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vs 책이라는 기획으로 별 생각없이 이 카테고리를 적기 시작한지 어언 ... ... 몰라 기억 안 나. 아무튼 어쩌다 보니 책 vs 책이 6까지 왔습니다. 그동안의 책 vs 책을 잠시 살펴보기로 합니다.
책 vs 책 1 - 활자 잔혹극 vs 종료되었습니다 http://cameraian.blog.me/130137942413 책 vs 책 2 - 드라큘라vs드라큘라vs드라큘라 (?) http://cameraian.blog.me/130138141931 책 vs 책 3 네가 사랑을 알아? 더 리더 vs 내 연애의 모든 것 http://cameraian.blog.me/130138193872 책 vs 책 4 야구장 한 번도 못 가본 변소의 야구소설올스타전 http://cameraian.blog.me/130138918989 책 vs 책 5 추리소설 속 추리소설가를 만나다 : 빨간스웨터 vs 이인들의 저택 vs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http://cameraian.blog.me/130146763395 첫 번째엔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야기였고, 두 번째는 책의 장정과 번역 등 책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세 번째엔 말 그대로 연애소설이었고요, 네 번째는 야구소설, 다섯 번째는 국가 별 추리소설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섯 번째는 국내에 많은 팬층을 거느린 우타노 쇼고 특집입니다.
책 vs 책 6 밀실은 이렇게 써먹는 겁니다.
우타노 쇼고 vs 우타노 쇼고
우타노 쇼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입니다. 이 작품은 전체적인 흐름은 지루한 감이 있으니 충격적인 반전으로 유명합니다. 저 역시 우타노 쇼고의 수많은 작품들 중 이 작품으로 가장 먼저 우타노 쇼고를 접했습니다. 어른이 되어 '추리소설을 읽겠다!' 결심하고 최초로 읽은 추리소설들 중 한 권이었는데요, 전개는 지루하였으나 마지막 결론이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우타노 쇼고의 작품들 중 범인과 트릭을 맞추지 못한 작품이 딱 두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번에 읽은 책 중 한 편이었다고. 또 우타노 쇼고 하면 빼먹을 수 없는 작품이 있습니다. '밀실살인게임' 시리즈입니다. 역시 한스미디어에서 출간하는 시리즈인데요, 한 마디로 줄거리의 설명이 가능합니다. 말 그대로 '밀실에서 살인게임을 하는 이야기(?)'랄까요. 재 마니악스까지 나와 있습니다. 자세한 서평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
우타노 쇼고 님, 당신, 발전하고 있습니까? …… 밀실살인게임 시리즈 서평 http://cameraian.blog.me/130105107647
츤데레데레츤데레츤? 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 우타노 쇼고 http://cameraian.blog.me/130142084353

시간 죽이기엔 이만한 작품이 없습니다. 그밖에 매우 독특한 시리즈로는 씨엘북스에서 출간 중인 마이다 히토미 시리즈가 있습니다. 마이다 히토미라는 소녀의 성장과정과 추리소설을 접목시킨 흥미로운 시리즈입니다. 우타노 쇼고는 지금까지 열거한 시리즈 외에도 수많은 작품을 낸 중견작가입니다. 이리 많은 작품을 낸 이유, 국내 출간된 작품이 많은 이유는 '다작하는 작가'라서 라는 이유가 붙을 수도 있겠으나, 사실이 작가는 데뷔가 한참 전입니다. 1988년, 일본 본격 추리소설의 대가 시마다 소지의 추천으로 등단했습니다. 등단 시기가 이르니까 작품이 많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또, 오랜 시각 글을 썼으니 그 완성도가 차츰 더더욱 풍성해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겠습니다.
이 상황에서 이번에 책 vs 책으로 선택한 책은 바로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와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입니다. 이 두 책을 고른 이유와 또 이렇게 책 vs 책을 적게 된 계기(눈치 채셨겠지만 이거 적기 상당히 귀찮습니다. 왠만큼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적기 싫어. 길잖아, 길잖아.) 바로 최근 읽은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이 생각보다 상당히 재미있었거든요. 때문에 그닥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좀 더 읽어보자, 하는 생각으로 최근 e모 씨한테 추천을 받아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를 구입했습니다. 하여 연달아 읽었는데 비교할 만하겠더군요.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는 저작권 페이지에 표시된 바에 따르면 2003년입니다.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각기 작품의 제목은 '인형사의 집' '집 지키는 사람' '즐거운 나의 집' '산골 마을' '거주지 불명'입니다. '인형사의 집'은 말처럼 인형사가 등장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오는 피그말리온이 현세에 등장한달까요. 단편의 구성형식이 마치 시마다 소지의 '최후의 일구'를 보는 듯하더군요. '집 지키는 사람'은 밀실살인을 다룹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기시 유스케의 작품집에서 같은 트릭을 본 탓에 미리 반전을 알아버려 보는 흥미가 조금 떨어졌습니다. 세 번째 작품 '즐거운 나의 집'은 범인 및 트릭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그는 툇마루에 앉아 있다. 손에는 하모니카가 쥐어져 있다. 크게 숨을 빨아들여 하모니카 구멍에 입술을 대고 부드럽게 숨을 불어냈다.
도, 미, 파, 파, 솔, 솔, 미, 파, 미, 파, 레, 미-.
멜로디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그는 하모니카를 내려놓고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집뿐이리
요전에 하모니카를 불 때에는 옆에 누가 앉아 있었던 것 같지만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행복한 기분을 맛본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오늘도 툇마루에 앉았다. 그의 친구는 하모니카뿐이다. (p.231)
범인도 트릭도 잡지 못한 것은 우타노 쇼고 작품 중 두 번째였습니다. 약간 분했습니다. 네 번째 작품 '산골마을'은 어딘지 모르게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가 생각나는 작품입니다. 따뜻합니다. 다섯 번째 작품은 '거주지 불명'은 위트와 스릴이 넘칩니다. 마지막 반전까지 후후 하고 웃으며 보았습니다.
다섯 작품은 작품집의 제목처럼 모두 '집'을 다룹니다. 과연, 제목처럼 유쾌하고, 따뜻합니다. 가족이 뭐더라... 잠시 생각케 합니다. 다섯 편의 작품은 제각기 완성도 면에서는 좀 떨어집니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감탄할 만합니다. 저는 어떤 소설을 읽든 간에 반짝반짝인다, 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떤 때엔 그 소설의 한 문장이, 한 단락이, 혹은 그 책 자체가 반짝이는데요, 이 책이 그랬습니다. 책이 반짝반짝반짝, 아니 이건 무슨 오래 전 디스코 클럽의 사이킥 볼이야 뭐야? 싶을 정도로 휘황찬란했습니다. 문장이 반짝이고 소재가 반짝였습니다. 반짝임에 비해 완성도는 아쉬웠습니다만 뭐 어떻습니까, 덕분에 너무 즐거웠는 걸요. 정말 빠르게 책장이 넘어갔고, 때문에 우타노 쇼고의 다른 작품을 또 읽고 싶어졌는 걸요. 그리하여 다음으로 읽은 책이 바로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였습니다.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저작권 페이지에 표시된 바에 따르면 2005년입니다. 세 편의 중편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세 편의 중편은 각기 다른 문고판에 실렸던 것을 모아서 책으로 낸 것이라고 합니다. 놀라운 점은 뒤쪽 판권페이지인데요, 무려 8쇄입니다. 제가 이번에 구입한 책은 2012년 2월에 찍은 1판 8쇄입니다.
첫 번째 작품 표제작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정말 많이 떠오르는 작품으로 눈 덮인 산 속 밀실을 다룹니다. 이 작품을 보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과 '명탐정의 저주'가 떠오릅니다. 블랙코미디가 잘 녹아든 추리소설이랄까요. 두 번째 작품 '생존자, 1명'은 외딴 섬 밀실사건입니다. 오옴진리교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지하철 테러사건, 그 후 도망친 사람들이 섬 안에서 살인사건을 겪는다. 과연 그 진실은? 같은 카피문구가 붙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세 번째 작품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는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누구나 꿈꿀 그런 설정이 등장합니다. 좀 길지만, 소설의 서두를 그대로 옮겨와 봅니다.
"사촌동생 료지 군은 유치원에 다닐 무렵 야구배트와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익혔고, 초등학교 3학년 때에는 소년야구팀에 들어갔으며, 초등학교 졸업문집에는 장래희망이 프로야구 선수라고 적었습니다. 중학교에서는 당연히 야구부였고, 고등학교 때는 다른 지역에 있는 야구 강호로 전학까지 갔고, 고시엔 출장은 아깝게 놓쳤지만 야구를 위해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인 팀에서 러브콜도 받았습니다. 일 년차에 술과 여자를 알아버린 탓에 결국 료지는 프로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배트를 놓았지만, 인생의 한 시기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진지하게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꿈이 아니라 장래의 목표로 말입니다. 이것은 료지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야구소년이라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가시마 시게오와 자신을 겹쳐보았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웃집 나카자와 씨의 아들 다이시 군은 중학교 2학년 때 음악에 눈뜬 뒤, 다음 해 학교 축제에서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섰고, 고등학교 삼 년 동안 경음악부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졸업한 뒤에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역 앞에서 연주를 하는 나날을 보내다가 작년에 인디즈에서 CD를 내고, 언젠가 메아저 데뷔를 하겠다며 길거리에서 수행을 계속하고 있다더군요. 음악으로 먹고 사는 것이 다이시의 꿈이고, 그것은 음악을 하는 모든 이들의 꿈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99퍼센트의 사람들은 꿈이 깨지고, 어른이 된 뒤에 젊음의 치기에 낯을 붉히겠습니다만, 꿈을 쫓는 시점에서 꿈은 결코 몽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가능한 목표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탐정소설 애호가인 저는 어떠한 꿈을 좇으면 될까요?
동서고금의 작품을 닥치는 대로 읽거나, 별 다섯 개를 순위를 매기거나, 트릭을 데이터베이스화하거나 할까요? 쇼하쿠칸 서점판 '도구라 마구라' 초판본이나 '혼진살인사건' 첫회 원고가 게재된 <호세키>창간호를 책장에 고이 모셔두면 될까요? 아니면 런던 채링크로스 로드의 고서점에서 딕슨 카의 미발표 원고를 발굴해서 이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도록 힘을 쏟을까요? 아니면 에도가와 란포 상을 꿈꾸며, 공부나 생업을 하는 틈틈이 원고지를 마주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일까요?
분명 그런 꿈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란포 식으로 말씀드리자면 '구원하기 어려운 엽기의 사도'였습니다.
제가 탐정소설을 좋아한 이유는 아마추어 탐정의 화려한 활약에 가슴이 두근거렸기 때문이고, 정교하고 치밀한 밀실 트릭에 숨을 삼켰기 때문이고, 전대미문의 살해동기에 전율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그런 것들 이상으로 '관'이라는 것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프레이그 코트의 살인'을 읽은 가을날 오후, '흑사관 살인사건'을 읽은 눈 오는 밤, 책장을 덮고 턱을 괴고서 먼 곳을 바라보며 관 안에 서 있는 저의 모습을 상상하면 저절로 긴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꼭 관에 살겠다고 가슴속에 맹세했습니다. 투바이포 건축공법으로 지은 마이 홈이 아닙니다. 관입니다, 마이 관. 시계탑이 있는, 서양식 갑옷이 장식된, 벽난로 위에 은색 촛대가 늘어서 있는, 강령회가 열릴 것 같은,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폭풍에 바깥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목 없는 시체가 발견될 것 같은, 관 말입니다.
20세기, 저에게 관은 꿈이었습니다. 21세기, 저에게 관은 현실입니다. 저는 드디어 이렇게 관의 주인으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요. 어서 오십시오, 저의 성, 산세이관에."
후유키 도이치로는 입술을 다물고,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보고 다시 중앙으로 고개를 돌린 뒤에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아낌없는 박수가 그를 감쌌다. (pp.217~9)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를 모방한 '관'으로 불릴 수 밖에 없는 건물을 지어 친구들을 초대, 그 안에서 일생 일대의 추리퀴즈를 진행한다! 자,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우타노 쇼고는 본격추리의 형태를 따르며 우리를 즐거웁게 관으로 초대합니다.
세 편의 작품은 간단한 앞의 소개를 보아 미루어 짐작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말 그대로 오마쥬 형태입니다. 요네자와 호노부가 '추상오단장'에서 그러했듯이 이 중편소설들 역시 각기 요코미조 세이시, 아가사 크리스티, 아야츠지 유키토를 떠올리게 합니다. 전체적으로는 조금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처음 추리소설을 접하는 독자들, 특히 '본격추리소설이 뭐예요? 먹는 건가요? 뿌잉뿌잉?'하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권해줄 '모범답안' '초등학생 전과'같은 소설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완성도가 높다는 말입니다. 앞에서 읽은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가 반짝거린다면 이 작품은 완성도가 끝내준달까요(!)
때문에 기대하게 된단 말입니다. 우타노 쇼고는 많은 작품을 적었고,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입니다. 작품의 편차가 심하기도 합니다만 위의 두 소설집을 생각한다면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단 말이지요. 완성도가 높으면서도 반짝거리는 작품, 그런 작품 하나 내 주실 거야, 이런 기대 말이에요. 그러므로 말해 봅니다. "역사성 깊고, 반짝이면서, 완성도가 높고, 캐릭터가 매력적인 그런 작품, 써주실 거죠? 응?"하고 협박 비슷한 기대를 심어 봅니다.
우타노 쇼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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