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월담
누쿠이 도쿠로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요 일주일 사이, 여러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읽지 않으면 쓰지 못하는 것도 있겠지만, 워낙 책이 재미나서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책이 그랬습니다. 누쿠이 도쿠로의 『신월담』 은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에 바로 이어 읽었는데요, 아비코 다케마루의 경우엔 작품에 대해 사전에 워낙 절찬을 들은 탓인지 딱히 감흥이 없었습니다. (, 역시 전 서술트릭에 강해서 또 맞춰버렸...) 그냥 다 읽고 나서 으응 그랬네,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파울로 코엘료의 아포리즘 마법의 순간을 독파한 후 이 책을 잡았는데요, 와 어떻게 이럴 수 있나요? 집중해서 한 달음에 읽어버렸습니다.

 

   

 

이런 사랑, 탐나는데요? 누쿠이 도쿠로의 신월담』  

 

한 유명한 작가가 있습니다. 여잡니다. 이름은 사쿠라 레이카. 이 여자는 매우 젊은 나이에 데뷔해 세 권의 작품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그 다음 작품부터는 대단한 실력을 발휘합니다. 그리하여 계속하여 대단한 작품을 써내리라 기대했건만 무슨 까닭인지 이 작가는 마흔아홉의 젊은 나이에 절필을 선언합니다. 이 때에 한 젊은 편집자가 등장합니다. 이 편집자는 혈기로 가득 차서 작가를 설득하여 새 작품을 쓰게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간 여자를 만난 다른 편집자들은 불가능하리라 이야기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여자를 찾아갑니다. 적어도 절필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라도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헌데 이 여자, 너무나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밝힙니다. 자신이 왜 절필을 했는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사연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아아, 사랑. 그 사랑이 지금의 사쿠라 레이카를 만들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때가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이 내 소설을 읽어 준다는 환희를 맛본 순간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았던 창작물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평가해 주었다. 그날까지 나는 남에게 인정받은 경험이 거의 없었다. 유일하게 나를 알아봐 준 단 한 사람이 기노우치였다. 2차 심사 결과를 보며 내가 왜 기노우치라는 늪에서 허우적대며 헤어나지 못하는지 겨우 깨달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인정받는 경험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증명했다는 안도감으로 이어진다. 세상에 태어나 심장을 팔딱거리며 살아 숨 쉬는 나를 맨 처음 알아봐 준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가노우치였다. 소설은 가노우치처럼 내 존재 이유를 다시금 확인해주었다. (p.283)

 

 

사랑때문에 창작한 여자의 이야기. 때문일까요, 이 작품은 작가론창작론의 성격을 띱니다. 이 작품은 면밀하게 배치된 누쿠이 도쿠로만의 창작론이 배어 있습니다. 그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저도 모르게 감탄하게 됩니다. 특히 여주인공 사쿠라 레이코가 작품을 써내려가며 겪는 고뇌, 그를 헤쳐나간 방법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군요. 저 역시 소설을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누군가 머릿속에서 자꾸 시끄럽게 떠든다는 감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또 실제로 쓰다 보니 대충 설겅설겅 시놉을 적고 멍하니 앉아서 타자를 치다 보면 알아서 소설이 써지기에. 

 

 

 

보는 내내 깨알메모했다.

님덜아, 보시고 나서 이 페이지들 찾아보3

    

 

누구나 남에게 사랑받고 싶어 한다. 소설을 읽고서 이 작가는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한 종류의 소설만이 존재하는 시장은 불건전하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도, 씁쓸해지는 이야기도, 걸작도 졸작도 다양하게 존재하는 세계야말로 이상적이라고 믿었다. 그 다양성을 위해 누군가는 어두운 이야기를 써야 한다면 기꺼이 내가 그 짐을 떠안고 싶었다. 내게는 남에게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나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을 창작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p.567)

동시에 이 소설은 참으로 아름다운 연애소설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소설을 보며 이것은 누쿠이 도쿠로 식의 이야미스다!”라고 감탄했습니다. 여러분은 작년 우리나라에 상륙해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누마타 마호카루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최근에 고양이 울음이라는 작품이 또 한 권 소개되기도 하였는데요, 누마타 마호카루의 작풍은 말 그대로 이야~”합니다. “싫어~”라는 감정입니다. , 뭔가 이 이야기 찝찝하고 싫은데... ... 왜 자꾸 읽게 되지? 그리고 이 안에 숨은 이것은 대체 뭐지? 저는 누마타 마호카루를 읽을 때 느끼는 감정을 절망의 카타르시스라고 혼자 부르고 있는데요, 이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에서도 느꼈습니다. 아아, 이 작품은 또다른 느낌의 이야미스다, 누쿠이 도쿠로는 누마타 마호카루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절망의 카타르시스를 표출해냈다, 라고요.  

 

동시에 저 역시 이런 사랑 한 번쯤 해도 좋을 것 같다 하고 문뜩 생각했습니다. 결국 소설가란 이런 인종이로구나. 그저 소설만 재미있게 써진다면 무엇이든 다 괜찮지 라고. 제가 왜 이렇게 중얼거렸는지,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런 사랑이 무엇인지는 직접 읽어보시는 편이 아마도 빠르게 이해가... ...

 

  

정말 괜한 소리겠지만...... 부디 화내지 말고 들어주세요. 아마도 사쿠라 씨는 지금 힘든 사랑을 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어떤 상황이건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행복을 잊지 말길 바라요. 소설가로서뿐 아니라 여자로서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계속 신경이 쓰이고 걱정돼서 언젠가는 말할 기회가 있었으면 했어요.” (p.603)  

 

 

그러므로 이 책 역시 미소 짓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별 다섯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미소 짓는 사람보다 더 좋군요. 누마타 마호카루와 마찬가지인 이야미스류인데도 그만큼 갑갑하지 않고 깔끔하게 만들어낸 작풍이 어마어마했으니... ...  

 

 

원문으로 보려면 아래 링크 클릭: http://cameraian.blog.me/130171127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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