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중고나라에 팔 수 있는 물건들을 꼽아 보았다. 런닝머신, 피아노, 소파 식탁, 방마다 있는 침대・・・・…. 중고 시세를검색해 보았다. 한숨이 나왔다. 
피아노를 빼곤 값나가는 물건이 없었다. 할아버지에게 4억 2,730만 원과 내 양육비를 뜯었어도, 생활비가 넉넉한 것 같진 않았다. 오미림 사교육비로 꽤 많은 돈을 쓴 데다, 엄마는 ‘전업주부만이 자식 성적 및 체력, 인성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라는 소신으로 다른 일을 하지 않았으니까. 
엄마가 관리하는 오미림 인성은 개떡 같지만, 주부로 바쁜 건 사실이었다. 아빠와 오미림은 집안일에 손도 까딱하지 않았다. 자기 빨래를 세탁물 통에 넣는 사람, 자기 신발을 빠는 사람,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는 사람, 먹은 그릇을 닦는 사람, 자기 방을 치우는 사람은나뿐이었다. 
게다가 엄마는 무지막지하게 깔끔한 성격이었다. 쓸고, 닦고, 빨고, 다리고, 요리하고, 치우고, 정리하고,
장 보고………… 혼자 다 했다. 
아빠와 오미림을 깨워 학교나 학원 스케줄에 맞춰 보내는 것까지. 엄마는 왕이자 시녀 같았다. 
아빠와 오미림은 왕의 지시에 따르는 동시에, 시녀에게 별걸 다 시켜 먹는 왕자 공주 같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여기 사람들과 갈등이 생겨도 마찬가지야. 니가 다책임지려고 하지 마."
"알았어."
‘수림아, 이 지구에 내 최측근이 딱 한 명 있는데 누구지?"
순례 씨가 물었다. 열 번도 더 물어본 걸 또 묻는 거다.
"오수림."
내가 대답했다. 열 번도 더 대답한 그대로.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행복하게 살아야 해."
가슴이 찌르르했다. 이 넓은 지구에서 나는 어떻게 순례씨를 만났을까.
*순례 씨도 행복하게 살아야 해. 1군들 때문에 속 끓이지마."
"걱정 마, 내줄 공간이 있어서 다행이야. 감사해."
순례 씨는 ‘감사‘라는 말을 잘 한다. 1군들에게선 거의 들은 적이 없는 말이다. 순례 씨가 좋아하는 유명한 말-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가 떠올랐다. 

때는 조선시대,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오수림 공주는 자기를 구박하던 주인집 마님의 안마를 받는다. 공주는2004년 다시 환생하였고, 때는 조물주보다 건물주의 계급이높은 시대였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지 않아 ‘모지리‘라 구박받다가, 열여섯 어느 여름날 장차 건물주가 될 인물이라는 게 밝혀진다. 구박하던 자들은 설설 긴다. 안마를 한다.
"재수 없어."
상상을 깨준 건 오미림이었다.
"참, 뭐 부끄러움을 알라고 저 혼자 고상한 척하더니. 건물주 상속녀라고 갑질해?"
정신이 번쩍 났다. 엄마 아빠보다 오미림이 지조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속녀 따위 신경 끄고 자기 캐릭터를 꿋꿋이 밀고 나가는

"내가 시 읽어 줄까?"
"아, 시는 됐고, 나한테 말 안 한 게 뭔지 알려 달라니까"
"수림아, 말하지 않는 것도 사랑이야. 내 사랑을 받아 줘."
순례 씨는 나에게 고구마를 내밀었다. ‘말하지 않는 것도사랑‘이라는 말이 마음을 툭 쳤다. 나는 고구마를 받았다. 더이상 묻지 않았다. 순례 씨와 나란히 「김씨네 편의점을 봤다. 순례 씨가 슬그머니 국어 교과서를 가져왔다. 그러고는시를 읽기 시작했다.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 정현종

그래 살아 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 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수림아."
"왜."
"이 시가 내 인생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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