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맹탐정이 꽃을 내밀자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받았다.
"아침에 속상하셨어요?"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기특했어."
할머니가 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아를 너처럼 일찍 찾아댕기면 좀 좋아? 자아는 일찍 찾을수록 좋은 거야."
"할머니는요? 할머니는 자아 찾았어요?"
"우리 때는 자아라는 게 없었어. 다 먹고살 만해지니까 자아라는 것도 찾고 그런 거지. 우리 땐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서 자아가 누구랑 눈 맞아 도망을 가든 말든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 그리고 그게 내 자부심이야. 나는 암만 어려웠어도 내 자식들 다 대학까지 보냈어."
"할머니는 인생에 후회가 없어요?"
"후회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냐. 그냥 이만큼 살아온 것도 용하다 싶어. 이런 말이 쑥스럽긴 하지만 나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그럼 할머니는 자아실현을 이미 하신 거네요."

"제 자아도 아직 못 찾았거든요. 사실 제 주변에 자아를 찾았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다들 없대요. 자아가."
없으면서도 다들 열심히 일상을 살았나 보구나. 나처럼 무책임하게 떠나지 않고."
"아빠한테 한 말은 아니에요."
"안다"
맹탐정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 인도 가 본 적 있어요?"
아빠가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이 거기로 자아 찾으러 많이 간대요. 나중에 해외에 갈일 있으면 그쪽으로 꼭 한번 가보세요."
맹탐정의 말에 아빠가 허탈하게 웃었다. 농담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진짜로 자아 찾으러 인도에 갔다 온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던데……….
맹탐정과 아빠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카페 방향으로 걸었다. 
처음보다 약 10센티미터는 가까워졌지만 멀리서 보면 처음과똑같을 것이다. 마치 가까이에서 들여다봐야 보이는, 귀 뒤나 목에 난 작은 상처처럼 말이다. 멀리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빠, 만약에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해요.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누굴 선택해야 할까요?" - P143

맹탐정은 용우에게 직접 묻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뭐하나 잘못 물어보면 배신 3인방이 또 뒤에서 사람들에게 맹탐정이 글쎄, 하면서 이야기하고 다닐 게 뻔했다. 용우에게 직접 묻지 않으면서 용우의 말수가 적어진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어려운 미션이지만 걱정스럽지는 않다. 
정 못 알아내면 바다 색처럼 하루 열두 번도 더 변하는 마음을 들여다보기가 피곤한 어른들처럼 사춘기라서 그렇다고 해 버리면 된다. 어른들을 원망하는 건 절대 아니다. 사는 게 피곤하면 그럴 수 있다. 
인혜의 자아실종 사건을 추적하면서 몸과 마음이 너무 피곤했다. 피곤해져 보니 어른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피곤하다는 건 귀찮다는 것이다. 
그리고 귀찮다는 건 늙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맹탐정은 지난번 사건을 통해 많이 늙었다.

용우는 수영을 시작했다. 수영 수업이 끝나면 종종 카페에 와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간다. 그럼 나도 그 옆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물론, 엄마가 없을 때만 서로 아무 말도 하지않는다. 그래도 어색하지 않다.

‘아, 용우가 그 말은 했었다. 네가 공정한 아이라서 다행이라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잠시 부끄럽고 많이 자랑스러웠다. 언제까지나나 자신에게 자랑스럽고 싶다는 다짐도 했더랬다.

아빠는 산이군에서 일을 시작했다. 할머니는 아빠가 서울대 갔을 때보다 더 좋다고 하셨다. "그땐 명문대생이 된 거지만, 지금은사람이 됐잖어."라고 하시면서. 
나는 이런 말을 할 줄 아는 할머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
맹똘이는 아빠와 축구할 때가 가장 좋다고 했다. 그건 아빠는골키퍼, 자기는 공격수라서 그렇다. 열 번 차면 열 번 다 골을 넣는데 재미가 없을 수가! 축구를 할 때마다 아빠의 얼굴에서 물기가사라지는 것 같은데 제발 나의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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