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노계盧溪의 글인가?"
"아니, 전에 노자영이란 이의 글이 있었느니………"
"오, 그 「금공작의 애창이니 무슨 「사랑의 불꽃」이니하는 글로 한때 낙양의 지가를 올리던 사람, 지금은 그 글 아는 사람도 없지."
"사탕이니까 혀끝에서 다 녹아 버렸지. 남을 수가 있나."
"그는 그렇다 하고 씀바귀 맛이 왜 두시 맛이란 말인가"
두보같이 인생의 가지가지 고를 맛본 시인은 없다. 난세에 태어났고, 가난한 집에 태어났고, 다한 체질을 타고났고, 일생을 역경에서 살았고, 문재와 포부를 가지고도 과문에는 실패만 했고, 형제 친척은 유리산遊離散落하여 생사가 안타까웠고,
전란에 지향 없이 표박하는 몸으로 고苦와 기한 속에 산시인이다. 아내는 굶주려 병들고, 자식은 굶주려 죽었다. 그의 일생동안 눈에 비친 것은 오직 비참한 광경과 분노와 통탄뿐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모두 현실의 증언이요 고발이며, 피와 눈물의 기록이다. 그러나 그는 이백처럼 현실에서 초탈하려 하지 않고 
왕유나 도잠처럼 은둔하려 하지 않고, 완적阮籍과 같이 창광하지 않고
가의와 같이 현세를 포기하지 않고, 이하賀와 같이 데카당스 하지 않고, 
그의 고苦에 대한 태도는 너무나 엄숙하고 진실했다. 
그 속에서 인생을 맛보고, 찾고 또 음미하고, 만인의 고苦를 대신 노래하며 인생을 새로이 창조해 나갔다. 그는 글을 쓰는 데까지도 고苦를 사양하지 않았다. 한자 한자에 고혈을 경주했다.
"글자 한자라도 경인구가 아니면 죽어도 방과放過하지 않는다語不驚人死不休."고 했다. 
이백이 왜 그토록 말랐느냐고 물었더니 "글 생각하기에 말랐다."고 했다. 정말 그의 시는 고苦의 결정체다. 
그를 시성이라고 하지만 고성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고에 살고 고를 소재로 고로 엮은 그 고의 시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의 시를 읊어 보면 그 아름다움에 오직 황홀하다. 
모든 인생고가 그 아름다움에서 해소됨을 느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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