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길 - 상 ㅣ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복합적이다 못해 짐승스런 ‘D의 복합’과 ‘짐승의 길’,

그리고 마쓰모토 세이초에 대한 구구절절

 


  작년, 아버지가 집에 한 번 오셨을 때 밑도 끝도 없이 ‘대남’이라는 책을 찾았다.1) 작가의 이름도 출판사도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상태에서 ‘대남’이라는 재목 하나만으로 단서를 잡아 인터넷을 뒤졌는데, 아무리 해도 나오지 않았다. 그 후로도 짬이 날 때마다 꾸준히 찾았지만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하여 도대체 우리 아버지가 찾는 ‘대남’은 무엇인가, 아버지는 왜 그 책을 찾는가 한참을 궁금해 하였었는데 올해, ‘짐승의 길’을 읽다 집나간(?) 대남이를 발견했다.



 

  (전략)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동안 세이초는 꽤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단행본은 물론이거니와 오래전 외판용으로 무려 열 권짜리 세이초 선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다소 엉뚱한 ‘大男’이라는 타이틀을 달고요.

  왜 ‘대남’이냐고요?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제목이긴 하지요. 그런데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역사소설 ‘대망’을 떠올리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대망’의 인기에 편승하려 했던 거죠. 여기서 ‘대망’은 또 무슨 책인지 궁금해졌다면(아마 젊은 독자들 중에는 그런 분들이 있을지도) 애써 설명하기보다는 검색을 권해 드리겠습니다. 괜히 공부를 시키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말입니다.

 

p.333, 짐승의 길 下, 북스피어, 2012



  짐승의 길 下편 뒤에 붙은 해설 ‘세이초, 고다마, 하루키-마쓰모토 세이초 재미있게 읽기’ 서두에서 문학평론가 조영일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2) 나는 이 서두를 읽고 “아아아앗!” 매우 흥분하였다. 그토록 기다리던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이 우리 아버지가 젊은 시절 흥분하였던 책이라니! 이런 부전자전을 보았나!3)

 

  내 블로그 이웃들이나 나와 친한 사람들이라면 귀에 딱지가 않도록 나에게 ‘마쓰모토 세이초’ 이야기를 들었으리라. 실제로 나와 함께 일하는 언니는 미스터리 소설에 관심이 없는데도 가끔 “마쓰오 씨는 잘 있어?”라고 자기 멋대로 애칭을 붙여서는 가끔 안부(?)를 물어주더니, 이번에 책이 나왔다고 신이 나서 보여주자 정말 잘 됐다고, 축하한다고 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나는 거기다가 고맙다고 대답을.

 

  사실 축하한다는 말을 들을 필요도,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을 필요도 딱히 없는 일면식 없는 관계인데 말이지.

아니, 관계는 있지. 나는 소설을 쓰는데, 마쓰모토 세이초 님처럼 되고 싶다는 관계 말이야.

 

 

  자, 그렇다면 요즘 신문이나 인터넷서 하도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다들 알 것 같지만 그대로 마쓰모토 세이초 님이 어떤 분인가 짚고 가자.

 

  마쓰모토 세이초 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추리소설가 김내성, 일본 순수문학계의 거성 다자이 오사무와 동갑인 1909년생으로 다른 두 작가와 달리 마흔이 넘은 나이에 ‘사이고사쓰’로 데뷔하였다. 헌데 데뷔하고 나서 발표한 작품 ‘어느 <고쿠라 일기> 전’이 대중문학상인 나오키상 후보로 올라갔다가 떨어지고 대신 후보에도 오르지 않은 순수문학상 아쿠타가와 상을 타는 기염을 토한다. 이후 사회파 미스터리의 아버지라 불리며 우물에 독 풀듯이(?) 수많은 작품을 사람들에게 풀어놓는데, 마쓰모토 세이초 님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을 일일이 열거하려면 끝이 없을 정도다.

 

  나는 이런 마쓰모토 세이초 님에 대한 이야기를 20대 중반인가, 처음 들었다. 당시의 나는 영화 시나리오 쓰기를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기세 좋게 데뷔한 이후 자꾸 엎어지기를 반복하다 제풀에 꺾이기도 하였고, 자신의 실력이 도통 나아지지 않아 초조했다.

 

  그러던 중 마쓰모토 세이초 님을 만났다.


  계기는 문자 한 통.


  꽤나 유명한 작가님께서 모 방송국서 상반기에 드라마를 내보내게 되었는데 함께 작업을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당연히 나는 귀가 쏠렸다. 무조건 뵙겠다고 했다. 바로 만나 뵙기로 하고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점차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현재의 내가 어떤 상태인 지 깨달았다.

 

  당시의 나는 글을 전혀 쓰지 못했다. 아니, 쓰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미야베 미유키 님의 ‘이유’를 읽고 감명을 받아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고는 닥치는 대로 미야베 미유키 님의 소설을 찾아 읽을 때였다. 말 그대로 청춘과 방황의 도가니탕에 빠진 내가 이런 대단한 작가님과 일을 할 수 있을까?

 

  만나는 장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만나 뵈었는데 또 한 번 이건 아니다 싶었다.

 

  이 분이 찾는 건 보조작가였다, 동업자가 아니라.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기회다. 이분은 이미 정상의 자리에 올라선 분이니까, 보조작가로 일해도 얻는 게 많으리라. 그렇게 같이 작업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다른 일을 맡을 수 있었을 것이고. 하지만 그 때엔 너무 어려서(20대 중반)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더더욱 안 하겠다는 마음을 굳히고는 솔직하게 내 상태를 말했다. 시나리오를 써야할지 모르겠다. 요즘엔 미야베 미유키 님 소설을 읽는데 참 재미있어서 그런 걸 써보고 싶어졌다 라는 이야기를.

 

  “그렇다면 해야지.”

 

  작가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건방을 떨었는데 무어라 안 하시고 오히려 “열심히 써라. 그렇게 쓰다 보면 다시 써진다.”라고 말씀하시더니 두 명의 작가를 가르쳐주셨다. 그 두 명의 작가가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와 모리무라 세이이치였다.


  허나 나는 이 두 사회파 미스터리 거장들의 책을 읽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왜냐하면 작가님은 한자로 적어주셨고, 한자를 그대로 읽어 이름을 불러주셨던 게다. 松本淸張과 村誠一이라고. 나는 덕분에 도대체 이 작가들이 누구인가 의아해하면서 혼자 되는대로 책을 읽어대다가 가까스로 두 작가님을 찾아냈는데. (그 사이에 읽은 책들의 숫자는 묻지 마. 괴로워.) 이렇듯 찾아낸 두 작가님들의 책, 특히 마쓰모토 세이초 님의 책은 날 무척 행복하게 했다. 그러고는 몇 년 후 일본드라마에 입문, 닥치는 대로 미스터리 장르의 일드만 찾아보는데 또다시 마쓰모토 세이초란 이름이 자꾸만 거론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내가 재미나게 본 일드는 죄다 마쓰모토 세이초 소설 원작이었다! 악녀시리즈인 ‘검정가죽수첩’, ‘나쁜 녀석들’, ‘짐승의 길’에 ‘야광의 계단’, 단편으로는 ‘얼굴’, ‘의혹’ 등 끝이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했더니 곧 탄생백주년이라서 방송국들이 알아서 그리하고 있다고. 게다가 방송국뿐이 아니라 나라 곳곳에서 이런 식의 행사를.

  세상에나! 

 

  그제야 난 마쓰모토 세이초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 깨달았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죽고 나서도 사랑받는 작가였다. 교과서에 나오고 끝인 작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여전히 찾아 읽고 싶은 작가, 박물관을 세우고 몇 년에 걸쳐 축제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게 하는 작가! 짐승의 길이 아니라 변소의 길이 그 안에 있었다. 결심했다. 나는 마쓰모토 세이초 님처럼 되고 싶다, 저렇게 기억에 남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워낙 대단한 결심이라 부끄러워 어디다 말하진 못했지만.


  이때에 처음 접했던 일드들 중 하나인 ‘짐승의길’은 정말 탁월했다. 일본배우 요네코라 료코가 주연을 맡았는데 아, 그 표독스러운 연기란! 때문에 난 이 작품을 무척 기다렸다. 그러다 이번에 ‘짐승의길’이 무려 세이초월드 첫 탄으로 나온다는 말에 얼마나 반갑던지!


  ‘짐승의 길’ 줄거리는 간단하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여자가 조금이라도 잘 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수상한 제의를 받아들은 이후 온갖 의혹에 휩싸인다는 스토리.

 

  일드와 소설은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일드는 화려하고, 여주인공 타미코는 강했다. 흔들림 없이 자신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소설은 달랐다. 소설 속의 여주인공은 사랑스럽고 겁이 많은, 죄를 지었는데도 미워할 수 없는 불쌍한 여자였다. 주변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며 아주 작은 욕망을 이뤄내려 노력하는 작은 여자. 인생이라는 이름의 산에서 길을 잃고 타박타박 되는대로 걸어 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짐승의 길에 들어선 여자, 그 여자 안에는 내가 있었다. 우리가 있었다. 미워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런 여자였다, 내가 만난 다미코는.

 

  짐승의 길을 모두 읽고 해설까지 단번에 읽었다. 당시의 나는 소설 마감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읽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기다리던 작품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말 그대로 ‘읽는 맛’때문이다.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찰진 맛이 있다, 이 책엔.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도 모르게 화차가 마구 떠올랐다.


  곧 영화로도 개봉하는 화차, 이제는 누구나 다 알 듯한 이 내용을 그래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한 여자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갑자기 사라진 여자의 인생을 뒤쫓다 보니 상상도 못했던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것인데.

이 여자의 인생, 짐승의 길에 나오는 다미코와 참으로 닮았다. 이 여자 역시 다미코처럼 산을 헤맸다. 어디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어두운 산을 헤매대 결국 짐승의 길에 들어섰다. 때문에 미야베 미유키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장녀이리라. 그녀는 짐승의 길을 알고 있고, 또 그러한 작품에 버금갈 놀라운 작품을 써냈으니, 나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짐승의길...이 아니라, 사회파 미스터리의 길로 안내했으니.

 

  다음으로 손에 든 D의 복합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제길 D의 복합적인 재미를 봤나!라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릴 정도로 흥미로웠다.

 

  줄거리를 한 줄로 설명하자면 민속학잡지에 글을 연재하게 된 작가 이세가 가는 곳마다 수수께끼의 사건이 쫓아다니더니 나중엔 살인까지 터져서 ‘도대체 이게 뭥미?’ 하면서 사건을 쫓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그 과정이 참으로 흥미롭다. 단순하게 쫓기만 하는 ‘짧은 호흡’이 아니라 쫓는 내내 일본 민속학에 대한 이야기를 차근차근 펼쳐낸다. 일본의 수많은 설화들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산마처럼 비웃는 것’이나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허나 그만큼 괴기스럽거나 구체적으로 그 상황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고, 박학다식이라는 말로밖에 표현될 수 없는 학문을 접하는 것이 무척 즐겁다. 열차시간표 트릭이 툭 튀어나와도 상관없을 정도로 정밀한 등장인물들의 동선은 어떻고! 나는 새삼 마쓰모토 세이초에게 감탄해버렸다.


  개인적인 즐거움도 있었다. 책을 읽다 보니 이번에 출간할 내 첫 번째 장편소설 ‘홈즈가 보낸 편지’에 필요한 자료들이 많이도 쏟아졌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서 죄인의 형무기록을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구체적인 과정에 대한 자료 찾느라 고생 좀 했는데 이럴 수가! D의 복합 주인공이 형무기록을 찾으러 돌아다니지 뭐야! 짐승의길에서는 등장인물들 중 한 명인 비리형사 히사쓰네가 내가 원하는 자료 찾으러 가스미가세키며 나카타초에 오가고! 나도 모르게 책을 읽으며 소리쳤다. 아니 이 무슨 D의 복합적인 짐승스런 은혜가 다 있어!

 

 


  마지막으로 D의 복합에서 내가 무척이나 공감할 만한 부분이 나와서 그대로 덧붙인다.



  물론 막대한 적자가 나면 그만두겠지만, 당분간 어느 정도의 결손은 계산에 넣고 있을 것이다. 이세도 연재를 시작한 이상, 인정상 어떻게든 이 잡지를 키워주고 싶어졌다.


p.79 D의 복합, 마쓰모토 세이초, 모비딕, 2012



  내 마음이 이렇다. 이번 세이초 월드가 아주아주 잘 되어서 우리 마쓰모토 세이초 님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수없이 많이 쏟아졌으면 좋겠사와요.





꼬리. 

마지막으로 서평 끝까지 보고 이런 거 묻는 사람들 있을 거야.

“언제 출간하는데요?”

나도 몰라.

그냥 기다려. 내가 설마 공지 안 때리겠어?

 

 

 

 

 

 

(1)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가 찾은 책은 대남이가 아니라 대물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북스피어서 출간한 책들을 보내드렸다. 우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은 사람들은 아래의 링크를 따라가라.

 

筆寫의 追憶 http://cameraian.blog.me/130089450254

 

(2)

조영일 선생님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은 또 링크를 따라가라.

와우북, 무사히 다녀오다. http://cameraian.blog.me/130093678995

 

(3)

여기서 부전자전은 아버지와 자식이라는 뜻으로 썼다. 아버지와 아들로 해석해서 내 성정체성을 무너드리지 말거라.

 

 

서평 원문 :

http://cameraian.blog.me/130131709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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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 - 살인을 위한 살인
손선영 지음 / 손안의책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지금 당신은 살인을 꿈꿉니까? <합작 - 煞人을 위한 殺人> 서평


나의 어린 시절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었다. 그런 어린 시절을 지냈다, 가 아니라(난 여자라고. 그러니까. ㄱㅡ)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관련된 일이 많았다는 뜻. 중학교 때였나, 영화로 먼저 봤고, 영화에서 엄석대 역할을 맡은 홍경인에게 감탄했었다. 어쩜 저리 연기를 잘 할까, 앞으로 어떻게 자랄까 궁금했었더랬지. 그러고는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잠깐 동안 연극반 활동을 할 때 받았던 대본이 바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다. 돌아가며 대본을 읽으면서도 예전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은 여전했다. 마치 제 5공화국의 축소판과도 같았던 한 교실에서 공포정치로 모두를 사로잡은 엄석대와 그에 사로잡힌 반 친구들, 이들의 모습은 주변을, 세상을 보는 시각을 조금이나 바꿔주었는데.
합작도 그러했다.

손선영 님의 합작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공포정치를 펼치는 한 명의 총통과 그 아래서 떠는 국민들의 모습을, 한 명의 광인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고문과 협박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비뚤어진 관계는 마치 이 사회의 한 면을 보여주는 듯한데.
그렇기에 손선영 님의 합작은 한국형 사회파 미스터리라 부를 수 있겠는데, 그 구성 역시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 독후감을 올렸던, 사회파 미스터리와 본격 미스터리의 기묘한 조합이었던 시마다 소지 님의 ‘기발한 상상이 하늘을 움직인다’라든가 모리무라 세이이치 님의 ‘여자 마루타’처럼 이 이야기는 사회를 반영하고, 그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반추하게 한다.

도대체 살인이란 뭘까. 어째서 사람은 살인을 하는 것일까. 이 주제는 선사시대 때부터 이어진 미스터리이리라. 이 책은 그 의문에 대해 어느 정도 해답을 제시한다. 그 해답에서 우리는 경악하고, 약간은 동정할 수 있다. 살인을 위한 살인이기에. 허나 살인에는 이유가 있어도 살인이다. 어떤 이를 죽이더라도 살인은 살인이며, 그 죄는 죄로써 용서받을 수 없다. 죄를 짓고, 그 죄인을 단벌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가 존속되기 때문이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법이란 결코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그렇듯 살인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 난 이런 책이 좋다. 책을 읽으며 중간 중간 쉬었다 가고, 지금, 현재의 사회와 비교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진정 즐거운 과정인데.

보통 이런 식의 이야기를 접하면 ‘지루하겠는데, 재미없겠어.’라고 생각하기 쉽상이다. 실제로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 문장이 무거워지고, 중간중간 하품이 나오게 마련이다. 또, 처음부터 읽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 아예 책장을 펼치지 않게 된다.
허나 이 책은 달랐다.
나는 책을 사거나, 누구에게 선물받거나 하면 일단 혼자 읽다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함 읽어 봐.”라고 슬그머니 잠시 맡겨 본다. 5분, 10분 쯤 맡기고는 읽는 속도라든가, 책장을 넘기는 모습을 관찰한다.
어떤 책들은 한 장도 안 넘기고 돌려받고는 “야, 이게 뭐야. 재미 없잖아!” 소리를 듣고, 어떤 책들은 “나 이것 좀 빌려고 돼?”라는 소리를 듣는다.
합작은 어떠했느냐.
말없이 다음 장을, 또 다음 장을 넘겼다.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좋은 징조다, 라고 생각했다. 허나 2장을 보여주었을 때 그러했기에, 뒤쪽은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왠 걸, 뒤쪽이 더 좋았다. (경과는 이쪽 확인. http://cameraian.blog.me/130106836350 )

뜻밖의 횡재였달까, 덕분에 당당히 올해 읽은 책들 중 베스트에 등극했다. 일주일 동안 꽤나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고, 또 자신 있게 주변에 추천할 수 있는 책을 찾아 흡족했달까.

이번 봄에 지를 책들이 많으시리라. 장바구니에 담긴 책들도 많으실 것이고. 허나 아직 망설이고 있고, 정말 재미있는 책을 보고 싶으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소설
합작 - 살인을 위한 살인을.



꼬리.
난 이 책의 제목이 합작 - 살인을 위한 살인 보다는 ‘살인을 위한 살인’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합작’이라는 단어가 앞에 달린 이유는 알겠지만, 역시 뒤쪽이 임팩트가 강하달까.


이상 kgb 레몬 마시며 쓴 독후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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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 - 살인을 위한 살인
손선영 지음 / 손안의책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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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살인게임 2.0 ㅣ 밀실살인게임 2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렸을 때의 나는 소설보다는 만화를 더 좋아했다. 만화는 소설보다 훨씬 읽기도, 이해하기도 쉬웠고, 그림 자체가 신기했다. 때문에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만화를 그려보기도 했다. 왜, 누구나 다 해봤을 ‘드래곤볼’, ‘캔디’ 따라 그리기 말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 ‘내가 죽기 전에 다 볼 수 있을까?’ 걱정하게 만드는 만화는 역시나 ‘유리가면’,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 ‘베르세르크’다. 한국 만화도 많이 봤다. ‘마이 러브’, ‘다이어트 고고’, ‘헝그리 베스트 파이브’ 등, 거의 가리지 않고 봤었던 듯하다.

밀실살인게임 2.0을 보는데 왜 이렇게 만화 이야기를 한참 이야기했느냐, 이유는 간단하다. 밀실살인게임 시리즈가 나에게 여러 일본만화들을, 시리즈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특히 생각난 만화는 미궁시리즈.

처음 미궁시리즈를 우연히 발견했을 때에도 첫 편을 보고는 “어, 이거 남자애들끼리... ...” 이러고는 안 볼까 했었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돈이 없어서 책방에 돈을 박아 놓고 보았고(하루에 기본 세 권에서 다섯 권씩 읽었다. 도저히 사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변명을 붙이자면, 그만큼 사기도 많이 샀다.), 읽지 않으면 괴로울 정도로 만화 중독이었기에, 단지 길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읽었다.

길다.

정말 중요했다. 당시의 내가 만화책을 고르는 기준은 단 하나, “얼마나 긴가”였다.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만한 기준이지만, 난 진지했다. 만화책은 한 시간에 글자가 많으면 세 권, 적으면 다섯 권씩 읽어치웠다. 그 때문에 미궁시리즈는 어떤 의미로 고마웠다. 처음엔 그림의 구도나, 얼굴과 몸의 비례가 맞지 않고(얼굴이 커졌다 작아졌다, 배경의 위치가 바뀌고 ;;), 스토리 라인도 “뭐야, 이거 셜록 홈즈의 BL물이잖아?”라는 엄청난 혹평을 내렸다. 하지만 3편, 4편, 10편이 넘어가니 점점 좋아졌다. 어느새 인물의 비율도 맞고(다행이야ㅠㅠ),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못 맞추는 트릭도 나와(감동했다) 빠져들었다.

미궁시리즈 뿐만 아니라 내가 본 일본 만화 시리즈들은 대부분 이랬다. 처음엔 그림이 어색하고,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아도 가면 갈수록 좋아지고, 흥미로워진다. 어렸을 때엔 그 이유를 몰랐다. 크고 나서야 알았다. 출판사와 편집자가 믿고 따라줘서 라는 사실을, 그 때문에, 계속해서 “열심히 써라.”라고 믿고 등 밀어주는 출판사에게, 잡지에게 (나와 아무 관계도 없지만) 괜스레 고마웠는데.

우타노 쇼고의 ‘밀실살인게임 2.0’을 보며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밀실살인게임 왕수비차잡기’를 봤을 때엔,

“... ... 별론데? 트릭도 눈에 다 보이고,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쫑알쫑알~”

라고 번역가한테 대놓고 말했다. 번역가한테 직접 공짜로 받아 본 주제에! (난 참고로 구적초 별로라고 대놓고 말한 인간이다. 지금 생각하면 좀 미안해.) 그러고는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 줘버렸다. 때문에 2.0 역시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얼레, 이게 생각보다 괜찮았다.

줄거리는 생략한다. 줄거리를 말하는 순간 모든 게 스포일러가 되는 책이니까.

뭐 한 줄로만 설명하자면 말 그대로 밀실살인게임이다. 밀실에서 살인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밀실에 있는 인간들이 살인을 일으키고, 그 인간들이 스스로 탐정이 되어서 살인사건을 푸는 내용, ‘본격 추리’ 그 자체로, 2.0은 정말 본격미스터리상을 받을 만큼 잘 썼다. 트릭을 상중하로 나눠 평가하면, 단연 상이다.

하지만 첫 번째 시리즈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단 말이지. 때문에 나는 “이래도 팔리다니, 일본 미스터리가 붐은 붐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2.0을 보고 나니 말이야, 나만 그랬던 게 아닌 듯하다.

우타노 쇼고, 이 책 발표하고,

일본에서 무지하게 욕먹지 않았을까?

2.0의 중간 중간에 등장인물들이 여러 가지 추리, 상상의 날개를 펴며 ‘설마 그런 거겠어.’라든가 유명한 추리소설 등을 들먹이며, ‘이런 트릭도 있다’고 말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 장면들이 마치, 전에 자신이 썼던 책이 너무 욕을 먹어서 “이번에도 어디 다 맞추나 보자.‘ 이를 악물고 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단 말이지.

실제로 2년간의 텀이 있었더라. 어쩌면 주변에서 하도 욕을 먹어서 준비를 오래 하지 않았을는지, 그만큼 작가가 공부도 많이 하고, 문장도 늘어난 것은 아닐는지.

"다음은 누가 죽입니까?"라는 챕터 제목부터가 세다.

물론, 2.0도 여전히 윤리적인 문제, ‘과연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모방범죄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에 대한 염려는 남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찬찬히 뜯어보면 이에 대한 비판의식이 곳곳에 숨어 있단 말이다. (자세히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참고) 모방범을 비꼬는 이야기가 있는데, 잘 드러나지 않았다. 또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방해서 범죄를 일으키려는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 읽고 써먹기 때문에,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할 듯하단 말이야.

하지만 계속 봐야겠단 말이지.

밀실살인게임은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수많은 만화책들처럼 천천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여기서 놓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단 말이다. 미궁시리즈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랄까.

때문에, 나는 이 소설의 3탄 매니악스도 봐야겠다. 과연 3탄 매니악스에서는 진정 ‘매니악’한 모습을 보여줄는지, 기대하겠다. 동시에, 1편 2편에서 (충분히 매우 많이) 지적받았을 듯한 무게감이나, 윤리성의 문제(요즘 독자들은 많이 눈이 높다고요)를 과연 해결했을지, 두고 보겠다.


해결 못 하면 일본으로 쫓아갈 거예염, 우타노 소고 아찌.



꼬리.

이번 달에 책 살 돈 아껴서 지진피해성금을 좀 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일본에 평화가 돌아오길 진심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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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ㅣ 요시키 형사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 / 시공사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1. 스포 없는 서평.
이 책의 감상을 한 단어부터 열 단어까지로 써봤습니다.

1. 봐.
2. 봐라.
3. 보라고.
4. 보라니까?
5. 말 참 안 듣네.
6. 싫음 니 손해고.
7. 나도 이제 귀찮다.
8. 그러고도 오덕이냐?
9. 니가 미스터리를 알아?
10. 안 읽고 후회한다 에 백 원.

이래도 안 읽을 자신 있으면, 아래 서평을 봐도 괜찮습니다.
오, 당신은 진정한 용자.
(왠만하면 읽고 보지, 서평.) 

 


2. 스포 ‘좀’ 있는 서평. 
 

작년, 여러 인연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이 깊고, 왠지 모르게 자꾸만 구박을 하고 싶고, 만나지 않아도 딱히 걱정이 안 되면서, 또 만나면 어제 만난 사람처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바로 트위터 일미당 당주 김선주 씨다.
나 참, 이 아가씨랑 이렇게 친해질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 아가씨랑 뭔 짓을 하고 다녔었는지 시시콜콜 늘어놓으면 다들 미친 듯이 웃다 쓰러지리라.
왜 서두부터 김선주 이야기를 꺼냈느냐, 이유는 단순하다. 이 아가씨가 준 책들 중 한 권인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소설 ‘여자 마루따’가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를 보는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책장 바스라워질까 걱정스러워 덜덜 떨며 넘겼다.

 
 

맨 뒷장 판권 페이지를 확인하니, 자그마치 발간년도가 1989년!

‘여자 마루따’는 731부대의 진실을 사회파 미스터리로 풀어낸 걸작으로, TBS에서 전국 방영 드라마를 만들기도 했다. 실제, 이 소설을 발표할 당시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여자 마루따’를 통해 일본인이 결코 정면으로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불편한 진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저질렀던 세균부대의 만행을 고발했다. (뒤에 해설을 보니, 실제로 시마다 소지는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이야기를 하며 사회파 미스터리의 부흥을 이야기했더라. p.516)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역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여자 마루따’가 중국에 있었던 731 부대의 세균인체실험 이야기라면,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는 조선에서 러시아, 러시아에서 일본으로 이어지는, ‘지리멸렬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우리 조상의 이야기다. p.503의 요시키 형사의 말 ‘그 심정 나도 아플 정도로 잘 알아. 물론 당신이 겪은 고통의 극히 일부를 아는 것뿐이겠지만. 그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정도의 고통이 아니라고 당신이 나를 꾸짖을 것 같지만.’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 한편에 잠들어 있는 애국심이 파르르 떠오르는 그런 이야기다.
동시에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본격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달리는 열차에서 사라진 살인자의 이야기는 ‘열차시간표트릭’을 연상케 하고, 달리는 열차에 갑작스레 나타난 춤추는 피에로와, 움직이는 목 없는 시체의 미스터리는 괴기트릭으로 손색이 없다.
물론, 다른 분들이 서평에 적었듯 트릭은 지금 우리가 보기엔 너무 쉽다―우린 너무나 많은 코난을, 김전일을 만났으니까! 

 

표지를 벗기면 이런 모습. 재질도 마음에 들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음각으로 새긴 그림이다. 전철에서 볼 때마다 사람들이 ‘저 책 좀 멋진데...’같은 표정으로 쳐다봤다. 훗.  

반전이 아쉬워서 못 읽겠다 싶어도, 이 책은 읽어야만 한다.
애국심에 호소해서? 맞다.
과정이 중요해서? 맞다.
재미있으니까? 맞다.
이런 이유가 다 수긍이 안 되어도 읽어야 한다. 집안에 두자.
왜냐고?
가장 단순한, 당신이 진정한 일미오덕이라면 무릎을 칠 이유를 대주지.
그래야, 시마다 소지의 요시키 형사 시리즈가 나올 테니까! 많이 나올 테니까!
요시키 형사 시리즈를 더 보고 싶은가? 이 책의 뒤편, 혹은 앞편을 보고 싶은가? 그럼 사라. 읽어라. 주변에 재미있다고 소문내라.

책을 만드는 건 출판사이지만, 다음 책을 내게 하는 건 독자다. 시리즈를 내게 하는 건, 지금 이 서평을 읽고 책을 구입하는 당신 손에 달렸다.

질러!
자주 지름신이 내려도 좋습니다.
-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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