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까와 똑같은 자세와 동작으로 복숭아나무를 향해 화살을 날렸으나 멀리 빗나갔다.
바위 위로 돌아온 그의 낯빛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했다.
"당신은 실력과 기품과 좋은 자세를 모두 갖췄습니다." 진이 말했다. "활쏘기 기술에 능통하고 활을 다룰 줄도 알지만정신을 다스리는 법은 익히지 못했군요. 모든 상황이 순조로울 때는 잘 쏘지만 곤란한 상황에서는 표적을 맞히지 못합니다. 궁사가 언제나 전장을 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수련을 시작해 곤란한 상황에도 대비하십시오. 계속 궁도에매진하세요. 그것은 평생에 걸쳐 가야 할 길이니까요. 화살을 정확하게 잘 쏘는 것과 영혼의 평정을 유지하고 쏘는 것은 매우 다르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이방인은 다시 한번 깊숙이 절한 뒤 어깨에 멘 기다란 가방에 활과 화살을 챙겨 떠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소년은 의기양양했다.
"본때를 보여주셨네요! 아저씨는 정말 최고예요!"

동료가 꼭 모든 이들이 우러러보며 "저 사람이 최고야"라고 말하는 눈부신 인물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래서 때때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는 사람들이 동료가 될 수 있다. 그들은 실수로 인해 종종 노력의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수많은 실수 끝에 마침내 공동체에 진정한변화를 가져올 과업을 이루어낸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그저 가만히 기다리다가 앞으로 어떤 태도를 취할지 결정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34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넘어지고, 상처받고, 그러고도 더 많은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과 어울려라. 진실을 단언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을 비난하는사람들, 존경을 얻으리라는 확신 없이는 한 발짝도 행동으로옮기지 않는 사람들, 의문보다 확실성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
마음이 활짝 열린 사람들,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려라. 그들은 친구들이 하는 일을 판단 없이 바라보고 그들의 헌신과 용기를 칭송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자신도 발전할 수 있음을 안다.

동료 39

우아함은 군더더기가 모두 사라지고 궁사가 간결함과 집중에 이르렀을 때 나타난다. 자세는 간결하고 절제될수록 아름답다.
눈이 아름다운 이유는 하나의 빛깔을 가졌기 때문이고,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는 완전히 편평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다도 눈도 그 속은 깊고 스스로 제 본성을 알고 있다.

자세 71

결과가 좋든 좋지 않는 그날 아침의 활쏘기에 너무 휘둘려서는 안 된다. 앞으로 수많은 날이 남아 있고, 각각의 화살은그 자체로 하나의 삶이다.
잘하지 못한 날들을 교훈삼아 네가 흔들린 이유를 알아내라. 잘한 날들을 거울삼아 내면의 평온으로 이르는 길을 찾아라.
하지만 두려워서든 즐거워서든 정진을 멈춰서는 안 된다.
궁도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보는 법 99

화살을 쏘고 나면, 궁사는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의궤적을 눈으로 좇을 뿐달리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 순간부터는 활쏘기에 필요했던 긴장을 남겨둘 이유가 없다.
그래서 궁사는 날아가는 화살을 주시하면서 마음을 놓고미소를 짓는다.

가르쳐달라고 했다. 말을 돌보는 일보다 훨씬 재미있어 보였거든. 
하지만 그분은 내게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이제 죽음을 더는 물리칠 수 없다고 말씀하셨어. 내가 그동안 몸을너무 망가뜨리며 살아와서 죽음이 아주 가까이 왔다고.
내가 궁술을 배운다 해도, 그저 잠시 죽음이 내게 이르지못하게 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하셨지. 
바다 건너 아주 먼 나라 사람이, 궁술을 익히면 죽음의 나락으로 이르는 길을 잠시피할 수 있다고 그분에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내 경우엔, 남은 삶 동안 그 심연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고 있으며, 언제라도 그 속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의식해야 한다고 하셨어.

그분이 내게 궁도를 가르쳐주셨다. 내게 자신의 동료들을소개해주었고, 나를 시합에도 나가게 해주셨지. 그리고 머지않아 내 명성이 온 나라에 퍼졌어.

그분은 내가 충분히 배웠다고 판단하시고는 내 화살과 표적을 치워버리고 활 하나만을 기념품으로 남겨주셨단다. 
자신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내가 진정한 열정을 품을 수 있는일을 하라고 말씀하셨어.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목공이라고 말했지. 그분은

에필로그 141

내게 축복을 빌어주시며 궁사로서의 명성이 나를 파괴하고다시 예전의 생활로 이끌기 전에 어서 그곳을 떠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라고 하셨단다.

그로부터 나는 매 순간 나의 악습과 자기연민에 맞서 싸워왔다. 나는 집중과 평정을 유지하고, 내가 기꺼이 선택한 일을 하며, 현재의 순간에 절대 집착하지 않으려고 한단다. 죽음은 여전히 아주 가까이 있고 나는 내 바로 옆에 있는 심연의 가장자리를 걷고 있으니까."

죽음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 옆에 가까이 있다는 말을 진은 하지 않았다. 
소년은 아직 어렸고, 그런 생각을 할 필요는없었다.

궁도는 인간의 모든 활동에 스며 있다는 말도 진은 하지않았다.
그는 아주 오래전 자신이 받은 것처럼 소년에게도 축복을 빌어주며 그만 가보라고 말했다. 
긴 하루를 보내고 이제 잠에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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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떠나기 전에 하루키가 말했다.

저녁 8시의 파라다이스 요코하마는 북적북적했다. 양철 종들의강렬한 울림, 작은 망치들이 소형 쇠 사발에 부딪치는 땡그랑 소리,
삐 소리와 다채로운 불빛의 번쩍거림, 알랑거리는 종업원들이 목이쉬도록 외치는 환영 인사로 번잡했다. 덕분에 하루키는 머릿속 고통스러운 침묵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줄줄이 늘어선 생동감넘치는 수직형 기계들 앞에 앉아 파친코를 하는 사람들의 머리위에 부연 안개처럼 자욱한 담배 연기의 소용돌이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루키가 파친코장으로 들어서자마자 일본인 지배인이 서둘러 다가와 차를 마시겠냐고 물었다. 보쿠 상이 지금 사무실에서 기계 영업사원을 만나고 있고 곧 내려올 거라고 했다. 매주목요일 하루키는 모자수를 데리러 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파친코장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도박으로 돈을 좀 따고 싶어서 오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이곳을 찾았다. 
인사를 건네는 이 하나 없는 으스스할 정도로 조용한 거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사람들, 
아내가 아이들과 잠드는 애정 없는 집에서 달아나고 싶은 남편들도 있었다. 
낯선 사람을 밀치는 건 허락돼도 말 거는 건 금지된 지나치게 덥고 혼잡한 퇴근 시간의 전철을 피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루키는 더 젊었을 때는파친코를 별로 하지 않았지만 요코하마로 온 후로는 이곳에서위안을 찾았다.

감사의 말

나는 1989년에 이 이야기의 착상을 얻었다.
대학교 3학년이었고 졸업 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미래를 곰곰이 생각하기보다는 관심을 돌릴 거리를 찾아다녔다. 어느날 오후, 마스터스티(Master‘s Tea)라는 예일대학교의 초청 강연시리즈에 참석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강연이었다. 일본에사는 한 미국인 선교사가 식민지 시대에 이주한 조선계 일본인들과 그들의 후손을 일컫는 ‘자이니치]‘라는 용어를 설명했다.
일본에 사는 일부 조선인들은 자이니치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자이니치는 말 그대로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외국인 거주자라는 뜻이어서, 일본에서 3, 4, 5대째 살아남은 세대들에게는 이치에 맞지 않는 용어였다. 이제는 일본 국적이 된 재일조선인들도많지만, 귀화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일본인과 결혼하거나 부분

적으로 조선인 혈통인 사람들도 많다. 
안타깝게도 일본에 사는조선인들과 조선인 혈통을 일부 물려받은 사람들을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차별해온 역사가 기나길고 파란만장하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조선인 혈통이라는 사실을 결코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신분증명서와 정부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면 민족 정체성이 드러나는데도 말이다.

선교사는 이런 역사를 이야기하며 조선계라는 이유로 졸업 앨범으로 괴롭힘을 당한 어느 중학생 남자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남자아이는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잊을 수 없었다.
1990년 역사학과를 졸업한 나는 로스쿨에 다녔고, 두 해 동안 변호사로 활동했다. 변호사 일을 그만둔 후,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쓰기로 이미 1996년에 마음먹었다. 그리고 많은 단편소설과 장편소설 초고를 썼지만 출판되지는 않았다. 나는 낙담했다. 

그러다가 2002년에 생일날 지문날인을 하고 외국인등록증을받는 조선계 일본인 아이를 다룬 단편소설 <모국Motherland〉이
<미주리 리뷰>에 실렸고, 후에 이 작품으로 페덴 상(Peden Prize)을받았다. 그리고 대학 시절 들은 이야기를 소설화해서 뉴욕예술재단 지원금을 받았다. 그 지원금으로 강의를 듣고 베이비시터를 구해서 글을 쓸 수 있었다. 책을 출판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걸렸기 때문에 초창기에 인정을 받았던 것이 내게는 무척 중요했다. 

게다가 뉴욕예술재단 지원금을 받으면서 대부분의 삶에서 무시와 거부, 말살을 당했던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알

려야 한다는 내 고집스러운 믿음이 통했다고 확신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올바르게 풀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제대로 해낼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불안한마음에 방대한 조사를 했고 조선계 일본인 공동체에 대한 소설의 초안을 썼다. 여전히 적절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2007년, 남편이 도쿄의 일자리를 제안받았고 우리는 8월에 그곳으로 옮겨 갔다. 일본에 사는 조선인 수십 명을 현장에서 인터뷰할 기회를 얻었고, 나는 소설의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선계 일본인들이 역사의 피해자일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그들을 만났을 때 누구의 삶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만난 사람들의 폭넓고 복잡한 인생사에 절로 고개가 숙여져서 2008년에 기존 원고를 치우고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뒤로 책이 출판될 때까지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나는 거의 30여 년 동안 이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따라서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많다.

《미주리 리뷰>의 스피어 모건과 에벌린 서머스는 가장 먼저 이이야기가 가치가 있다고 믿어준 이들이다. 뉴욕예술재단은 내가포기하고 싶었을 때 소설 지원금을 주었다. 감사한다.
도쿄에 살 때 많은 사람이 나를 만나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에대한 수많은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이뿐만 아니라 국외 거주자의삶, 국제금융, 야쿠자, 식민지 시대의 기독교 역사, 경찰 업무, 이민,
가부키초, 포커, 오사카, 도쿄 부동산 거래, 월스트리트 리더십, 유흥업, 그리고 당연하게도 파친코 산업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직접 만날 수 없을 때는 전화 통화를 하거나 이메일로 질문에 답해준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다음의 사람들에게 많은빚을 졌다. 
수전 메나듀 천, 천종문, 천지수, 정행자, 정강자, 정연원목사, 스콧 밸런, 에마 후지바야시, 스테퍼니 가이엣과 그레그 가이옛 메리 하우트, 대니 헤글린, 히데모리 겐, 팀 혼야크, 린다 리 김김명구, 알렉산더 킨몬트, 마쓰나가 다미에, 미야모토 나오키, 나카지마 리카, 박소희, 알베르토 다무라, 피터 태스커, 제인 퀸과 케빈퀸 양향, 폴 양, 사이먼 유, 윤종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많은 저자의 중요한 저술이 없었다면 이 책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그 저자들을 소개한다. 데이비드 채프먼, 정행자, 하루코 타야 쿡, 시어도어 F. 쿡, 에린 정, 조지 드 보스, 후쿠오카 야스노리, 한해영, 힐디강,강상준, 세라 사카에 카샤니, 재키 J. 김,
이창수, 이수임, 존 리에, 리처드 로이드 패리, 새뮤얼 페리, 소니아량, 테사 모리스-스즈키, 스티븐 머피-시게마쓰, 메리 기모토 도미타에게 깊이 감사한다. 이들의 저술에 크게 의존했지만 사실에맞지 않는 오류가 있다면 모두 내 책임이다.

일본과 한국, 미국에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의 사랑과 믿음과 친절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 책을 쓰고 수정하고 다시 쓸 수 없었을 것이다. 해리 애덤스 목사, 린 애런스,
해럴드 아우겐브라움, 캐런 그릭스비 베이츠, 디온 베넷, 스테파나바텀, 로버트 보인턴, 키티버크, 저넬 앤더버그 밸런스 캘런로런 케런드, 켄 첸, 앤드리아킹 콜리어, 제이코스그로브, 엘리자베스 커스럴, 주노 디아스, 찰스 더피, 데이비드 L. 엥, 셸리 피셔

<파친코>에 쏟아진 압도적인 찬사

회복과 연민에 대한 강력한 이야기 
버락 오바마(미국 전 대통령)

올해(2017년) 최고의 책 
록산 게이(<헝거) 작가)

20세기를 견뎌내고 번영을 이룬 재일한국인 가족의 깊고광대한 역사, 
데이비드 미첼(<클라우드 아틀라스) 작가)

다정함과 지혜로움을 보여주는 잊히지 않는 작품
사이먼 윈체스터 (교수와 광인) 작가)

터전을 찾고자 애쓰는 이민자들의 희생에 관한 강력한 명상
주노 디아스(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작가)

잊히지 않는 대서사시
 <뉴욕타임스>

역사가 의도적으로 지우려 했던 사람들에게 바치는 풍부한현사, 
<가디언>

야심 차다. 찰스 디킨스의 맥을 잇는 사회 소설. 
《USA투데이》

계급, 종교, 소외당한 역사와 문화 등 거대한 이슈들을 담아낸 역작 
<내셔널북리뷰)

사랑, 상실, 투지, 행운, 인내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
(라이브러리저널)

진정한 집을 꾸리고자 하는 여러 세대에 걸친 본성을 정교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방대하고 몰입감 넘치는 역사 소설
(퍼블리셔스위클리>

다큐멘터리의 디테일과 뛰어난 픽션의 공감이 어우러진<작품, 
<데일리메일)

계급과 문화 차이로 씨름하는 한 가족의 다채로운 태피스트리를 능숙하게 엮어낸 걸작 
전미도서상 심사평

"이 책은 역사적 재앙에 맞선
개개인의 이야기이다"

세계를 뜨겁게 울린 한 가족의 대서사극
삶의 회복력과 존엄성,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담아낸
문화와 세대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고전의 탄생!

전 세계 33개국 번역 출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뉴욕타임스》, 《USA투데이》, 아마존, BBC ‘올해의 책‘

2017년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작

그들은 모두 가능성과 두려움, 외로움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
매일 아침, 모자수와 직원들은 당첨 결과를 조작하려고 기계를 살짝 손봐서 돈을 따는 사람은 적고 잃는 사람은 많게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행운아일 거라는 희망을 품고 게임을 계속했다.

어떻게 성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겠는가
파친코는 바보 같은 게임이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았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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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삶을 책임지는 어른처럼 보였다. 하루키는 모자수가 이끄는대로 따르고 싶었다.
작업장은 여전히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아가씨들이 작업대에 까만 머리를 숙인 채 일하고 있었다. 모자수는 옷감 위로 날듯이 빠르게 움직이는 유미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유미는 일에 집중하면 다른 데 정신을 팔지 않았다. 무슨 일에든 그렇게 집중했고 가만히 두면 몇 시간이라도 일을 할 수 있었다. 모자수는 자신이 종일 그렇게 조용히 있는 것을 상상도 할 수없었다. 파친코장의 웅성거림이 그리울 터였다. 모자수는 커다랗고 시끌벅적한 파친코장의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아주 좋아했다.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는 하나님의 계획을 믿었고, 모자수는 인생이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믿었다. 
다이얼을 돌려서 조정할 수 있지만,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로 생긴 불확실성 또한 기대한다는점에서 비슷했다. 모자수는 고정돼 보이지만 무작위성과 희망의여지가 남아 있는 파친코를 왜 손님들이 계속 찾는지 이해할 수있었다.
"유미가 보여?" 모자수가 자랑스럽게 가리켰다. "저기! 네 번째책상에...."
유미상 만난적 있어. 훌륭한 재봉사야 아주 우아한 사람이지. 넌 행운아야." 하루키가 말했다. 
"일은 어때? 돈 많이 벌었어?"
"한번 들러 난 지금 파라다이스 세븐에 있어. 내일 와 유미를만나서 영어 수업에 데려다줄 때 빼고는 거의 밤낮으로 거기 있거든."

한수가 그렇게 대단하고 유명한 대학교에서 하는 경험이 어떤것인지 궁금해해서 보통 이들은 수업 이야기를 했다. 한수는 중등학교나 대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책을 보고 조선어와 일본어를읽고 쓰는 법을 혼자 익혔고, 형편이 되자마자 과외 교사들을 고용해서 어려운 일본어와 조선어 신문을 읽는 데 필요한 한자를배웠다. 한수는 부유한 사람들과 힘 있는 사람들, 용감한 사람들을 많이 알았지만 글을 잘 쓰는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제일 감명을 받았다. 뛰어난 기자들과 친분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는데, 당면한 중요 사안에 대한 잘 정리된 생각과 관점이 존경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한수는 민족주의나 종교나 심지어 사랑까지도 믿지 않았으나 교육은 믿었다. 무엇보다도 사람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고 믿었다. 
어떤 종류의 낭비도 혐오했고, 세 딸 모두 쓸데없는 장신구나 소문 때문에 학교를 그만뒀을 때 그렇게 내버려둔 아내를경멸하는 마음이 커졌다. 딸들이 좋은 머리와 무한한 자원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아내는 이런 것들을 쓰레기처럼 내던지게 했다.

딸들한테는 손쓸 길이 없었지만 이제 한수에게 노아가 있었다. 노아가 영어를 그토록 유창하게 읽고 쓸 수 있다니 가슴이 설렐 정도였다. 한수는 이제 영어가 필수적임을 알고 있었다. 노아는 한수에게 책들을 추천했고 한수는 아들이 알고 있는 것을 자기도알고 싶어서 그 책들을 모두 읽었다.
이 젊은이의 뛰어난 학문적 소양은 한수가 반드시 육성해야 하는 것이었다. 한수는 노아가 졸업한 후 무엇을 하면 좋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지 않으려고 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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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
선자 - 고한수, 이삭
노아

일제강점기
한국 부산 영도와
일본 오사카에서
한국의 평범한 민중들이 어떻게
역사의 파도를 어떻게 몸을 딱 바닥에 붙이고
넘어가는가를 보여준다...

뻔한 서사에
결말을 다 아는 얘기이겠지만
다른 각도로
어색한 번역투 문장으로 더듬더듬 만나게 되는 반복되는 민초들의 삶의 연결,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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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넌 요새 좀 변했어.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했을 무렵부터."
"응...... 그럴지도 몰라. 아주 좋은 애거든."
"그래, 좋은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구나. 그 뭐냐, 잘해줘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버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상처 입는 걸 겁내면 안 된다… 맞는 말이구나."
마치 아주 오랜만에 술에서 깨어난 듯한 목소리였다.
"말이 너무 심했으면 미안. 죄송해요."
"아니다.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나지. 집안일부터 시작해서 모든 걸 사나에하고 너한테 떠넘기고 난 도망치고있었어. 게다가 응모까지 그만뒀어. 네 말대로 상처 입는게 두려웠던 거야. 네 어머니를 잃고, 나한테 재능이 없다는 걸 아는 게 두려워서. 계속 도망만 쳤다."
아버지가 힘이 빠진 것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도 망설이다가 옆에 앉았다. 아버지도 나도 어떻게 하면좋을지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마시다 만 발포주 캔을 가볍게 쥔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 부자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면 두 사람은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현실은 픽션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 현실은 언제나 이렇게 건조하고 당황스럽다.
주저앉아 꼼짝도 못 한다.
‘그래도 현실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
뭔가 먹을 걸 만들까 하고 묻자 아버지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우리는 중요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건 진보라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아버지를 정면에서 대할 것이다.
아버지도 아버지 나름대로 그때 무슨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침묵이 이어진 끝에 아버지가 "그래, 뭣 좀 만들어줄래?"라고 말했다.
나는 얼굴을 들었다. 아버지가 서툴게 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곰보 달걀이 오랜만에·· - 생각나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로, 누나가 종종 만들곤 했다. 원래는 어머니 본가에서 만들던 것이라고 한다.
13

"사나에 축하한다. 정말 축하해."
몸속 깊은 곳이 떨려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잠깐 울었다.
"누나가 집에 찾아온 것은 아쿠타가와상이 발표되고 열홀 이상 지났을 때였다.
"집이 참 깨끗하네. 우리 동생은 역시 다른걸."
며칠 전 누나에게서 또 연락이 온 뒤로 아버지는 내내들떠 있었다.
그때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이튿날 아침부터 아버지는자진해서 집안일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요리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등 내게 조금씩 집안일을 배우고 있다.
오늘은 아침부터 열심히 청소하더니 저녁은 아버지가하겠다고 호언했다.
우리 집 상태에 감탄하는 누나에게 나는 말했다.
"나 혼자 청소하는 게 아냐. 아버지도 거들어주거든."
누나는 정말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가 부끄러운 듯 말을 이어받았다.
"그 뭐냐.....… 여러모로 미련이 없어졌어. 요리도 청소도해보니까 즐거운 면이 있고 말이지. 소설 쓰는 건 당분간

그만둘까 한다. 도피 수단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정면에서대하듯 소설을 대할 수 있게 되면・・・・・・ 그땐 써볼까 하는 생각도 있고, 사나에, 원하는 책이 있으면 가져가라. 초판본이든 뭐든 상관없어. 책도 좀 줄여야겠다고 생각하니까."
누나가 아버지를 쳐다봤다. 아버지는 잠깐 눈을 내리깔았다가 부끄러운 듯 웃었다.
"제가………… 제가 소설을 쓰려고 한 건 아버지 영향이에요 소설을 쓴다는 행위는 아버지 덕분에 가까이에 있었어요. 그렇지만....… 처음엔 저도 그랬거든요. 지금의 자기자신한테서 도망치고 싶어서 썼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그게 아니게 된 거예요. 자기를 확장해가기 위한 걸지도모르겠다, 자기 자신의 새로운 말, 새로운 생각을 만나는장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누나의 말에 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감격해서 울 것같은 표정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쳐다보던 누나가 분위기를 바꾸려고 명랑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네요・・・・・・ 이 집은 책이 너무 많아서 위생적으로안 좋은 면도 있었으니까 좀 가져갈까요. 그래도 돼요. 아버지?"

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어."
가미야가 잇는 슬픈 말들에 나는 머리를 숙이고 말았다.
죽다니. 그런 일 없어. 괜찮아."
"그렇지만..
"응, 알아. 하지만 인간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렇잖아, 굉장하지 않아? 공업 제품이랑은 다르다고. 거기엔 설계도도, 숙련된 작업자도 없어 어머니 배 속에서 자라서 세상에 툭 나와서, 그때부터, 아니그 전부터 살아 있지. 그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로봇처럼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든 게 아니니까 이상이 생겨도 바로 모르고 움직이지 않아도 부품을 교체해 살려낼 수 있는 것도 아냐. 어떻게 이렇게 살아 있는 건지 실은 잘 알 수 없어. 이해할 수 없고, 굉장하고, 동시에 겁나는 일이야."
가미야는 자신의 왼쪽 가슴 언저리를 바라봤다.
그때 가미야에게 무슨 말인가 할 걸 그랬다.
가미야에게 무슨 말인가 해주었어야 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러지 못했다. 가미야의 말에 약간,
아주 약간, 맞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안정했을 때 마오리가 어땠는지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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