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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무레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엔 반려동물이란 이름이 없었습니다.
애완동물, 애완견 같은 말을 썼었죠. 그리고 그 때에 저는 몇 마리인가 동물을 키웠더랬습니다. 첫 번째 키웠던 아이는... ... 이름이 기억 안 날 정도로 짧은 시간동안 집을 거쳐 갔고(하루 있다 딴 집 감) 두 번째 키웠던 아이는 “핑”이란 이름의 치와와 잡종, 그리고 세 번째 키운 아이는 마르티스였나...(?) 아무튼, “초롱이”. 초롱이는 중학교 때 하교하다가 비틀거리며 걷던 아이를 놀라 아버지와 함께 데려왔었습니다. 동물병원에 갔더니 감기가 심하게 들어 죽을 거라고(-_-) 했는데, 아버지께서 “흥 그까짓 거” 하고는 약국에서 감기약과 주사 앰플 등을 구입하셔서(당시엔 이런 걸 약국에서 그냥 팔았습니다) 맞춰서 일주일 만에 기적적으로 살려냈습니다. 이후 초롱이는 한 달쯤 살다가 다른 집으로 보내고, 핑 역시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이사하는 날 개털 알러지가 있었던 아주머니가 집 청소를 하다가 쓰러지셨다. 그걸 본 엄마가 비명을 지르며 핑을 다른 집에 보냈다...고 말했는데, 알고 보니 뻥이었다. 나하고 동생이 지랄할까봐 거짓말했다고 20년 후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분위기로 밝혔다.) 다른 집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오랜만에, 저희 집에 개 한 마리가 왔습니다. “몽”이라는 녀석입니다. 토이푸들입니다만, 하도 잘 먹어서 덩치가 산만합니다. 이 녀석 역시 다른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참 구질구질한 사연이 있습니다. 처음 왔을 때에 피부병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집에서 키우려다가 우리 집에 슝~ 넘겨서 키우게 됐죠. 첫 인상은 비실이였습니다. 발 근처로 와서 낑낑거리더니 “끙차” 소리가 날 정도로 힘든 포즈로 앞발을 다리에 대고 “나 무릎살이 시켜줘.”라고 절 쳐다보더군요. 대체 이 자식은 뭘 믿고 이리 초면에 까부나... 하면서도 일단 무릎살이를 시켰는데 아, 이런!
따뜻하더군요.
그리고 저는 그 따뜻함에서 생명을 느꼈습니다.
이후 몽이는 중간에 엄마가 키우기 싫다며(-_-) 딴 집에 준다고 난리를 치더니만, 결국 이집 저집을 떠돌다 3개월만에 다시 왔습니다. (다른 집에서 피부병이 싫은지 다 돌려보냄.) 희한한 것이, 이후 몽이는 피부병이 싹 낫더니 아주 잘 자라고 있습니다. 오히려 너무 잘 먹어서 가끔 토사광란을 일으키는, 이제 곧 3살입니다. 지금은 엄마와 함께 뒷산 산책을 다녀와 목욕 후, 그 성질을 다스리지 못해(나 닮았음. 성질 나쁜 거.-_-) 등 뒤에서 발소리마저 귀여운 통통 소리를 내며 걷는지 뛰는지 모를 속도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 자식아 좀 조용히 좀 있어봐. 아래층에서 올라오겠다.)
저는 이 녀석의 뛰는 모습, 노는 모습을 보며 가끔 생각합니다.
‘이 녀석은 나보다 덜 살겠지. 분명 나는 이 녀석이 죽는 걸 언젠가 보게 되겠지. 그럼 나는, 어떻게 될까.’
실제로, 최근 몽이는 심하게 아팠습니다. 거의 일주일동안 잘 먹지도 못하고 토하고 설사하고를 반복해서 집안 식구들이 새파랗게 질려 전전긍긍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밤에 몽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잠시 울었습니다. 속삭였습니다.
“아프지 마라. 그저 곁에 있어줘.”
다행히 지금은 멀쩡해졌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이때의 기억이 자꾸만 아른거리더군요.
“잘 살고 있어요?”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무레 요코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은 식당을 차린 여자, 그 식당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에피소드와 고양이의 이야기. 따뜻한 봄날에 어울리는 마음 따뜻한 소설입니다. 음식의 맛이 있고, 사람의 온기가 있고, 꽃의 향기가 오감을 자극하는 페이지가 가득합니다. 그리고 고양이라는 동물의 체온을 통해 제 6감이라고 할 수 있을 情이 있습니다. 때문에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을 그냥 넘길 수 없습니다. 저도 모르게 포스트잇을 붙여서 “아아, 그런 때도 있었을 거야.”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부분은 제가 바리스타로 일할 때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특히 오늘 읽은 부분은 제가 예전에 일했던 에스프레소 1온스, 현재는 에스프레소 진으로 이름이 바뀐 장충동 카페 주인언니를 무척이나 상기시켜, 페이지 몇 장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카톡으로 그 페이지와 책 표지를 주인언니한테 보내줬죠.
이 책은 그런 책입니다. 읽다 보면 누군가 생각나는 책, 오랜 안부를 묻고 싶은 책, 그리하여 “잘 살고 있어요?” 하고 확인하고 싶은 그런 책.
왜냐하면, 삶은 지금 이 순간 지속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 순간은, 아주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사라져버리니까요.
그리하여 저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또르르 눈물 한 방울을 흘렸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농담에 그저 감동을 받아서, 이 삶이 얼마나 행복한가 스스로에게 물으며,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 그 느낌을 되새기며.
책을 덮고 카페를 나섰습니다. 밖은 어느덧 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제 가슴에도 꽃이 피었음을 알았습니다.
“음식은 말이지, 몇 시간, 몇 분, 이렇게 시간만 정확하게 잰다고 해서 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야. 큰 술, 작은 술 하는 것도 그저 어림치일 뿐이고. 자기 눈으로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오감으로 만드는 거야. 재료 앞에서, 나는 이것들로 뭘 만들고 싶은가, 어떤 식으로 만들고 싶은가를 늘 생각해야 해. 이것저것 욕심만 부리면 안 된다는 거지.” p.22
면접 전에 아키코는 그녀들의 이력서를 보지 않았다. 사람을 뽑을 때, 이력서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판사를 다니던 시절, 사원을 채용하면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참고하기는 했지만 입사시험에 합격해 들어온 사람들 모두가 우수한 것은 아니었다. 저마다 장점과 단점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것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은 회사의 역할이지만, 그 전에 인간으로서 문제가 있는 사원도 많았다.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부터 남을 헐뜯는 사람, 자신의 권리는 주장하면서 의무는 다하지 않는 사람, 부하 직원에게는 거드름을 피우면서 윗사람에게는 아첨을 떠는 상사까지. 다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 들어온 사람들이었지만, 한숨이 나왔다. p.39
타로는 기쁨의 절정에 올라 콧구멍까지 벌름거린다. 그 후로는 잠자리에 들 때까지 줄곧 아키코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같이 침대에 들어간다. 잠자리에서 팔베개를 해주면 타로는 가장 행복해한다. p.74
“내가 여태 이런 걸 입고 살았단 말이야?”
마른 빨래를 거둬들일 때, 한 장 한 장 펼쳐서 꼼꼼히 보고 개킨 것이 아니라 미처 몰랐다. 구멍이 뚫렸거나 찢어져 있었으면 금방 알았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낡은 것이라 눈치 채지 못하고 그냥 접어 넣은 것이다. 젊었을 때에 비하면 자잘한 부분이 잘 안 보이는 탓도 있었다. p.149
전철은 아키코에게 특별한 장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p.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