은 것이기에 암흑 속에서 빛이 보이는 정도로는 회복이 된 것같다.

또 다른 어둠의 시작이라 생각된다. 미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한반도가 분단 위기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들이바랐던 독립 후의 세상은 이렇게 분단된 나라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는 더 큰 비극이었는지도 모른다. 38도선을기준으로 분단되면서 이산가족이 생겨나고 한국전쟁으로 동족간에 총을 겨둬야 하는 날이 왔으니 이보다 더 참혹한 일은 없는것 같다.

너의 생각을 돌려줘

당시 사람들에게 8월 15일은 빛을 되찾았다는 의미가 컸을 것같다. 물론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정부를 세우는 일은 상상하지못했던 데다 완전한 회복도 아니다. 그래도 35년이라는 기나긴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간의 독립운동이 결실을맺은 것이기에 암흑 속에서 빛이 보이는 정도로는 회복이 된 것같다.

또 다른 어둠의 시작이라 생각된다. 미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한반도가 분단 위기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들이바랐던 독립 후의 세상은 이렇게 분단된 나라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는 더 큰 비극이었는지도 모른다. 38도선을기준으로 분단되면서 이산가족이 생겨나고 한국전쟁으로 동족간에 총을 겨둬야 하는 날이 왔으니 이보다 더 참혹한 일은 없는것 같다.

다른 빛을 기다리는 또 다른 어둠이 아니었을까? 일제로부터독립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그 당시 사람들에게도, 오늘날 우리에게도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 독립운동가들이 서로대립하고 강대국이 한반도를 통치하겠다고 하는 일이 일어나지금까지도 남과 북은 분단된 상태다. 광복은 긍정적 사건이기보다는 연속된 갈등의 시작처럼 보인다. 그래서 또 다른 어둠의 시작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해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광복 무렵보다 더 발전한 것처럼 통일이라는 또 다른 빛을 회복하는 길로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너의 생각을 들려줘

우리가 한국전쟁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전쟁의 참혹함이다. 강자(지도자들)에 의해서 전쟁이 일어나면 많은 약자(민간인들이 이유 없는 폭행과 학살 등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피해를 받는 민간인들은 정작 자신들이 결정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강자들의 결정으로 약자의 머리에 총이 겨누어지는 어이없는 현실과참혹함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약자들의 입장을 고려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있다.

한국전쟁은 두 정부의 정치적 자존심 싸움이었다. 고위층의 자존심이 민간인과 군인에게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 기억해야 한다. 전쟁을 일으킬 생각도,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생각도 전혀 없는 사람들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으로 피란길에 오르고 가족들과생이별을 해야 했으며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민간인이라는 사실과 모두에게 고통과 피해를 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쟁과 민간인 학살의 비극을 보며 폭력을 선택한 과거 지도자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남한과 북한 모두의목적이었던 통일을 더 평화로운 방법으로 이뤄 낼 수는 없었을까? 예를 들어, 모둠활동 때 의견이 달라 충돌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모둠원은 ‘좋은 성과를 낸다‘라는 목적은 같다. 모둠활동 중에 과거 지도자들이 전쟁과 폭력을 택해 피해만 남겼던 것을 기억한다면, 서로에 대한 공격은 성과보다는 피해를 발생시킨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대화와 협의를 통해 평화롭고 지혜로운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민주공화국다운 나라는 시민들에게 권력이 분배되어 독재가불가능한 구조가 확실하게 갖춰지고, 시민들이 권력자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나라다. 독재자가 등장해 집단체조 같은비민주적인 행사를 진행할 때, 비판의식이 없다면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니 시민은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창구다. 시민이 단체를 구성하거나 의견을 낼 수 있는 장이 충분하고 그 안에서 개개인이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면, 또한 그것을 정부가 귀 기울여 듣고 수용하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민주공화국다운 나라가 될 것 같다.

민주공화국다운 나라는 국민을 정치에서 소외시키지 않는 나라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주권은 국민에게 있음에도불구하고 이승만처럼 국가 권력을 이용해 반대 세력을 폭력으로억압하고 선거를 조작한다면 민주공화국은 무너지고 만다. 따라서 주권자인 국민은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지지로 권력을 갖게 된 지도자는돈과 명예보다는 책임감을 갖고 일해야 한다.

민주공화국다운 나라는 모든 국민이 같은 무게의 ‘돌‘을 쥐고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민주공화국 국민의 주권이 바로 ‘돌‘이다. 주권을 ‘돌‘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것이 단지 권리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책임감, 의무감, 정치에대한 관심 등이 필요하다. 나는 아직 정치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기에 정치는 어른들이 알아서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장을 읽으며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하겠지‘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이승만과 같은 독재자를 도와주는 꼴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투표는 주권을 행사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방법이다. 모두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자신의한 표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으면 한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가난하든 부유하든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게
‘잘 사는‘ 일인 것 같다. 그런데 내 일에 만족하려면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와 더불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환경이 보장되어야한다. 하지만 1960~1970년대 노동자 대다수는 잔혹한 노동 현실 때문에 힘겨워했다. 기적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룩했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참혹했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발전을 이뤘다고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박정희가 아닌 그 시대의 노동자들이 이뤄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살아 보세‘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당시 경제 규모 변화를 그래프나 표로 본다면 한국이 잘살게 된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수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국민의 워라밸은 무너졌고 평균적인 삶의 질 또한 훨씬 떨어졌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성장이라는 명목하에 노동자의 육체와 정신을 일방적으로 희생시켰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경제성장의 영광과 혜택에서 배제되었다. 지금도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가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일이 발생해도 기업의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 이런 사회가 ‘발전‘했다고 할 수 있을까?

너의 생각을 들려줘

가난하든 부유하든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게
‘잘 사는‘ 일인 것 같다. 그런데 내 일에 만족하려면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와 더불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환경이 보장되어야한다. 하지만 1960~1970년대 노동자 대다수는 잔혹한 노동 현실 때문에 힘겨워했다. 기적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룩했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참혹했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발전을 이뤘다고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박정희가 아닌 그 시대의 노동자들이 이뤄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살아 보세‘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당시 경제 규모 변화를 그래프나 표로 본다면 한국이 잘살게 된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수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국민의 워라밸은 무너졌고 평균적인 삶의 질 또한 훨씬 떨어졌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성장이라는 명목하에 노동자의 육체와 정신을 일방적으로 희생시켰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경제성장의 영광과 혜택에서 배제되었다. 지금도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가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일이 발생해도 기업의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 이런 사회가 ‘발전‘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박정희 정부의 경제 정책은 애초에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박정희 정부는 다음 선거에서 또 당선되기 위해 경제개발을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경제발전의 수치만 신경 쓰고 국민의 행복은 안중에도 없었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는 국민의 삶의 질을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경제발전의 목적도 국민이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경제개발 정책 아래에서 노동자의 삶은 크게 바뀐 것이 없다. 하루하루 겨우 살아갈 정도의 낮은 임금을받으며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일을 해야 했다. 국민의 행복을이뤄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경제 규모는 커졌으나 발전했다고보기는 힘든 것 같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채식주의자와 성소수자가 배제되고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채식주의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굳이채식주의자 앞에서 고기 이야기를 꺼내거나 비건 음식을 조롱하는 일이 빈번하다. 또 동성애를 정신병이라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더럽다고 혐오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채식주의자는 고기를 먹지 않아 시장경제에 도움이 안 되고 성소수자, 특히 동성애자는 아이를 낳지 않아 국가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봤다. 이런 것을 보면 그들은 ‘효율‘과 ‘정상성‘이라는 이름아래 차별받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사회복무요원이 떠올랐다. 사회복무요원 제도는 군인으로복무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관공서 등에서 대신 복무하게하는 제도다. 우리 학교에도 사회복무요원 선생님이 계셔서 궁금한 마음에 검색해 본 적이 있는데, 국제노동기구에서 사회복무요원을 강제 노동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 역시 국민을 국가에 동원하는 ‘신속‘과 ‘효율‘의 유산인 것 같다. 사회복무요원이 된 사람들은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는것인데, 이제 선진국 대열에 든 우리나라가 그런 사람들까지 강제로 일을 시키는 것은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것 같다.

‘장애 이해 교육‘ 시간에 한국의 지체장애인이 버스를 타고 외출하는 영상을 보았다.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이 휠체어가 다니기 힘들 만큼 좁아 사고가 날 뻔했고, 정류장에 도착한 후에는휠체어가 탈 수 있는 버스가 없어 두 시간 동안 버스를 기다려야했다. 영상을 보며 내가 왜 그동안 길에서, 버스에서 휠체어를 탄사람을 많이 보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일은 장애인에게 너무 힘들고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일이었던 것이다. 또 장애인의 탑승으로 출발이 지연된다며 장애인에게 눈치를 주거나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이 차별받으며 무관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지 않을 텐데 왜 사회는 바뀌지 않을까? 장애인 차별에대한 인식 개선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게 포용의 손길을 건넬실질적인 방법도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학교에서 토론할 기회가 많아야 할 것 같다.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는 학기마다 있는 선거인데, 사실 선거가끝나면 전교 회장이나 학급 회장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학생들 대다수도 물론 관심이 없다. 이번 장을 읽으면서국민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대통령은 자기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만 힘쓴다는 사실을 배웠다. 학교에서부터 전교 회장, 학급 회장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공약은 지키는지 점검하고 토론할 기회가 있다면 어떨까? 임원들은 더 잘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일반학생들은 그들의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 일상 속 민주주의가 자리 잡아야 하는 곳은 학교다. 학교는 그저 지식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작은 사회다.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받은 교육을 토대로 사회에 진출해 살아간다. 따라서 학교에 민주주의가 잘 자리 잡는다면 그것이 점차 사회로 확장되어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 개개인의 권리를 중요시하고 학생이 교칙을 직접 만들 수 있게 하는 등 학생이 학교의 주인으로 행동할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 또한 학생들이 직접 교육감이나 교육부 장관을 뽑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교육 정책에 학생의 의사가 잘 반영될 수 있고, 교육감과 교육부 장관도 학생과 교육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고 정책을결정할 것 같다.
240 역사를 질문하는 역사 2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서는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모두가 평등한권리를 갖는다는 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말로는누구나 평등하다고 하지만 실제 우리 사회는 불평등한 부분이여전히 많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다. 예를 들어,
우리 학교는 현관에서부터 실내화를 신어야 한다. 미세먼지 방지와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학교 다니는 내내 듣게 된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신발을 신고 들어가 교무실에서 실내화로 갈아 신는다. 누구도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만약 학생이 이걸 지적한다면 버릇없는 학생이 될 것이다. 교사와 학생사이의 불평등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문제를제기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닌 분위기를 만든다면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불평등을 연하게 여기지 않고 용기내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 또한 영향을 받아 더욱 민주적인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낙타
신경림(庚林 1935~ )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절창이다. 보지 않는 듯 하면서 다 보고 계셨구나.
어려운 말 하나 쓰지 않고 깊은 곳을 찌른다. 어떤 경지에 오른 시인만이 그런 거룩한 살인을 할 수 있다.
1990년대, 마포와 인사동 언저리에서 신경림 선생님과 어울린 적이 있었다. 술자리든 어디서든 언성을 높여 누군가와 다투는 선생님을 본 적이 없다. 한국 문단에서 보기 드문 분이었다.
시집 <돼지들에게》를 펴내며 신경림 선생님에게 추천사를 부탁드렸다. 세대는 다르지만 내 시를 편견 없이 봐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아름다운 추천사를 주신 선생님께 감사와 존경을 바친다.

술 노래 A Drinking Song
에이츠(W. B. Yeats 1865~1939)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
우리 늙어 죽을 때까지
알아야 할 진실은 이것뿐.
술잔을 들어 내 입술로 가져가며
그대를 바라보고, 나 한숨짓노라.
Wine comes in at the mouthAnd love comes in at the eye;That‘s all we shall know for truthBefore we grow old and die.
I lift the glass to my mouth,
I look at you, and I sigh.

마다젊은 날, 술자리에서 흥이 오르면 소리내어 암송했던 예이츠의 술 노래, "입으로(at the mouth)" "눈으로 (at the eye)"
1행과 2행이 대구를 이루고 "comes in " 이 반복되어 노래가 되었다. 마지막 행에 나오는 ‘그대‘는 예이츠가 평생 사랑했던 모드 곤이리라. 술과 사랑의 진실을 이토록 간결하게 묘하다니.
20세기가 낳은 가장 뛰어난 시인이라는 찬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우리가 늙어 죽을 때까지 알아야 할 진실이 어찌 이것뿐이랴.
그러나 이렇게 사랑에 죽고 사는 시인이 나는 좋다.
그녀 없이 행복할 수 없다는 예이츠의 말에 모드 곤은 이렇게대답했다지. "아, 그래 당신은 당신이 말하는 그 불행으로부터아름다운 시를 만들지. 그래서 그 시를 보며 당신은 행복하지.
결혼은 따분한 일이야. 시인은 결혼하면 안 돼. 당신과 결혼하지않은 것에 대해 전 세계는 내게 고마워해야 해."

<이소>는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정치가이며 중국 최초의 시인이라고 알려진 굴원屈原의 대표작이다. 총 375개의 구에 2,490 글자로 이뤄진 장편시의 제목인 이소(騷)는 근심을만나다‘ 혹은 "이별과 근심의 의미를 담았다.
"저는 하늘의 신 고양의 후손으로 시작하는 <이소〉는높고 아름답게 태어나 왕을 보필하다 모함을 받고 쫓겨난 굴원자신의 처지를 구구절절 읊는다. 자신을 버린 님 (왕)에 대한 사랑과 원망이 너무 진해 쓰고 또 써도 눈물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소의 마지막은 ‘이제 그만 하리! 이 나라에는 알아주는 사람 없으니 고국에 무슨 미련을 두리. 훌륭한 정치를 함께 할 사람이 없으니 나는 팽함이 있는 곳으로 가리라."로 끝난다. 팽함은 은나라의 충신으로 임금에게 직간했다 듣지 않자 물에빠져 죽었다. 초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굴원은 멱라강에투신해 죽었다.

목욕하는 사람아 
이백(李白 701-762)

향수로 머리 감았다 해서
갓티끌 튕기지 말 것이며,
난초 담근 물로 몸 씻었다 해서
옷먼지 털지는 마소.
사람사는세상
지나친 결백은 삼가하나니.
도에 지극했던 사람들
제 본색 감추기를 귀히 여겼더라네.
창량(流浪) 물가에 고기 낚던 이 있었다니.
내사 그이나 찾아 가려네.

이범한 옮김

이백의 시들을 읽다가 술 타령 달 타령에 염증이 나 술이 나오지 않는 시를 찾다 <목욕하는 사람아>를 발견했다.

"새로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갓의 먼지를 털고, 새로 몸을씻은 자는 반드시 옷의 티끌을 턴다"는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를 되받아치며 이백은 지나친 결백을 삼가고 본색 감추기를 귀히 여기라고 말한다.

창랑(滄浪: 한수이강의 지류)에 고기 낚던 이는 굴원과 대화를 나누던 어부, 고결한 몸에 세속의 먼지를 묻히지 않겠다는굴원에게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노래를 남기고 어부는 사라졌다. 청렴결백을 자랑 말고 세상에 따라 변하라, 깨끗함에 집착하지 말라는깊은 뜻 아니던가. 지나친 결백은 나에게도 불편하고 타인에게도 불편하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진면목‘이라는 말은 소동파의 시에서비롯되었다. 여산을 두루 구경한 뒤 서림사의 벽에 그가 남긴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 가로로 보면 산마루, 옆에서 보면 봉우리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건 내가 산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깨달음. 밖에서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 그가 유배되어 밖에 있었기에 도달한 이치가 아닐까.
시문학뿐 아니라 서예와 그림에도 뛰어났던 소동파, 자유로운 듯하나 절제된 아름다움, 그의 작품은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힘이 있다.

기대지 않고
이바라기 노리코(木子 1926~2006)

더이상
기성 사상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이상
기성 종교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이상
기성 학문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이상
그 어떤 권위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
오래 살면서
마음속 깊이 배운 건 그 정도
자신의 눈과 귀
자신의 두 다리로만 서 있으면서
그 어떤 불편함이 있으랴
기댄다면
그건의자 등받이뿐

-성혜경 옮김

내 삶과 동떨어진 학문이며 사상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기대지 않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노리코 여사는 엄청난 독서를했음에 틀림없다. 이런저런 사상과 학문을 섭렵했던 자만이 그처럼 쉽게 버릴 수 있다. 내가 조선 여자라 노리코의 시에 격하게 공감할지도 모른다. 성리학과불교, 모더니즘을 수입해 얼른내 몸에 둘러야 했던 변방의 먹물들. 서재 가득한 책에 포위된지식인들의 사진을 볼 때마다 숨이 막힌다.
내 나라 안방을 점령한 무슨무슨 클래스에 열광하는, 무슨무슨 논리에 영혼을 바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 유튜브의시대, 내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자신의 다리로 서 있지 못하고 부화뇌동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말이 없어진다면 삶은 더 간단하게 행복하거나 불행하겠지.
호주오픈 테니스가 시작되기 전에 편하게 앉을 소파를 사야겠는데 아직 맘에 드는 소파를 발견하지 못했다. 내 맘에 딱 드는 물건이 아니라면 사지 말자. 오래 살면서 내가 배운 건 그정도.


이바라기 노리코(木07子1926~2006)

이라크의 가수가 노래 불렀다
열렬히 허리를 비틀어 가며
"사담에게 이 피를 바치자
사담에게 이 생명을 바치리"

어딘지 귀에 익은 노래
45년 전 우리도 불렀다
독일 어린이들도 불렀다
지도자의 이름을 걸고
피를 바치자 따위의 노래를 부를 땐
변변한 일은 없는 법

피는 온전히 자신을 위해 써야 하는 것
굳이 바치고 싶다면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쓰는 것이야말로

- 성혜경 옮김

변변한‘이라는 형용사가 절묘하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를번역한 성혜경 선생의 탁월한 언어 감각에 감탄이 나온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쓸 피가 내게 남아 있나? 내 자신을 위해 쓸 피도부족한데….
피처럼 선명한 언어들, 허튼 수식어 없이 꼭 필요한 말만 엮어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쓰려고 노력했던 위대한 시인.
일본군국주의를 예리한 ‘여자의 말‘로 비판했던 노리코 여사에게 조선은 아름다운 피해자, 알고 싶은 이웃나라였다. 한국어를배우고 윤동주의 시를 일본에 소개했던 이바라기 노리코, 어떤문학상 수상도 거부했고 장례식도 조의금도 거부한다는 편지를남기고 그가 타계한 몇 달 뒤 일본을 방문했다. 아사히신문 기자에게서 노리코 여사의 집에 배용준의 사진이 크게 붙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이도 지식인인 척하는 남자들에게 어지간히 실망했던 게다.

유언
김명순(1896~1951)

조선아 내가 너를 영결) 할 때
개천가에 고꾸라졌던지
들에 피 뽑았던지
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대해다오.

그래도 부족하거든
이 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보아라
그러면 서로 미워하는 우리는 영영 작별된다이 사나운 곳이 사나운 곳아.

내가 조선이 나를 영결하는 게 아니라 "내가 너를 영결할때이다. 그만큼 주체적이고 활달한 자아를 엿볼 수 있다. 죽은시체에게도 학대해 달라니, 자학적인 표현에서 그녀에 대한 집단가해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된다.
평양 갑부 소실의 딸로 태어난 김명순은 진명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공부하다 1917년 최남선이 주간하는 《청춘》의현상응모에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창조‘ 동인으로 시와 소설을 발표했는데 일본 유학 중에 데이트 강간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심한 비난에 시달렸다.
"부정한 혈액" "처녀 때 강제로 남성에게 정벌받았다" 남성문인들의 모욕에도 굴하지 않고 김명순은 작품집 <생명의 과실》을 간행했고 매일신보사의 기자로도 일했다. 최초의 여성 소설가 근대 처음으로 시집을 간행한 여성 시인. 그 찬란한 처음을연 그의 마지막은 불우했다. 궁핍한 생활 끝에 일본으로 건너가땅콩을 팔아 연명하다 도쿄의 뇌병원에서 죽었다고 한다.

외로움과 싸우다 객사하다
나혜석(錫 1896~1948)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 가서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 공(空)인 나는 미래로 가자.
사남매 아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잘못된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어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
후일, 외교관이 되어 파리 오거든
네 에미의 묘를 찾아 꽃 한 송이 꽂아다오.

처음부터 격하게 시작하는 나혜석의 유언과도 같은 시. ‘살러가자가 아니라 죽으러 가자" 다. 비장한 내용이나 문체는 사뭇당당하다.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파리로 가서 죽고 싶다는 시를 쓰고 왜 못 떠났을까? 죽으러‘는 ‘살러‘의 역설적 표현 아닌가 얼마나 시달렸으면….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조선 여성 최초로 세계일주를 했던 나혜석은 파리에서 만난 남편이 아닌 남자와의 관계가 알려지며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세간의 비난과 조롱을 받는다. ‘부도덕한 신여성‘은 가난과 병에 시달리다 행려병자가 되어 52세에서울시립자제원 병동에서 생을 마감했다. 1934년 나혜석이 <삼천리》에 발표한 이혼고백장의 한 문장이 내 귀에 메아리친다.
"나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을 쓰면서 나는 이주하는 새들의 여정을 더 깊숙이 들여다볼 기회를얻었다. 
내가 여행을 하며 때때로 경로를 바꾸거나 계획을 수정해야했던 것처럼 새들은 어떻게 저마다의 다양한 여정에 적용해왔는지,
그리고 새의 이주가 나의 어릴 적 단순한 생각처럼 계절마다 북쪽에서남쪽으로 이동하는 움직임 그 이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 나의 비행기 편이 취소되거나 여행 일정이 바뀌고 날씨가 나빠지는일쯤은 새들이 이주하는 동안에 맞닥뜨릴 위험과 그 뒤에 따라올 여러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게 바람이 있다면, 독자들이 부디 이 책을 통해 멋진 새를 만나러가는 여정에 영감을 얻을 뿐만 아니라 모든 새들이 안전하게 이주할 수있도록 지구 곳곳에서 조력자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 어디에서든 이 책에 등장한 새들의 일부를 만날 수 있으며일 년 내내 그들의 놀라운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그 기회를 더 많은사람이 누리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자, 이제 함께 하늘로 날아오를 시간이다.

극제비갈매기 오Sterna paradisaca
이주 형태:계절성, 위도 이주

의심할 여지없이 극제비갈매기는 지구에서 가장 멀리까지 이동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 끈기 넘치는 여행자는 지구의 한쪽 극지방에서 다른 극지방으로 
최소 왕복 4만 킬로미터에서 7만2000킬로미터를 이동한다. 그 시작과 끝 지점이 어디인지, 그리고그 길이를 직선거리로 재는지 혹은 우세한 기류를타고 이동한 새들의 구불구불한 경로를 모두 따라서측정하는지에 따라 총거리는 달라진다.
이 엄청난 비행으로 극제비갈매기는 일 년에 여름을

두 번 즐길 수 있다. 한 번은 북극에서, 한 번은 남극에서 말이다. 그 덕분에 매년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보다 많은 햇볕을 쬐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부분은 극제비갈매기의 긴 수명(25~30년)을 고려할 때 한마리가 평생 이동하는 거리가 얼추 100만킬로미터를 넘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구와달 사이를 거의 세 번 오가는 것과 맞먹는 거리다.

벌새는 어떻게 이주할까?

이주는 정말 놀라운 능력이다. 몸이 가장 작은 새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벌새류는 몸무게가 단 3그램, 몸길이는 7~10센티미터로 아주 작지만대부분 두 서식지 사이의 어마어마한 거리를 혼자 날아서 이주한다. 예를들어 멕시코만 상공을 쉬지도 않고 날아서 지나는 루비목별새‘" (Archilochuscolubris)는 여정의 시작과 끝 지점에 따라 짧게는 800킬로미터에서 최대1500킬로미터를 이동한다. 대체 작은 몸으로 어떻게 이토록 멀리까지이주할 수 있는 걸까?
오랫동안 사람들은 벌새를 포함한 몸집이 작은 명금류가 혼자 힘으로는격렬한 비행을 완주할 수 없어서 참을성이 많은 튼튼한 새의 등에올라타 히치하이킹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런설화가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우리는 이제 벌새가 어떻게이주하는지 훨씬 잘 알고 있다.

루비목벌새Archilochus colubris

벌새는 혼자 이주한다이 작은 새는 이주하는 여정 내내 혼자서 여행한다. 하나의 작은 표적은잠재적 포식자의 눈에 훨씬 덜 띄기 때문에 벌새는 안전하게 이주할 수있다.
벌새는 낮 동안에 이동한다벌새는 대기온도가 높아 최상의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오전부터 초저녁시간까지만 이동한다.
벌새는 낮은 고도로 난다고도가 낮을수록 공기밀도가 높아서 이동하기가 더 쉽다. 육지 위를 날때는 나무 바로 위인 지상 6~15미터 높이로, 물 위를 날아갈 때는 파도를스치듯이 낮게 날아간다.
벌새는 꽃망울이 터질 때 이동한다벌새는 이주 시기와 경로를 꽃 피는 일정에 맞춘다. 꽃들이 가장 많이피어나 꿀이 풍부해지는 때와 장소를 자신의 이주 경로에 연결해 이동중에 사용할 에너지로 쓴다.
이런 모든 적응을 통해 벌새류는 이주하는 동안 보통은 하루에32~40킬로미터나 육지 위를 날아갈 수 있다. 이는 같은 기간에 차체길이가 4.6미터 정도인 중형차가 1600킬로미터를 내달리는 것과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