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대법원은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을 허가하지 않았다. 당시 대법원은 성별정정을 막는 것이 아동을 차별로부터 보호해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가족관계를 드러내야 하는 불합리한 제도나, 이렇게 드러나는 가족 형태를 이유로 차별하는 사회를 문제삼지 않고서 말이다. 이 지점에서 2022년의 대법원은 달랐다. 가족관계등록부의문제는 "개인의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정정과 관련된 내용을불법적으로 외부에 노출하는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유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 있다면 "차별하는 쪽의 편견과 몰이해를 바로잡기 위해 법률적·제도적으로 노력해야 할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여겼다. 미성년 자녀의 복리는 여전히 중요한 고려 요소이지만 판단의 방향이 달랐다. 신청인의 성별정정을 인정함으로써 "부모로서 안정적으로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고 부양할 수 있는 사회적·경제적 토대를마련"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부합한다고보았다. 2022년 대법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개인의 가족생활은 사회적 관계의 시작이자 핵심을 이루는것으로서 국가는 이를 보장하여야 한다(헌법 제36조 제1항). 성전환자 또한 전체 법질서 안에서 가족을 이루는 구성원으로
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아야 하고, 국가는 성전환자의 이러한 권리를 보호하여야 한다.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것이그의 가족관계에 변화를 가져오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이는부 또는 모의 성전환이라는 사실의 발생에 따라 부모의 권리와 의무가 실현되는 모습이 그에 맞게 변화하는 자연스러운과정일 따름이다. 이렇게 형성되는 부모자녀 관계와 가족질서또한 전체 법질서 내에서 똑같이 존중받고 보호되어야 한다. 성전환자가 이혼하여 혼인 중에 있지 않다거나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정정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이러한 점이 달라지지않는다.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도 여전히 그의 부 또는 모로서 그에 따르는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수행하여야 하며이를 할 수 있다. 12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정한다. 조금 늦었지만 한국의 대법원 헌법상 국가 "가 보장해야 할 "가족생활"이 남들에게 드러나는 특정한 가족형태가 아니라 실질적인 가족관계여야 함을 인정했다. 정상가족ㅣ외관을 지키려던 공고한 가족각본에 이렇게 균열이 생겼다. 185
전한 생존방식일 수 있다. 이런 불평등한 현실에 눈감으며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는 사회는 부조리하다. 그 결과는 무엇보다 아동에게 영향을 미친다. 가족각본은 아동에게 불평등하고 가혹한 사회를 만든다. 이 말이 의아하게 들릴 수 있다. 앞서 본 것처럼 2011년 대법원은 사회적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라며 ‘동성혼의 외관‘이드러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2015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오히려 정반대로,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동성결혼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성결혼만 인정하면 동성커플의 자녀가 "자신의 가족이 어딘가 부족하다는 낙인"을 겪게 되므로, 아동이 해를 입지 않게 동등한 가족지위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아동들이 가족 배경을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차별을겪는다. 아동이 겪는 온갖 놀림과 괴롭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족 형태, 가족소득, 가족 구성원의 특징 등 가족에 관한 이유때문인 경우들이 많다. 가족의 상황이 아동들 사이에 권력관계를 만든다. 흔히 그렇게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다며 운명으로 받아들이곤 하지만, 이는 가장 부정의한 불평등이기도 하다. 어느가족에게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누구는 존중을 받는 반면 누구는무시를 당하고, 누구는 풍족한 기회를 얻는 반면 누구는 생존어렵다면, 벌거벗은 아기 때부터 우리의 몸에 계급이 새겨져 있
다는 뜻인 거다." 182장에서 나눈 혼외출생자 이야기나 3장에서 나눈 ‘혼혈인한센인, 장애인 등의 이야기는 부도덕하거나 열등한 어떤 특정한 사람들의 불행이 아니라, 가족각본이 만들어낸 불평등의 결과였다. 한부모가족, 입양가족, 재혼가족, 이주배경가족, 조손가족, 비혼가족, 동성커플가족, 트랜스젠더가족 등 모든 가족은 가족의 ‘위기‘나 ‘해체‘, 혹은 ‘붕괴‘의 결과가 아니라 다양한 삶의양식이다. 그런데 가족각본이 이러한 삶을 열등하고 비정상적이라고 규정하여 낙인을 새기고 차별을 정당화한다. 국가가 특정가족 형태를 ‘건강가정‘이라고 명명하며 ‘만들어내는‘ 이 불평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2022년의 대법원이 가족각본에 흠집을 내며 만들어낸균열이 특히 의미가 있다. 앞에 발췌한 결정문에서 보듯, 대법원은 헌법 제36조 제1항이 보장하는 ‘가족생활에 대한 권리가 모든 사람의 권리임을 확인했다. 설령 가족관계에 변화가 있더라도 "이렇게 형성되는 부모자녀 관계와 가족질서 또한 전체 법질서 내에서 똑같이 존중받고 보호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존엄하고 평등한 가족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모든 개인에게 인정되는만큼, 수많은 사람들을 배제하는 불평등한 가족질서는 타당하지않다. 누구나 다양한 모습으로 가족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고 국
터섹스(간성, intersex)나, 태어났을 때 지정된 성별과 다른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트랜스젠더, 이성애 규범을 벗어난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등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은, 결국 고정된 성역할 규범을 유지하겠다는 의지였다." 한국이 가족각본에 포획된 사이, 지난 20년 동안 세계는 많이변했다. 영국은 교회법을 따라 1533 년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도입한 뒤 식민지배로 전세계에 전파한 역사가 있는데, 2003년 이를 최종 폐기하고 2013년 동성결혼을 법제화한다. 미국은 동성 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을 연방대법원이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이 2003년인데, 2015년 연방대법원이 동성커플의 혼인할 권리를 인정하면서 모든 주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나치에 의한 대규모 동성애자 학살의 역사를가진 독일은 당시 근거 법령이었던 형법 조항을 1960년대에제하였고, 2017년 민법을 개정하여 동성결혼을 제도화한다."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20여년이 지나는 사이 34개 국가(2023년 5월 기준)가 동성결혼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결혼 외의 공동생활을 보호하는 제도도 개발되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프랑스는 1999년 연대계약을 도입했다. 연대계약은법률혼과 달리 상대방의 가족과 인척관계를 형성시키지 않으면
서 법률혼과 동일하게 상호부양과 협조의 의무를 부여하며, 한사람이 사망하더라도 남은 사람이 살던 곳에서 계속 살도록 거주권을 인정하는 등 공동생활을 보호한다. 연대계약은 처음부터 동성커플과 이성커플 모두를 위해 설계되었고, 공식적으로계약을 체결하는 신고절차를 통해 성립된다. 프랑스는 다른 한편으로 1999년 당사자 사이의 자유로운 공동생활인 ‘동거‘를 민법에 규정하면서 동성커플을 포함했고, 2013년부터는 동성결혼을 인정한다. 이로써 프랑스에서는 동성과 이성의 커플 모두 법률혼, 연대계약, 동거 중 하나를 선택하여 가족을 구성할 수 있게하였다.23독일의 경우 2001년 등록된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Gesetz über dic Eingetragene Lebenspartnerschaft 을 제정했다. 동성커플을 보호하려는 취지가 있었지만 동성커플만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이성커플의 혼인과 구별하려는 의도가 담긴 제도였다. ‘이등지위‘ 를 부여한 차별이라는 비판이 따랐다. 결국 독일은 2017년 법률혼에 동성커플이 포함되도록 혼인을 ‘개방‘하면서 생활동반자제도는 중단하기로 한다. 반면, 영국은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먼저 2004년 동성커플을 위해 동반자관계법 Civil Partnership Act 을 제정했다. 2013년이 되어 동성결혼을 법제화했는데 이때 동반자관계법을 폐지하지 않았다. 대신 이성커플도 동반자관계를 맺을
198이 있다. 2023년 4월 용혜인 의원은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생활동반자관계‘는 두 사람 사이의 계약에 가까워서 상대방 가족과의 인척관계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결혼처럼 동거 ·부양·협조의 의무, 일상가사에 관한대리권과 채무에 대한 연대책임 등을 부여하고 공동입양을 가능하게 한다. 아울러 사회보험 연금수급,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 배우자출산휴가와 돌봄휴직 사용, 소득세 인적공제, 가정폭력으로부터의 보호 등이 가능하게끔 관련된 다른 법들을 개정하도록 했다. 이어 5월 장혜영 의원은 동명의 생활동반자법안과 함께,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민법 개정안(혼인평등법), 결혼과 무관하게 출산을 지원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안(비혼출산지원법) 등 ‘가족구성권 3법‘을 대표 발의했다. 새로운 가족에 대한 논의를 국회가 진전시키기를 기대해본다. 다만, 이런 기대가 얼마나 희망적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책에서 이야기 나누었듯 국가는 오랫동안 가족생활에 대한 헌법적 책무를 개인의 도덕 문제로 돌리면서 제도적 개선 노력을 피했다. 한국사회가 가족의 해체와 붕괴를 논하며 개인의 책임을탓하는 사이, 가족생활을 보장해야 할 국가의 책임은 은폐되었다. 대신 가족은 국가경제를 위해 인력을 공급하는 단위로 여겨지곤 했다. 저출생을 위기라 말하면서도 사람을 노동력으로서의
‘인구‘로 여기고, "출산은 애국"이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정도로 사회는 사람을 도구화하는 데 익숙해졌다. 이제 가족정책과 인구정책을 같은 것이라고 여기는 정부의 무감각함 속에서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야 할 이유는 더 사라진다. ‘장경섭은 ‘가족도덕‘의 회복을 강조하는 정치적 기조의 이면에, 국가가 사회보장 책임을 축소하면서 이를 합리화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한국의 공공부문 지출 수준은 낮은 편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문 지출의 비중은 프랑스 31.6퍼센트, 독일26.7퍼센트, 일본 24.9퍼센트, 스웨덴 23.7퍼센트, 영국 22.1퍼센트 등이고, OECD 평균이 21.1퍼센트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공공부문 지출은 GDP의 14.8퍼센트에 불과하다." 한국은 사회보장에 필요한 비용을 아끼고 가족에게 돌봄의 책임을 맡김으로써, 노동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렇게 기업 역시 오랜 시간 돌봄의 책임을 피하며 이익을 누렸다. 돌봄을 ‘사적인 가족의 문제로 분리시키고 여성의 보이지않는 노동에 의지한 결과, 기업은 돌봄에 관해 신경쓰지 않고 노동자의 노동력을 한껏 사용할 수 있었다. 기업은 돌봄의 책임과무관하다는 생각에서, 여성을 결혼과 육아를 이유로 차별하고남성에게 과도한 노동시간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국가의 ‘가족
‘정책‘은 여전히 가족이 공동생활을 위한 시간을 갖도록 제도를마련하는 일보다, 아동을 돌봄 기관에 맡김으로써 국가와 기업이 노동력을 확보하게 만드는 데 집중되어 있다. 돌봄을 국가와 기업을 포함한 모두의 책임이자 개인의 권리로 인식하고 함. 께 연대하게 될 때, 비로소 불평등한 돌봄의 시간도 재배치될 수있을 것이다. 어려운 문제다. 다양한 가족의 현실과 변화에 따라 제도를 개선하고 설계하며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는 일은 수많은 사람들의연구와 아이디어가 요구되는 엄청난 프로젝트다. 그런데 다른제도들도 그렇다. 변화하는 사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안을찾는 일을 우리는 ‘정책‘이라고 부른다. 적어도 한가지는 분명하다.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구호에 동조하며 기존의 가족질서를 고수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성별이 사람의 인생을 규정하던 시대를 넘어가고 있고, 부조리한 가족각본을 벗어나 모두의 존엄하고 평등한 가족생활을 보장하는 정책이필요하다.
며 살아왔다. 그리하여 마치 가족이나 기업이나 매한가지인 것처럼, 경제가어려우면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가족부터 무너지는 현상을 계속해서 겪어왔다. 사람의 노동력을 최대한으로 뽑아내 이윤을 창출하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산업사회는 가족이 서로를 돌볼 몸을 빼앗으며 그 책임을 가족에게 돌려왔다. 지하철에서 만난 ‘가족 없는‘ 아동들도, 이제 결혼 밖에서 삶을 계획하는 청년들도이 사회가 정답이라 믿어온 가족제도는 서열을 낳는 경제적평등과 오차가 거의 없는 체제임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가족의해체를 우려하며 ‘비정상‘ 가족을 가려내는 정책은 필연적으로불평등을 가속화하고, 결국 그 불평등이 사람이 태어날 수 없는환경을 만들고 있다. 이 와중에 결혼제도 안으로 진입하려는 성소수자의 행보가이상하게 보일 법하다. 이 책에서는 동성결혼 때문에 기존의 가족제도가 흔들릴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사실 정반대의 우려도 제기된다. 가족의 의미를 새로 써야 하는이 시대에, 동성결혼을 요구하는 주장이 기존의 가족담론을 다시금 유지시키는 건 아닌지 염려하는 것이다. 동성커플이 결혼한다고 이성커플의 결혼이 달라지지는 않을 테니, 결혼을 둘러싼 문제들은 그대로 남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
었듯이, 가족이란 제도와 관습 안에서 성소수자의 존재가 던지는 화두는 더욱 본질적이다. 익숙한 가족각본을 잠시 내려두고 사회가 함께 질문하게 만드니 말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우리는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가족을 꾸리는가? 이 책을 쓰며 인용한 문헌들에서 보듯, 이미 수많은 연구자와활동가들이 가족제도를 비판적으로 연구해왔다. 놀랍도록 풍부한 연구들을 감탄하며 읽고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가족제도에대한 논의는 왜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지 못하는가? 가족생활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사회에서 경제, 국방, 교육 등 다른 의제보다 가족을 덜 중요하게 다루는 관념 자체가 말해주는 현실이 있다. 가족은 여전히국가를 위해 유용한 인력을 생산하는 수단이며, 헌법이 요구하는 가족생활의 보장은 아직도 국가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 합계출산율 1명 미만의 시대는 이토록 부조리하고 불평등한사회에 아이를 낳으라는 불가능한 요구와 함께 계속되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의 저출생이 국가적 위기라면, ‘인구‘가 줄어서가아니다. 웬만해서는 사람이 태어나 살 수 있는 땅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돌봄의 공동체가 시간과 마음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구정책은 가족정책이 아닌데, 이 두가지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사회
를 또 반복하며 우리 삶의 시간은 흘러간다. 그래서 묻고 싶다. 이제 우리, 가족각본을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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