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고코로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의 선택의 연속입니다. 여러 갈래로 뻗은 교차로에서 우리는 왼쪽이냐, 오른쪽이냐를 고릅니다. 물론 특이한 사람들은 이 갈래길을 무시하고 직진, 산을 넘거나 터널을 뚫기도 합니다. 또 어떤 소심한 사람들은 겁이 나서 그 자리서 주저앉거나, 뒤로 물러서기도 하고요.

 

저는 선택의 상황이 오면 일단 숨을 가라앉힙니다. 일단 제 자신을 들여다 봅니다. '무엇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가'를 생각한 후에, 양갈래길 중 어느 하나를 고민할까, 아니면 터널을 뚫어? 그도 아니면 저 황무지로 가? 고심하다 한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가끔은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감상에 젖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는 너무 힘이 들어 다 그만두고 싶다, 이러는 게 아닌데, 후회도 합니다.

 

하지만 결코, 나아가기를 멈추지는 않습니다.

제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또,

그 길의 끝에는 분명 제가 상상치도 못한 어떤 행복한 결말이 있으리라 상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저는 밑도 끝도 없는 낙천주의자입니다.

 

이번에 읽은 소설 '유리고코로'의 주인공이 그랬습니다. 

대책없는 낙천주의자,

이 기묘한 상황에서도 묘하게 밝은 남자,

전 그렇게 보았습니다. 

 

 

 

 

 

얼마 전 저는 이 작가의 소설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을 읽었습니다. 그 서평을 적었습니다. 뜻밖의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저는 그저 이 소설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정말 좋아요!"라고 말했을 뿐인데 알라딘서는 이달의 우수서평? 이름 맞나요? 이런 것에 뽑히고, 출판사 편집장님께서도 연락을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책도 한 권 받았고(이 책도 참 재미나게 읽어서 곧 서평을 쓰려고요.) 후에는 신문기사에서 코멘트도 나갔습니다.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http://cameraian.blog.me/130139322403

 

추리소설, 男들보다 손 큰 女心을 파고들다

http://news.donga.com/3/all/20120612/46934908/1

 

 

두 번째 링크에서 언급된 '조영주'가 접니다.

 

헌데 이후로 난감한 일이 일어났더군요. 이 책에 대해 상당히 불쾌했다는 평이 올라오고, 이런 책은 사서는 안 된다든가, 왜 이런 책을 만드는지 모르겠다는 등의 이야기가 한참 나오는 것을 보고는 참 안타까웠습니다. 뭔가 괜히 가슴 한 구석이 찌릿찌릿하더군요.

 

제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 그런가요, 소재와 주제는 다르고 어떤 소재든 작가가 잘 포장을 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면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누마타 마호카루의 소설은 소재의 선택은 상당히 파격적이고 충격적이었지만 그 이야기를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서 이 작가의 마음이 와닿았기에 이 소설은 훌륭하다고 느꼈습니다.

 

작가는 두 편의 소설 모두 파격적인 소재를 다뤘습니다.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기리노 나쓰오의 잔혹기는 어떻습니까?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는요? 이 두 소설 역시 소재 자체는 상당합니다. 화차는 상당히 점잖게 이야기를 끌고 가지만, 기리노 나쓰오의 잔학기는 상당합니다. 그밖에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소설 합작-살인을 위한 살인도 있습니다.

 

지금 당신, 살인을 꿈꿉니까?

http://cameraian.blog.me/130107368399

 

누마타 마호카루에 대해 혹독한 이야기를 해주신 여러분들께서 이 세 권의 소설을 읽는다면 어땠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꼭 보고 나서 말씀해주십시오. 그 이야기, 귀기울여 듣고 제가 글을 쓸 때에 꼭 참고하겠습니다. 저는 이야미스 류보다는 정통 탐정물을 추구하지만, 그래도 궁금하네요. 공부가 될 듯합니다.

 

하여, 저는 이 책을 정말 재미나다고 생각했는데 저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이 소설이 싫었나? 그렇다면 내가 이 책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한다고 한 마음은 잘못된 것인가? 때문에 저는 잠시 우울해졌습니다. 이번 '유리고코로'를 읽기 전까지도 계속해서 그 생각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머뭇거리다 마침내 이 소설을 읽었고,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결과는 아래의 사진과 같았습니다.

 

 

 

 

포스트잇을 끊임없이 붙였습니다.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었습니다. 이 지독한 소재를 이토록 따뜻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시선에 감탄했습니다. 이미 이 책의 줄거리는 꽤나 유명해졌으니 설명할 필요가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혹시나 아직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덧붙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한 남자입니다. 남자는 우연히 공책 한 권을 발견하고, 그 공책 안에서 '우리 부모님 중 누군가가 사이코패스일지도 모른다'는 내용을 발견합니다. 남자는 당황하면서도 기묘한 수기, 혹은 소설에 심취합니다. 자신의 현실에서는 결코 접할 수 없는 지독히 차갑고 쓸쓸한 살인의 연대기에 푹 빠져듭니다. 결코 있을 수 없고, 이런 일이 어떻게 세상에 존재할 수 있어? 라고 생각했던 살인의 연대기, 사이코패스의 생활이 차츰 몸에 와닿으며 남자는 변해갑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신의 매우 가까운 곳에 이런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제부터 앞으로 내가 얼마를 살든,

그런 형편없는 여자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앞에 나타나는 어떤 괜찮은 여자에 대해서도

그 형편없는 여자에게 가졌던 애정은 품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깨달았다.

p. 237

 

 

남자의 심리묘사는 이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도 전염되나 봅니다. 소재 자체의 기이함, 불안함과 상식파괴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예전에도 몇 번이고 여러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그런 기시감입니다. 과연 이 세상의 진실은 무엇인가, 우리는 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 현실을 깨부수는 것은 어떠한가, 라고요.

 

혼란스러웠습니다.

 

사람이 살인을 저지른다는 것이,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그렇게 살아가도 되는 것인가,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에게 아무런 철퇴도, 형벌도 가해지지 않는다면 과연 이 사회는 옳은 것인가.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아마도 혼란을 혼란 그대로 안고

살아간다는 게 아닐까.

인간의 마음 그 자체가 영원히 풀릴 수 없는

또 하나의 혼란이라는 것을

깨닫는 게 아닐까.

p. 293

 

 

이 고민은 소설 속 수기의 주인공 '싸이코패스'가 하는 고민과도 같았습니다. 싸이코패스는 자신의 삶에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아무런 제재도 가해지지 않는 이 상황에 대해서도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그는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을 자신의 현실을, 모두가 혐오스럽고 보고 싶지 않을 그런 비참한 삶을 살아갑니다. 자신을 마구 망가뜨리고, 부숩니다. 누군가가 구원해줄 리 없다고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그저 숨을 쉽니다.

 

살아있어야 할 의미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혼돈이라는 이름의 지옥을,

삶이라는 이름의 절망을요.

 

이 수기를 본 주인공 '나'는 자신의 곁에 존재하던 절망이란 삶을 깨닫고 한 가지 선택을 합니다. 결코 뒤를 돌아볼 수 없는 선택, 그 길의 끝에 있는 것은 무엇일지,

 

여러분의 눈으로 확인하십시오. 

 

 

 

 그래도 때때로 겁먹은 듯 허공을 바라보고

이유도 없이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부서진 의식 어딘가에 꽂혀 있는

기억의 가시가 찌릿,

고통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p.302

 

 

마음 같아서는 그냥 5점입니다만,

취향의 문제가 크니까요.

때문에 별점은 3.5입니다.

대신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이 너무 좋았던 관계로 그 분위기와 이 소설의 따뜻함,

을 높이 평가하여 4점으로 반올림하였습니다.

 

서평 원문은 이쪽 : 

http://cameraian.blog.me/13014197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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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나이트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1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아주 좋았습니다. 드라마도 좋았지만, 전 소설이 좋더군요. 인간 관계 등의 심리묘사도 좋았고요. 별 네 개는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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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제
츠네카와 코타로 지음, 김해용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저는 어제 갑작스레 한 편의 엽편소설을 썼습니다.  '단 한 걸음'이라는 소설이었는데요, 블로그에 와서 이 소설을 본 이들은 의아해 했습니다.

도대체 이 소설은 무엇인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는가.

저는 흥미가 돌았습니다. 그리하여 이번 '초제'의 서평은 이 엽편소설로 문을 열고자 결심하였습니다.

 

 

 

단 한 걸음

 

그 집이 눈앞에 나타났다. 딱 한 걸음만 더 딛으면 문을 통과할텐데 사내는 문을 열 수 없었다. 누군가 사내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바들바들 떨리는 철사와도 같은 손이 낯익었다. 집에 두고 온 아내의 손이었다.

아내.

현미밥에 된장찌개, 한상가득 아침을 차려준 아내.

눈썹이 처진 아내.

사내의 반쪽도 되지 못하는 아내.

입술을 몇 번이고 오물거려도 결국 "당신 바람 피워요?"라는 한 마디를 묻지 못하는 아내.

아내는 지금 무슨 표정을 짓는가.

사내는 아내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혹시라도 아내가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을까봐, 사내에게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말을 못하여 어쩔 줄 몰라하다 눈물을 터뜨릴까봐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을 돌렸다. 눈을 마주치기 전에, 그 입술을 바라보기 전에 입으로 입을 막았다. 짓무르도록 문질렀다. 단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사랑했었다."라는 말을 그 닫힌 입술로 이야기했다.

입술을 뗐다. 한 걸음 딛었다. 그 집의 문을 열었다. 등뒤에 새하얀 철사같은, 허나 입술만큼은 붉게 타오르는 아내를 두고 그 집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문이 닫히며 내뱉은 나직한 비명에 아내는 주저앉았다.

 

 

 

 

여러분은 지금 이 짧은 엽편에서 무엇을 느꼈습니까?

저는 이 엽편소설에서 무엇을 이야기했습니까?

지금 떠오르는 '그것'을 메모하십시오.

 

 

 

초제草祭 : 단 한 걸음 딛은 곳에 비오쿠美奧가 있었다.

 

 

 

 

 

십 년전의 일입니다. 저는 한 의학관련 신문사에 면접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면접시간은 9시 30분이었으나 8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혹시라도 시간에 늦어 면접을 보지 못하면 어쩌나 불안했습니다. 역시나, 시간은 남았습니다. 아침 9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각에 목적지 을지로3가 역에 도착하였고, 신문사는 역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 있었습니다. 저는 여유롭게 역을 나섰고, 너무 일찍 온 탓에 면접에 악영향을 받으면 어쩌지 걱정까지 했습니다.

 

헌데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5분, 정확히 을지로3가역에서 직진하여 5분이면 도착할 곳에 그 신문사는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신문사를 보지 못했습니다. 마치, 을지로 3가역을 나오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에 빠져버린 듯 제 눈에만 그 신문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5층짜리 전면이 거울로 된 건물이라고 하였습니다. 4거리가 보이자마자 바로 우편 맞은편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보지 못했고, 자그마치 다섯 번이나 전화를 했습니다. 주변을 빙빙 돌았습니다. 시각을 확인하니 이미 면접시각은 지나버렸고, 저는 전화조차 하지 않고 자포자기 해버렸습니다.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여기가 정말 내가 아는 서울이 맞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문제의 4거리로 터벅터벅 걸어갈 때, 저는 발견했습니다.

 

어디로 갔을 리 없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듯 굳건하게 선 5층짜리 전면거울건물을요.

 

무엇에 홀린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면접이 더 중요했습니다. 헐레벌떡 들어갔습니다. 30분이 늦게 면접장에 도착했으나 운 좋게도 제 직전에 면접을 본 사람이 한 시간이 넘게 면접을 보는 바람에 무사히 면접을 치렀습니다. 게다가 전격 합격하여, 기자생활을 했더랬습니다.

 

 

후에 몇 번이고 제 전화를 받았던 직원이 참 신기해 했습니다. 도대체 그 짧은 거리에서 어떻게 이 건물을 찾을 수 없었는지, 대체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았지만 저는 끝끝내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알 수 없었으니까요.

대체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 눈에는 그저 그 건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초제의 배경인 비오쿠가 그렇습니다.

  

 

 

아지랑이도마뱀은 특별히 존재가 애매모호한 영역에서 살고 있었던 것일 테지만, 생각해보면 지금 이 세상에 있는 것도 모두 많든 적든 애매모호한 균형 속에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뭔가 하나의 요인을 옮기거나 교체하면,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일은 흔하잖아.

 

p. 259, 초제

 

 

 

초제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비오쿠라 불리는 신비한 공간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비오쿠는 산 속 어딘가이기도 합니다, 혹은 수로의 끝에 닿기도 하며, 우리가 사는 이 마을이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하나같이 몽롱합니다. 도대체 이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는가, 대체 이곳은 무엇이며 이 이야기는 무엇인가, 혼란스럽습니다. 안개에 쌓인 듯, 장님 코끼리 더듬듯 그렇게 헷갈리기만 합니다.

 

하나의 비오쿠는 모든 것이 버려진 수수께끼의 벌판입니다. '짐승의 들판'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수수께끼를 접하고 수수께끼가 되어갑니다.

하나의 비오쿠는 현재의 소도시입니다. '지붕위의 성성이'와 '텐게의 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너무나 평범한 듯 살아가지만, 그 평범한 현실은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갑작스레 사람이 도깨비가 되지 않나, 저도 모르게 도피해서는 세상을 피하려들지 않나, 참으로 묘한 일만 일어납니다.

하나의 비오쿠는 탄생하고, 이어집니다. '풀의 꿈 이야기'와 '아침의 몽롱한 마을'을 통해 비오쿠 자체의 생존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이렇듯 다섯 개의 하나로 나뉜 비오쿠는 정말 어디일까요.

무엇일까요.

 

 

문을 지나서 조금 더 가다가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미 어두운 숲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숲 너머에 도무지 마을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일단 벗어나면 쉽게 돌아갈 수 없게 하는

환술 때문인지도 몰랐다.

 

모든 것이 사뭇 가벼워졌다.  

 

 

p. 126, 천둥의 계절

 

 

 

작가의 또다른 책 '천둥의 계절'에는 '온'이 등장합니다. 

온은 세계지도에 없는 곳입니다. 일본에 속하지만 속하지 않습니다. 온의 주민들은 자신들이 선택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일본은 자신들보다 아래에 존재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온과 일본을 나누는 경계가 바로 끝없이 펼쳐지는 벌판입니다.

 

이 벌판에는 야수가 삽니다. 누군가는 야수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또 누군가는 신을 빙자한 사람의 손에 '천벌'을 받아 그대로 버려집니다. 바람에 시체가 날려 썩어 문드러져, 해골이 남을 때까지 육신은 벌판을 떠나지 못합니다.

 

비오쿠와 같습니다.

 

비오쿠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비오쿠에서 살아갑니다. 비오쿠에 빠진 이는 비오쿠가 됩니다. 비오쿠를 만든 이도 비오쿠가 되며, 비오쿠를 이끌어가는 이도 비오쿠가 됩니다.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그곳, 

모든 것이 살아있되 살아있지 못하는 그곳이 바로 비오쿠입니다. 

 

서평의 서두에 올렸던 엽편소설로 돌아가겠습니다.

 

 

 

단 한 걸음

 

그 집이 눈앞에 나타났다. 딱 한 걸음만 더 딛으면 문을 통과할텐데 사내는 문을 열 수 없었다. 누군가 사내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바들바들 떨리는 철사와도 같은 손이 낯익었다. 집에 두고 온 아내의 손이었다.

아내.

현미밥에 된장찌개, 한상가득 아침을 차려준 아내.

눈썹이 처진 아내.

사내의 반쪽도 되지 못하는 아내.

입술을 몇 번이고 오물거려도 결국 "당신 바람 피워요?"라는 한 마디를 묻지 못하는 아내.

아내는 지금 무슨 표정을 짓는가.

사내는 아내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혹시라도 아내가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을까봐, 사내에게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말을 못하여 어쩔 줄 몰라하다 눈물을 터뜨릴까봐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을 돌렸다. 눈을 마주치기 전에, 그 입술을 바라보기 전에 입으로 입을 막았다. 짓무르도록 문질렀다. 단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사랑했었다."라는 말을 그 닫힌 입술로 이야기했다.

입술을 뗐다. 한 걸음 딛었다. 그 집의 문을 열었다. 등뒤에 새하얀 철사같은, 허나 입술만큼은 붉게 타오르는 아내를 두고 그 집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문이 닫히며 내뱉은 나직한 비명에 아내는 주저앉았다.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저는 이 소설에서 무엇을 이야기했습니까?

당신이 나의 엽편 소설에서 읽어낸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서평을 읽기 전과 ,

읽기 후가,

같습니까?

다릅니까?

 

다르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지금 있는 곳이 바로,

美奧

입니다.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는 그곳,

당신은 지금 그곳에 왔습니다.

환영합니다.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영원한 벌판,

인생이라는 이 벌판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애당초 인간은 매일 조금씩 다른 존재가 되어가는 게 아닐까.

 

p. 322, 초제

 

 

 

 

 

사진과 함께 보는 서평은 이쪽 :

http://cameraian.blog.me/130140457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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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나이트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1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미리 밝힙니다.

주인공 히메카와 설정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만,

일본드라마를 미리 보신 분이라면 전혀 상관 없을 스포입니다.

 

 

 

저는 저녁 여덟 시에 퇴근합니다. 집까지는 아무리 빠르게 잡아도 한 시간 반이 족히 걸립니다. 역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15분, 빠르게 걸으면 10분입니다. 때문에 건강을 생각해 웬만하면 걷고 싶은데... ...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 골목, 어둑한 길 어딘가에서 누군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두려움에 저도 모르게 급히 걷습니다. 특히 치마를 입은 날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치마를 입었을 때 치한을 만난 적이 몇 번이나 있습니다. 운이 좋아서 늘 어떻게 도망쳤지만, 저는 늘 두려웠습니다. 때문에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누군가에게 말했습니다. 이러이러해서 치한을 만났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말하더군요.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니까 그러지. 그건 말이야, 남자보고 덮쳐달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첫장을 펼치면 회색 세상이 열린다.

책을 모두 읽고 나면 이 세상의 의미가 새삼 와닿는다.

 

 

 

반은 농담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그 말을 듣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버렸습니다.

 

어쩌면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다 내탓일지도 모른다고, 내가 치마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그때문일까요, 저는 한동안 치마를 전혀 못 입었었고, 지금도 짧은 치마를 입는 것이 두려워 아래에 쫄바지, 요즘말로 레깅스를 꼬박꼬박 챙겨입게 되었습니다.

 

 

 

 

 

 

 

 

표지를 펼치면 온통 회색 세상 속에 적색 딸기가 떠 있다.

너무나 외롭게, 홀로.

 

 

 

스트로베리 나이트의 주인공 히메카와는 저와 같은 과거, 아니 훨씬 더 심한 과거가 있습니다. 그녀는 치한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도망치지 못했고, 겁탈을 당했습니다. 칼에 찔렸습니다. 그녀는 웃을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 ... 이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면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네이버 웹툰 콘스탄쯔 이야기처럼.

 

 

네이버 웹툰 콘스탄쯔 이야기 :

http://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140444

 

 

 

네이버 웹툰 콘스탄쯔 이야기는 한 소녀가 강간을 당한 후 그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립니다. 또 최근 나온 이재익 님의 소설 41은 실제로 일어났던 성폭행 사건을 다룹니다. 두 형사의 시선으로 한 사건을 파고듭니다.

 

하지만 스트로베리 나이트는 둘 중 어느 것도 아닙니다. 스트로베리 나이트의 주인공 히메카와는 강간사건의 피해자인 동시에, 형사로 등장합니다. 강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 여형사가 수수께끼의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어느날 발견된 수수께끼의 변사체, 참흑한 변사체를 발견한 경찰은 곧 수사본부를 차립니다. 뛰어난 형사들이 뛰어들고 그 중에는 주인공 히메카와도 있습니다. 히메카와는 탁월한 직관력을 발휘해 사건을 차츰 해결해가고, 동료 형사들은 의아합니다. 도대체 그녀는 어디서 어떻게 저런 생각을 떠올릴까. 근거는 무엇일까. 그녀의 생각이 떠오르는 원천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의 생각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직관은 맞았고, 불안불안하지만 사건의 진상에 가까워집니다.

 

저는 이 소설을 드라마로 먼저 봤습니다.

 

 

 

 

 

 

 

 

뒤의 해설에 보면 작가의 가상캐스팅이 쓰여 있다.

이 가상캐스팅과 드라마캐스팅을 맞춰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때문에 줄거리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기에 사실 그닥 기대는 안 했습니다. 드라마 자체는 그렇게까지 와 반전이 대단해! 오옷, 이 사람이 범인?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소설은 달랐습니다. 영상에서 훤히 보였던 그 수많은 힌트들, 클리셰가 될 것들을 작가는 솜씨좋게 이곳저곳에 숨겨두었습니다.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작가의 능력은 더더욱 월등히 드러나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때문에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며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 최근 썼던 '3분'에서 문제시되었던 '전개의 필요충분조건'이 이 소설 속에 있었거든요.

 

또,

 

드라마 속에서 보았던 감동을 다시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웃었다!

 

레이코가 내 이야기를 듣고 웃었다!

필요할 때 쓰려고 간직해 둔 실수담 '나를 체포하다'에 웃었다!

 

기쁘다!

귀엽다!

레이코의 웃는 얼굴은 정말 귀엽다!

 

말도 조금 했다!

 

해냈다!

해냈어, 레이코!

 

오늘은 최고의 날!

 

p.208

 

 

 

아직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이 장면이 어떤 상황에서 나왔는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당신이 이 책을 읽는다면 나처럼 이 부분에서, 연이어 이어지는 수 장의 페이지에서 분명 눈물을 터뜨릴 거예요. 전 그랬습니다. 오늘 밤, 밤길이 무서워 들렀던 카페에서 읽다가 그만... ...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러고는 용기를 내 카페를 나섰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15분을 시작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두려움은 네 마음 속에 있을 뿐이야,

라고 자신에게 속삭이면서.

 

네이버 블로그 본관은 이쪽 :

http://cameraian.blog.me/130139833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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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의 기술 1 NFF (New Face of Fiction)
채드 하바크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저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야구장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뭐시냐, 동네 아저씨들 모여서 하는 아침에 야구? 축구? 뭐 그런 거 할 때 몇 번 가서 구경하다 짜증내고 집에 간 적은 있습니다만, 순전히 야구의 야구에 의한 야구를 위한 야구장 관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요즘 야구소설에 꽂혔습니다. 웃기지도 않습니다. 야구를 H2와 4번타자 왕종훈으로 익힌 주제에 말이에요. ... ... 심지어는 4번타자 왕종훈은 이미지가 네이버에 등록도 안 됐군요. 아 이거 나만 아는 만화는 아니겠지? 여러분?? 저와 같은 세대 여러분 계신 거죠? 네? (ㅠㅠ;;;) 어쨌든 저는 야구하면 이밖에도 설까치가 나오는 그 뭐시냐 시리즈라던가로밖에 전혀 모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야구소설, 이거 보다 보니 재미나더라고요?

 

그리하여 야심차게 준비했습니다.

 

 

책 vs 책,

그 네 번째는 야구장 한 번도 못 가본 변소의 ALL입니다.

 

 

  마구 vs 사우스포킬러 vs 오심 vs 수비의 기술

 

 

 

무슨 조화일까요?

 

야구소설이 쏟아집니다. 다들 어디 아픈가? 왜이러지 싶습니다.

게다가 서평도 너무 좋습니다. 다들 잼나게 읽었대요.

 

특히 이 서평,

이 서평 덕분에 저는 그만 사우스포킬러로 빠져듭니다.

 

 

 

야구로 대동단결하는 우리에겐 미스터리도 필요해. - 미즈하라 슈사쿠의 <사우스포 킬러>

http://blog.naver.com/jmh5000/10139001624

 

짜릿한 감동이 있는 명품 야구소설 Best 4

http://blog.naver.com/jmh5000/10135672624

 

 

 

파워블로거 정군 님의 서평입니다. 저는 이 중에서 아래의 서평, 명품 야구소설 Best 4를 읽은 날, 마침 서점에 있었습니다. 코엑스 반디앤루니스가 제가 일하는 직장(카페) 바로 앞이라 참새 방앗간 못 지나가듯 그렇게 자주 들르거든요. 하여 핸드폰으로 정군 님의 서평을 보면서 갔다가... ... 이런 제길 사우스포킬러를 사버렸습니다. (;;;;;) 다 필요 없고 미스터리가 더해진 야구소설이라는 빨간 글씨에 혹해서는 뭔가 궁금하더라고요. 하여 책을 들어서 첫 장을 넘겨봤는데 이거 뭥미? 왜 이리 잘 읽히니, 어라, 어라? 이러면서 그렇게 들고 왔습니다. 제 당시 계획은 "자, 밤에 샀으니 내일까지는 읽자."였는데, 내일까지 읽기는 쥐뿔, 새벽 두 시까지 흡입해버리고는 여운이 가시지 않아 다음 날, 출근하며 다시 반디앤루니스로 향했습니다. 그러고는 이번엔 마구를 마구마구 집었습니다.  사우스포킬러 같은 느낌의 소설을 읽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읽었는데... 왠 일이니? 왠일로 이렇게 히가시노 게이고 님이 성공적인 소설을 다 쓰셨니? 요즘 좀 별로셔?? 했는데 신참자에 이어서 성공했어?? 이러면서 역시 그날 바로 흡입, 나는 아직도 야구에 목마르다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시공사에서 야구소설을 낸다고?

 

 

[IT'S COMING 2 - 사전 리뷰어를 모집합니다] <1Q84>를 제치고 아마존 '올해의 책' 1위를 차지한 화제작

http://blog.naver.com/sigongfore/157285931

 

 

여러분이 알다시피 제 직업이 직업이니만큼(곧 소설 출간하는데 -_-;;;) 서평이벤트 참가하는 건 양심에 걸려서 안 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미리 읽는다니까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염치 불구하고 신청해서 탔습니다. 받고 나서는 신이 나서 읽는 경과도 블로그에 올리고,

 

 

수비의 기술을 읽습니다.

http://cameraian.blog.me/130138224232

 

 

중간중간 저처럼 서평이벤트에 당첨된 다른 블로그 이웃들과 이래저래 병맛대화(?)를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그리하다보니 야구를 전혀 모르는 저도 어떻게 야구소설에 대한 서평을 쓰고 싶어져서 열심히 준비하는데... 아니 이게 왠 일입니까?! 이번엔 씨엘북스에서 오심마저 나온 겁니다!

 

 

오심(미스저지) 서평이벤트

http://cafe.naver.com/clbooks/789

 

 

사실 이런 서평이벤트가 있는지도 몰랐다가 주변 이웃들이 이런 카페가 있다 알려줘서 들어갔더니 오호라, 그래? 하고는 바로 가입해버렸습니다. 하여, 책 서점에 꽂히자마자 바로 질러서 요 책까지 읽었습니다.

그리하여 네 권의 책을 읽고 나니 참 신기하기도 하죠?

 

이 네 권의 책은 닮았으면서 또 안 닮았습니다.

 

어떤 점이 닮았고, 안 닮았는가.

지금부터 차근차근 이야기해 봅시다.

 

  

 

 

1. 장르


 

네 권의 소설 중 사우스포 킬러와 마구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띕니다. 한 마디로 말해 "사람 잡는 이야기"가 주류이고, 그 이야기 속에 야구가 스며들었습니다. 반면 수비의 기술과 오심은 야구 자체를 다룹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구를 하는 선수의 이야기입니다. 추리는? 없습니다. 아니, 있어도 아주 작은 요소입니다.

 

 

2. 배경

  

"거참 속 편한 소리 하네. 네 선수 생명을 건다고 했다고? 피칭이란 던져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 너무 무모하지 않나?"

"무모하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불안하지가 않아요. 좋은 피칭을 할 것 같은, 뭐라고 말해야 하나, 근거 없는 확신이 든다고 할까요."

 

p. 218 - 사우스포킬러

  

 

사우스포킬러와 마구의 배경은 일본입니다.

 

사우스포킬러의 배경은 프로야구이고, 마구의 배경은 고교야구입니다. 일단, 사우스포 킬러는 수수께끼의 사나이들에게 협박을 당하는 이야기입니다. 말 그대로 사우스포(자완투수)만 골라 노리는 녀석이 나타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를 소설은 매우 흥미롭고 빠르게 풀어갑니다. 마구의 배경은 고교야구 하고도 갑자원입니다. 천재투수 스다와 갑자원을 둘러싼 수수께끼의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이야기는 착착 겹쳐집니다(보실 분들을 위해 자세하게 이야기 안 합니다). 과연 히가시노 게이고 다운 속도감을 보여줍니다. 

 

수비의 기술과 오심의 배경은 미국입니다.

 

수비의 기술은 미국인 작가가 썼습니다. 그러니 배경이 미국하고도 메이저리그...가 아니라! 메이저리그 직전, 대학야구입니다. 오심의 배경은 미국입니다. 헌데, 일본인 작가의 작품입니다. 이 일본인 작가는 일본인이 미국 메이저리그에 가서 일어나는 일을 그립니다. 두 소설은 모두 미국이지만 그 배경이 조금 다릅니다.

 

 

3. 주인공

 
 

  

한마디로 천재였죠. - p.272, 마구

 

 

 

사우스포킬러와 마구, 오심의 주인공은 모두 투수입니다. 대부분의 소설이 투수나 강타자를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헌데,

수비의 기술의 주인공은 유격수입니다.

독특합니다.

때문에 야구에 관한 소설은 아니지만, 야구영화 머니볼이 떠오릅니다. 머니볼의 주인공은 선수가 아닌 구단주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 선수입니다. 이 영화는 구단주의 눈으로 메이저리그를 보고, 메이저리그라는 것이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꿈의 무대'인가? 라고 묻습니다.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몸값.

 

몸값만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곳이기에 베이스볼이 아닌 머니볼이다, 단호하게 잘라 말합니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기에 더더욱 와닿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수비의 기술은 어떨까요? 왜 주인공을 유격수로 설정했을까요? 아주 독특합니다.

 

이는,

 

 

4. 주제

 

와 관련이 있습니다.  

 

마구와 사우스포킬러의 주제는 생략합니다. 좋은 오락소설, 특히 추리소설은 주제가 바로 반전이며, 주제가 바로 그 소설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허나 두 권의 소설, 수비의 기술과 오심은 주제 없이 이야기하기가 힘듭니다. 이 두 소설은 추리소설의 문법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심은 사람의 마음에 흔히 숨어두는 의심과 두려움, 자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과연 이 세상에 자신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언제나 자기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오심의 주인공 역시 그러합니다. 메이저리그에 갔으면 기분 좋게 "와 좋아! 난 대단해!"이래야 하는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정말 지리멸렬할 정도로 찌질이입니다. 도대체가 순수하게 좋아하질 않습니다. 뭐든 비관적입니다. 

 

"아, 이 찌질이! 개자식아! 죽여버릴래!"

... ... 정말 저렇게 저도 모르게 소리질렀습니다.

 

오심의 주인공은 자기 살겠다고 남을 죽일 놈입니다. 어찌나 예민한지, 자기 투구가 제대로 안 되면 어디 핑계 댈 곳 없나 주변을 두리번거립니다.

저는 이 주인공이 그래서, 정말 싫었습니다.

 

주인공 속에 제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비의 기술 속 주인공은 제가 모르는 인종입니다. 말 그대로 유격수의 천재입니다. 저는 공하고 글러브를 주면 둘 다 당장 인터넷에 팔아버릴텐데, 이 주인공은 공과 글러브만 있으면 하루종일 잘도 놀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면 질투가 나야 할 텐데요,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주인공은 너무나 잘 움직입니다. 근면성실이 온 몸에 밴 인물입니다. 이런 인물을 보니 저도 모르게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더불어 과연 천재란 무엇인가, 인생은 대체 무엇인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것이 바로, 수비의 기술입니다.

 

수비의 기술은 야구를 보여줍니다. 야구로 살아가는 한 인물을 보여주고, 그 인물의 삶을 한 장, 한 장 넘깁니다. 비단 그 인물뿐이 아닙니다. 그 인물로 인하여 생긴 변화도 놓치지 않습니다. 주인공 헨리가 대학에 가고, 대학에서 만난 이들의 인생이 차츰 차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도대체 빌어먹을 이놈의 인생은 무엇인가, 우리 스스로 고민하게 합니다.

 

청춘을 생각케 합니다.  

 

수비의 기술은 청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노인이 된 총장은 젊음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순간순간 미소를 짓고,

현재 젊은이는 학자금 대출을 걱정하며,

또다른 청춘은 야구에 모든 것을 겁니다.

누군가는 청춘을 저도 모르게 써버렸다 걱정하며,

이 모든 청춘 위에 바로,

 

헨리가 있습니다.

 그는 마이크 슈워츠였다.

어떤 무대에서건 그가 성공을 거두리라는 건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실패,

심지어 일시적인 실패조차 이제는 선택할 여지조차 없어졌다.

특히 헨리가.

그들 사이의 우정에 자리 잡은 신화

- 오류는 절대로 없어야 한다는 그 자신이 스스로 세운 신화-

가 산산이 부서져 내리고 말 것이었다.

 

- p.198, 수비의 기술

 

천재 헨리,

모두에게 사랑받는,

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모르겠어서 어쩔 줄 몰라하며 고뇌하는 아픈 천재 헨리가요.

  

 

적다 보니 너무 수비의기술과 오심쪽으로 치우쳐졌습니다. 이유야 간단합니다. 저는 이 두 소설을 더 늦게 읽었고, 이 두 소설은 반전이 없으니 이야기를 할 폭이 넓어져서입니다. 

 

안 그래요? 

 

저는 반전이 있는 추리소설 이야기는 길게 하면 짜증나더라고요. 와, 재미있어! 이거면 충분하지 않나?

 

하지만 그래도 이대로 접기엔 너무 아쉬워서 마구와 사우스포킬러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덧붙이자면, 이 두 소설은 사실 반전이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대부분의 소설의 반전을 맞춥니다. 이 두 소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전 이 두 소설이 정말 재미났습니다. 바로, 추리소설에서 반전때문에 자주 잊혀지고 마는 전개가 두말할 나위 없이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소설이 있습니다.

추리소설입니다. 우리는 이 반전을 너무나 잘 압니다. 미리 들어 다 압니다. 하지만 재미납니다.

왜일까요?

전개가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이 그러합니다. 소년탐정 김전일이 베끼는 바람에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어진 그 반전, 하지만 저는 그 반전까지 이르는 길이 참 재미났습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은 또 어떤가요? 저는 이 소설을 정말 어렸을 때 읽었습니다. 덕분에 전혀 결말을 예상치 못했었는데요, 크고 나서 다시 읽었는데도 무척 재미났었습니다. 와, 반전을 알아도 이렇게 재미나다니!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감히, 사우스포킬러와 마구를 추천하는 것입니다.

  

너희 선수들은 종종 그렇게 말하는데 그건 착각이야.

지하철역에서 파는 스포츠신문이라면 몰라도 우리 같은 구독 신문은

기사 내용이나 기사 제목에 따라 판매 부수가 변하지 않아.

 

p.183, 오심

 

.

.

.

 

(이 부분, 뭔가 책의 전개 부분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같지 않아요?)

 

 

 

 

이 두 소설에는 반전을 알고서도 재미난 이유가 곳곳에 숨어 있거든요. 일단 야구 이야기를 하니까 볼 재미가 쏠쏠하고요. 특히 싸우스포킬러는 너무나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데요, 저는 정말 야구를 전혀 모르는데 왜 이리 그 과정이 신기한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봤었답니다.

 

 

 

책 vs 책 4, 변소가 준비한 야구소설올스타전은 여기까지입니다.

 

 

어떻게, 긴 글 끝까지 볼 만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자, 지금부터 읽어 봅시다. 요 책들 중 아무거나 집어들고, 읽고, 평생 야구장 한 번도 못 간 변소 약오르게 야구장 가 봅시다. 야구장 물가 비싸니까 꼭 도시락 싸 가는 거 잊지 마시고요.

 

알았죠?

 

 

이상, 특급변소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래도 뭔가 아쉬운 우리 님들을 위해 시조 한 편 준비했습니다.

저는 서평을 올리려고 이래저래 돌아다니다 23일 아침 우연히 이 시조를 읽고...

폭풍감격 눈물범벅이 되어버렸습니다.

 

자, 모두 함께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봅시다.

 

 

 

알현과패 謁見科敗

내가간다 독자교정
열시정각 구백이호
출구기둥 보기전에
사무실이 먼저보여
이게바로 초역세권
그네타며 열시대기
편집장은 실물이나
알현잠깐 바로시작
표시할게 없구만뭐
그러다가 그냥읽네
짜장만두 탕슉까지
안준다던 점심먹고
꾸벅꾸벅 졸다출발
날씨좋다 안막힌다
벌써도착 잠실왔어
세명두산 홍민엘지
다른한분 관람처음
두산엘지 경기시작
너무쒼나 들떠있다
볼일보고 돌아오니
이게웬일 용택안타
세명침울 홍민쒼나
점수보라 손짓하네
두산잔루 수빈병살
이놈심판 엘지승리
그와중에 키스타임
두산지고 부러워져
엘지사점 곰무득점
사대영이 이름됐네

폭풍교정 빠져들어
논픽션갑 마쓰모토
계속내줘 싹다출간
주소보내 달라마요
열혈독자 사서본다
신간발송 사양패기
편집장의 자필쪽지
탐나지만 그까짓것
그까지것 뭐가맞지
교정이란 이런거지
나담에또 가고싶어
마쓰모토 논픽션때
독자교정 불러줘요
이번교정 혼자신청
다들반성 편애나빠
마쓰모토 미미여사
똑같이다 사랑해줘
피니스아 프리카에
편집장님 책감사요
책선물이 제일좋아
짐승의길 상권까지
얼씨구나 두권일세


미미라면 북스피어
세이초는 북모비딕
타출판사 왠지서운
왠지웬지 뭐가뭔지
찾아보자 독자교정
이런여운 남기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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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젠장 엘지스윕

 

 

 

시조(가아니라가사래요5월25일금요일오전2시57분수정)출처 북스피어 : http://booksfear.com/guestbook

지은이 : 사대영(당시스코어래요)

 

 

 

 

 사진과 함께 보는 리뷰는 요쪽, 네이버 블로그 본관 이용하시오. :

http://cameraian.blog.me/130138918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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