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콜 드 파리 살인사건 ㅣ 예술 탐정 시리즈 1
후카미 레이치로 지음, 박춘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궁금증을 참지 못해 배송 안 기다리고 신촌 홍익문고에서 사서 바로 읽었다. 부족한 점이 몇 가지 보이긴 하지만 정말이지, 결말이 매우 좋다. 훌륭하다. 다음 시리즈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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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콜 드 파리 살인사건 ㅣ 예술 탐정 시리즈 1
후카미 레이치로 지음, 박춘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탐정과 밀실, 그만큼 매력적인 두 단어는 없을 겁니다. 만약 여기에 한 단어가 더 겹쳐진다면 저는 단연컨데 '예술'만큼 어울릴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독자적입니다. 그리고 아름답고, 정말이지 절정에 달한 예술은 가슴 깊숙한 곳까지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탐정과 밀실이라는 이 두 가지에도 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밀실, 탐정, 그리고 예술 『에콜 드 파리 살인사건』

 

 

예전에도 예술과 탐정을 접목시킨 추리소설은 많았습니다. 예술 그 자체를 이야기 전반에 올린 작품으로, 최근 출간된 작품들 중에는 『토르소 앤 토로소』, 『로트레크 저택 살인사건』 등이 있습니다. 그밖에 좀 더 고전으로는 『잘린머리에게 물어봐』가 있겠고, 그보다 더 멀리 가자면 추리소설의 황금기에 무수한 작품들이 떠오릅니다. 황금기까지 가지 않고 앞서 거론한 세 작품만 이야기하기로 합니다. 이 중 『토르소 앤 토로소』에는 헤밍웨이도 등장합니다. 그 무대 역시 프랑스 파리로, 『에콜 드 파리 살인사건』과 어느 정도 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에콜 드 파리 살인사건』은 그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놀랍습니다. 예술, 탐정, 그리고 밀실 그 모든 면에서.  

한 저택에서 밀실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2층. 빗장은 걸려 있으니 밀실, 그 빗장엔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래 모래밭에는 범인의 발자국이 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 뛰어내리지 않았겠는가 생각할 법합니다. 아주 단순한 설정과 용의자들. 우리는 이 용의자들 사이에서 아주 쉽게 ‘저 사람이 범인이군, 응.’이라는 말을 뱉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 소설은 정공법으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반 다인이나 앨러리 퀸 스타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되 탐정을 제일 앞으로 끌어내지는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탐정은 뒤에 숨어서 모든 과정을 ‘적당히 지켜보는’ 식으로, 이야기의 전개 역시 탐정이 아닌 주변 ‘화자’, 왓슨 역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때문에 여러 탐정물과는 비교되는 관점이 있습니다. 탐정 캐릭터 역시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니트족 탐정, ‘나는 일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게다가 이 탐정은 몇 장면 등장하지 않습니다만, 강렬합니다.

이야기 중간중간 등장하는 피해자가 직접 적었다는 허구의 저서 『저주받은 예술가들』의 내용 역시 흥미롭습니다. 추리소설에 나오는 내용은 그 무엇 하나 사건과 관련되지 않을 리 없다는 그 원리원칙을 충실히 지키면서도, 허구의 저서 자체가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음, 이 작가 대단합니다. 물론 이 작품엔 유치한 장면도 꽤 있습니다. 소설 내에서 캐릭터가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허무한 개그를 치는 장면에서는 손발이 오그라듭니다. 또, 주인공이 너무 등장을 하지 않아 이러한 추리소설 형식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약간 지겹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약점들은 후에 나오는 ‘진실’에서 모두 잊혀집니다. 그만큼 아주 괜찮은, 납득 가능한, 어느 정도 수준의 뒤통수치는 진실을 작가는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때문에 이 작품을 읽고 나면 한 가지 생각만 하게 됩니다. 이 시리즈, 다음 편을 읽고 싶다.

 

 

 

추신.

본문 중에 ‘사쿠라다몬’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일본경찰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일본경찰의 상징이 ‘벚꽃’이기 때문에 일본 미스터리 소설, 드라마 등에서는 사쿠라다몬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실제로 드라마 대사 중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대사 중 하나가 “사쿠라다몬에 부끄럽지 않도록”이라고나. 아마도 번역가가 이를 문맥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려고 ‘사쿠라다몬’이라고 그대로 표기한 듯싶습니다.

이 작품 안에서 가리키는 ‘사쿠라다몬’은 ‘경시청’입니다.

일본 도쿄에는 경시청과 경찰청이 둘 다 있습니다. 경시청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서울지방경찰청’이고요, 경찰청은 그를 포괄하는 위의 관청입니다만, 일본 미스터리 소설 및 미스터리 드라마에선(특히 경찰 드라마에선) 이러한 경찰청과 경시청이 도쿄에서 서로 맞보고 있기 때문에 경쟁관계에 있다고 표현하곤 합니다. (제가 일본에 살지 않아서 실제로 경쟁관계인지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드라마 등을 보면 상당히 납득이 가능하더군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경시청에서는 실제로 도쿄 내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경찰을 내보내는 일을 하고요, 경찰청은 직접 살인사건 등에 수사원을 내보내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겠습니다. (외사나 경비 등의 문제가 들어가면 달라지지지만요.) 일단 경찰청은 경시청의 상위 관청이므로 주로 관리나 국가 자체의 경비 등에 업무를 본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254페이지에 오타가 하나 있습니다. 254페이지 아래서 두 번째 문단의 ‘어린 시절 아버지와 형제를 모두 결핵으로 잃은 후지타는~’은 ‘후지타’가 아니라 ‘사에키’입니다. 사소한 오타이긴 한데 이야기 속에서 아주 사소한 착오가 올 수 있기에 제가 따로 ps로 달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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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담
누쿠이 도쿠로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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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 일주일 사이, 여러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읽지 않으면 쓰지 못하는 것도 있겠지만, 워낙 책이 재미나서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책이 그랬습니다. 누쿠이 도쿠로의 『신월담』 은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에 바로 이어 읽었는데요, 아비코 다케마루의 경우엔 작품에 대해 사전에 워낙 절찬을 들은 탓인지 딱히 감흥이 없었습니다. (음, 역시 전 서술트릭에 강해서 또 맞춰버렸...) 그냥 다 읽고 나서 으응 그랬네,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파울로 코엘료의 아포리즘 『마법의 순간』을 독파한 후 이 책을 잡았는데요, 와 어떻게 이럴 수 있나요? 집중해서 한 달음에 읽어버렸습니다.

 

   

 

이런 사랑, 탐나는데요? :  누쿠이 도쿠로의 『신월담』  

 

한 유명한 작가가 있습니다. 여잡니다. 이름은 사쿠라 레이카. 이 여자는 매우 젊은 나이에 데뷔해 세 권의 작품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그 다음 작품부터는 대단한 실력을 발휘합니다. 그리하여 계속하여 대단한 작품을 써내리라 기대했건만 무슨 까닭인지 이 작가는 마흔아홉의 젊은 나이에 절필을 선언합니다. 이 때에 한 젊은 편집자가 등장합니다. 이 편집자는 혈기로 가득 차서 작가를 설득하여 새 작품을 쓰게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간 여자를 만난 다른 편집자들은 불가능하리라 이야기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여자를 찾아갑니다. 적어도 절필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라도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헌데 이 여자, 너무나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밝힙니다. 자신이 왜 절필을 했는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사연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아아, 사랑. 그 사랑이 지금의 사쿠라 레이카를 만들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때가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이 내 소설을 읽어 준다는 환희를 맛본 순간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았던 창작물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평가해 주었다. 그날까지 나는 남에게 인정받은 경험이 거의 없었다. 유일하게 나를 알아봐 준 단 한 사람이 기노우치였다. 2차 심사 결과를 보며 내가 왜 기노우치라는 늪에서 허우적대며 헤어나지 못하는지 겨우 깨달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인정받는 경험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증명했다는 안도감으로 이어진다. 세상에 태어나 심장을 팔딱거리며 살아 숨 쉬는 나를 맨 처음 알아봐 준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가노우치였다. 소설은 가노우치처럼 내 존재 이유를 다시금 확인해주었다. (p.283)

 

 

사랑때문에 창작한 여자의 이야기. 때문일까요, 이 작품은 ‘작가론’ 및 ‘창작론’의 성격을 띱니다. 이 작품은 면밀하게 배치된 누쿠이 도쿠로만의 ‘창작론’이 배어 있습니다. 그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저도 모르게 감탄하게 됩니다. 특히 여주인공 사쿠라 레이코가 작품을 써내려가며 겪는 고뇌, 그를 헤쳐나간 방법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군요. 저 역시 소설을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누군가 머릿속에서 자꾸 시끄럽게 떠든다는 감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또 실제로 쓰다 보니 대충 설겅설겅 시놉을 적고 멍하니 앉아서 타자를 치다 보면 알아서 소설이 써지기에. 

 

 

 

보는 내내 깨알메모했다.

님덜아, 보시고 나서 이 페이지들 찾아보3

    

 

누구나 남에게 사랑받고 싶어 한다. 소설을 읽고서 ‘이 작가는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한 종류의 소설만이 존재하는 시장은 불건전하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도, 씁쓸해지는 이야기도, 걸작도 졸작도 다양하게 존재하는 세계야말로 이상적이라고 믿었다. 그 다양성을 위해 누군가는 어두운 이야기를 써야 한다면 기꺼이 내가 그 짐을 떠안고 싶었다. 내게는 남에게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나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을 창작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p.567)

동시에 이 소설은 참으로 아름다운 연애소설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소설을 보며 “이것은 누쿠이 도쿠로 식의 이야미스다!”라고 감탄했습니다. 여러분은 작년 우리나라에 상륙해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누마타 마호카루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최근에 『고양이 울음』이라는 작품이 또 한 권 소개되기도 하였는데요, 누마타 마호카루의 작풍은 말 그대로 “이야~”합니다. “싫어~”라는 감정입니다. 아, 뭔가 이 이야기 찝찝하고 싫은데... ... 왜 자꾸 읽게 되지? 그리고 이 안에 숨은 이것은 대체 뭐지? 저는 누마타 마호카루를 읽을 때 느끼는 감정을 “절망의 카타르시스”라고 혼자 부르고 있는데요, 이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에서도 느꼈습니다. 아아, 이 작품은 또다른 느낌의 이야미스다, 누쿠이 도쿠로는 누마타 마호카루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절망의 카타르시스”를 표출해냈다, 라고요.  

 

동시에 저 역시 이런 사랑 한 번쯤 해도 좋을 것 같다 하고 문뜩 생각했습니다. 결국 소설가란 이런 인종이로구나. 그저 소설만 재미있게 써진다면 무엇이든 다 괜찮지 라고. 제가 왜 이렇게 중얼거렸는지,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런 사랑”이 무엇인지는 직접 읽어보시는 편이 아마도 빠르게 이해가... ...

 

  

“정말 괜한 소리겠지만...... 부디 화내지 말고 들어주세요. 아마도 사쿠라 씨는 지금 힘든 사랑을 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어떤 상황이건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행복을 잊지 말길 바라요. 소설가로서뿐 아니라 여자로서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계속 신경이 쓰이고 걱정돼서 언젠가는 말할 기회가 있었으면 했어요.” (p.603)  

 

 

그러므로 이 책 역시 『미소 짓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별 다섯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미소 짓는 사람』보다 더 좋군요. 누마타 마호카루와 마찬가지인 이야미스류인데도 그만큼 갑갑하지 않고 깔끔하게 만들어낸 작풍이 어마어마했으니... ...  

 

 

원문으로 보려면 아래 링크 클릭: http://cameraian.blog.me/130171127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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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리스트 - 문학과 예술 속의 목록사: 호메로스에서 앤디 워홀까지 ㅣ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 3
움베르토 에코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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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몇십 권씩 작은 노트가 쌓이는 경험이 있을 겁니다. 저도 등뒤에 보이는 책장의 한 칸은 모두 노트입니다. 그 노트에는 각기 인용문이나 여러 책에서 읽고 좋았던 감상 등이 적혀 있고, 심할 때엔 필사를 몇 권씩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무언가를 수집하고 싶은 욕망을 극대화시킨 것이라 하겠습니다. 때문에 등 뒤의 저것들은 어찌 보면 변소의 리스트겠지요.

 

 

 

변소의 리스트보다 더한, 움베르트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

 

 

어릴 때부터 저는 좀 그랬습니다. 무언가를 읽다 보면 그 책과 관련된 다른 것을 알고 싶어집니다. 또 다른 것을 읽다 보면 그 책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고, 혹은 그 책과 관련된 많은 것들을 모으고 싶어져 참을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제 제가 도서전에 가서 잔뜩 사은품을 받아왔습니다. 단지 그 책과 연관된 것이 물질화되어 있어서 너무 기뻐서 모을 수 밖에 없다, 이런 기분이라고 설명하겠습니다. 또 저는 앞서 말했다시피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책과 관련된 것을 자꾸만 모읍니다.

 

 

 

 

예를 들어 단테의 신곡이 마음에 든다고 칩시다. 그럼 전 단테의 신곡을 읽고, 단테의 일대기를 연구합니다. 그 후엔 단테 신곡과 관련된 논문이나 책을 차례로 읽은 후 원전을 찾아서 읽지는 못하지만 분위기는 파악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시조를 읽으며 4언절구니 어쩌구저쩌구 이런 식으로 오? 운율?! 이런 건가?! 이럽니다. 나아가서는 각 나라별로 어떤 식으로 번역되었는가 연구하고, 그 다음으로는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로 삼은 여러 2차 저작물을 찾습니다. 소설부터 시작하여 영화, 음악, 드라마... ... 이렇게 하나의 무언가를 텍스트 혹은 바이블로 배치하고 이야기를 펼치는 스토리텔링을 저는 참 좋아하는데요, 움베르트 에코는 더합니다. 아예, 그 스토리텔링의 과정에서 얻은 ‘메모’를 책으로 내버렸습니다. 이건 무슨, 전화번호부보다 더한 리스트가 나와버렸습니다. 아, 그래서 『궁극의 리스트』죠?

 

이 책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 책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특히 인용문이 많습니다. 때문에 이 안에 등장하는 책들을 읽지 않았다면 재미가 반감되겠습니다만,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알고 있는 한도 안에서만 이해해라, 이런 느낌을 가득 품어 그림을 잔뜩 집어넣어주셨거든요. 이야기가 추상적이죠? 자, 그렇다면 조금 쉽게 이야기해 봅니다. 저는 앞서 단테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했는데요, 이 책의 표지가 단테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책의 표지는 에드워드 번 존스의 황금계단입니다. 이 황금계단은 단테의 신곡에 등장합니다. 55페이지를 폅니다. 단테의 신곡 천국편 중 제 29곡이 나옵니다. 번역은 민음사 판이 훨씬 낫습니다. 민음사 번역판은 단테 연구자이신 박상진 선생님께서 직접 번역을 맡으셔서 원서의 운율감을 그대로 살렸거든요. 아시다시피 단테의 신곡은 ‘곡’, 긴 노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노래라고 하니 너무 웃기나) 자, 그럼 민음사 판으로 인용합니다.

 

 

 

 

 

 

얘기가 좀 벗어났으나

정신의 눈을 진리의 길로 돌리세요.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 동안 논의를 마쳐야 합니다.

 

천사들의 본성은 인간이 셀 수 있는

수의 단위를 훨씬 넘어섭니다.

인간의 말이나 개념으로는 거기에 다다를 수가 없습니다.

 

다니엘의 책을 보세요. 그가

말한 수천이라는 수는

미정의 수 혹은 무한의 수라는 뜻이에요

 

최초의 빛께서는 그들 모두를 통하여

빛을 내리시고, 짝 지을 수 있는 빛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방식으로 그들을 관통하십니다.

 

그래서 인지하는 행위는 애정에

앞서며, 사랑의 축복은 천사들마다 다르게

내리셔서 타오르거나 미지근한 것입니다.

 

이제 높은 곳을 보시고 영원한 선의 숨결을

보세요. 그분의 숨결은 그 자체를 비추는

셀 수 없이 많은 거울들로 나뉘면서

 

언제나 그러했듯 하나로 남아 계십니다.”

 

(p.257 신곡 천국편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단테 알레기에리, 박상진, 2007, 민음사)

 

 

 

지금 단테는 천국의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이 목소리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베아트리체입니다. 이 목소리를 우리는 듣고, 표지의 그림을 통해 보며, 새로운 단테를 생각합니다. 아, 움베르트 에코 안의 단테는 이렇구나. 그렇다면 우리의 단테는 어떨까.

 

 

 
 
 
 

 

『궁극의 리스트』는 이런 책입니다. 움베르트 에코가 생각했을 때 “와, 이건 우리 같이 봐야지?” 싶은 이야기를 하나, 둘 모아놓았다고 하겠습니다. 어찌 보면 이건 움베르트 에코의 블로그라고 봐도 좋겠어요. 우리는 블로그에 이렇게 많은 것들을 모으고 있으니.

당신의 『궁극의 리스트』는 무엇인가요?

알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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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미상, 미스터리 작가가 읽는 책 - 상 ㅣ 미쓰다 신조 작가 시리즈 2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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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를 바라보았더니……

미쓰다 신조의 『작자미상』을 읽다

 

 

등 뒤를 바라보았더니…….

 

호러․미스터리 소설에서 참 자주 만나는 문장입니다. 이 문장은 가장 구태의연한 문장이자 가장 매력적인 문장입니다. 모든 작가는 한 번쯤 이 문장을 사용하고 싶어 하고 또 이 문장을 누구보다 효과적으로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도 상상치 못할 그런 반전, 독자의 상상력 그 이편에 있는 무언가를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이 작가의 마음엔 늘 그득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가요. 결코 녹록치 않은 문장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기란, 설득을 넘어서서 감탄을 자아내게 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작가 미쓰다 신조는 대단합니다. 그의 작품은 하나하나가 모두 놀랍습니다. 무엇 하나 경악에 찬 감탄을 하지 않은 기억이 없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독자는 그에 못 미치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저와 같은 아둔한 독자는 그 뛰어남을 쫓아가지 못해 아, 이건 못 읽어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그런 때가 되면 미쓰다 신조는 친절하게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내줍니다. 바로 이 책, 미쓰다 신조의 ‘작가’ 시리즈가 그러합니다.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7대 불가사의’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당시 『미궁초자』를 한 편씩 읽어나간 것과 마찬가지로 그때부터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정신을 차렸더니 나는, 지금은 머릿속 가장 깊은 곳으로 완벽하게 아주 멀리 쫓아버린, 십수 년도 더 전에 일어난 사건의 한 복판에 서 있었다. p.19

 

주인공 미쓰다 신조는 십수 년 『기관』을 출간한 이후 ‘일로든 취미로든 미스터리나 호러, 기괴환상 같은 분야의 책은 당분간 읽지도 보지도 말라는 충고(p.19)’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참의 시간이 지나, 또다시 미쓰다 신조는 우연히 『미궁초자』라는 수수께끼의 책 한 권을 만납니다. 안라초의 후루혼도(말 그대로 헌책방이군요)에 『미궁초자』가 나타납니다. 누군가가 직접 만든 조잡한 동인지같은 이 책에는 묘한 제목의 괴담 혹은 미스터리 소설 일곱 편이 적혀 있었습니다. 두 명의 주인공은 이 책을 펼치고 한 편 한 편 이야기를 읽어나갑니다. 헌데 읽어나갈 때마다 이상한 일이 펼쳐집니다. 한 에피소드를 읽을 때마다 그 에피소드에 딱 맞아떨어지는 괴이한 일이 일어나고, 나아가서는 두 주인공은 목숨의 위협을 느낍니다. 두 주인공은 이 책 때문에 이런 괴이한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책 속에서 미해결로 끝난 이야기들을 하나 둘 스스로 해결해 갑니다. 그 사건을 해결해가는 모습은 참으로 기괴하여 자연스레 다음의 인용문이 와닿습니다.

 

“뭣 때문에?”

“본격 미스터리에서 중시하는 페어플레이를 하기 위해…….”

……미쳤다.

아무리 봐도 미쳤다……. p. 309

 

    

 

첫 번째 이야기는 한 「안개저택」에서 일어난 수수께끼의 살인사건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자식귀 유래」는 유괴된 아이에 관한 미스터리이고 세 번째 이야기 「오락으로서의 살인」은 한 하숙집에서 일어난 대학생 살인사건을 다룹니다. 네 번째는 아주 오래 전, 당사자가 모두 죽은 살인사건으로 독살을 다룹니다. 때문에 제목이 「음화 속의 독살자」.

 

 

 

미궁초자의 매 화 앞에는 이와 같은 삽화가 곁들여 있다.

이 삽화는 참으로 아름다운데다가... ...

 

  

다섯 번째 이야기 왕따 문제를 다룬 「슈자쿠의 괴물」로 필자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여섯 번째 이야기는 아야츠키 유키토의 관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제목으로 「시계탑의 살인」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이야기 「목 저택」은……가르쳐드릴 수 없습니다. 어쩐지 이 모든 이야기를 여러분께 들려드리는 순간 제 목에 서늘한 무언가가 드리워질 것만 같아 이야기를 이을 수가 없습니다. 이야기를 단순히 나열하면 참으로 단순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용의 밀도란 그렇지 않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 책을 읽으며 감탄을 할 때마다 아래와 같이 깨알재미를 찾아내 포스팅을 하기도 했습니다.

 

작자미상을 읽는 깨알재미 1

http://cameraian.blog.me/130168674722

작자미상을 읽는 깨알재미 2 : 작품을 통해 미스터리를 강의하는 친절한 미쓰다 신조?!

http://cameraian.blog.me/130168741892

 

 

이러한 깨알재미를 찾으며 책을 읽던 중, 저는 최근 들은 수업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지난 주부터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콘텐츠 원작소설 창작과정을 듣고 있는데요, 그 첫 수업이 소설과 이인화 선생님의 수업이었습니다. 이인화 선생님은 수업에서 기사로도 몇 번인가 올라왔던 스토리 헬퍼를 소개하시며(6월 중 NC소프트에서 이 스토리 헬퍼 프로그램을 무료로 공개한다고 합니다. 글쓰기에 상당히 유용할 듯합니다. www.storyhelper.co.kr) 표상을 모으는 일이 바로 소설의 첫 걸음이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에도 많이 들었던 말인데, 제가 직접 소설을 쓰다 보니 이만큼 마음에 와닿는 말이 없더군요. 또 작자미상은 그런 훌륭한 본보기였습니다. 수많은 괴담, 전설, 그에 상응하는 여러 자료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이렇게 태어났다. 게다가 기발한 발상의 전환과 뛰어난 플롯은 말 그대로 호러·미스터리 소설의 뛰어난 표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시고 또 소설을 쓰시는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라고 추천해드리고 싶은, 추리소설가로써 추천하는 소설입니다. 반전도 너무나 훌륭했다고나.

 

 

 

하여, 이 소설 역시 별 다섯.

이 ‘작가’ 시리즈의 다음 편인 『사관장/백사당』을 지금부터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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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담소녀 2014-12-09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포스팅에 올리신 이미지 인용했어요. 감사합니다.
http://kshjang1240.blog.me/2202052057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