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즐겁다아무 일이 없을 때에도 지극한 즐거움이 있다. 다만 사람들이스스로 알지 못할 뿐이다. 훗날 반드시 문득 깨치는 날이 있다.
면 바로 근심하고 걱정하는 때일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어느 관청의 수령이 평온하고 조용한 성품을 갖춰서 이렇다 할일을 하지 않아 백성들에게 베푼 혜택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그 후임으로 온 수령이 몹시 사납고 잔혹했다. 그때서야 백성들은 비로소 예전 수령을 한없이 생각하며 그리워했다.
無事時至樂存焉 但人自不知耳 後必有忽爾而覺 為此憂患時也 如前官恬靜 別無施惠於民 及其後官稍猛鶯民 始思前官不已也이목구심서 2무위도식(無爲徒食)‘과 ‘무위지치(無爲之治)‘라는 말이 있다. 모두 무위를 말하지만, 전자는 무위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나쁜 행위라고 하는 반면 후자는 무위야말로 인간이 도달해야 할 궁극의 진리라고 한다. 같은 말을 갖고 어찌 이리도

다르게 사용한단 말인가?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말까지 제멋대로 써먹고 있기 때문이다. 천하를 다스리는권력을 쥐고 있는 자신들의 무위는 지극히 높고 바른 것이지만 자신들을 위해 피땀 흘려 일해야 할 자들의 무위는 결코용납되어서는 안 될 천하의 몹쓸 짓으로 만들어 놓은 셈이다. 이러한 까닭에 무위지치는 최선의 용어가 된 반면 무위도식은 최악의 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만약 무위치가 최선이라면 무위도식 역시 최선이며, 무위도식이 최악이라면 무위자치 역시 최악이다. 어째서누구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에서 지극한 즐거움을 누리고, 누구는 피땀 흘려 일하는 것에서 지극한 즐거움을 누려야 한단 말인가? 사람은 누구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에서지극한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이익과 명예와 권세와 출세를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사위이기도 한 폴 라파르그(Paul Lafargue)의 말처럼, 인간에게는 천부적으로 ‘게으를 권리‘가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이 하고싶지 않은 일이나 좋아하지 않는 일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기계처럼 일하다 폐기되는 것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권력의 도구가 되어 뼈 빠지게 일하다가 버

려지는 것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거부의 전략이 무엇인가? 그게 바로 무위도식이다. 흔히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것을 사람들은 무위도식한다고 오해하지만 그렇지 않다. 누군가 일하지 않고도 돈을 벌어 온다면, 세상 누구도 그를 무위도식한다고 비난하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열심히 일하는 데도 돈을 벌어 오지못하면, 세상 사람들은 그를 무위도식한다고 손가락질하고비난하며 조롱한다. 사실은 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돈을 벌어 오느냐 벌어 오지 않느냐에 따라 다른 평가를내리는 것이다. 뭐 이따위 용어가 있단 말인가? 돈과 권력을위해 일하지 말라. 그저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을 위해 일하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무위의 지극한 즐거움이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향유하려면 오히려 무위도식하는 삶을 긍정하고 창조해야 한다.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얼굴에 은근하게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과는 더불어 고상하고 우아한 운치를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의 가슴속에는 재물을 탐하는 속물근성이 없다.
眉宇間 隱然帶出澹沱水平遠山氣色 方可與語雅致 而胃中無錢癖- 선귤당농소」얼굴에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지금까지 만나고 살펴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지만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재물을 탐하는 속물의 티를 벗은 사람은 어떠한가? 이삼십 대 때에는 그러한 사람을만났던 것도 같다. 그렇지만 마흔 이후로는 그와 비슷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속물티를 벗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속물에 가까워지지 않나 하는 걱정이 든다. 필자의 경우만 해도 이십 대 시절이 가장 뜻이 맑고 기상이 높았다. 삼십대 때는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

소인의 마음과 대인의 마음간사한 소인(小人)의 흉중에는 마름쇠 한 곡)이 들어 있다.
속된 사람의 흉중에는 티끌 한 곡이 들어 있다. 맑은 선비의 흉중에는 얼음 한 곡이 들어 있다. 강개한 선비의 가슴속은 온전히 가을빛 속 눈물이다. 기이한 선비의 흉중에는 심폐가 갈라지고 뒤엉켜서 모두 대나무와 돌을 이루고 있다. 대인(大人)의가슴속은 평탄해 아무런 물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壬人胃中 有鐵蒺藜一斛 俗人訇中 有垢一斛 满士智中 有氷一斛 慷慨士國中 都是秋色裡淚 奇士简中 心肺槎枒盡成竹石 大人智中 坦然無物- 선귤당농소」마음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뜻은 애써참으려고 해도 표현하게 되어 있다.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떻게든지. 마음을 도저히 감출 수 없고, 뜻을 도저히 참을 수없을 때 나오는 말과 글이 바로 진실한 말이고 참된 글이다.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망령된 사람과 더불어 시비나 진위나 선악을 분별하느니 차라리 얼음물 한 사발을 마시는 것이 낫다.
與妄人辨 不如喫冰水一碗- 선귤당농소」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사람을 해치는 전갈과 같은 사악한자를 만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예를 들어 보자. 사막을 건너다가 우연히 전갈을 만났다고 하자.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죽느냐 전갈이 죽느냐 생사의 결판을 내야 하는가? 아니다. 전갈은 그냥 무시하고 갈 길을 가면 된다. 사악한자도 전갈과 다르지 않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과할 수 없는 일을 하려는 사람만약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일을 갖고 생계를 도모하지 않는 사람은 버려진 백성이다. 그러나 능력과 계획이 서로 들어맞지 않는다면,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어떻게 할 길이 없다. 불가능한 일을 억지로 애써 하려고 하면 범죄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적다. 이것이 바로 공교롭게 하려다가 졸렬해지는 경우다. 하늘의 뜻에 따르고 운명을 편안히 여기는 것만 못하다.
若有可爲之路 而不資生者 棄民也 然力與謀不相入 顧無如何矣 勉強其所不能爲 則其不犯辟者小 是欲巧而拙也 不如聽天安命而已- 이목구심서 34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을 나는 능히 한다. 사람들이 능히 하는일을 나는 하지 않는다. 이것은 지나치게 고집이 세거나 과격해서가 아니라 선(善)을 선택한 것일 따름이다. 사람들이 하지않는 일을 나 또한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능히 하는 일을 나또한 능히 한다. 이것은 시비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사람들을따르는 것이 아니라 옳은 것에 나아갈 따름이다. 이러한 까닭

에 군자(君子)는 안다는 것을 귀중하게 여긴다.
人之所不爲我則能爲之 人之所能爲 我則不爲之 非矯激也,擇善而已人之所不爲 我亦不爲之 人之所能爲 我亦能爲之 非詭隨也 就是而已是故君子- 이목구심서 34다산 정약용(丁若鏞)은 자신의 당호(堂號)인 여유당(與猶堂)에 붙인 기문(記文)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고 싶지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은 그만둘 수 없다. 하고싶지만 다른 사람이 알까 두려워서 하지 않는 일은 그만둘수 있다. 그만둘 수 없는 일이란 항상 그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내켜 하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중단된다. 반면 하고 싶은 일이란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알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또한 때때로 그만둔다. 이렇다면 참으로 세상천지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을 것이다." 거리낌도 없고 막힘도 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생각이 움직이는 대로 산다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모략과 비방마음을 화평하고 기뻐하며 온화하고 평온하게 가져서 거역함이 없이 순리에 따르는 것이 바로 인생의 큰 복(福)이다.
마음을 관대하고 평안하며 고요하게 지니면 추울 때도 더울 때도 나를 침범하지 못한다. 옛사람이 불길에 뛰어들어도 타지않고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는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천하의 가장 상서롭지 못한 일은 아무 근거도 없이 다른 사람을 비방해 잘못을 덧씌우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 근거도 없는 비방은 결국 곧바로 탄로 나는 법이다. 이ㅐ 비방을 듣는 사람이 만약 떠들썩하고 어지럽게 자신의 결백을 변명하기라도 하면 역시 시끄럽고 복잡하게 될 뿐이다. 비방의 경중을 가려서 더욱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得心和悅溫 無拂逆其順適 是人生大福力 持心要寬平安靜 寒暑有時乎不入 古之人火不焦入水不漏云者 指此也 天下之最不祥 以無根之誘 橫加於人也 然其所謗 畢竟卽綻 開謗者若紛紛辨白 亦系燥擾也且有輕重 尤審慎- 이목구심서 3

남이 모략한들 어떻고 비방한들 어떤가?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가야 할 길을 갈 뿐이다. 필자는 백호 윤휴(湖)의 "천하의 진리는 한사람이 모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만약 누군가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옛사람의 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차라리 세상과 어울리지못하고 홀로 쓸쓸하게 살아갈망정 끝내 ‘이 세상에 나왔으니 이 세상에서 하라는 대로 하고 이 세상이 좋아하는 대로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머리를 숙이거나 마음을 낮추려고 하지 않았다." 서계 박세당(西溪堂)이 스스로 지은 묘지명에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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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인지 눈물인지 좀체 분간할 수 없는 것이 흘러내렸다. 손수건을 건네드렸다. 어머니는 그것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나직한 소리로 웅얼거렸다.
"알아, 그래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잖니.…."
나는 어머니의 말 한마디가 높다란 언덕에서 떨어진돌덩이처럼 느껴졌다.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받아낼수 없었다. 더러운 말의 꼬리를 붙잡지 못해 죄송했다. 미안한 마음에 나는 밤새 뒤척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수양서인 《사소절小》에서 성인이 알아둬야 할 행실과 언어생활에 대해소상하게 적었다.
"경솔하고 천박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하면재빨리 마음을 짓눌러야 한다.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거친 말을 내뱉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해로움이 따위성176

르게 될 텐데,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청산유수처럼 말하는 사람이 주목받는 시대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번지르르한 말 속에 상대에 대한 배려가 빠져 있다면, 그래서 누군가에게 상처를안겨준다면 그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거친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소리는 고막을 두드리며 몸으로 스며든다. 하지만소음은 고막을 찌른다.
소음이 들쑤시면, 사람은 귀를 틀어막는다. 소음은스며들지 않고 금세 소멸한다. 가끔은 내 입술을 뚫고 나오는 목소리가 말 그대로 소리인지, 소음인지찬찬히 되짚어봄직하다.

"당신 멋져!"
몇 해 전 송년회 자리에서 접한 건배사다. 여기에는이중적 의미가 있다. "당신이 멋있다"는 겉뜻을 벗겨내면 "당당하게, 신나게 살고, 멋지게 져주자"는 속뜻이 드러난다.
술잔을 들어 올리면서 앞의 두 어절을 발음할 때는별 감흥이 없었으나, 마지막 어절인 "멋지게 져주자"
를 외치는 순간에는 어딘지 모르게 속이 뜨끔했다.
사과할 줄 모르고 지는 데 익숙하지 않은 작금의 세태를, 노골적으로 풍자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닌 듯했다. 덩달아
"그래, 당신 멋져!"를 부르짖던 동석자들도 허허로운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으니 말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주변 사람과 갈등을 겪게 마련이다. 냉정히 말하자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을 구1

성하는 존재는 ‘나‘와 ‘우호적인 타인‘과 ‘비우호적인타인‘, 이렇게 셋뿐이다.
승부의 각축장에서는 이기는 자가 있으면 지는 사람이 있다. 무언가를 겨루는 일은 필연적으로 갈등과앙금을 남긴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갈라진 감정의 골을 봉합하고예전의 관계로 돌아가면 좋으련만, 패배를 말끔하게인정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승세가 상대편으로 기우는 순간 ‘지는 행위‘ 자체를사회적 혹은 심리적 죽음으로까지 간주하는 이들도있다.
누군가와 승부를 겨루었는데 갈등의 앙금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부풀려지고 있다면, 두 사람 사이에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다면 아래 이야기에 귀 기울여봤으면 한다.

기 고양 오류 self-serving bias‘라고도 한다.
그 때문에 몸담은 조직이나 단체의 구성원들 앞에서부당한 지적과 모욕을 당하면 자존심이 몇 곱절 더상하게 마련이다.
말이라는 흉기에 찔린 상처의 골은 너무 깊어서 좀처럼 봉합되지 않는다. 어떤 말은 그 상처의 틈새로파고들어 감정의 살을 파헤치거나 알을 낳고 번식하기도 한다. 말로 생긴 상처가 좀체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삼 고려 때 문신 추적이언과 명구를 모아엮은 <명심보감明心의 글귀가 떠오른다. 《명심보감> <언어> 편을 펼치면 말의 본질과 관련해,
"이인지언 난여면서 상인지어 이여형극, 일언반구중치천금 일어상인 여도할綿絮 傷人之語利如荊棘,一言半句 重値千金 一語傷人 痛如刀割"이라는 문장이눈에 들어온다.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솜처럼 따듯하지만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가시처럼 날카롭다. 한마디 말의 무게는 천금과 같으며 한마디 말이 사람을 다치게 하면 그 아픔은 칼로 베이는 것과 같다."
TV 뉴스를 보면 명절 때마다 ‘명절증후군‘이라는어가 자주 등장한다. 스트레스로 인한 육체적 피곤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정신적인명절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명절을 맞아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일가친척을 향해 "결혼은 언제 할 건데?" "눈높이를낮춰야 취업에 성공하지!"처럼 핀잔과 훈계가 범벅된 말 폭탄을 힘껏 쏘아 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매정하다는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단서를 단다. "사실은 너한테 관심이 있어서 이러는 거야"라고글쎄다. 어쩌면 그 반대인지도 모를거란 생각이 든다.
상대에게 관심이 없으므로 그렇게 쉽게 지적을 남발L탑194

계는 무효했고 미래를 향한 제안은 유효했다.
대화를 나눌 때 상대와의 공통점을 찾는 게 그리 특별한 기술은 아닐 것이다. 필요한 건 테크닉이 아니라 태도가 아닐까 싶다.
인지과학에서는 인간의 사고 유형을 크게 ‘굳은 사Chard thinking‘와 ‘부드러운 사고soft thinking‘로 분류한다. 전자는 어떤 대상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측정하는 사고 체계이며, 후자는 상대를 유연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방식이다.
가령 "고양이와 냉장고의 공통점이 뭘까요?" 하는질문에 굳은 사고를 하는 사람은 "가전제품과 살아있는 동물한테 공통점이 있어?"라고 되물을 것이다.
그러나 부드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둘 다 색깔이 다양하고, 부엌을 좋아하고, 꼬리 비슷한 게 달렸지요"
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현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유연한 덕분이다.

사마천이 쓴 《사기> <계명우기鷄鳴記> 편에는 네가지 사귐의 유형이 나온다.
첫째는 의리를 지키며 서로의 잘못을 바로잡아주는친구 ‘외우畏友‘, 둘째는 친밀한 마음을 나누면서 서로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친구 ‘밀우友‘, 셋째는 즐거운 일을 나누면서 함께 어울리는 친구 ‘일우,
넷째는 평소 이익만 좇다가 나쁜 일이 생기면 책임을 떠넘기는 친구 ‘적우‘다.
링컨과 스탠튼의 관계는 밀우와 외우의 중간쯤 되지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밥벌이를 위해 내몰리는 이세상에는 위 네 가지 친구가 적당히 뒤섞여 있을 테지만 말이다.

뎃잠을 자는 이들을 초대해 아침 식사를 대접했다.
교황 특유의 소탈하고 깊이 있는 화법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교황의 어조는 자장가처럼 부드럽지만, 말에 담긴 의지는 단호함으로 똘똘 뭉쳐 있다.
특히 교황은 강론할 때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전임자들이 추상적인 어휘로 교리를 길게 나열한 것과달리,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상적 언어로 신앙의 기본을 얘기한다.
교황이 지닌 언품의 가장 큰 특징은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교황은 기자회견이나 대중 연설 자리에서 특정한 편을 가르거나 등급을 매기지 않는다.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 선과 악, 동과 서를 구분하는 법이 없다.
이러한 말씨와 세계관은 흥미롭게도 공자가 《논어》<위정爲政> 편에서 언급한 군자의 덕목과 동일한 사

271110 1019.
상의 궤적을 그린다.
일찍이 공자는 "군자주이불비 소인비이부주子周而
"라고 강조한 바 있다.
"군자는 여러 사람과 어울리면서도 무리를 짓지 아니하고, 소인은 무리를 지어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이루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는 편당하지 않는 것, 즉 한쪽 세력이나 사상에 치우치지 않는 자세야말로 군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는 뜻이다. 군자는 한 군데에만 쓰이는 그릇인물이 아니라는 의미로도 헤아릴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불편부당한 언행은 자기를 둘러싼 유무형의 울타리를 뛰어넘을 때 가능하다.
거칠게 요약하면, 서구의 근대는 울타리로 경계를 짓거나 일정한 공간을 둘러막으면서 시작됐다고 해도

나는 인간의 말이 나름의 귀소 본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무의식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
수준이나 등급을 의미하는 한자 품의 구조가 흥미롭다.
입구가 세 개 모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성이 된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품격이 드러난다.
나만의 체취, 내가 지닌 고유한 인향은 분명 내가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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真言無患107와타나베 준이치는 둔한 감정과 감각이라는 뜻의
‘‘둔감‘에 힘을 뜻하는 역자를 붙인 ‘둔감력‘이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곰처럼 둔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인이 어떤 일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지를 자각하고 적절히 둔감하게 대처하면서 자신만의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둔감력은 무신경이아닌 복원력에 가깝습니다."
동양의 마키아벨리즘으로 일컬어지는 ‘후흑학‘
에도 비슷한 개념이 등장한다. 청나라 말 사상가 이종오李宗는 동명의 책에서 "난세를 평정한 영웅호걸의 특징은 ‘후‘와 ‘흑黑‘으로 집약된다"고 했다.
여기서 ‘후‘는 얼굴이 남보다 두터워 감정을 쉽게 들키지 않음을 뜻한다. ‘흑‘은 글자 그대로 검은 것이다. 그냥 검은 게 아니라 타인이 마음을 간파할 수

E115귀가를 어떤 방식으로 유도할까.
이때 상당수 부모는 "그만 놀아 어서 들어와!"처럼직선을 닮은 명령형 문장을 힘차게 내던지거나,
"배 안 고프니? 저녁 먹지 않을래?" 식의 곡선을닮은 청유형 문장을 흘린다.
그러나 아이 엄마는 전혀 다른 유형의 문장을 동원했다. 그녀는 아들보다 더 우렁찬 목소리로 다음과같이 외쳤다.
"스파이더맨, 무턱대고 거미줄을 쏘면 부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어. 인명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해. 그럼 임무 마친 뒤 무사히 귀환하도록!"
그녀의 목소리와 몸짓은 영화배우가 극 중 배역에몰입해 그 인물 자체가 되어 열연하는 메소드 연기를 떠올리게 했다. 그만큼 자연스러웠다. 아이는 배우가 대사를 주고받듯이 화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곧 귀환하겠습니다. 오버!"

묻고 또 묻는 게 아닌가.
"얘야, 여기가 무슨 역이냐?"
어머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들을 쳐다보았는데 눈동자가 또렷하지 않았다.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과거의 어느 시점을 떠올리며 회상하는 것처럼 보였다. 얼핏 치매를 앓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거듭되는 노모의 질문에 아들이 입을 열었다. 아들은늙은 어머니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마치 갓 태어난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보듯이 생긋 웃으며 답했다.
"어머니, 여긴 녹번역인 것 같아요. 참, 기억나세요?
내가 어릴 때 버스만 타면 정류장 이름 알려달라고귀찮게 굴었잖아요. 그때마다 어머니는 화도 안 내시고 열 번, 스무 번씩 대답해줬어요. 그때가 엊그제같은데..."

水言無忠127아내리는 언행을 서슴지 않는 사람은 칭찬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상대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상대방을 뒷담화로 내리찍어 자기 수준으로 격하시켜야 마음이 놓인다는 것이다.
말을 의미하는 한자 ‘언‘에는 묘한 뜻이 숨어 있다.
두 번 생각한 다음에 천천히 입을 열어야 비로소말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품격이 있듯 말에는 나름의 품격이 있다. 그게 바로 언품이다.
뒷담화가 우리 삶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는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뒷담화는화살처럼 무서운 속도로 사람의 입을 옮겨 다니다가언젠가 표적을 바꿔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혀와가슴을 향해 맹렬히 돌진한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는지 직원의 시선이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나는 들키지 않게 직원의 얼굴을 할끔 곁눈질하면서 혼자 엉뚱한 상상을 떠올렸다.
‘사내가 만약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한다면 한 잔 값으로 얼마를 치러야 할까?‘
1만 원 이상을 내야 한다. 커피 한 잔치고는 지나치게 비싼 가격인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 카페에서는 예의 없는 고객에게 돈을 더 받기 때문이다.
다음은 카페에 걸려 있는 메뉴판을 우리말로 옮긴것이다.
•· "커피" → 7유로●
"커피 주세요" → 4.25유로
"안녕하세요, 커피 한잔 주세요" → 1.40유로조금 매정하기는 하지만 기발한 가격표 아닌가. 고객이 커피를 주문할 때 구사하는 말의 품격에 따라

37음료의 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것이다.
이덕무, 박제가와 함께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인당대의 풍속을 엮은 잡록집인 《청성이성대중잡기이런 글귀가 나온다. "내부족자 기사에번 심무자 기사황內不足者其辭煩心無者 其辭荒",
"내면의 수양이 부족한 자는 말이 번잡하며 마음에주관이 없는 자는 말이 거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있다.
말과 글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서려 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사람의 품성이 드러난다. 말은 품성이다. 품성이 말하고 품성이 듣는 것이다.
격과 수준을 의미하는 한자 ‘품‘의 구조를 뜯어 보면 흥미롭다. 입 ‘구ㅁ‘가 세 개 모여 이루어졌음을알 수 있다.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성이 된다는 뜻이다.
사람의 체취, 사람이 지닌 고유한 ‘인향‘은 분명그 사람이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언어처럼 극단을 오가는 것도 드물다. 내 말은 누군가에게, 꽃이 될 수도 있으나 반대로 창이 될 수도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기는커녕 손해를 입지 않으려면, 더러운 말이 마음에서 떠올라 들끓을 때 입을 닫아야 한다. 말을 죽일지 살릴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그리고 끝내 만 사람의 입으로 옮겨진다.

곡선과 같아야 한다. 때로는 능수능란하게 휘둘러서도려낼 것을 도려내야 하고, 때로는 부드럽게 친친둘러 감아서 껴안을 대상을 껴안아야 한다.
아비규환을 방불케 하는 재난 상황이라면 리더는 위기의 본질을 꿰뚫고 흐트러짐 없는 말로 신속하게명령을 내려야 한다.
그런 면에서 줄리아니 시장의 언어는 정곡을 찔렀다고 볼 수 있다. 줄리아니의 말은 헛되이 흩날리지 않았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말로 상황을 장악했다.
무엇보다 언행이 일치했다. 초등학교 때 배운 미술기법에 비유하자면 데칼코마니 같았다. 도화지 절반에 물감을 뿌린 뒤 종이를 접으면 반대편 도화지에똑같은 그림이 묻어나듯, 줄리아니의 말과 행동에는차이가 없었다.
말과 행동의 관계는 오묘하다. 둘은 따로 분리될 수

없다. 행동은 말을 증명하는 수단이며 말은 행동과부합할 때 비로소 온기를 얻는다.
언행이 일치할 때 사람의 말과 행동은 강인한 생명력을 얻는다. 상대방 마음에 더 넓게, 더 깊숙이 번진다.
이는 나름대로 과학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인간은 오감을 통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이 가운데 대략 80퍼센트가 시각에 의한 것이다. 의사소통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화를 나눌 때 단순히 청각적 정보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시각적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상대방을 파악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상대의 말과 행동을 비교 또는 대조하게 된다. 우리가 구사하는 말과 취하는 행동이 하나로 포개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없다. 행동은 말을 증명하는 수단이며 말은 행동과부합할 때 비로소 온기를 얻는다.
언행이 일치할 때 사람의 말과 행동은 강인한 생명력을 얻는다. 상대방 마음에 더 넓게, 더 깊숙이 번진다.
이는 나름대로 과학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인간은 오감을 통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이 가운데 대략 80퍼센트가 시각에 의한 것이다. 의사소통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화를 나눌 때 단순히 청각적 정보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시각적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상대방을 파악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상대의 말과 행동을 비교 또는 대조하게 된다. 우리가 구사하는 말과 취하는 행동이 하나로 포개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자는 일찍이 언행일치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공자는 <논어> <위정爲政> 편에서 "선행기언이후종지其言而後從之"라고 했다.
행동을 옮겼다면 말이 꼭 뒤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말과 행동의 괴리가 없어야 함을 강조한 셈이다.
이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무실역사상도 의미가 부합한다. ‘무실‘은 참되게 힘쓰자는 뜻이고 ‘여행‘은 뒤로 미루지 말고 현재에 충실히 하자는의미다. 이 역시 실행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흡사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광고 문구 ‘just do it!‘을 연상케 한다.
적어도 한국과 중국 등 동양 문화권에서는 언행일치가 보편적 가치관이었다. 말과 행동이 같은 사람은대중이 본받아야 할 어른으로 추앙받지만, 둘 사이의간극이 지나치게 크면 예나 지금이나 조직 생활과 인간관계에서 손해를 입게 된다. 번지르르한 말만 앞서는 ‘언행불일치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입으로 내뱉는 말과 몸으로 취하는 행실의 관계는떼려야 뗄 수가 없다. 비유하자면 음식과 양념처럼말이다.
음식을 조리하면서 어울리는 양념을 적당히 가미하면 맛은 배가되지만, 양념 양을 조절하지 못하거나엉뚱한 양념을 치기라도 하면 음식 고유의 맛과 풍미가 사라진다. 요리를 망치고 만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고민해야 한다. 사람들 앞에 펼쳐놓는 요리와 애써 뿌린 양념 행동의 궁합이 잘 들어맞는지, 음식 맛을 훼손하고 있지는 않은지….
입 밖으로 꺼낸 말과 실제 행동 사이의 거리가 이 세상 그 어떤 거리보다 아득하게 멀지는 않은지....

의"라고 강조했다. "말과 문장은 뜻을 전달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무작정 현란하게 말하는 데만 몰두하다 보면 정작말 속에 담아야 할 본질적인 내용을 놓칠 수 있다는얘기다.
영화 <킹스 스피치>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영화는 동시대를 살았던 두 인물의 언품을극명하게 대비한다. 한 명은 파시즘의 핏빛 광기로독일을 어둡게 물들인 아돌프 히틀러, 다른 한 명은앞서 소개한 말더듬이왕 조지 6세다.
두 사람의 어법은 극과 극이다. 히틀러는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의 성찬을 쏟아내는 다변과 달변의 소유자다.
반면 조지 6세는 세련되지는 않지만 진심을 담아서말할 줄 아는 인물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누가더 뛰어난 언사를 구사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라고 강조했다. "말과 문장은 뜻을 전달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무작정 현란하게 말하는 데만 몰두하다 보면 정작말 속에 담아야 할 본질적인 내용을 놓칠 수 있다는얘기다.
영화 <킹스 스피치>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영화는 동시대를 살았던 두 인물의 언품을극명하게 대비한다. 한 명은 파시즘의 핏빛 광기로독일을 어둡게 물들인 아돌프 히틀러. 다른 한 명은앞서 소개한 말더듬이 왕 조지 6세다.
두 사람의 어법은 극과 극이다. 히틀러는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의 성찬을 쏟아내는 다변과 달변의 소유자다.
반면 조지 6세는 세련되지는 않지만 진심을 담아서말할 줄 아는 인물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누가더 뛰어난 언사를 구사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물어보나 마나다. 인류의 본질적인 가치를 지켜내고, 말과 말 사이에 진심을 심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을 우위에 놓아야 할 것이다.
타인을 향해 생각을 표현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행위는 만인이 고민하는 숙제다. 그 과정에서 혹자는 상대의 의표를 찔러야 한다는 부담을 떨치지 못하고,
혹자는 누군가의 화법과 말투를 무작정 따라 하다가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우린 그렇게 살아간다.
말에 비법은 없다. 평범한 방법만 존재할 뿐이다.
그저 소중한 사람과 나눈 대화를 차분히 기고 자신의 말이 그려낸 궤적을 틈틈이 점검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화법을 찾고 꾸준히 언품을 가다듬는 수밖에 없다.

이유는 단 하나다. 말하는 기술만으로는 당신의 건심을 다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땀인지 눈물인지 좀체 분간할 수 없는 것이 흘러내렸다. 손수건을 건네드렸다. 어머니는 그것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나직한 소리로 웅얼거렸다.
"알아, 그래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잖니…."
나는 어머니의 말 한마디가 높다란 언덕에서 떨어진돌덩이처럼 느껴졌다.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받아낼수 없었다. 더러운 말의 꼬리를 붙잡지 못해 죄송했다. 미안한 마음에 나는 밤새 뒤척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수양서인 《사소절小》에서 성인이 알아둬야 할 행실과 언어생활에 대해소상하게 적었다.
"경솔하고 천박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하면재빨리 마음을 짓눌러야 한다.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거친 말을 내뱉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해로움이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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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병들도 자주 드나들었다.
의문은 계속된다. 이순신 장군은 왜 운주당의 출입문턱을 낮추었을까?
1591년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임명돼 여수에 도착하자마자 전쟁 대비에 착수했다. 일본의 침략 야욕을 본능적으로 간파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눈에 보이는 적군은 칼을 휘둘러 상대할 수 있었으나, 해안의 물길과 지형처럼눈에 보이면서도 동시에 보이지 않는 정보는 완벽하게 숙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 이순신 장군은 해당 지역에서 태어난 병사는 물론 종종 민간인까지 운주당으로 불러들였다.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그리고 그들이 건네는 이야기에 귀를기울였다. 현장에서는 어쩌면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031 갔을지도 모른다. 상상력을 발휘해봤으면 한다.

사람의 발이 네모난 것은 땅을 본받은 것이다.
인간은 자연을 닮은 소우주다. 인간의 말은 작은 우주에서 생명을 얻는다. 그러므로 들리는 것을듣는다고 해서 다 듣는 것이 아니다. 귓속을 파고드는 음성에서 숨겨진 메시지를 포착해 본질을 읽어내야 한다. 상대방이 가슴에서 퍼 올린 말을 귀가 아닌가슴으로 느끼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이 책의 낱장을 넘기면서 곰곰 생각해봤으면 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본 적 있는지,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를 귀가 아닌 가슴에서 크게 중폭시켜 헤아려본 적이 있는지, 누군가와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만한 ‘자신만의 운주당‘이 있는지...
삶은 유한하고 죽음은 영원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

앞에서 인간은 늘 무력하다. 다만 살아갈 시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 덕분에 우리는 지독한 허탈감과 무력감 속에서도 각자의 삶을 이어나가는지 모른다.
여전히 많은 것이 가능하다.
소중한 사람의 마음에 가닿으려는 진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가슴 한구석에 작은 운주당을 세워봤으면 한다.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은 당신의 입이 아니라 어쩌면 당신의 귀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한다.
인은 사람 인ㅅ에 두 이를 더해 만든 한자다. 여기에는 단순히 ‘마음 씀씀이가 야박하지 않고 인자하다‘는 뜻만 있는 게 아니다. ‘천지 만물을 한 몸으로여기는 마음가짐 혹은 그러한 행위까지 내포한다.
그래서 일찍이 공자는 ‘인‘을 인간이 지녀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으로 간주했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 관계 속에서 ‘인‘을 실천하면서 비로소 인간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인의 반대는 ‘붙인‘이다. <본초강목》과 《동의보감》 등 동양 의학 서적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종종 등장한다.
"신체 일부가 마비되면 불인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타인과 정서적으로도 감정이 통하지 아니한다."
사람은 몸과 마음의 상태가 온전하지 않으면 자신의고통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아픔과 속사정을 짐작하

거나 공감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전방위적 지식인으로 불리는 한나 아렌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상실한 메마른 가슴에 약품이 깃들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의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에 참관하면서 ‘악의 평범성‘이라는개념을 구체화했다.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럽 각지에서 유대인을 체포해 수용소로 이송하는 일을 총괄한 책임자였다. 그러나 예루살렘 전범 재판정에 선 아이히만은 "의무를 준수했고 명령에 따랐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의 변명에는 죄의식은커녕 고민의 흔적조차묻어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거악을 창안하는 것은 히틀러 같은 악인이지만, 거악과 손을 잡거나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인지 모른다

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일갈했다.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닙니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있습니다."
나는 학창 시절 어느 시점에서 한나 아렌트의 책을넘기다가 그녀의 주장이 지닌 무게가 너무 무거워책 모서리를 쥔 채 그 자리에서 휘청거렸다.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가 과장된 것일까? 그녀가 거창한 단어를 문장 곳곳에 집어넣어서 자신의 주장을 부풀린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녀의 말처럼, 악은 인간의 내부에 잠입해 똬리를틀고 앉아 우리의 윤리적 고민과 성찰을 방해한다.
남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내 행동과 말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면,
상황에 따라 우리는 얼마든지 제2, 제3의 아이히만

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공감과 무공감, 사유와 무사유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틈틈이 내면의 민낯을 성찰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부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언어가 이러한 그루밍에서 출발했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것은 구성원 간 친밀감 형성이 주된 목적이며, 큰 틀에서 보면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기 위한 본능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누일 곳이 필요하다.
몸이 아닌 마음을 누일 곳이물론 그 공간은 물리적인 장소뿐만이 아니라 사람의마음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가슴에 품고 있는 고민을종종 타인에게 털어놓는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모른다. 고민을 해결하려는 목적보다는 마음을 쉬게 하려는 목적으로 말이다.
나 역시 세상살이에서 생기는 근심과 답답함을 주변사람과 나눌 때가 있다. 그런데 이때 형식적인 위로나 격려보다는 마음의 장막을 먼저 풀어헤치고 다가와 "나도 비슷한 아픔을 겪었어"라고 덤덤하게 말해주는 이들의 위로가 더 가슴에 와닿는다. 마음 깊은

피지 않을 수 없다. 싸워야 할 때와 싸우지 말아야할 때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또한 <손자병법》 <모공> 편에서는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不戰而居人之"라고 말하기도 했다. 싸우지 않고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이 최상의 전략임을 강조한 것이다.
손무가 강조한 상책 가운데 하나가 협상이 아닐까싶다. 서로의 흠집과 맹점을 찾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공세의 대결이 아니라, 서로의 장점과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싸우지 않고 양측 모두가 이기는방법을 찾는 합세의 대결말이다.
‘스위트 스폿sweet spot‘이라는 용어가 있다. 원래는테니스 라켓이나 골프채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을 가리킨다. 골프채의 스위트 스폿으로 공을 쳐야 최대비거리를 낼 수 있다.
협상학에도 스위트 스폿이 존재한다. 다만 비거리를

최대화하는 게 아니라 협상의 환경을 최적화하는 역할을 한다.
양측의 이익이 하나로 포개지고 협상 참여자들이 심리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심리 타점이라고도 한다.
극단 사이에서 절충의 지점을 찾는 일은, 중국 노나라 때 학자 자사가 주창한 중용中庸과 맥이 닿아있다.
여기서 ‘중‘은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도리에 맞는상태를 일컫는다. ‘용‘은 보편적이면서 변하지 않는성질이다. 그러므로 중용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양극단 사이에서 절충하는 자세를 가리킨다.
이를 서구적 시각으로 풀어보면 이해하기가 더 쉽다. 중용은 한쪽이 이득을 보면 반대편이 무조건 손해를 보는 제로섬 zero-sum 게임이 아니다. 이해 당사자 모두가 실리를 챙기는 포지티브섬 positive-sum 게

임에 가깝다.
중용은 기계적 중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용은 단순히 중간 지점에 눌러앉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여건에 맞게 합리적으로 위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유연한 흔들림이라고 할까.
바다를 떠다니는 배도 중용의 힘으로 파도를 밀쳐내고 물살 위에서 버티는 게 아닐까 싶다. 대개 선박은출항 전 배 밑부분에 평형수平衡k, ballast water 를 집어넣는다. 파도를 만나 배가 한쪽으로 기울면 가만히있던 평형수는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서 선박의 무게중심을 잡는다. 평형수가 제 위치를 절충중용하는 덕분에 배가 뒤집히지 않고 순항할 수 있는 것이다.
절충과 협상 과정에서 나름의 전제 조건이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무엇일까? 상대에 대한 완벽한 이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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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마음은나를 붕 뜨게 하기도.
한없이 추락하게 하기도 하는역동성을 띤 반면좋아하는 마음은온몸과 마음의긴장을 풀리게 해주는안정성이 있다.

실망은 결국상대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다.
무언가를 바란, 기대를 한,
또는 속단하고 추측한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다.

선을 긋는 건,
여리고 약한 혹은못나고 부족한 내 어딘가에누군가 닿았을 때
‘나의 이곳은 이렇게 생겼어‘라고고백하는 행위다.

사람들에게는저마다의 감정서랍이 있다.
상황에 대한 기억은흐릿해질지라도,
그때 느낀 감정들은어딘가에 저장이 된다.

나의 관점을 의심하면또 다른 관점으로어떤 것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확실히나의 세계를 확장하거나견고히 해주었다.

주는 자가 받는 이를 오랫동안 세심히 지켜봐온 시간이 선물 받는 이의 만족도를 좌지우지하듯, 조언도 그렇다.
듣는 이의 성향과 아픈 곳을 헤아려가장 고운 말이 되어 나올때야 ‘조언‘이지,
뱉어야 시원한 말은 조언이 아니다.

행위는 정신을 지배하기에,
눈물을 참는 게 습관이 되면나 스스로 ‘나는 지금 힘든 게 아니다‘라고속이는 것도 가능해진다.

분노가 주로 외부 자극에 뿌리를 둔다면
용기는 내 안에 쌓인 결심들이 모여 탄생한다.

사랑과 행복은
비처럼 내려오는 감정들이다.
나의 의지로써가 아니라
누군가 갑자기 연
커튼 너머 햇살처럼
쏟아져 내린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파도를 타듯 자연스러울 때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 육체가 약해지는 데에는 분명.
조금 더 신중해지고 조금 더 내려놓으라는 뜻이있을지도 모른다.

꿈은 어딘가에서 날아온 꽃씨처럼
소리, 소문 없이 피어났을 때 비로소 꿈이다.

유난스럽다고
지적받은 적이 있다면
그 부분이 바로
당신을 빛나게 해줄
무언가일 것이다.

나의 인생을 극으로 본다면
작가는 나고 주인공도 나다.
걱정에 빠진 내 인생의 주인공인 나를 위해
작가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음 회차로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것뿐이다.

모두에게, 모든 곳에서
온전한 나로서만 존재한다는 건
아주 이기적이어야 가능하다.
배려하기에, 사랑하기에,
책임이 있기에,
히스토리가 있기에
우리는 종종 다른 모습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부분에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의 ‘벽‘에서 뒤돌아봐야
알 수 있는 나만의 가능성이 있다.
즉 한계에 부딪힌다는 건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도 된다.

결정

여러분들은 무언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어떤 편이세요? 저의 경우는 결정이 너무 어려울 땐, 아예 단순한 선택을 하게끔 만드는 케이스인데요. 예를 들어 뭘 골라야 할 때 아예 선택지를 많이 주지않아요. 심지어는 가장 많은 고민을 겪는 단계가 결혼할 때 드레스 같은 거 고르고 그럴 때인데, 저는 처음 들어간 데서 한두 번째입어본 걸 그냥 골랐고요. 집을 볼 때도 여러 군데를 보면서 다니면 저는 결정을 못해요. 그래서 그냥 뭐 이정도면 나는 감사히 살거 같고 마음에 든다 하고 결정해요. 최대한 비용에 맞춰서 최선인 것을 고르고 첫 번째 봤을 때 문제가 없으면 다음 옵션을 보지않으려고 합니다. 나름 저의 팁입니다. 너무 이거 때문에 고민 많으신 분들은 이런 식으로 시간을 단축해보셔도 좋을 거 같아요.

사랑

저는 유년기에 아버지의 부재 속에 자란 케이스였어요. 그것이 커다란 아픔이나 상처를 남기진 않았지만, 그로 인한 연애의 불안정함이 있었어요. 상대가 조금이라도 아이 같은 모습이 보이면 질접한다든지, 굉장히 어른스럽길 바라곤 했죠. 그런데 제가 자각을하면서부터 그런 문제가 많이 없어지고 ‘아, 내가 연애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어떤 문제가 연애를 통해 지속해서 같은 문제로 발현되고 있었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하라고 이야기하는 건달콤하고 좋아서가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자기의 내면을 방치되어 있던 모습들을 다 끄집어낼 수 있는 행위가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에요. 어떤 형태로의 사랑이든 마찬가지예요. 로맨스이든 아니든 사랑은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똑바로 마주볼 수 있게 하는행동이라고 생각해요.

통증

통증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하지만 종류와 상관없이 대부분통증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상태가 호전되는데요. 꼭 아픔에아픔을 더해야만 낫는 통증이 있죠. 바로 ‘근육통‘입니다. 통증이아주 심한 부위를 만지면 너무 아프기도 하지만 묘한 시원함이 느껴지기도 해요. 그렇게 실컷 주무르고 나면 거짓말처럼 고통이 사라집니다.
우리 마음에도 근육이 있죠. 그렇다면 내 마음의 통증도 근육통과 비슷한 게 아닐까요?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그 아픔을 즐겨보는 겁니다. 실컷 앓고 나면 조금은 시원해질지도 모르니까요. 여러분들은 근육통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저는 운동을해서 근육통이 생기면 너무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그 아픈 부위를 일부러 계속 스트레칭하고 누르면서 통증을 확인하고 내가 어제 운동을 했음에 뿌듯함을 느끼고요. 너무 심할 때 운동을 하면풀리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도 통증이 통증을 이겨내는 거 같고요. 또 어떤 분들은 마음의 통증도 왔을 때 내심 반가워하는 분이

포기하는 용기

과감히 다 놓을 수 있는 선택만큼 용기가 필요한 게 없더라고요.
왜, 사실 그거를 밀고 나가는 것보다 다시 곰곰이 생각하고 누구의 조언을 들어서 그걸 괴감히 철회하는 게 더 어렵더라고요. ‘내가 질러놓은 게 있는데‘ 하면서 그냥 달려가는데 ‘아, 그래, 나 지금이 선택 올바른 게 아닐 수도 있어‘ 하면서 확접을 수 있는 것또한 용기거든요.

행복

저는 항상 행복은 막 까먹는 스낵처럼 굉장히 사소한 것에서 느껴야지만 그것이 진짜 행복이고, 사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은 훈련이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 나 지금 행복한 거 같아!" 하면서 그 행복한 순간을 온몸으로 기억하려고해요. 나중에 기억이나고 안 나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잠깐 지나가다 날씨가 너무 좋은 날, 내가 너무 좋아하는 노래가 우연히 어딘가에서 나오고 있을 때, 그 순간이 엄청난 행복이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어디선가 커피를 사서 마셨는데, 이름 모를 카페였는데 내 입맛에 딱맞는 라떼를 만났을 때도 ‘아, 이거 진짜 오늘 지금, 이 순간 잊지말아야 해!‘라며 피부에 저장하듯 그 순간을 저장하는 습관이 있어요.
요즘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분들은 당장 그런 사소한 쪽지 같은행복 있잖아요. 그런 걸 따서 야금야금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있어요. 저도 그런 거 같아요. 제가 어느 순간 봄이 왔을 때덜 설레게 되어 좀 서운한 마음이 들었는데 가을은 아직 타거든요. 쓸쓸하고 알싸한 기분이 느껴지면 ‘아, 다행이다. 나 아직 감성이 살아 있구나‘ 하게 되더라고요.

나무늘보의 생존법

세상에서 가장 느린 동물로 알려진 나무늘보는 하루에 18시간 동안 나무 위에서 잠을 잡니다. 움직임도 느리고 근육 양이 탁월하게 적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이동하는 일이 없죠. 이렇게 게으른 나무늘보가 야생에서 살아남은 비결은 뭘까요? 비결은 단순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배변할 빼고는 절대로 나무 아래로 내려오지않는 것. 즉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않는 게 나무늘보의 생존 전략인 셈인 거죠. 옆 사람의 속도에 맞춰 빠르게 살지 않아도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죠. 혼자 고립되면 고립될수록 그것이 생존 무기가 되는 나무늘보의 세계가끔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나무늘보처럼 느리게, 느리게 살고 싶어집니다.

완벽의 비결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의 창업자인 에드윈 캣멀, 누군가가 "매번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비결이 뭔가요?"라고 그에게물었습니다. 그 대답은 의외였어요.
"어떤 작품이든 시작할 땐 다 형편없죠. 매일 하는 회의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도 사실 대부분은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괜찮아요.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내고 수정하면서 더 분명한 형태로진화하니까요."
실제로 픽사에서는 처음 나온 작품의 초안을 대부분 버린대요. 가장 먼저 떠오른 아이디어들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흔한 것들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그에게 배웁니다. 결국, 완벽한 결과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건 하늘에서 떨어진 능력이 아닌 열정과 끈기라는걸요.

설렘

처음에 상대를 만났을 때 설렘 때문에 생기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있어요. 그 사람 때문에 너무 중요한 걸 포기하기도 하고 후회도 하는 바보 같은 일이 일어나는 시즌이 있죠. 그건 물론 축제에서 불꽃 터지는 순간처럼 가장 화려한 때이죠. 그렇지만 사실 계속해서 그런 설렘이 이루어진다는 건 우리 인간의 구조 특성상 불가능한 거거든요. 설렘은 결국 긴장감에서 오는 거고, 긴장감이라는 건 서로 모르는 데에서 서로를 예측할 수 없음에서 오는 불안에 기인하는 거니까요.
거꾸로 말하자면 계속해서 불안한 사이여야지만 설렘이 있는 거거든요. 그게 동전의 양면인 거 같아요. 설렘은 뒤돌아봤을 때 너무 아름답고 순수하고 촉촉한 거 같은데, 막상 진행 중일 때는 좋은 날도 있지만 고통스러운 날들도 많아요. 왜냐하면 모든 게 불확실하고, 저 사람 마음을 모르겠고, 오늘 마음 내일 마음이 다른것처럼 느껴지니까요. 그러다보니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 없어요.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것을 ‘설렘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

에 너무 깃발을 찍어놓고 있는 거 같은데 제 생각엔 그런 것들은사랑의 일부분인 것 같아요. 사랑은 계속 변해가면서 다양한 단계의 얼굴을 보여주는 거 같더라고요. 설렘이라는 것은 지나고 보면앞면만 생각나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 같지만, 그 뒷면은 수없이불안한 밤들, 입맛이 떨어졌던 저녁 식사들, 이런 게 분명히 있을거예요.

약한 모습

상대방을 간파하는 거 같은 제일 쉬운 말이 뭐냐면 "사실 마음 많이 약하지?"와 같은 말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대개 어떻게 알았냐며 놀라곤 하죠. 이처럼 누구나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약한 모습을 한 부분씩은 가지고 있다는 말이겠죠.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나에대해 얼마나 약한지 모르는 한편, 우리는 스스로가 얼마나 강한지 가끔 잊어버리는 거 같아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

올해 12살이 된 전이수 어린이는 8살 겨울방학에 첫 동화책을 그린 꼬마 화가입니다. 전이수 어린이가 10살에 그린 한 그림 속에는 사자와 사슴이 다정하게 뛰어놀고 있는데요. 그림을 그린 이유에 관해 물었더니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이건 사랑이라는 제목의 그림이에요. 원래 사자는 사슴을 잡아먹잖아요. 그럼 이 그림은 불가능한 거겠죠? 그런데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거 같아요."
10살 어린이의 눈에 비친 사랑이란 그런 거겠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 사랑이란 이름으로 수없이 계산기를 두드리던 어른들의 모습이 조금은 부끄러워집니다.

조심성

제가 50대 이상의 어른들을 보면서 뭔가 근사하다고 느끼는 부분들이 있었는데요. 그게 의외로 좀 수줍어하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수치심이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더라고요. 그게 생각보다 나이가들면서 약간 무뎌지는 부분이잖아요. 눈치라는 게 조심성이기도하니까, 뭔가 남들 시선을 너무 걱정해서도 안 되겠지만, 적당한조심성은 생명력 있는 어른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거같아요.

낭만

저는 낭만이란 단어가 뭔가 질감이 굉장히 예전 것이어서 ‘아무도 가지 않는 다방‘ 같은 낡은 단어로 여겨져서 속상했었어요. 근데 낭만은 내 감정에 충실하고 내 행복에 더 충실한 단어예요. ‘세상이 보기에 어떻고 나의 역할은 이래야 하고 이런 거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져서 나만의 세상을 그려나가라는 의미더라고요.
문득문득 환기하지 않으면 ‘이 단어의 원래 뜻이 뭐였지?" 하게 되는 너무나 좋은 단어들이 있어요. 낭만 또한 그런 단어인 거 같습니다.

후회

가장 최근에 한 후회, 어떤 게 있으세요? 작게는 어제 골랐던 저녁메뉴부터 크게는 나의 인생을 뒤흔드는 일까지 우리는 하루에도참 많은 선택을 하고, 또 그 선택에는 대부분 후회라는 이름이 뒤따라오죠. 특히 후회는 많은 선택권이 있을수록 더 커집니다. 내가 선택하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과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뒤섞여 자꾸만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거든요. 하지만요. 한 작가의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반드시 한 가지를 결정해야 할 때 본능적으로 최선을 다해 선택한다고 합니다. 돌아보면 후회밖에 없는 그선택도 ‘그때는 제일 나은 선택이었다‘는 거죠. 혹시 후회로 가득한 밤을 보내고 있다면 잠시 멈춰볼까요? 그땐 그게 최선이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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