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살인게임 2.0 밀실살인게임 2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렸을 때의 나는 소설보다는 만화를 더 좋아했다. 만화는 소설보다 훨씬 읽기도, 이해하기도 쉬웠고, 그림 자체가 신기했다. 때문에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만화를 그려보기도 했다. 왜, 누구나 다 해봤을 ‘드래곤볼’, ‘캔디’ 따라 그리기 말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 ‘내가 죽기 전에 다 볼 수 있을까?’ 걱정하게 만드는 만화는 역시나 ‘유리가면’,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 ‘베르세르크’다. 한국 만화도 많이 봤다. ‘마이 러브’, ‘다이어트 고고’, ‘헝그리 베스트 파이브’ 등, 거의 가리지 않고 봤었던 듯하다.

밀실살인게임 2.0을 보는데 왜 이렇게 만화 이야기를 한참 이야기했느냐, 이유는 간단하다. 밀실살인게임 시리즈가 나에게 여러 일본만화들을, 시리즈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특히 생각난 만화는 미궁시리즈.

처음 미궁시리즈를 우연히 발견했을 때에도 첫 편을 보고는 “어, 이거 남자애들끼리... ...” 이러고는 안 볼까 했었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돈이 없어서 책방에 돈을 박아 놓고 보았고(하루에 기본 세 권에서 다섯 권씩 읽었다. 도저히 사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변명을 붙이자면, 그만큼 사기도 많이 샀다.), 읽지 않으면 괴로울 정도로 만화 중독이었기에, 단지 길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읽었다.

길다.

정말 중요했다. 당시의 내가 만화책을 고르는 기준은 단 하나, “얼마나 긴가”였다.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만한 기준이지만, 난 진지했다. 만화책은 한 시간에 글자가 많으면 세 권, 적으면 다섯 권씩 읽어치웠다. 그 때문에 미궁시리즈는 어떤 의미로 고마웠다. 처음엔 그림의 구도나, 얼굴과 몸의 비례가 맞지 않고(얼굴이 커졌다 작아졌다, 배경의 위치가 바뀌고 ;;), 스토리 라인도 “뭐야, 이거 셜록 홈즈의 BL물이잖아?”라는 엄청난 혹평을 내렸다. 하지만 3편, 4편, 10편이 넘어가니 점점 좋아졌다. 어느새 인물의 비율도 맞고(다행이야ㅠㅠ),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못 맞추는 트릭도 나와(감동했다) 빠져들었다.

미궁시리즈 뿐만 아니라 내가 본 일본 만화 시리즈들은 대부분 이랬다. 처음엔 그림이 어색하고,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아도 가면 갈수록 좋아지고, 흥미로워진다. 어렸을 때엔 그 이유를 몰랐다. 크고 나서야 알았다. 출판사와 편집자가 믿고 따라줘서 라는 사실을, 그 때문에, 계속해서 “열심히 써라.”라고 믿고 등 밀어주는 출판사에게, 잡지에게 (나와 아무 관계도 없지만) 괜스레 고마웠는데.

우타노 쇼고의 ‘밀실살인게임 2.0’을 보며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밀실살인게임 왕수비차잡기’를 봤을 때엔,

“... ... 별론데? 트릭도 눈에 다 보이고,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쫑알쫑알~”

라고 번역가한테 대놓고 말했다. 번역가한테 직접 공짜로 받아 본 주제에! (난 참고로 구적초 별로라고 대놓고 말한 인간이다. 지금 생각하면 좀 미안해.) 그러고는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 줘버렸다. 때문에 2.0 역시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얼레, 이게 생각보다 괜찮았다.

줄거리는 생략한다. 줄거리를 말하는 순간 모든 게 스포일러가 되는 책이니까.

뭐 한 줄로만 설명하자면 말 그대로 밀실살인게임이다. 밀실에서 살인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밀실에 있는 인간들이 살인을 일으키고, 그 인간들이 스스로 탐정이 되어서 살인사건을 푸는 내용, ‘본격 추리’ 그 자체로, 2.0은 정말 본격미스터리상을 받을 만큼 잘 썼다. 트릭을 상중하로 나눠 평가하면, 단연 상이다.

하지만 첫 번째 시리즈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단 말이지. 때문에 나는 “이래도 팔리다니, 일본 미스터리가 붐은 붐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2.0을 보고 나니 말이야, 나만 그랬던 게 아닌 듯하다.

우타노 쇼고, 이 책 발표하고,

일본에서 무지하게 욕먹지 않았을까?

2.0의 중간 중간에 등장인물들이 여러 가지 추리, 상상의 날개를 펴며 ‘설마 그런 거겠어.’라든가 유명한 추리소설 등을 들먹이며, ‘이런 트릭도 있다’고 말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 장면들이 마치, 전에 자신이 썼던 책이 너무 욕을 먹어서 “이번에도 어디 다 맞추나 보자.‘ 이를 악물고 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단 말이지.

실제로 2년간의 텀이 있었더라. 어쩌면 주변에서 하도 욕을 먹어서 준비를 오래 하지 않았을는지, 그만큼 작가가 공부도 많이 하고, 문장도 늘어난 것은 아닐는지.

"다음은 누가 죽입니까?"라는 챕터 제목부터가 세다.

물론, 2.0도 여전히 윤리적인 문제, ‘과연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모방범죄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에 대한 염려는 남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찬찬히 뜯어보면 이에 대한 비판의식이 곳곳에 숨어 있단 말이다. (자세히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참고) 모방범을 비꼬는 이야기가 있는데, 잘 드러나지 않았다. 또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방해서 범죄를 일으키려는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 읽고 써먹기 때문에,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할 듯하단 말이야.

하지만 계속 봐야겠단 말이지.

밀실살인게임은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수많은 만화책들처럼 천천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여기서 놓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단 말이다. 미궁시리즈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랄까.

때문에, 나는 이 소설의 3탄 매니악스도 봐야겠다. 과연 3탄 매니악스에서는 진정 ‘매니악’한 모습을 보여줄는지, 기대하겠다. 동시에, 1편 2편에서 (충분히 매우 많이) 지적받았을 듯한 무게감이나, 윤리성의 문제(요즘 독자들은 많이 눈이 높다고요)를 과연 해결했을지, 두고 보겠다.


해결 못 하면 일본으로 쫓아갈 거예염, 우타노 소고 아찌.



꼬리.

이번 달에 책 살 돈 아껴서 지진피해성금을 좀 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일본에 평화가 돌아오길 진심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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