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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리스트 - 문학과 예술 속의 목록사: 호메로스에서 앤디 워홀까지 ㅣ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 3
움베르토 에코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평점 :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몇십 권씩 작은 노트가 쌓이는 경험이 있을 겁니다. 저도 등뒤에 보이는 책장의 한 칸은 모두 노트입니다. 그 노트에는 각기 인용문이나 여러 책에서 읽고 좋았던 감상 등이 적혀 있고, 심할 때엔 필사를 몇 권씩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무언가를 수집하고 싶은 욕망을 극대화시킨 것이라 하겠습니다. 때문에 등 뒤의 저것들은 어찌 보면 변소의 리스트겠지요.
변소의 리스트보다 더한, 움베르트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
어릴 때부터 저는 좀 그랬습니다. 무언가를 읽다 보면 그 책과 관련된 다른 것을 알고 싶어집니다. 또 다른 것을 읽다 보면 그 책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고, 혹은 그 책과 관련된 많은 것들을 모으고 싶어져 참을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제 제가 도서전에 가서 잔뜩 사은품을 받아왔습니다. 단지 그 책과 연관된 것이 물질화되어 있어서 너무 기뻐서 모을 수 밖에 없다, 이런 기분이라고 설명하겠습니다. 또 저는 앞서 말했다시피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책과 관련된 것을 자꾸만 모읍니다.
예를 들어 단테의 신곡이 마음에 든다고 칩시다. 그럼 전 단테의 신곡을 읽고, 단테의 일대기를 연구합니다. 그 후엔 단테 신곡과 관련된 논문이나 책을 차례로 읽은 후 원전을 찾아서 읽지는 못하지만 분위기는 파악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시조를 읽으며 4언절구니 어쩌구저쩌구 이런 식으로 오? 운율?! 이런 건가?! 이럽니다. 나아가서는 각 나라별로 어떤 식으로 번역되었는가 연구하고, 그 다음으로는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로 삼은 여러 2차 저작물을 찾습니다. 소설부터 시작하여 영화, 음악, 드라마... ... 이렇게 하나의 무언가를 텍스트 혹은 바이블로 배치하고 이야기를 펼치는 스토리텔링을 저는 참 좋아하는데요, 움베르트 에코는 더합니다. 아예, 그 스토리텔링의 과정에서 얻은 ‘메모’를 책으로 내버렸습니다. 이건 무슨, 전화번호부보다 더한 리스트가 나와버렸습니다. 아, 그래서 『궁극의 리스트』죠?
이 책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 책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특히 인용문이 많습니다. 때문에 이 안에 등장하는 책들을 읽지 않았다면 재미가 반감되겠습니다만,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알고 있는 한도 안에서만 이해해라, 이런 느낌을 가득 품어 그림을 잔뜩 집어넣어주셨거든요. 이야기가 추상적이죠? 자, 그렇다면 조금 쉽게 이야기해 봅니다. 저는 앞서 단테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했는데요, 이 책의 표지가 단테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책의 표지는 에드워드 번 존스의 황금계단입니다. 이 황금계단은 단테의 신곡에 등장합니다. 55페이지를 폅니다. 단테의 신곡 천국편 중 제 29곡이 나옵니다. 번역은 민음사 판이 훨씬 낫습니다. 민음사 번역판은 단테 연구자이신 박상진 선생님께서 직접 번역을 맡으셔서 원서의 운율감을 그대로 살렸거든요. 아시다시피 단테의 신곡은 ‘곡’, 긴 노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노래라고 하니 너무 웃기나) 자, 그럼 민음사 판으로 인용합니다.
얘기가 좀 벗어났으나
정신의 눈을 진리의 길로 돌리세요.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 동안 논의를 마쳐야 합니다.
천사들의 본성은 인간이 셀 수 있는
수의 단위를 훨씬 넘어섭니다.
인간의 말이나 개념으로는 거기에 다다를 수가 없습니다.
다니엘의 책을 보세요. 그가
말한 수천이라는 수는
미정의 수 혹은 무한의 수라는 뜻이에요
최초의 빛께서는 그들 모두를 통하여
빛을 내리시고, 짝 지을 수 있는 빛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방식으로 그들을 관통하십니다.
그래서 인지하는 행위는 애정에
앞서며, 사랑의 축복은 천사들마다 다르게
내리셔서 타오르거나 미지근한 것입니다.
이제 높은 곳을 보시고 영원한 선의 숨결을
보세요. 그분의 숨결은 그 자체를 비추는
셀 수 없이 많은 거울들로 나뉘면서
언제나 그러했듯 하나로 남아 계십니다.”
(p.257 신곡 천국편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단테 알레기에리, 박상진, 2007, 민음사)
지금 단테는 천국의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이 목소리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베아트리체입니다. 이 목소리를 우리는 듣고, 표지의 그림을 통해 보며, 새로운 단테를 생각합니다. 아, 움베르트 에코 안의 단테는 이렇구나. 그렇다면 우리의 단테는 어떨까.
『궁극의 리스트』는 이런 책입니다. 움베르트 에코가 생각했을 때 “와, 이건 우리 같이 봐야지?” 싶은 이야기를 하나, 둘 모아놓았다고 하겠습니다. 어찌 보면 이건 움베르트 에코의 블로그라고 봐도 좋겠어요. 우리는 블로그에 이렇게 많은 것들을 모으고 있으니.
당신의 『궁극의 리스트』는 무엇인가요?
알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