真言無患107와타나베 준이치는 둔한 감정과 감각이라는 뜻의 ‘‘둔감‘에 힘을 뜻하는 역자를 붙인 ‘둔감력‘이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곰처럼 둔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인이 어떤 일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지를 자각하고 적절히 둔감하게 대처하면서 자신만의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둔감력은 무신경이아닌 복원력에 가깝습니다." 동양의 마키아벨리즘으로 일컬어지는 ‘후흑학‘ 에도 비슷한 개념이 등장한다. 청나라 말 사상가 이종오李宗는 동명의 책에서 "난세를 평정한 영웅호걸의 특징은 ‘후‘와 ‘흑黑‘으로 집약된다"고 했다. 여기서 ‘후‘는 얼굴이 남보다 두터워 감정을 쉽게 들키지 않음을 뜻한다. ‘흑‘은 글자 그대로 검은 것이다. 그냥 검은 게 아니라 타인이 마음을 간파할 수
E115귀가를 어떤 방식으로 유도할까. 이때 상당수 부모는 "그만 놀아 어서 들어와!"처럼직선을 닮은 명령형 문장을 힘차게 내던지거나, "배 안 고프니? 저녁 먹지 않을래?" 식의 곡선을닮은 청유형 문장을 흘린다. 그러나 아이 엄마는 전혀 다른 유형의 문장을 동원했다. 그녀는 아들보다 더 우렁찬 목소리로 다음과같이 외쳤다. "스파이더맨, 무턱대고 거미줄을 쏘면 부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어. 인명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해. 그럼 임무 마친 뒤 무사히 귀환하도록!" 그녀의 목소리와 몸짓은 영화배우가 극 중 배역에몰입해 그 인물 자체가 되어 열연하는 메소드 연기를 떠올리게 했다. 그만큼 자연스러웠다. 아이는 배우가 대사를 주고받듯이 화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곧 귀환하겠습니다. 오버!"
묻고 또 묻는 게 아닌가. "얘야, 여기가 무슨 역이냐?" 어머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들을 쳐다보았는데 눈동자가 또렷하지 않았다.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과거의 어느 시점을 떠올리며 회상하는 것처럼 보였다. 얼핏 치매를 앓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거듭되는 노모의 질문에 아들이 입을 열었다. 아들은늙은 어머니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마치 갓 태어난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보듯이 생긋 웃으며 답했다. "어머니, 여긴 녹번역인 것 같아요. 참, 기억나세요? 내가 어릴 때 버스만 타면 정류장 이름 알려달라고귀찮게 굴었잖아요. 그때마다 어머니는 화도 안 내시고 열 번, 스무 번씩 대답해줬어요. 그때가 엊그제같은데..."
水言無忠127아내리는 언행을 서슴지 않는 사람은 칭찬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상대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상대방을 뒷담화로 내리찍어 자기 수준으로 격하시켜야 마음이 놓인다는 것이다. 말을 의미하는 한자 ‘언‘에는 묘한 뜻이 숨어 있다. 두 번 생각한 다음에 천천히 입을 열어야 비로소말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품격이 있듯 말에는 나름의 품격이 있다. 그게 바로 언품이다. 뒷담화가 우리 삶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는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뒷담화는화살처럼 무서운 속도로 사람의 입을 옮겨 다니다가언젠가 표적을 바꿔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혀와가슴을 향해 맹렬히 돌진한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는지 직원의 시선이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나는 들키지 않게 직원의 얼굴을 할끔 곁눈질하면서 혼자 엉뚱한 상상을 떠올렸다. ‘사내가 만약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한다면 한 잔 값으로 얼마를 치러야 할까?‘ 1만 원 이상을 내야 한다. 커피 한 잔치고는 지나치게 비싼 가격인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 카페에서는 예의 없는 고객에게 돈을 더 받기 때문이다. 다음은 카페에 걸려 있는 메뉴판을 우리말로 옮긴것이다. •· "커피" → 7유로● "커피 주세요" → 4.25유로 "안녕하세요, 커피 한잔 주세요" → 1.40유로조금 매정하기는 하지만 기발한 가격표 아닌가. 고객이 커피를 주문할 때 구사하는 말의 품격에 따라
37음료의 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것이다. 이덕무, 박제가와 함께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인당대의 풍속을 엮은 잡록집인 《청성이성대중잡기이런 글귀가 나온다. "내부족자 기사에번 심무자 기사황內不足者其辭煩心無者 其辭荒", "내면의 수양이 부족한 자는 말이 번잡하며 마음에주관이 없는 자는 말이 거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있다. 말과 글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서려 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사람의 품성이 드러난다. 말은 품성이다. 품성이 말하고 품성이 듣는 것이다. 격과 수준을 의미하는 한자 ‘품‘의 구조를 뜯어 보면 흥미롭다. 입 ‘구ㅁ‘가 세 개 모여 이루어졌음을알 수 있다.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성이 된다는 뜻이다. 사람의 체취, 사람이 지닌 고유한 ‘인향‘은 분명그 사람이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언어처럼 극단을 오가는 것도 드물다. 내 말은 누군가에게, 꽃이 될 수도 있으나 반대로 창이 될 수도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기는커녕 손해를 입지 않으려면, 더러운 말이 마음에서 떠올라 들끓을 때 입을 닫아야 한다. 말을 죽일지 살릴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그리고 끝내 만 사람의 입으로 옮겨진다.
곡선과 같아야 한다. 때로는 능수능란하게 휘둘러서도려낼 것을 도려내야 하고, 때로는 부드럽게 친친둘러 감아서 껴안을 대상을 껴안아야 한다. 아비규환을 방불케 하는 재난 상황이라면 리더는 위기의 본질을 꿰뚫고 흐트러짐 없는 말로 신속하게명령을 내려야 한다. 그런 면에서 줄리아니 시장의 언어는 정곡을 찔렀다고 볼 수 있다. 줄리아니의 말은 헛되이 흩날리지 않았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말로 상황을 장악했다. 무엇보다 언행이 일치했다. 초등학교 때 배운 미술기법에 비유하자면 데칼코마니 같았다. 도화지 절반에 물감을 뿌린 뒤 종이를 접으면 반대편 도화지에똑같은 그림이 묻어나듯, 줄리아니의 말과 행동에는차이가 없었다. 말과 행동의 관계는 오묘하다. 둘은 따로 분리될 수
없다. 행동은 말을 증명하는 수단이며 말은 행동과부합할 때 비로소 온기를 얻는다. 언행이 일치할 때 사람의 말과 행동은 강인한 생명력을 얻는다. 상대방 마음에 더 넓게, 더 깊숙이 번진다. 이는 나름대로 과학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인간은 오감을 통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이 가운데 대략 80퍼센트가 시각에 의한 것이다. 의사소통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화를 나눌 때 단순히 청각적 정보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시각적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상대방을 파악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상대의 말과 행동을 비교 또는 대조하게 된다. 우리가 구사하는 말과 취하는 행동이 하나로 포개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없다. 행동은 말을 증명하는 수단이며 말은 행동과부합할 때 비로소 온기를 얻는다. 언행이 일치할 때 사람의 말과 행동은 강인한 생명력을 얻는다. 상대방 마음에 더 넓게, 더 깊숙이 번진다. 이는 나름대로 과학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인간은 오감을 통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이 가운데 대략 80퍼센트가 시각에 의한 것이다. 의사소통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화를 나눌 때 단순히 청각적 정보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시각적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상대방을 파악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상대의 말과 행동을 비교 또는 대조하게 된다. 우리가 구사하는 말과 취하는 행동이 하나로 포개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자는 일찍이 언행일치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공자는 <논어> <위정爲政> 편에서 "선행기언이후종지其言而後從之"라고 했다. 행동을 옮겼다면 말이 꼭 뒤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말과 행동의 괴리가 없어야 함을 강조한 셈이다. 이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무실역사상도 의미가 부합한다. ‘무실‘은 참되게 힘쓰자는 뜻이고 ‘여행‘은 뒤로 미루지 말고 현재에 충실히 하자는의미다. 이 역시 실행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흡사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광고 문구 ‘just do it!‘을 연상케 한다. 적어도 한국과 중국 등 동양 문화권에서는 언행일치가 보편적 가치관이었다. 말과 행동이 같은 사람은대중이 본받아야 할 어른으로 추앙받지만, 둘 사이의간극이 지나치게 크면 예나 지금이나 조직 생활과 인간관계에서 손해를 입게 된다. 번지르르한 말만 앞서는 ‘언행불일치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입으로 내뱉는 말과 몸으로 취하는 행실의 관계는떼려야 뗄 수가 없다. 비유하자면 음식과 양념처럼말이다. 음식을 조리하면서 어울리는 양념을 적당히 가미하면 맛은 배가되지만, 양념 양을 조절하지 못하거나엉뚱한 양념을 치기라도 하면 음식 고유의 맛과 풍미가 사라진다. 요리를 망치고 만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고민해야 한다. 사람들 앞에 펼쳐놓는 요리와 애써 뿌린 양념 행동의 궁합이 잘 들어맞는지, 음식 맛을 훼손하고 있지는 않은지…. 입 밖으로 꺼낸 말과 실제 행동 사이의 거리가 이 세상 그 어떤 거리보다 아득하게 멀지는 않은지....
의"라고 강조했다. "말과 문장은 뜻을 전달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무작정 현란하게 말하는 데만 몰두하다 보면 정작말 속에 담아야 할 본질적인 내용을 놓칠 수 있다는얘기다. 영화 <킹스 스피치>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영화는 동시대를 살았던 두 인물의 언품을극명하게 대비한다. 한 명은 파시즘의 핏빛 광기로독일을 어둡게 물들인 아돌프 히틀러, 다른 한 명은앞서 소개한 말더듬이왕 조지 6세다. 두 사람의 어법은 극과 극이다. 히틀러는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의 성찬을 쏟아내는 다변과 달변의 소유자다. 반면 조지 6세는 세련되지는 않지만 진심을 담아서말할 줄 아는 인물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누가더 뛰어난 언사를 구사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라고 강조했다. "말과 문장은 뜻을 전달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무작정 현란하게 말하는 데만 몰두하다 보면 정작말 속에 담아야 할 본질적인 내용을 놓칠 수 있다는얘기다. 영화 <킹스 스피치>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영화는 동시대를 살았던 두 인물의 언품을극명하게 대비한다. 한 명은 파시즘의 핏빛 광기로독일을 어둡게 물들인 아돌프 히틀러. 다른 한 명은앞서 소개한 말더듬이 왕 조지 6세다. 두 사람의 어법은 극과 극이다. 히틀러는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의 성찬을 쏟아내는 다변과 달변의 소유자다. 반면 조지 6세는 세련되지는 않지만 진심을 담아서말할 줄 아는 인물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누가더 뛰어난 언사를 구사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물어보나 마나다. 인류의 본질적인 가치를 지켜내고, 말과 말 사이에 진심을 심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을 우위에 놓아야 할 것이다. 타인을 향해 생각을 표현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행위는 만인이 고민하는 숙제다. 그 과정에서 혹자는 상대의 의표를 찔러야 한다는 부담을 떨치지 못하고, 혹자는 누군가의 화법과 말투를 무작정 따라 하다가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우린 그렇게 살아간다. 말에 비법은 없다. 평범한 방법만 존재할 뿐이다. 그저 소중한 사람과 나눈 대화를 차분히 기고 자신의 말이 그려낸 궤적을 틈틈이 점검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화법을 찾고 꾸준히 언품을 가다듬는 수밖에 없다.
이유는 단 하나다. 말하는 기술만으로는 당신의 건심을 다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땀인지 눈물인지 좀체 분간할 수 없는 것이 흘러내렸다. 손수건을 건네드렸다. 어머니는 그것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나직한 소리로 웅얼거렸다. "알아, 그래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잖니…." 나는 어머니의 말 한마디가 높다란 언덕에서 떨어진돌덩이처럼 느껴졌다.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받아낼수 없었다. 더러운 말의 꼬리를 붙잡지 못해 죄송했다. 미안한 마음에 나는 밤새 뒤척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수양서인 《사소절小》에서 성인이 알아둬야 할 행실과 언어생활에 대해소상하게 적었다. "경솔하고 천박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하면재빨리 마음을 짓눌러야 한다.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거친 말을 내뱉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해로움이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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