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의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것이 부러웠다. 
2007년11월 파리 철도노조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연금제도 개혁에 반발하여 총파업을 결의했다. 
파리 시내 지하철의 9개 노선이 멈췄고 버스 운행률은 15퍼센트에 그쳤다. 
파리의 모든 시민이 파업에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 대부분은 불편함을 감수하며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했다.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존중하게 하시오(Respectez, et faites respecter)"

3세기에 걸쳐 지어진 성당 내부를 바라보았다. 고딕 양식의 높은 천장이 만들어낸 수직구조가 경건함을 불어넣었다. 

세계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잔 다르크의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녀는 프랑스와 영국간의 백년전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조국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전투중에 영국군에게 포로로 붙잡혔다. 
프랑스 국왕 샤를 7세는 잔 다르크의 종교적 영향력에 부담을 느껴 몸값을 받고 풀어주겠다는 영국군의 제안에 침묵으로 일관해 사실상 그녀를 죽음 속에 방치했다. 
결국 잔 다르크는 조국으로부터 구원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일곱 번의 재판 끝에 마녀이자 이교도, 우상숭배의 혐의로 화형에 처해졌다. 
그때 겨우 19세의 소녀였다.

프랑스인에게 구국의 아이콘으로 기억되는 잔 다르크 
샤를 7세는 백년전쟁이 끝나고 3년 뒤인 1456년이 되어서야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명예회복재판을 열어 잔 다르크를 복권시켰다. 
정치적, 종교적 희생양이었던 그녀의 짧은 생애는 누구보다 순수했고 열정적이었다. 성당 안에 남아 있는 어둠을 몰아내는 작은 촛불을 보며 잠시 그녀를 떠올려보았다.

아름다운 노트르담 대성당을 떠나는 것이 아쉬워서 센 강변에 앉아 측면에서의 성당을 종이에 옮겼다. 
마침 바토무슈에서 한 무리의 관광객이 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 중 머리도 콧수염도 백발인 독일인 할아버지가 한동안 내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엄지손가락을 보이며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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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독서가인 그녀스리 리브스 앤 컴퍼니 Three Lives & Company소설 <세월>로 유명한 퓰리처상 수상 작가 마이클 커닝엄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서점 중 하나라고 평했다는 스리 리브스앤컴퍼니, 양질의 문학 서적 셀렉션을 확인하고 나면 커닝엄칭송이 공연한 빈말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단편 소설의 거장 레이먼드 카버, 여류 소설가이자 평론가로 이름을 떨친수전 손태그 등이 낭독회를 열었던 전설 같은 역사도 스리 리브스 앤 컴퍼니만의 특별한 자랑거리다.
AUD 154 West 10 SL, NY, NY 10014 TEL 212-741-2069URL www.threelves.com리즐리 북스토어 Rizzoli Bookstore영화 (폴링 인 러브Falling in Love>에서 주인공 로버트 드니로와 메릴 스트립이 처음 만났던 고풍스러운 서점, 그곳이 센트펄 파크 근처 미드타운에 위치한 리졸리 북스토어다. 사진 · 건축·패션 등의 다양한 예술 관련 서적을 주로 취급한다. 많은 뉴요커의 대부분이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꼽는 리졸리는 고상한 외관과 내부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특히 1. 2층 천장의 대형 상들리에와 바닥에 깔린 카펫, 계단은 서점의 풍경이라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ADD 31 West 57th St, NY, NY 10019TEL 212-759-2424 URL www.rizzoliusa.com하우징 웍스 유스드 북 카페Housing Works Used Book Cafe반즈앤노블의 편안함과 스트랜드의 저렴함을 동시에 즐길 수있는 서점이다. 에이즈에 걸린 홈리스를 돕기 위해 중고 물품가게를 운영하는 하우징 웍스 재단이 운영하는 곳 중고도서를기증 받아 판매하는데, 4만 권 안팎에 이르는 서적을 보유하고있어 찾기 어려운 귀한 책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마호가니 독재의 책장과 나선형 계단이 운치를 더하는 서점 안에는 제3세계에서 수입한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카페도 있다.
400 126 Crosby St, NY, NY 10012 TEL 212-334-3324UREwwww.housingworks.org192북스 192books프린티드 매터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192 뉴욕에서 들러봐야 할 점 명소 중 하나. 주소가 192번지여서 192스라는 이름이붙은 이 서점은 규모는 작지만 예술과 문학 셀렉션만큼은 어느 서점에도 뒤지지 않는다. 저자의 사인회와 낭송회 등이 꾸준히 열린다는 점도 192북스의 특징. 홈페이지를 통해 이벤트 소식을 체크한후 일정에 맞춰 찾아가면 명성이 높은 작가나 셀러브리티를 만나는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ADD 192 10th Ave, a 21st St, NY, NY 10011TEL 212-255-4022www.192books.com드라마 북 TheBookshop극장만 가득한 것처럼 보이는 브로드웨이에도 서점은 존재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연극 관련 서점으로 통하는 드라마 복습이 그곳이다. 연극 뮤지컬 등의 공연 예술과 매체에 관한 책이 3층 건물을 가득 채운 풍경을 보고 있으면 ‘과연 브로드웨이의 서점‘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새어나온다. 운이 좋으면 연극 대본 낭독회 뮤지컬 시연을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 브로드웨이어 관한 동경을 품고 뉴욕을 방문했거나 공연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꼭 한번 들러보길 권한다.
ADD 250 West 40th SL, NY, NY 10018TEL 212-944-C595 URL dramacookshon.com아거시 북스토어 Argosy Books미드타운에 자리한 아거시 북스토어에서는 미국 문학의 가장 스콧피츠제럴드의 소설 초판이나 마크 트웨인의 사인본 같은 희귀도서를 만나는 행운이 현실로 찾아온다. 대부분의 중고 서점과 달리 아거시는 소위 말하는 ‘희귀본‘, 즉 미국 문학 초판본과 사인본 오래된지도 그림 등을 판매하며 유명해진 고서점이기 때문이다. 아거시의 창립자 루이스 코헨은 백악관 도서관과 미국 유수의 대학도서관을 만들 때 조언을 제공하고 필요한 책을 구해주었을 만큼 책 전문가였다니 아거시의 셀렉션 수준은 믿을 만하다.
ADD 116 East 59th St. NY. NY 10022 TEL 212-753-4455URL www.argosybooks.com

아티스트의 창작소 프린티드 매터 The Printed Matter Inc.
첼시에 위치한 프린티드 매터는 아티스트에게는 창작의 자유를 주고, 손님에게는 실험적인 예술을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는 서점이다. 프린티드 매터가 소정의 심사를 거쳐 아티스트가 종이로 만든 인쇄물, 통칭 아티스트 북만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비영리 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 정부와 기업, 개인의 지원을 받아 상업성보다 예술성 높은 창작물의 판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5,000명에 이르는 전 세계 아티스트가 저마다 개성을 녹여내 만든 1만 5,000여 점의 아티스트 북을 보노라면 예술에는 경계와 한계가 없음을 절로 실감하게 된다.
ADD 195 10th Ave, NY 10011TEL 212-925-0325URL www.printedrmatler.orgOPEN 화·수요일 11:00~18:00/목~토요일 11:00~18:00(일 - 월요일 휴무)24시간 오픈된 가장 미국적인 다이너엠파이어 다이너 Empire Diner문화와 패션을 동시에 사랑하는 스타일리시한 첼시즉의 야식 장소인 엠파이어 다이너는 영화 <맨 인 블랙>, <맨하탄>의 배경지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유행이지난 듯한 엑스테리어지만, 이 트레일러 엑스테리어를 처음 시작한 바 & 다이너가 바로 이곳 엠파이어다이너다. 프렌치토스트, 핫케이크와 브런치도 유명하지만, 이곳의 또 다른 별미는 갓 튀겨 나오는 감자튀김이다. 바삭바삭한 식감은 세계 어디에서도 쉽게맛볼 수 없을 정도로 일품이다.
ADD 210 Tenth Ave., al W. 22nd St. NY, NY 10011TEL 212-243-2736URL www.empire-diner.comOPEN 화·수요일 11:00~18:00/목~토요일 11:00~19:00(일 월요일 휴무!

뉴욕 출신 뮤지션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음악은 오직 영감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영감으로 말하자면 뉴욕은 거리 구석구석, 잡지나 신문이나 하다못해 길바닥에 그려진 그라피티, 한도 끝도 없는 전 세계의 명품 숍.
TV, 라디오, 지하철의 풍경과 광고 포스터, 사람이 입은 옷에 이르기까지 영감을 주지 않는 것이 없다. 
뮤지엄과 갤러리, 패션쇼, 다양한 국적과 인종까지 합세하면 뉴요커가 받는 자극과 영감은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극한의 수준까지 게이지가 올라갈 것이다. 
그런 영감과 자극과 손을 뻗기만 하면 널려 있는 수준 높은 책과 자유로운 기운까지 어느 것 하나 세계를 이끌어가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감과 창의력이란 각기 다른 개성과 마찰하면서 생긴 정전기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몰개성적인 문화를 따르고 개개인의 색깔을 억압하는 문화 속에서는 꽃피기 어려운 것이 바로 창의성, 교육이 모든 사람을 비슷하고 밋밋하게 만들어버리는현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잡지를 뒤적거렸더니 실험적이고 시크하고 빈티지하며 냉철한 뉴욕의 현재 트렌드가 보였다. 수많은 춤과 클럽의 리스트를 훑어보다가 "뮤지엄에 가자"고 하자 흔쾌히 동의하는 동생들. 현대 미술을 본다면 지난 시간의 간극을 메우고 새로운 뉴욕을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았다. 마침 휘트니 미술관에서 비엔날레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향했다. 비엔날레는 한꺼번에 수많은 대표 작가의 작업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타임아웃TimeOut)은 서구권에서 여행 정보지로는 최고의 잡지인데, 인터넷으로도 알찬 정보를 볼 수 있어 좋다. 비엔날레의정보도 여기서 얻었다.
휘트니 미술관으로 가면서 예전과 변함없는 뉴욕과 달라진 뉴욕을 떠올려보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지하철 풍경은 옛날 그대로다. 벽돌로 지은 옛 건물이 많은 것을 보면, 거리의 풍경도 그리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젊은층이 선호하는 새로운 문화와 지역은 한눈에도 달라 보인다. 새롭게 떠오르면서 이슈가 되는 ‘힙한 문화가 있는반면, 힙했던 문화가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으면서 ‘핫‘한 문화로 사랑받는 경우도 있는데, 뉴욕은 핫한 문화 사이사이에 합한 문화가 꽃핀 것 같은 인상이다. 20년의 세월은 그 현격한 차이를 바로 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부유한 동네인 맨해튼 위쪽 지역은 단정하면서도 기품이 넘치고, 클래식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아래 동네인 다운타운은 젊은이, 학생, 예술가의 너덜너덜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스트 빌리지가 일본식 선술집, 작고 인디스러운 레코드점, 피어싱과 타투 가게가 즐비하고 허름한 인상이라면,
업타운은 스카이 스크래퍼, 유리 빌딩, 명품 숍, 부유층의 산책 코스 등이 떠오른달까. 휘트니 미술관은 바로 업타운에 위치한다. 이 미술관은 1918년 무명의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작은 스튜디오에서부터 시작해여러 장소에서 발전을 거듭하다가 1966년 여기 어퍼 이스트 사이드Upper East Side의 매디슨 애버뉴MadisonAve. 75번가에 지금의 건물을 지었다. 물론 건물은 우아하고 현대적이다. 미술관 주변에 최고급 명품 이 간간이 보여 아방가르드한 미술이 주를 이루는 휘트니 미술관 분위기와 사뭇 대조적인 듯하지만, 요즘의 패션 명품은 현대 미술과 교묘히 결합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니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미술은 모양새가 아무리그로테스크해 보여도 일단 세계적 명성을 얻으면 그 부가가치가 어마어마하니, 상품으로서의 미술과 명품은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휘트니 비엔날레는 매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리는 행사다. 젊은 신진 작가를 발굴해 세상에 알리는 세계적인 미술전시회, 느긋한 마음으로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기대만큼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모마MOMA의 분위기보다 실험적인 작품이 많았다. 몇 개월 전, 모마에서 팀 버튼의 미술전이 열렸는데, <가위손>과 <크리스마스 악몽> 등 잘 알려진영화의 모티브와 스케치 • 의상 · 인형 등을 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이름들, 피카소니 마네니 하는 유명 작가의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휘트니 비엔날레는 정반대다. 작품 설명카드에는 도통 알 수 없는 이름으로 가득하다. 마치 23세기 미술을 보는 것처럼 난해하고 엉뚱하고 기상천외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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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중고나라에 팔 수 있는 물건들을 꼽아 보았다. 런닝머신, 피아노, 소파 식탁, 방마다 있는 침대・・・・…. 중고 시세를검색해 보았다. 한숨이 나왔다. 
피아노를 빼곤 값나가는 물건이 없었다. 할아버지에게 4억 2,730만 원과 내 양육비를 뜯었어도, 생활비가 넉넉한 것 같진 않았다. 오미림 사교육비로 꽤 많은 돈을 쓴 데다, 엄마는 ‘전업주부만이 자식 성적 및 체력, 인성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라는 소신으로 다른 일을 하지 않았으니까. 
엄마가 관리하는 오미림 인성은 개떡 같지만, 주부로 바쁜 건 사실이었다. 아빠와 오미림은 집안일에 손도 까딱하지 않았다. 자기 빨래를 세탁물 통에 넣는 사람, 자기 신발을 빠는 사람,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는 사람, 먹은 그릇을 닦는 사람, 자기 방을 치우는 사람은나뿐이었다. 
게다가 엄마는 무지막지하게 깔끔한 성격이었다. 쓸고, 닦고, 빨고, 다리고, 요리하고, 치우고, 정리하고,
장 보고………… 혼자 다 했다. 
아빠와 오미림을 깨워 학교나 학원 스케줄에 맞춰 보내는 것까지. 엄마는 왕이자 시녀 같았다. 
아빠와 오미림은 왕의 지시에 따르는 동시에, 시녀에게 별걸 다 시켜 먹는 왕자 공주 같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여기 사람들과 갈등이 생겨도 마찬가지야. 니가 다책임지려고 하지 마."
"알았어."
‘수림아, 이 지구에 내 최측근이 딱 한 명 있는데 누구지?"
순례 씨가 물었다. 열 번도 더 물어본 걸 또 묻는 거다.
"오수림."
내가 대답했다. 열 번도 더 대답한 그대로.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행복하게 살아야 해."
가슴이 찌르르했다. 이 넓은 지구에서 나는 어떻게 순례씨를 만났을까.
*순례 씨도 행복하게 살아야 해. 1군들 때문에 속 끓이지마."
"걱정 마, 내줄 공간이 있어서 다행이야. 감사해."
순례 씨는 ‘감사‘라는 말을 잘 한다. 1군들에게선 거의 들은 적이 없는 말이다. 순례 씨가 좋아하는 유명한 말-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가 떠올랐다. 

때는 조선시대,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오수림 공주는 자기를 구박하던 주인집 마님의 안마를 받는다. 공주는2004년 다시 환생하였고, 때는 조물주보다 건물주의 계급이높은 시대였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지 않아 ‘모지리‘라 구박받다가, 열여섯 어느 여름날 장차 건물주가 될 인물이라는 게 밝혀진다. 구박하던 자들은 설설 긴다. 안마를 한다.
"재수 없어."
상상을 깨준 건 오미림이었다.
"참, 뭐 부끄러움을 알라고 저 혼자 고상한 척하더니. 건물주 상속녀라고 갑질해?"
정신이 번쩍 났다. 엄마 아빠보다 오미림이 지조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속녀 따위 신경 끄고 자기 캐릭터를 꿋꿋이 밀고 나가는

"내가 시 읽어 줄까?"
"아, 시는 됐고, 나한테 말 안 한 게 뭔지 알려 달라니까"
"수림아, 말하지 않는 것도 사랑이야. 내 사랑을 받아 줘."
순례 씨는 나에게 고구마를 내밀었다. ‘말하지 않는 것도사랑‘이라는 말이 마음을 툭 쳤다. 나는 고구마를 받았다. 더이상 묻지 않았다. 순례 씨와 나란히 「김씨네 편의점을 봤다. 순례 씨가 슬그머니 국어 교과서를 가져왔다. 그러고는시를 읽기 시작했다.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 정현종

그래 살아 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 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수림아."
"왜."
"이 시가 내 인생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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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에게 즐거움을 주는 매력적인 직업

칵테일은 섬세하고 예민한 술이다. 전문적인 지식 없이는 어느 누구도 만들 수없다. 
칵테일은 정해진 방법에 따라 이것저것을 섞어 만들어내는 술이 아니라 상대방의 취향을 충족시켜줄 수 있도록 세밀하고 꼼꼼하게 신경을 써야 하는 창조적 산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바텐더에 대한 시선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서비스 정신이 필요한 전문직이지만 사람들은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잡부‘로 낮잡아본다.

박준혁 씨도 바텐더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 때문에 속병을 앓았던 눈치다.
"편견이오? 들어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칵테일은 술과 예술이 복합된 문화인데, 한국 사람들은 먹고 죽자는 식으로, 소주처럼 원샷 하는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게다가 바텐더는 남들 쉴 때 일해야 하고, 야간 근무까지 해야 하니까 무작정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바텐더는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직업이에요. 조리사가 음식을 만들듯이 바텐더는 술로써 나만의 음식을 만들어 고객들에게 제공하죠. 제가 개발한 칵테일을 마시고 고객이 만족할 때 기쁨을 느껴요.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에요. 그래도 요즘은 많이 좋아졌어요. 강의를 나가봐도 젊은 학생들의 생각이 많이 변해서 칵테일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김선웅 씨도 보이지 않는 사회의 곁눈질을 많이 느껴왔다. 바텐더를 술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생각해서다.
30대, 40대, 50대 초반까지는 괜찮은데 50대 후반에서 60대 분들은 아직도
‘바텐더를 ‘날라리‘라고 생각해요. 술의 역사는 길지만 술 문화가 정립되지 않아서 그래요. 
사람들은 비싼 술이나 외국에서 먹어본 특이한 술을 좋은 술이라고 생각하는데, 술은 분위기에 맞는 것이 최고예요. 
한여름에 힘든 일을 마치고 지나가는데 생맥주에 바비큐가 있어요. 그게 최고죠. 비가 내리는 날은 동동주에 파전, 또소주에 어울리는 안주, 다들 소주 먹는 분위기인데 내가 와인을 좋아한다고 해서 혼자 와인을 먹지는 않잖아요.

논밭으로 둘러싸인 외딴집에서 한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와 직원들을 반겼다.
"이 전선이 이렇게 너절한데 괜찮아요?"
할머니, 이 전선을 정리하려면 바닥에 파이프를 세워야 해요. 파이프를 세워놓으면 그다음은 저희가 알아서 다 해드릴게요.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는 파이프를 세우는 것보다 지금이 더 안전해요. 파이프는 휠 수도 있고, 쓰러질 수도 있거든요. 저 상태가 딱 좋아요."
단전 신고뿐만 아니라 전선이 위험하게 보이는 경우에도 민원이 접수된다. 전기 기술자들이 보기에는 안전하지만 일반인들이 보면 마음이 급하다.
"집으로 들어가는 전깃줄은 저압선이에요. 나무에 있어도 상관없고 사람이 만저도 어느 정도는 괜찮아요. 하지만 고압선은 피복이 있어도 문제가 돼요. 나무에 닿으면 계속 쓸리면서 화재까지 발생할 수 있죠."
‘전기‘는 하루도 쉬지 않고 가정으로 흘러들어간다. 가느다랗고 곧게 뻗은 전선을 타고 제트기처럼 쏜살같이 날아가 티브이를 켜고,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빨래를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불편해할 뿐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병폐는 무관심이다. ■

묵묵히 산불을 감시하는사람들

변덕스러운 산들바람을 따라 걷다 보니
‘영혼 깊은 곳에서 자유롭고 맑은 입김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인간의 사소한 실수로 타버린 산을 되살리기 위해필요한 시간은 최소한 이삼십 년.
공연히 눈꺼풀이 깜박거리고 떨린다.

느긋한 성정을 가진 사람은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지만한편으로는 상대에게 가볍고 편안한 휴식을 준다.

산이 바로 그렇다. 
산은 실컷 걷고, 실컷 숨 쉬게 해 해방의 환희를 선사한다.
도시의 화려함이 눈을 현혹하게 하고 삶을 찬미하게 만들지 모르지만,
산이야말로 현대인들의 번뇌를 풀어줄 수 있는 비밀과 수수께끼가 응결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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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가 다 꼬여가지고 삿대질하는 모습을 보면 한심해요. 기분 좋게 와서 기분 좋게 마시고 가면 좋겠는데. 
또 세상의 모든 짐을 혼자 껴안은 것처럼 오만상을 찌푸리는 손님도 싫어요. 
늙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데리고 오는 것도 싫고요. 둘이 좋아 만나는 일을 말릴 수야 없지만 뭔가 구린 냄새가 나거든요."

옆에서 듣고 있던 한 아주머니는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며 거든다.
"시장 바닥이란 게 다 서민들이 다니는 동네라 별거 없어요. 술주정이나 싸움질하는 게 싫지만 그럭저럭 참을만해요. 하지만 제일 힘든 건 사람이 그리운 거예요. 어떻게든 찾아올 손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지 않으면 기다려지죠. 바보 같죠. 이 장사를 하다 보면 가끔씩 생각나는 손님들이 있어요."
"많이 외로우신가 봐요."
"우리도 다 똑같은 사람이에요. 거리에서 일한다고 감정이 없는 줄 아세요? 손님들이 함부로 대하면 기분 나쁘고 화나요. 장사니까 참는 거예요. 길거리에서 장사한다고 쉽게 보지 마세요. 
다른 데서 만났으면 국물도 없어요."
조용한 목소리에 맑은 눈빛을 가진 한 아주머니는 "포장마차를 하면서 성격이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세상풍파에 쓸려 다니다 보면 성격이 거칠어진다고 했다.

상봉
간밤의 꿈에
시부모님을 뵈었다
두 분이
당신의 아들을 극진히 아껴주시던
생전의 평소처럼 여전하셨다
아직도 못 잊으십니까
지금도 그리우십니까
세월 넘어 시공 건너
붉디붉은 본능의 피 여전히 뜨거운지
성탄절 이브에 수천 리 먼 길을 다녀가셨다
칠흑 같은 어둠을 지나 언 하늘을 헤쳐
당신의 아들을 어루만져 주시었다
아버님어머님
먼 길 오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저도 뵙게 되어
만감이 강물처럼 흐르옵니다
부디 평안하시옵기를

우리 언니 이름은 전미자

열세 살 많은 언니
휠체어에 앉으셨네
야윈 몸 더듬으니
손끝에 닿는 밀감만 한 젖가슴
배보다 크던 젖무덤이 줄어
볕뉘가 들 듯
청춘의 추억만 깜박깜박
동백이 피었고 수선화도 피었건만
수척한 몸에는 곁이 되지 못하네
바람이 살랑살랑 향기를 싣고 와도
병상에는 이르지 못하고
젖 먹여 키운 딸도 소식이 멀기만 하다
나를 덜어 너를 채우던 날의 온기도
가물가물해지고

하루 세끼 채워지는 콧줄이라는 목숨 줄
누런 소변 줄을 달고서도
내 이름은 기억한다
내 이름 닮은 언니 이름을
언니가 떠나도 잊지 못하리
무정한 세월 속에 꽃눈을 뜨고
수척한 언니를 연민하는 봄
밀감만 한 젖가슴이 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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