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I<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을 집필하면서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나는 1976년 3월 뉴욕 퀸스로 이민했다. IBM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존 삼촌이 우리 가족의 보증을 서주었다. 당시 나는 일곱 살, 주인공 케이시보다 두 살 많은나이에 미국에 온 것이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나는 엘름허스트의저소득층 동네에서 자랐다. 첫 5년 동안 초라한 셋집을 전전하고나서, 부모님은 매스페스에 세 가구가 살 수 있는 작은 집을 샀다. 우리 가족은 2층에 살고 다른 두 층은 임대를 주었다. 나는 퀸스의 엘름허스트와 매스페스의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영어로 말하기와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동생과 나는 방과 후 알아서 노는 아이들이었다. 여름방학에는 부모님의 장신구 도매상에서 일하며엘름허스트 도서관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때는 이런 방식으로, 글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내 어린 시절
은 이민과 계급, 인종, 젠더 문제에 끊임없는 영향을 받았다. 이 책에는 이민 1세대와 2세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렇기에 나는이 책이 미국의 이야기라는 정의에 부합한다고 믿는다. 세상 그어떤 나라와도 다르게 미국은 이민정책과 초기 식민지 역사라는태생적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원주민과 노예의후손들을 제외하면 미국에 사는 모든 사람의 생애는 궁극적으로이민자의 여행기와 연결된다. 나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는데, 졸업논문 주제는 ‘18세기미국 정신세계의 식민지화였다. 거창하기 짝이 없었다. 영국의 초기 식민지 개척자들과 그 이후 세대가 유럽인 및 고국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지적으로, 문화적으로 심대한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 나의 논지였다. 이런 관점은 미국에서 이민자로서 내가 겪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나는 법적으로 식민화된 사람이 아니지만 그런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이민자는 초기 피식민자(요즘 잘 쓰지 않는 단어다)와 같다. 즉 다른 곳에서 온 사람,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려는 목적으로 각종 복잡한 규칙을 수반하는 새로운 땅에 적응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사람인 것이다. 나는 픽션이라는 형태로 문화를-내가 보는 것과 내 눈에 띄는 것을 크레용으로 그리듯ㅡ만들고자 하는 사람이기 때문인데,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위치다. 나는 이 나라가 돌아가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한편으로 강인한 개인주의의 이상과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 미국 개척자 정신을 존경한다. 미국을 비판하기는 쉽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볼 때 미
쿡은 어마어마한 개방성을 지닌 놀라운 나라다. 지식인들이 다른 곳에서 많이 했던 말이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말에 대해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다른 어떤 곳보다 여기서 살길 위한 것이다. 필리핀계 미국인 작가카를로스 볼로산은 자신의 다채로운 소설에 "미국은 가슴속에(America Is in the Heart)"라는 제목을 붙였다. 불로산 이후의 이민자 세대인 나 역시 가슴속에 복잡한 미국의 상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어떤 대상이나 주제를 정직하게 좋아한다면 이상화된 사랑을 위해서 궁극적으로 그 결함도 인정해야 한다. 온갓 문제로 얼룩진 미국의 역사를 돌아보자. 연구를 거의 멸절시키다시피 진행된 원주민 학살,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노예제도 짐 크로우 법, 센더 불평등 남유럽 이민 쿼터제 중국인 이민금지법,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주지했던 정책, 히로시마 원폭 투하 매카시즘, 베트남 전쟁 등 한도 끝도없다. 이런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는 미국이 모든 세대마다 그 불안감과 걱정을 새로 오는 사람들에게 진가했다는 사실을 충격과연민 속에 깨닫게 된다. 이 모든 점을 염두에 두고, 나는 뉴욕의 우리 동네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었던 인간형들과 문제들을 소설 형식으로 기록하고자했다. 나 자신에게, 또한 독자들에게 이런 이미지들과 생각들을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읽은 19세기 유럽소설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대학에서는 싱클레어 루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제임스 볼드윈, F. 스콧 피츠제럴드, 시어도어 드라
이제 더스매시 이디스 워튼 등 수많은 미국 작가들의 작품감정과 역사, 통찰력, 시차를 통합하는 시선으로 분화약품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민자들의 유형은 다양하다. 퀸스에서 자랄 때, 우리 동네에는중국, 한국계, 인도계는 물론 독일계, 폴란드게, 아일랜드게리스케, 이탈리아계, 헝가리게 이민자들이 살고 있었다. 백인이 아년 이민자로 산다는 것에는 흥미롭고 어쩌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외모적인 특징이 인종적으로 분류되는 한 그들이 결코 다수자 집단으로 ‘패싱‘ 될 수 없다는 점을 들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눈이나 코, 머리카락, 신체적인 특징이 다수자 집단의 그것과 구별되는 요소가 있다면, 좋든 나쁘든완전한 동질화가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처럼 개방적인 사회에서도 이 사실로 인해 온갖 흥미로운 문제들이 고개를든다. 소수인종집단은 다수 집단과 절대 혼합될 수 없을 거라고 설득력 있는 논지를 펼치는 이도 있다. 당연히 이 이론은 특권과 책임감을 지니고 다수집단의 문화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실망스러울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등장인물들에게 온갖 장점들을 부여했다. 교육 수준, 외모, 재능, 강한 가족적 배경……… 그리고 나는 그들이 각자의 야심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지켜보고 싶었다. 그들에게는 시련도 주어지고, 각자 문제도 일으킨다. 인종과* Kasing 자신과 다른 집단의 구성원으로 보여지는 상황.
계급 이민, 젠더 정치하여 그들에게 영향을 줄까? 혹은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영향을 주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역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매우 궁금했다. 나는 언론에서 정확하게 재현되는 이시아 미국인의 삶이 무하다는 사실이 그들에 대한 왜곡을 낳는다고 믿는다. 매우 자주 아시아계 미국인은 긍정적일 경우 대단히 유능하고 근면하고 호전적이지 않은 사람 혹은 기만적이고 속을 할 수 없고 과대망상을 지닌 사람으로 인식된다. 어느 쪽이든 이런 상은 내가아는 아시하게 미국인을 완전하게 재현하지 않는다. 아시아계 미국인이든 그 어떤 사람이든 마찬가지지만, 명확한 표현과 감정이깃은 목소리와 언어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의 인간 자체가 부정된 것이다. 인간을 기계나 짐승과 구분하는 것은 감정을 느끼는 능력, 표현하고, 의문을 갖고 갈망하고, 후회하는 능력. 이런것들이다. 나는 정확한 재현의 부재가 소수자를 사실상 사회적으로 지워버리며 심대한 심리적 문제를 낳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논한다는 것은 어렵다. 나는 내가 아는 한국게 미국인들이 얼마나 복잡다단한 인물인지 너무나 보여주고 싶었다. 작가로서 나는 비한국계 미국인 등장인물 역시 같은 기준으로 그려내고 싶었다. 많은 독자에게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미안함을 무릅쓰고 굳이적는다. 한국계 미국인 남성도 낭만적이고, 연징적이고, 사랑하는마음이 풍부하고, 재미있는 인물일 수 있으며, 그들 역시 문제가있고, 슬프고, 좌절을 겪을 수 있다. 한국계 남성은 이 모든 것뿐
아니라 그 외의 수많은 특징을 지닌 존재 한국계 여성도 가두려울 수 있다. 한국 여성도 가슴이 아볼 수 있다. 내가 배우쉽고 사랑하는 한국에 미국인 남성과 여성에게 복잡한 특징이 공행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내게 정말로 중요했다. 나는 오리라를 듣고 시를 쓰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주머니에 있는 동전 한 푼까지 친구들에게 줄 수 있는 한국인 남성들알고 있다. 나는 지나친 희생과 자기 부정으로 인생을 망치는 한국인 여성들을 보았다. 나는 내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녀가 그런모습이기를 바랐다. 미국에서 성공하고 통화하고자 하는 집단적인 소망으로 인해 우리 한국계 미국인들이 자기가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을 입 밖에 내지 않거나 문제를 일으키려 하지 않는다는점이 나는 늘 신경 쓰인다. 안전하다고 여겨질 때까지 침묵을 지키거나 표현을 유보하는 이런 특징 때문에 타인이 우리의 성격이나 인생을 대신 해석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모든 한국계 미국인을 정확히 대변할 수는 없다. 이 책은 분명 한 인간의 한정된 시각을 통해 쓰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한국계미국인이라는 것이 좋고, 내 가족과 나의 커뮤니티 내 역사를 사랑한다. 이 사람은 일종의 필터이고 일종의 편견일 것이다. 나는내가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진실되게 말함으로써, 그 결함과 그모든 아름다움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존경심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 소설에서 내가 세운 목표는 민망할 정도로 고매했지만, 최소한나는 등장인물들이 불완전하며 재능 있기를 바랐다. 우리 모두가
그런 인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픽션 작가로서 가장 중요한 점이겠지만 나는기억에 남아 있는 일평생 읽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을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다. 작가는 언제나 먼저 독자가되어야 한다. 내 평생을 통틀어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크나큰 위안을 주었다. 픽션을 더 잘 쓰는 법을 연구할 때 내 본보기는 언제나 내가 읽고 또 읽고 싶었던 책들이었다. 여러분이 이 책에서 즐거움을 얻기를 바란다. 읽어주어서 감사하다. 여러분의 관심과 시간이야말로 내게는 커다란 의미다.
2007년 일본 도쿄에서이민진
주의 조소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자기 규율과 장인정신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로스쿨 학비를 다 써버린 뒤라 예술석사학위(MFA) 비용까지 치르는 모험을 감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서툴게 나 ‘자신만의 창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우선 언제나 즐겨 읽던 19세기 거장들의 소설을 더욱 폭넓게읽었다. 좋은 장편과 단편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고, 진정으로탁월한 작품들을 연구했다. 아름답게 쓰인 문단이 눈에 띄면, 예를 들어 줄리아 글래스의 <세 번의 유원(Three Junes) 같은 책을만나면 나는 공책에 글을 그대로 필사했다. 그런 뒤 자리에 앉아싸구려 모슬린 위에 핀으로 고정한 희귀한 나비를 보듯 조잡한공책에 적은 우아한 문장들을 숙독했다. 작가의 감정과 생각을단단하게 표현해주는 것은 기술이었다. 주노 디아스의 《드라운》을 읽고 또 읽으면 작가의 용기와 천재성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화자의 완벽한 서사적 목소리는 정교하고 거대한 플롯의 설계와 조응했다. 위대한 픽션은 단순히 아름다운 언어나 좋은 느낌뿐만 아니라 감정과 구조, 이상, 용기를 요구한다. 거장의 회화나황혼 녘의 바다, 아이의 얼굴을 마주할 때 그렇듯, 훌륭한 픽션 작품은 나를 기쁘게 했다. 뉴욕에서는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위대한 작가를 연구할 수 있다. 여기서 사는 생활비를 감당할 수만 있다면, 예술가들이 거의돈을 받지 않고도 일하려고 할 정도로 풍요로운 문화가 있는 도시다. 일주일에 한 번 크리스토퍼가 퇴근 후 샘을 봐줄 수 있는
스와니에 모인 사람들은 죄다 아이오와 대학 같은 곳에서 명망높은 예술석사학위 과정을 마치고 출판 계약도 따놓은 것 같았다. 당시 컨퍼런스 참석자들은 모두 이름표를 달았는데, 내 이름표는 장학금을 받고 있지 않다는 뜻으로 그냥 이름만 적혀 있었다. 어느 점심시간, 나는 자기 이름과 장학금 명이 적힌 이름표를 단젊은 여자 한 사람을 만났다. 출판사에서 장학금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그녀는 개인적으로 학비를 내지 않았다. 같은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장학금을 받고 있었는데, 그 젊은 여자는 학비를 다 내고 컨퍼런스에 참석한 가정주부들을 가볍게 조롱했다. 나는 미처 깨닫지도 못했다. 그녀는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 나는 서른 살이었고, 갓 엄마가 되었으며, 재능 있는 젊은 여자 예술가 한 사람이 가정주부 작가들을 멸시한다는 것을알게 되었다. 식사를 할 수가 없어서 나는 방으로 돌아갔다. 남은컨퍼런스 기간 내내 나는 그녀를 피했다. 그녀의 말이 맞다고 느짧기 때문이었다. 수업 하나 들으려고 이렇게 멀리까지 온 것이 실수있다. 컨퍼런스 마지막 날, 앨리스 맥더모트는 새로운 미국의목소리 2000) 선집 수록작 후보로 내가 워크숍에서 제출한 단편이 선정되었다고 공표했다. 편집부는 내 소설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나는 어쩌면 내가 계속 노력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몇 달 뒤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뉴욕예술재단 픽션 부문에서예술지원금을 받게 된 것이었다. 상금은 7,000달러였다. 나는 그돈의 일부로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유명 편집자 겸 작가인 톰크스와 작가 캐릭 에드가리언의 5일짜리 문예창작 과정 학비
고 싶었다. 어떻게 당신은 그렇게 했지? 당신이 창조한 이 온전한하나의 다른 세상 속으로 어떻게 나를 끌고 들어갔지? 이 새로운느낌, 오래된 느낌들을 어떻게 내게 느끼게 했지? 어떻게 이 모든것들에 의미가 있다고 계속 믿을 수 있었지? 하지만 나는 이런 질품들을 문장으로 만들어서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아마 그럴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게는 그들의 작품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작품에 대해 뭔가 증명할 필요가 없고 작품도 내게 뭔가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적인 방식으로 작품이 내게 말을 걸고내 곁에 머물렀기 때문에, 나는 습관적으로 지하철에서 책을 읽었다. 어느 날 나는 V, S. 나이폰의 비스와스 씨를 위한 집>을 2호선 지하철에서 다 읽고책을 덮다가 그의 찬란한 문학적 성취에 감동해서 눈물을 터뜨렸다. 그의 정치적인 입장에 논란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한로 그는 여성 작가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이 작품 속에서 작가가 비범한 무엇인가를 픽션으로 성취했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서툴게, 하지만너무나 악착같이 발버둥치는 겸손하고 호기심 많은 인물에 대해내가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등장인물의 형상화와 공감 때문이었다. 이후 나는 소설의 배경인 가상의 공간 아르와카스가 나이폼이 자라난 동인도-트리니다드계 이민자들이 사는 마을 차구아나스를 모델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퀸스의 내 고향동네 엘름허스트에 대해 써도 된다고 허락한 것은 나이폴이었다. 문예창작 수업과 독서 모임들을 거치며 수많은 습작들을 폐
기한 뒤, 나는 저널리스트처럼 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조사를 지작했다. 등장인물인 투자금유가 테드 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을 매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한 남자들을 인터뷰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이 실감하고 싶다면 직접 봐야 한다면서 지원 회망자로서 그곳 수업을 들어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했다.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방문자 등록양식을 작성하니 하루 청강 허가가 나왔다. 나는 수업에 들어갔다. 교실에는 스물다섯 명 정도 남짓 되는학생들이 있었고, 각자 앞에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그 공간에서숨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숨으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은 확실했다. 고등학교나 대학 시절, 심지어 법대에서 내가 경험한그 어떤 수업과도 달랐다. 교실에 있는 모든 학생이 숙제를 다 했는지, 강의 내용과 화이트보드에 적힌 복잡한 스프레드시트를 완벽히 이해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매력적인 젊은이들에 대해 뭔가 배울 수 있었다. 나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학생들이남다른 점은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젊은이들 매우 어려운 문제를해결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가득 찬 건물에 있어본 것은처임이었다. 몇 시간 뒤, 나는 정말로 경영대학원에 지원해볼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활기찬 에너지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우울하거나 초조한 사람, 확신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날만큼은 집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내가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지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날 나는 바뀌었다. 나는
그때부터 자료조사를 높이 평가하기 시작했다. 세세한 묘사나 현장감 있는 매끄러운 대사를 원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통해받는 느낌 때문이었다.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과 한자리에 있는 것단으로 덩달아 나도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가짜 지원자이자저서 한 권 없는 작가 입장에서 청강하고 있는 내게도 이렇게 긍정적인 기분이 느껴지는데, 그런 곳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나는 테드에게 문제가 있거나 두려울 때조차 자신이 옳다고 믿는 남자에게 그 느낌을 고스란히 옮겼다. 테드의 자신감은 커다란 경제적 성공을 그에게 안긴다. 그러나 성욕 앞에서, 동류의 인간에 대한 내적 갈망 앞에서그 자신감은 약해진다. 테드는 신한 사람이 아니지만 나는 자료조사를 통해 그의 약한 면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것이 테드라는인간 전체를 하나의 개체로 사랑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 시기에 멋진 일이 생겼다. <미주리리뷰>에 내가 열일곱 번인가 열여덟 번 고쳐 쓴 단편이 실린 것이다. 그 이야기 하나를 고쳐쓴 원고만 종이 상자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아마 그 정도가필요했던 모양이었다.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커피 잔을드는 것도 힘들어졌다. 그때 아들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는데,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올 때 몇 블록 걷는 길조차 힘겨웠다. 발목이 퉁퉁 부었고, 길을 건너기 위해 아들의 손을 잡는 것도 힘들었다. 쉽게 문고리를 돌릴 수도, 계단을 올라갈 수도 없었다. 몇 번의 오진 끝에 한 류머티즘 전문의를 만났는데, 그는 내 지
병인 간질환이 원인이라고 정확한 진단을 내렸다. 와인 한 방울마시지 않는 내게 이미 간경변이 진행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누었다많은 의사가 치료에 참여했고 그들은 내 상태를 놓고 의견을소화기 전문의는 내가 아직 젊고 간이식 수술은 쉽게 시도할 수 없으니 인터페론으로 치료해보자고 했다. 석달동안 나는 매일 허벅지에 직접 약을 주사했다. 샤워를 하면 머리가락이 뭉텅이로 빠졌다. 바닥청소를 하려고 허리를 굽히면 얼굴의철판이 터져 멍이 들기도 했다. 설사가 있거나 구토가 멈추지 않아서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나는 하루 몇 시간 정도만 에너지가 있었고, 세 살배기 샘에게 쓰려고 그 힘을 비축했다. 엄마가 건강하다고 아이가 믿도록 해주고 싶었다. 치료가 끝난 뒤 검사에서 간 기능이 상당히 향상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의사는 신중하게 감사를 계속했다. 나는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첫 원고를 어떻게든 마치기 위해 작업을 계속했다. 치료가 끝나고 1년 뒤, 의사는 내가 완치되었다고 선언했다. 100만 명 중에한 명 정도라며 그는 놀라워했다. 그날 오후 나는 좋은 소식을 안고 돌아가서 침대에 누웠다. 예상치 못한 삶이었다. 비판이 두려워시 움츠러들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나는 그리지 않았다. 2006년 여름 출판 계약을 했을 때, 나는 습작 11년째였다. 서른일곱 살이었다. 2016년 8월이민진
옮긴이의 말주인공 케이시 한은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민 1세대 부모의 희생을 딛고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해서 주류 사회의 번듯한 일원으로 기회를 보장받는다. 하지만 단순한 성공만으로는 부족하다. 서툰 영어로 평생 이민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버지의 눈에는 법대에 진학해서 변호사가 되는 것 이상이 보이지 않지만, 케이시에게는 멋진 패션과 화려함에 대한 욕망이 있다. 마음껏 사랑도 즐기고 싶다. 그녀는 막무가내로 집을 뛰쳐나온다. 명문대라는 안전한 울타리마저 걷어차고 화려한 뉴욕의 거리로 나선 케이시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인종이라는 벽과 계급의 사다리가 사회 곳곳에 쳐놓은 정교한 거미줄이다. 미국이라는 자유의 땅, 그중에서도 특히 화려함과 성공의 정점에 있는 뉴욕을 무대로 하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성과 본을 물려받아 한반도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우리의 이야기도 당연히 한국인의 역사이겠지만, 각자의 사연을 안고이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퍼져 살고 있는 이민 1세대, 2세대, 3세대의 역사 역시 넓게 보아 한국인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전쟁이라는 공통의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는 데에서우러나는 진한 감정적 공감, 자신이 살아가는 땅에 동화되려는 노력, 이질적인 땅에서 그들이 흘리는 눈물과 좌절, 계급적 인종적격차로 인한 불화, 그들이 이룬 크고 작은 성취. 미국이라는 기회의 땅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하는 한민족의 이야기에 넋을 잃다가도 문득생각하게 된다. 주류 미국인이 아닌 미국인, 아니, 주류 한국인이아닌 한국인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바로 우리 옆에 있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누가 우리, ‘한국인‘이라는 집단을 구성하는가. 한국에서 형성된 다문화가족의 시초는 역시 한국 전쟁, 미군병사와 한국인 여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가족이다. 이후 외국인노동자를 통해 차츰 그 수가 늘어났고,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한국인 남성과 아시아인 여성의 결혼 이민이 급증했다고 알려져있다. 2020년에는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 인구가 200만 명이 넘었다. 혼인 열 쌍 중 한 쌍은 다문화 결혼이며, 출생아 100명 중 여섯 명은 다문화가정 자녀다. 코리안 드림을 품고 한국으로 넘어와
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피부색이 다른 이주민과 그들의 2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숫자를 놓고 생각하면 궁금해진다. 앞으로 0.5세대가 지난 뒤, 1세대가 지난 뒤 한국에 사는한국인이라는 집단은 과연 어떤 사람들의 집합일까. 이민자의 역사가 곧 국가의 역사인 미국에서 주류에 편입하려는 노력은 한국에 이주한 사람들의 경우와 결이 다를 것이다. 백인, 황인, 흑인, 온갖 피부색이 섞인 인종의 전시장 같은 땅에서소수자가 다수자로 패싱되려는 노력과 관련된 논의는 흥미롭게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다르다. 조금이라도 다르면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이런 곳에서 남과 다른 얼굴 윤곽, 다른피부색으로 정착하고 한국인임을 주장해야 하는 이민자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흑인 외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 힘든 아프리카게 한국인 앞에는 어떤 선택지가 놓일까. 그들의 문제는 한 세대만 지나도 쉽게 주류 인종으로 패싱될 수 있는 아시아계 한국인이민자와 그 가족들이 안은 숙제와 어떻게 다를까. 전쟁과 현대사의 소용돌이에서 한국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 코리안 드림을 꿈꾼 이민자들, 그들의 2세들이 이 땅과 타협하며, 혹은 불화하며 써내려가는 이야기 역시 우리가 소중하게 보듬고우리의 것으로 여겨야 하는 ‘한국인‘의 이야기임은 분명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아직 이런 궁금증들에 대한 답변을 들을수 있는 곳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민진 작가의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한국 땅에서 전혀 위협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다수의 한국인보
다. 피부색이 더 어두운 한국인, 아프리카 한국인, 필리핀 마닐라나 베트남 어딘가에서 삼대 위 할아버지를 찾아야 하는 한국인에게 더욱 절실하게 말을 거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표면 아래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목소리들이 있을 것이다. 농촌에 시집와서 시어머니한테 구박받는 며느리, 종일 공장에 처박혀서 일하고 주말에도 밖으로 나오기 힘든 노동자 등 ‘리아와 조셉부부는 이 땅 어딘가에서 엄연히 살아가고 있다. 말이 어눌해서걸핏하면 바보 취급받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케이시 한도, 계급과 인종의 한계를 뛰어넘어 한국사회의 엘리트로 도약하겠다고 이를 악문 ‘테드 김‘도 어딘가에우리와 매우 비슷한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백만장자를위한 공짜 음식》은 그 어떤 한국인들보다 이런 한국인들에게 목소리를 내라고 권유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대한민국이 제대로 가고 있다면, 그런 사람들이 미디어에 훨씬 더 많이 등장하고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땅일 것이다. 앞으로 10년, 20년 후 한국인이라는 집단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본다. 한국이 다양한 목소리들에게 가시화의 기회를 주고 우리의 것으로, 한국인의 목소리로 품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전 세계로 퍼져나간 K의 물결처럼 ‘우리‘와 ‘한국인‘이라는개념 자체도 조금이나마 확장될 수 있기를 바란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을 번역할 기회를 준 인플루엔셜출판사와 원고를 다듬으며 함께 땀을 흘린 편집부에 감사한다. 번
역 과정에서 작가와 소통할 수 있었는데, 좋은 경험이었다. 이민진 작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2년 11월유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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