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되어 있는데, 그 잔디밭 공원이 그대로 국회의사당의 지붕으로연결되면서 그 안의 의원들은 국민의 발아래에 있는 공간 구조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의 주요 개념은 ‘호주 국회의사당‘처럼 지붕과 공원을 연결해 시민들이 그 위를 산책할 수 있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정원에서 보안상의 이유로 옥상정원 등 극히 일부만 개방했다. 여기서 호주, 독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수준이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독일이나 호주는 국가 안보를 신경 쓰지 않아서 그렇게 개방했을까? 나 같은 외국인조차도 미리 신청만 하면 독일 국회 회의장 위에 올라가서 내려다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독일의 민주주의다.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다.
낮은 ‘잠수교‘는 한강 물이 조금만 불어나도 물에잠겨서 건너갈 수가 없다. 이때 ‘잠수교‘는 미세한 자연의 변화를 공간의 변화로 치환해서 우리가 알아채게 해 주는 장치다. 만약에 ‘잠수교가 아주 높은 교각으로 만들어졌다면 그런 역할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낮은 높이의 교각 디자인이 자연의 변화를 공간적으로 변환시켜 주는 기능을 만들어 냈다. 나는 이런 ‘잠수교‘ 같은 건축을 ‘건축 공간을통해서 자연과 대화할 수 있게 해 주는 건축‘이라고 말한다. 일종의 ‘공간 통역사‘다. ‘퀘리니 스탐팔리아‘도 그런 종류의 건축이다. 베네치아의 물 높이는 항상 변화했다. 이런 변화를 공간의 변화를 통해 좀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건축물이 ‘퀘리니스탐팔리아‘다.
한 명이 디자인을 도맡아서 사무소를 꾸려 나간다. 송도 신도시를 디자인한 KPF의 경우에도 ‘P‘인 페더슨 Pedersen 디자인을 하고 ‘K‘와 ‘F는 디자인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 건축계 사람들이 혼히 환상의 콤비라고 부르는 경우는 정부의 소수 민족 특혜를 받을 수있으면서 동시에 물주 역할을 할 수 있는 아시아계 파트너, 언론을 담당하는 유대계 파트너,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 좋은 인상을 주는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백인 디자이너 파트너, 이렇게 셋이 모이는 경우라고 한다. 요즘 같으면 인종 차별적 발언이라고 난리 날 일이지만 과거에 냉정한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그랬다. 이 같은 대형 건축 사무소의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건축설계사무소 SOM(Skidmore, Owingsand Merrill)은 고층 오피스 빌딩, 컨벤션 센터, 공항 같은 대형 건축물중심의 작품을 쏟아 내고 있다. 참고로 SOM을 ‘솜‘이라고 읽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그것은 마치 1990년대 인기 아이돌 그룹 HOT를 ‘핫‘이라고 읽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키드모어Skidmore‘라고 읽으면 좀 더 뉴욕 ‘인싸‘로 보일 수 있다. ‘스키드모어‘는 SOM의 ‘S‘로, 뉴욕 토박이 건축가들은 SOM을 이렇게 읽는다. SOM이 지금처럼 명성을 얻은 것은 뉴욕의 ‘레버 하우스Lever House‘나 ‘바이네케 고문서 도서관‘ 같은 작품들이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MIT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1988년에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고든 번샤프트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 중 예일대학교의 희귀 도서를 보관하는 도서관인 ‘바이네케 고문서 도서관‘은 평면과 단면의 구성, 재료의 선택, 구축방식 디테일까지 모든 면에서 훌륭한 작품이다.
오케스트라 피아노 협주곡 같은 미술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벽이 필요하다는 미술관의 기본에 충실한 건물을 디자인했다. 하지만 네모난 방의 벽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기다란 벽을 만들었다. 관람자는 그 벽만 계속 따라가면서 보면 된다. 그건물이 넓은 땅에 위치했다면 직선으로 기다란 벽을 만들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주어진 대지는 뉴욕이라는 번잡한 도심 속의 작은 땅이었다. 따라서 건축가는 430미터나 되는 기다란 벽을 연속되게 만들기 위해 경사로를 따라 둥그렇게 위로 말아올렸다. 이렇게 함으로써 네모난 방을 만들 경우 생겨나는 각진 모서리 없이 연속된 벽체를 만들 수 있었다. 빙빙 돌아 올라가는 경사로의가운데는 여섯 층이 뻥 뚫린 빈 공간을 만들었다. 그 공간 위에는 천창을 두어 햇빛이 들어오게 했다. 마치 ‘판테온‘의 천장에서 빛이 내려오듯이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천장에서도 빛이 내려온다. 사람은 주광성 동물이니 빛이 있으면 그쪽으로 시선이 간다. 따라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발을 들인 사람들은 곧장 6층까지 뚫린 공간 중앙에서게 되는데,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빛이 들어오는 천장을 바라보게 된다. 앞서 설명했듯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경외심을 유발한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로비에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경사로가 돌아 올라가면서 만들어 낸 전시 공간이 시야에 꽉 차게 들어온다. 진입 로비에서 앞으로 구경할 미술관의 공간 전체를 한번에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어떤 방문객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간다. 이번에는 불과 수십 초 전에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던 공간을 반대로 위에서 아래로 한 번에 내려다보게 된다.
시끄러운 도로가 아니라 교회나 광장을 향하게 된다. 여러모로 시민을 위해 잘 작동하는 디자인이다. 고층 건물을 지을 때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층에 부는 바람이 가하는 압력, 즉 풍압 때문에 건물이 옆으로 흔들릴 수도 있는 위험성이다. 더욱이 ‘시티그룹 센터‘는 기둥 네 개와 가운데 엘리베이터 코어로만 지탱해야 할 뿐 아니라 이 기둥들이 꼭짓점이 아닌 각 변의 가운데에 있어서 구조적으로 더 불안한 상태다. 평소에는 괜찮지만 허리케인이라도 부는 날에는 아주 심각한 위험이 초래될 수도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티그룹 센터‘ 고층부에는 ‘동조 질량 감쇠기 Tunned MassDamper‘라는 기계 장치를 내부에 설치해 놓았다. 장치의 원리는 네 개의 끈에 매달려 있는 무거운 추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무게 중심을 이동시켜 건물의 구조를 더욱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바람이 세게 부는 날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몸을 기울여 걸으면 좀 더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건물이 바람에 밀려 왼쪽으로 기울 때 끈에 매달린 추는 관성의 법칙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결과적으로 추가 건물의 오른쪽에 위치하게 되면서 건물의 균형을 잡아 주는 원리다. 이 기법은 대만의 ‘타이베이101 Tivel Francal Comer‘ 같은 초고층 건물에도 사용되고 있다.
해설자에 의하면 메시의 강점은 드리블할때 공을 몸에서 30센티미터 이상 떨어뜨리지 않아서 공을 빼앗기지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보는 메시의 장점은 인간의 몸을 다른 사람보다더 여러 개의 부분으로 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수는 앞에 수비수가 있으면 돌파를 못 하고 옆으로 공을 돌리기에 급급하다. 수비수 한 명을하나의 벽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시는 사람의 몸을 몸통과네 개의 팔다리로 구성된 것으로 이해한다. 몸통에는 머리와 팔다리 네개, 총 다섯 부분이 가지처럼 붙어 있다. 따라서 각각의 팔, 다리, 머리사이에 다섯 개의 빈공간이 있다. 메시는 사람이 앞에 서 있어도 이 다섯 개의 빈 공간으로 공을 통과시킨다. 축구장에서 남들보다 더 높은 해상도로 사람을 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허스트 타워‘를 만들 때 포스터가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건축을 남들보다 더 높은 해상도로분석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터는 건축물을 한 덩어리로 보지 않았다. 그는 건물을 외부의 입면 벽과 실내 공간을 구성하는 바닥 면들로 분해해서 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오래된 전통 건축물에서중요하게 지켜야 할 것은 입면 벽뿐이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사각형 건물들은 모서리가 직각을 이룬다. 그런데 이 건축물은다이아몬드 격자 구조이다 보니 모서리 부분의 창문이 위아래로 삼각형 모양의 창문이 대칭을 이루는 마름모꼴로 되어 있다. 모서리에 있는 사람들은 이 거대한 삼각형 창문을 통해 남들과는 다르게 사거리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메시의 축구 같은 개발 전략만약에 역사적 가치를 위해 오래된 건물을 보존만 해야 한다고 우겼다면 허스트사는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어쩌면 빌딩 주인은 오래된건물을 밤사이 부숴 버렸을지도 모른다. 서울에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 어느 유서 깊은 극장을 서울시에서 근대 유산으로 지정했다. 근대 유산으로 지정되면 개발이 제한되기 때문에 건물주는 근대 유산지정의 실효성이 발효되기 하루 전에 밤새워 건물을 포클레인으로 부숴 버렸다. 만약에 문화재청에서 극장 건물의 입면만 잘 보존하고, 내부는 철거해서 개발할 수 있게 해 주었다면 ‘허스트 타워‘처럼 전통의보존과 자본주의의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때 공사비는 더 많이 들어간다. 그렇다면 건축주를 설득하기 위해서 시에서는 용적률 추가와 높이 규제 완화 같은 인센티브를 준다면 어떨까? 인센티브를 받은 건축주는 기꺼이 기존 건물의 부분 보존에 동의할것이다.
오래된 전통는 이점이 있음을 알고 수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촌이 땅을사면 배가 아픈 마음을 버려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평등한 사회를만들기 위해 주변이 더 잘될 수 있는 일을 막기도 한다. 그런 마음 때문에 이 나라의 건축이 획일화되는 것이다. 부동산의 가치는 주변이잘될 때 더불어 올라갈 가능성이 커진다. ‘‘허스트 타워‘ 같은 디자인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건축물의 가치를 좀 더 세분화시켜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도시는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건물이 철거되고 새롭게 지어질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무엇을 보존해야 할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경회루‘처럼 목구조 자체가 가치를 가지는 건물은 전체를 보존해야 하고, 어떤 근대식 건물은 입면만 보존해야 할 수도 있고, 어떤 경우는 건물은 부수고 새로 짓더라도 골목길의 모양만 보존해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좀 더 말랑하게 생각하면서도 예리해질 필요가 있다. 건축물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지 말고 가치를 분해해서 봐야 한다. 메시가 팔과 다리 사이, 목과 어깨 사이, 다리와 다리 사이로공을 통과시키듯이 건축을 볼 때도 그런 눈을 가진다면 어려운 도시재생을 더 멋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메시의 플레이처럼 박수 칠 만한재건축 사례가 많아질수록 좋은 도시가 된다. ‘허스트 타워‘는 좋은 사례를 보여 준다.
흥분되고 긍정적인 마음이 생긴다. 우울증 환자에게 가장 좋은 처방중 하나는 햇빛을 받으면서 빠른 걸음으로 걷는 것이라고 한다. 베트남전쟁재향군인기념관‘에서 걸어 나올 때 딱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내 시야에서 검정 대리석 벽은 점차 사라지고 밝은 자연이 점점 더 많이 보인다. 이렇게 전쟁과 죽음에 대한우울한 감상이 밝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내 몸으로직접 느끼게 된다. 잠깐 몇 분 걸었을 뿐인데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온 것 같은 느낌을받는 기념관이다.
니엘 칸Nathaniel Kahn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설계자: 아들의 여행My Architect: A son‘s Journey)에잘나와있다. 이 영화는 칸의 건축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건축에 관심 있는 분들은 꼭 봐야 할영화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동적이다. 간은 73세에 인도 출장을 다녀온 후 뉴욕의 펜실베니아역Pennsylvania Station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며칠이 지난 후에야 발견됐다. 사망하면서 칸이 여권의 주소를 지위고, 경찰의 소통 문제 때문에 신원을 확인하는 데 3일이나 걸렸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며 그만큼이나 새로운 건축을 만들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도 처절하게 했던 사람이다. 건축가로서나 인간으로서나 삶을 불태웠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PRE침묵과 빛 사이「침묵과 빛 사이 Between Silence and Light 는 건축학자 존 로벨 John Lobell이 칸의 건축 세계를 설명하는 책이다. ‘침묵과 빛 사이‘만큼 루이스칸의 건축 세계를 한마디로 잘 압축해서 설명하는 말은 없는 듯하다. 그의 건축물에 들어가면 침묵하게 되고 왠지 조용히 묵상해야 할 것같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고 인간의 영성을 일깨우는 무언가가 있다.
생각을 깨우는 서른 번의 건축 기행건축물은 그 사회의 반영이자 단면으로, 당대 사람들이 세상을 읽는 관점과 물질을 다루는 기술 수준, 사회 경제 시스템, 인간에 대한 이해, 꿈꾸는이상향,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보인다. 책 속의 서른 개 건축물을 설계한 스무 명의 건축가는 수백 년 된 전통을 뒤집는 혁명적인 생각으로 건축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 세상을 변화시켰다. 저자는 이 작품들로 건축 디자인이 무엇인지 배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이 건축물들을 통해 독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가슴에 품고 있던 보석 같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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