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의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것이 부러웠다. 
2007년11월 파리 철도노조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연금제도 개혁에 반발하여 총파업을 결의했다. 
파리 시내 지하철의 9개 노선이 멈췄고 버스 운행률은 15퍼센트에 그쳤다. 
파리의 모든 시민이 파업에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 대부분은 불편함을 감수하며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했다.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존중하게 하시오(Respectez, et faites respecter)"

3세기에 걸쳐 지어진 성당 내부를 바라보았다. 고딕 양식의 높은 천장이 만들어낸 수직구조가 경건함을 불어넣었다. 

세계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잔 다르크의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녀는 프랑스와 영국간의 백년전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조국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전투중에 영국군에게 포로로 붙잡혔다. 
프랑스 국왕 샤를 7세는 잔 다르크의 종교적 영향력에 부담을 느껴 몸값을 받고 풀어주겠다는 영국군의 제안에 침묵으로 일관해 사실상 그녀를 죽음 속에 방치했다. 
결국 잔 다르크는 조국으로부터 구원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일곱 번의 재판 끝에 마녀이자 이교도, 우상숭배의 혐의로 화형에 처해졌다. 
그때 겨우 19세의 소녀였다.

프랑스인에게 구국의 아이콘으로 기억되는 잔 다르크 
샤를 7세는 백년전쟁이 끝나고 3년 뒤인 1456년이 되어서야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명예회복재판을 열어 잔 다르크를 복권시켰다. 
정치적, 종교적 희생양이었던 그녀의 짧은 생애는 누구보다 순수했고 열정적이었다. 성당 안에 남아 있는 어둠을 몰아내는 작은 촛불을 보며 잠시 그녀를 떠올려보았다.

아름다운 노트르담 대성당을 떠나는 것이 아쉬워서 센 강변에 앉아 측면에서의 성당을 종이에 옮겼다. 
마침 바토무슈에서 한 무리의 관광객이 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 중 머리도 콧수염도 백발인 독일인 할아버지가 한동안 내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엄지손가락을 보이며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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