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인지 눈물인지 좀체 분간할 수 없는 것이 흘러내렸다. 손수건을 건네드렸다. 어머니는 그것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나직한 소리로 웅얼거렸다.
"알아, 그래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잖니.…."
나는 어머니의 말 한마디가 높다란 언덕에서 떨어진돌덩이처럼 느껴졌다.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받아낼수 없었다. 더러운 말의 꼬리를 붙잡지 못해 죄송했다. 미안한 마음에 나는 밤새 뒤척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수양서인 《사소절小》에서 성인이 알아둬야 할 행실과 언어생활에 대해소상하게 적었다.
"경솔하고 천박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하면재빨리 마음을 짓눌러야 한다.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거친 말을 내뱉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해로움이 따위성176

르게 될 텐데,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청산유수처럼 말하는 사람이 주목받는 시대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번지르르한 말 속에 상대에 대한 배려가 빠져 있다면, 그래서 누군가에게 상처를안겨준다면 그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거친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소리는 고막을 두드리며 몸으로 스며든다. 하지만소음은 고막을 찌른다.
소음이 들쑤시면, 사람은 귀를 틀어막는다. 소음은스며들지 않고 금세 소멸한다. 가끔은 내 입술을 뚫고 나오는 목소리가 말 그대로 소리인지, 소음인지찬찬히 되짚어봄직하다.

"당신 멋져!"
몇 해 전 송년회 자리에서 접한 건배사다. 여기에는이중적 의미가 있다. "당신이 멋있다"는 겉뜻을 벗겨내면 "당당하게, 신나게 살고, 멋지게 져주자"는 속뜻이 드러난다.
술잔을 들어 올리면서 앞의 두 어절을 발음할 때는별 감흥이 없었으나, 마지막 어절인 "멋지게 져주자"
를 외치는 순간에는 어딘지 모르게 속이 뜨끔했다.
사과할 줄 모르고 지는 데 익숙하지 않은 작금의 세태를, 노골적으로 풍자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닌 듯했다. 덩달아
"그래, 당신 멋져!"를 부르짖던 동석자들도 허허로운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으니 말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주변 사람과 갈등을 겪게 마련이다. 냉정히 말하자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을 구1

성하는 존재는 ‘나‘와 ‘우호적인 타인‘과 ‘비우호적인타인‘, 이렇게 셋뿐이다.
승부의 각축장에서는 이기는 자가 있으면 지는 사람이 있다. 무언가를 겨루는 일은 필연적으로 갈등과앙금을 남긴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갈라진 감정의 골을 봉합하고예전의 관계로 돌아가면 좋으련만, 패배를 말끔하게인정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승세가 상대편으로 기우는 순간 ‘지는 행위‘ 자체를사회적 혹은 심리적 죽음으로까지 간주하는 이들도있다.
누군가와 승부를 겨루었는데 갈등의 앙금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부풀려지고 있다면, 두 사람 사이에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다면 아래 이야기에 귀 기울여봤으면 한다.

기 고양 오류 self-serving bias‘라고도 한다.
그 때문에 몸담은 조직이나 단체의 구성원들 앞에서부당한 지적과 모욕을 당하면 자존심이 몇 곱절 더상하게 마련이다.
말이라는 흉기에 찔린 상처의 골은 너무 깊어서 좀처럼 봉합되지 않는다. 어떤 말은 그 상처의 틈새로파고들어 감정의 살을 파헤치거나 알을 낳고 번식하기도 한다. 말로 생긴 상처가 좀체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삼 고려 때 문신 추적이언과 명구를 모아엮은 <명심보감明心의 글귀가 떠오른다. 《명심보감> <언어> 편을 펼치면 말의 본질과 관련해,
"이인지언 난여면서 상인지어 이여형극, 일언반구중치천금 일어상인 여도할綿絮 傷人之語利如荊棘,一言半句 重値千金 一語傷人 痛如刀割"이라는 문장이눈에 들어온다.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솜처럼 따듯하지만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가시처럼 날카롭다. 한마디 말의 무게는 천금과 같으며 한마디 말이 사람을 다치게 하면 그 아픔은 칼로 베이는 것과 같다."
TV 뉴스를 보면 명절 때마다 ‘명절증후군‘이라는어가 자주 등장한다. 스트레스로 인한 육체적 피곤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정신적인명절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명절을 맞아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일가친척을 향해 "결혼은 언제 할 건데?" "눈높이를낮춰야 취업에 성공하지!"처럼 핀잔과 훈계가 범벅된 말 폭탄을 힘껏 쏘아 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매정하다는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단서를 단다. "사실은 너한테 관심이 있어서 이러는 거야"라고글쎄다. 어쩌면 그 반대인지도 모를거란 생각이 든다.
상대에게 관심이 없으므로 그렇게 쉽게 지적을 남발L탑194

계는 무효했고 미래를 향한 제안은 유효했다.
대화를 나눌 때 상대와의 공통점을 찾는 게 그리 특별한 기술은 아닐 것이다. 필요한 건 테크닉이 아니라 태도가 아닐까 싶다.
인지과학에서는 인간의 사고 유형을 크게 ‘굳은 사Chard thinking‘와 ‘부드러운 사고soft thinking‘로 분류한다. 전자는 어떤 대상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측정하는 사고 체계이며, 후자는 상대를 유연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방식이다.
가령 "고양이와 냉장고의 공통점이 뭘까요?" 하는질문에 굳은 사고를 하는 사람은 "가전제품과 살아있는 동물한테 공통점이 있어?"라고 되물을 것이다.
그러나 부드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둘 다 색깔이 다양하고, 부엌을 좋아하고, 꼬리 비슷한 게 달렸지요"
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현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유연한 덕분이다.

사마천이 쓴 《사기> <계명우기鷄鳴記> 편에는 네가지 사귐의 유형이 나온다.
첫째는 의리를 지키며 서로의 잘못을 바로잡아주는친구 ‘외우畏友‘, 둘째는 친밀한 마음을 나누면서 서로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친구 ‘밀우友‘, 셋째는 즐거운 일을 나누면서 함께 어울리는 친구 ‘일우,
넷째는 평소 이익만 좇다가 나쁜 일이 생기면 책임을 떠넘기는 친구 ‘적우‘다.
링컨과 스탠튼의 관계는 밀우와 외우의 중간쯤 되지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밥벌이를 위해 내몰리는 이세상에는 위 네 가지 친구가 적당히 뒤섞여 있을 테지만 말이다.

뎃잠을 자는 이들을 초대해 아침 식사를 대접했다.
교황 특유의 소탈하고 깊이 있는 화법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교황의 어조는 자장가처럼 부드럽지만, 말에 담긴 의지는 단호함으로 똘똘 뭉쳐 있다.
특히 교황은 강론할 때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전임자들이 추상적인 어휘로 교리를 길게 나열한 것과달리,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상적 언어로 신앙의 기본을 얘기한다.
교황이 지닌 언품의 가장 큰 특징은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교황은 기자회견이나 대중 연설 자리에서 특정한 편을 가르거나 등급을 매기지 않는다.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 선과 악, 동과 서를 구분하는 법이 없다.
이러한 말씨와 세계관은 흥미롭게도 공자가 《논어》<위정爲政> 편에서 언급한 군자의 덕목과 동일한 사

271110 1019.
상의 궤적을 그린다.
일찍이 공자는 "군자주이불비 소인비이부주子周而
"라고 강조한 바 있다.
"군자는 여러 사람과 어울리면서도 무리를 짓지 아니하고, 소인은 무리를 지어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이루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는 편당하지 않는 것, 즉 한쪽 세력이나 사상에 치우치지 않는 자세야말로 군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는 뜻이다. 군자는 한 군데에만 쓰이는 그릇인물이 아니라는 의미로도 헤아릴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불편부당한 언행은 자기를 둘러싼 유무형의 울타리를 뛰어넘을 때 가능하다.
거칠게 요약하면, 서구의 근대는 울타리로 경계를 짓거나 일정한 공간을 둘러막으면서 시작됐다고 해도

나는 인간의 말이 나름의 귀소 본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무의식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
수준이나 등급을 의미하는 한자 품의 구조가 흥미롭다.
입구가 세 개 모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성이 된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품격이 드러난다.
나만의 체취, 내가 지닌 고유한 인향은 분명 내가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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