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의 한 방울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삶은 죽음과 등을 맞댄 채 살아갑니다. 인간의 생을, 동물의 생을, 식물의 생을 또 지구의 생을 살아갑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생이란 죽음과 같다 하겠습니다. 삶이란 태어남이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어느 순간 올지 모를 죽음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으니까요. 허나 우리는 매 순간순간을 살아가면서도, 숨을 쉬면서도, 우리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웃고 떠들면서도 고개를 돌리면 그 사실을 잊고 고통이나 슬픔에 젖습니다. 괴로워하다가 심지어는 자살에 이르기도 합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왜 살아야 하느냐고. 그 의문은 고통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넌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해." "할 수 있어."라는 말은 가끔 인간의 가슴을 찌르는 바늘로 변합니다. 우리의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해서, 더 이상 무엇을 어찌 해야 하냐고 묻고 마침내는 죽겠다는 마음마저 먹게 합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에 빠진 적이 있습니까?

이츠키 히로유키의 '대하의 한 방울'

 

 

이츠키 히로유키의 '대하의 한 방울'은 그러한 인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의 목소리입니다. 작가 자신이 지금의 자신이 되기까지 어떤 일을 겪었는가를 이야기하는, 그런 에세이집입니다. 이츠키 히로유키는 대단한 작가입니다. 받은 상 목록이 한 문단이 넘는 작가이며, 나오키상을 받으며 데뷔해 나오키 상 심사의원으로 32년간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허나 그 자신의 역사를 들여다 보자면 소소합니다. 담담합니다. 과연 이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일까 싶습니다. 작가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어른입니다. 헌데 이상하게 매 장 매 장 넘길 때마다 가슴이 아립니다. 한 문장 한 문장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자꾸만 맺힙니다. 울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한 방울 흘립니다. 이 한 방울은 거대한 강의 한 방울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 강의 이름은 이 책을 읽은 수많은 독자들일 테고요.

 

누구나 쉽게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냥 사는 거다, 넌 별 것 아니다, 세상에 특별한 사람은 없어. 또 누구나 쉽게 하는 말일 것입니다. 넌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될 거야, 넌 특별해, 넌 나한테 하나밖에 없는 아들(딸)이야. 작가는 이 말들이 사람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조근조근 짚어갑니다. 보통 생각하자면 뒤의 말, 특별하다는 말의 편을 들어줄 것 같으나 작가는 다릅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우리는 결코 특별하지 않다. 우리는 아주 하찮은 존재다. 그러므로 얼마나 다행인가. 얼마나 행복한가. 세상에나, 이렇게 하찮은 존재가 지금 살아있다! 넌 정말 대단하다! 지금 넌 숨을 쉬며 살아있어! 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위로를 주는 한 마디인지. 또 이 단순한 이야기를 그토록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란, 어찌나 감격스러운지. 

 

새우젓 담그는 방법을 아십니까, 여러분? 새우젓은 깔대기 모양으로 기다랗게 구멍을 팝니다. 양 옆과 아래쪽에 깊게 구멍을 판 후에 그 위에 새우젓 항아리를 넣습니다. 아래쪽의 빈 공간과 양 옆의 빈 공간을 통해 보다 깊은 숙성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깊은 숙성을 위한 빈 구멍, 이 구멍 속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상상해 봅니다. 만약 누군가 이 구덩이에 빠졌다면 어떻게 될까요. 항아리 아래 깊은 구덩이에 빠져서 "살려주세요!"라고 말해도 새우젓 항아리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면... ...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죽을까요, 살까요? 이제부터 인생게임 시작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 구덩이에 빠지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아래의 보기에서 선택하세요.

 

1. 죽는다.

2. 산다.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대신 과연 이 구덩이에 빠진 사람이 살아남았다면 어떤 사람일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했느냐고 묻겠습니다. 그리고 대답하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십시오. 찾으십시오. 살아남는 방법을, 깊은 구덩이만큼이나 깊은 절망에 빠졌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읽으십시오. 함께 살아갑시다. 난 여기 있습니다. 당신은 거기 있습니다. 우리 그저, 서로를 느끼며 함께 살아갑시다. 마지막 축제의 그날, 죽음이 우리의 입에 키스하는 그 순간까지 행복하게, 지금처럼 그저 그렇게 나와 함께 웃고 떠들고 슬픔도 고통도 모두 품에 안고 살아갑시다.

 

그걸로 족합니다.

그저 살아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당신도,

나도,

살아있어 얼마나 행복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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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vs 책이라는 기획으로 별 생각없이 이 카테고리를 적기 시작한지 어언 ... ... 몰라 기억 안 나. 아무튼 어쩌다 보니 책 vs 책이 6까지 왔습니다. 그동안의 책 vs 책을 잠시 살펴보기로 합니다.

 

책 vs 책 1 - 활자 잔혹극 vs 종료되었습니다 http://cameraian.blog.me/130137942413 책 vs 책 2 - 드라큘라vs드라큘라vs드라큘라 (?) http://cameraian.blog.me/130138141931 책 vs 책 3 네가 사랑을 알아? 더 리더 vs 내 연애의 모든 것 http://cameraian.blog.me/130138193872 책 vs 책 4 야구장 한 번도 못 가본 변소의 야구소설올스타전  http://cameraian.blog.me/130138918989 책 vs 책 5 추리소설 속 추리소설가를 만나다 : 빨간스웨터 vs 이인들의 저택 vs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http://cameraian.blog.me/130146763395 첫 번째엔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야기였고, 두 번째는 책의 장정과 번역 등 책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세 번째엔 말 그대로 연애소설이었고요, 네 번째는 야구소설, 다섯 번째는 국가 별 추리소설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섯 번째는 국내에 많은 팬층을 거느린 우타노 쇼고 특집입니다.

 

책 vs 책 6 밀실은 이렇게 써먹는 겁니다.

우타노 쇼고 vs 우타노 쇼고

 

 

 

 

 

 

 

 

 

 

우타노 쇼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입니다. 이 작품은 전체적인 흐름은 지루한 감이 있으니 충격적인 반전으로 유명합니다. 저 역시 우타노 쇼고의 수많은 작품들 중 이 작품으로 가장 먼저 우타노 쇼고를 접했습니다. 어른이 되어 '추리소설을 읽겠다!' 결심하고 최초로 읽은 추리소설들 중 한 권이었는데요, 전개는 지루하였으나 마지막 결론이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우타노 쇼고의 작품들 중 범인과 트릭을 맞추지 못한 작품이 딱 두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번에 읽은 책 중 한 편이었다고. 또 우타노 쇼고 하면 빼먹을 수 없는 작품이 있습니다. '밀실살인게임' 시리즈입니다. 역시 한스미디어에서 출간하는 시리즈인데요, 한 마디로 줄거리의 설명이 가능합니다. 말 그대로 '밀실에서 살인게임을 하는 이야기(?)'랄까요. 재 마니악스까지 나와 있습니다. 자세한 서평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

 

우타노 쇼고 님, 당신, 발전하고 있습니까? …… 밀실살인게임 시리즈 서평 http://cameraian.blog.me/130105107647

츤데레데레츤데레츤? 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 우타노 쇼고 http://cameraian.blog.me/130142084353

 

 

 

 

 

 

 

 

시간 죽이기엔 이만한 작품이 없습니다. 그밖에 매우 독특한 시리즈로는 씨엘북스에서 출간 중인 마이다 히토미 시리즈가 있습니다. 마이다 히토미라는 소녀의 성장과정과 추리소설을 접목시킨 흥미로운 시리즈입니다. 우타노 쇼고는 지금까지 열거한 시리즈 외에도 수많은 작품을 낸 중견작가입니다. 이리 많은 작품을 낸 이유, 국내 출간된 작품이 많은 이유는 '다작하는 작가'라서 라는 이유가 붙을 수도 있겠으나, 사실이 작가는 데뷔가 한참 전입니다. 1988년, 일본 본격 추리소설의 대가 시마다 소지의 추천으로 등단했습니다. 등단 시기가 이르니까 작품이 많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또, 오랜 시각 글을 썼으니 그 완성도가 차츰 더더욱 풍성해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겠습니다.

 

 

 

 

 

 

 

 

 

이 상황에서 이번에 책 vs 책으로 선택한 책은 바로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와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입니다. 이 두 책을 고른 이유와 또 이렇게 책 vs 책을 적게 된 계기(눈치 채셨겠지만 이거 적기 상당히 귀찮습니다. 왠만큼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적기 싫어. 길잖아, 길잖아.) 바로 최근 읽은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이 생각보다 상당히 재미있었거든요. 때문에 그닥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좀 더 읽어보자, 하는 생각으로 최근 e모 씨한테 추천을 받아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를 구입했습니다. 하여 연달아 읽었는데 비교할 만하겠더군요.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는 저작권 페이지에 표시된 바에 따르면 2003년입니다.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각기 작품의 제목은 '인형사의 집' '집 지키는 사람' '즐거운 나의 집' '산골 마을' '거주지 불명'입니다. '인형사의 집'은 말처럼 인형사가 등장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오는 피그말리온이 현세에 등장한달까요. 단편의 구성형식이 마치 시마다 소지의 '최후의 일구'를 보는 듯하더군요. '집 지키는 사람'은 밀실살인을 다룹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기시 유스케의 작품집에서 같은 트릭을 본 탓에 미리 반전을 알아버려 보는 흥미가 조금 떨어졌습니다. 세 번째 작품 '즐거운 나의 집'은 범인 및 트릭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그는 툇마루에 앉아 있다. 손에는 하모니카가 쥐어져 있다. 크게 숨을 빨아들여 하모니카 구멍에 입술을 대고 부드럽게 숨을 불어냈다.

도, 미, 파, 파, 솔, 솔, 미, 파, 미, 파, 레, 미-.

멜로디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그는 하모니카를 내려놓고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집뿐이리

요전에 하모니카를 불 때에는 옆에 누가 앉아 있었던 것 같지만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행복한 기분을 맛본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오늘도 툇마루에 앉았다. 그의 친구는 하모니카뿐이다. (p.231)

 

 

범인도 트릭도 잡지 못한 것은 우타노 쇼고 작품 중 두 번째였습니다. 약간 분했습니다. 네 번째 작품 '산골마을'은 어딘지 모르게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가 생각나는 작품입니다. 따뜻합니다. 다섯 번째 작품은 '거주지 불명'은 위트와 스릴이 넘칩니다. 마지막 반전까지 후후 하고 웃으며 보았습니다.

 

다섯 작품은 작품집의 제목처럼 모두 '집'을 다룹니다. 과연, 제목처럼 유쾌하고, 따뜻합니다. 가족이 뭐더라... 잠시 생각케 합니다. 다섯 편의 작품은 제각기 완성도 면에서는 좀 떨어집니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감탄할 만합니다. 저는 어떤 소설을 읽든 간에 반짝반짝인다, 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떤 때엔 그 소설의 한 문장이, 한 단락이, 혹은 그 책 자체가 반짝이는데요, 이 책이 그랬습니다. 책이 반짝반짝반짝, 아니 이건 무슨 오래 전 디스코 클럽의 사이킥 볼이야 뭐야? 싶을 정도로 휘황찬란했습니다. 문장이 반짝이고 소재가 반짝였습니다. 반짝임에 비해 완성도는 아쉬웠습니다만 뭐 어떻습니까, 덕분에 너무 즐거웠는 걸요. 정말 빠르게 책장이 넘어갔고, 때문에 우타노 쇼고의 다른 작품을 또 읽고 싶어졌는 걸요. 그리하여 다음으로 읽은 책이 바로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였습니다.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저작권 페이지에 표시된 바에 따르면 2005년입니다. 세 편의 중편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세 편의 중편은 각기 다른 문고판에 실렸던 것을 모아서 책으로 낸 것이라고 합니다. 놀라운 점은 뒤쪽 판권페이지인데요, 무려 8쇄입니다. 제가 이번에 구입한 책은 2012년 2월에 찍은 1판 8쇄입니다.

 

첫 번째 작품 표제작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정말 많이 떠오르는 작품으로 눈 덮인 산 속 밀실을 다룹니다. 이 작품을 보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과 '명탐정의 저주'가 떠오릅니다. 블랙코미디가 잘 녹아든 추리소설이랄까요. 두 번째 작품 '생존자, 1명'은 외딴 섬 밀실사건입니다. 오옴진리교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지하철 테러사건, 그 후 도망친 사람들이 섬 안에서 살인사건을 겪는다. 과연 그 진실은? 같은 카피문구가 붙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세 번째 작품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는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누구나 꿈꿀 그런 설정이 등장합니다. 좀 길지만, 소설의 서두를 그대로 옮겨와 봅니다.

 

 

"사촌동생 료지 군은 유치원에 다닐 무렵 야구배트와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익혔고, 초등학교 3학년 때에는 소년야구팀에 들어갔으며, 초등학교 졸업문집에는 장래희망이 프로야구 선수라고 적었습니다. 중학교에서는 당연히 야구부였고, 고등학교 때는 다른 지역에 있는 야구 강호로 전학까지 갔고, 고시엔 출장은 아깝게 놓쳤지만 야구를 위해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인 팀에서 러브콜도 받았습니다. 일 년차에 술과 여자를 알아버린 탓에 결국 료지는 프로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배트를 놓았지만, 인생의 한 시기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진지하게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꿈이 아니라 장래의 목표로 말입니다. 이것은 료지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야구소년이라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가시마 시게오와 자신을 겹쳐보았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웃집 나카자와 씨의 아들 다이시 군은 중학교 2학년 때 음악에 눈뜬 뒤, 다음 해 학교 축제에서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섰고, 고등학교 삼 년 동안 경음악부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졸업한 뒤에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역 앞에서 연주를 하는 나날을 보내다가 작년에 인디즈에서 CD를 내고, 언젠가 메아저 데뷔를 하겠다며 길거리에서 수행을 계속하고 있다더군요. 음악으로 먹고 사는 것이 다이시의 꿈이고, 그것은 음악을 하는 모든 이들의 꿈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99퍼센트의 사람들은 꿈이 깨지고, 어른이 된 뒤에 젊음의 치기에 낯을 붉히겠습니다만, 꿈을 쫓는 시점에서 꿈은 결코 몽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가능한 목표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탐정소설 애호가인 저는 어떠한 꿈을 좇으면 될까요?

동서고금의 작품을 닥치는 대로 읽거나, 별 다섯 개를 순위를 매기거나, 트릭을 데이터베이스화하거나 할까요? 쇼하쿠칸 서점판 '도구라 마구라' 초판본이나 '혼진살인사건' 첫회 원고가 게재된 <호세키>창간호를 책장에 고이 모셔두면 될까요? 아니면 런던 채링크로스 로드의 고서점에서 딕슨 카의 미발표 원고를 발굴해서 이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도록 힘을 쏟을까요? 아니면 에도가와 란포 상을 꿈꾸며, 공부나 생업을 하는 틈틈이 원고지를 마주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일까요?

분명 그런 꿈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란포 식으로 말씀드리자면 '구원하기 어려운 엽기의 사도'였습니다.

제가 탐정소설을 좋아한 이유는 아마추어 탐정의 화려한 활약에 가슴이 두근거렸기 때문이고, 정교하고 치밀한 밀실 트릭에 숨을 삼켰기 때문이고, 전대미문의 살해동기에 전율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그런 것들 이상으로 '관'이라는 것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프레이그 코트의 살인'을 읽은 가을날 오후, '흑사관 살인사건'을 읽은 눈 오는 밤, 책장을 덮고 턱을 괴고서 먼 곳을 바라보며 관 안에 서 있는 저의 모습을 상상하면 저절로 긴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꼭 관에 살겠다고 가슴속에 맹세했습니다. 투바이포 건축공법으로 지은 마이 홈이 아닙니다. 관입니다, 마이 관. 시계탑이 있는, 서양식 갑옷이 장식된, 벽난로 위에 은색 촛대가 늘어서 있는, 강령회가 열릴 것 같은,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폭풍에 바깥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목 없는 시체가 발견될 것 같은, 관 말입니다.

20세기, 저에게 관은 꿈이었습니다. 21세기, 저에게 관은 현실입니다. 저는 드디어 이렇게 관의 주인으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요. 어서 오십시오, 저의 성, 산세이관에."

후유키 도이치로는 입술을 다물고,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보고 다시 중앙으로 고개를 돌린 뒤에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아낌없는 박수가 그를 감쌌다. (pp.217~9)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를 모방한 '관'으로 불릴 수 밖에 없는 건물을 지어 친구들을 초대, 그 안에서 일생 일대의 추리퀴즈를 진행한다! 자,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우타노 쇼고는 본격추리의 형태를 따르며 우리를 즐거웁게 관으로 초대합니다.

 

세 편의 작품은 간단한 앞의 소개를 보아 미루어 짐작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말 그대로 오마쥬 형태입니다. 요네자와 호노부가 '추상오단장'에서 그러했듯이 이 중편소설들 역시 각기 요코미조 세이시, 아가사 크리스티, 아야츠지 유키토를 떠올리게 합니다. 전체적으로는 조금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처음 추리소설을 접하는 독자들, 특히 '본격추리소설이 뭐예요? 먹는 건가요? 뿌잉뿌잉?'하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권해줄 '모범답안' '초등학생 전과'같은 소설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완성도가 높다는 말입니다. 앞에서 읽은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가 반짝거린다면 이 작품은 완성도가 끝내준달까요(!)

 

때문에 기대하게 된단 말입니다. 우타노 쇼고는 많은 작품을 적었고,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입니다. 작품의 편차가 심하기도 합니다만 위의 두 소설집을 생각한다면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단 말이지요. 완성도가 높으면서도 반짝거리는 작품, 그런 작품 하나 내 주실 거야, 이런 기대 말이에요. 그러므로 말해 봅니다. "역사성 깊고, 반짝이면서, 완성도가 높고, 캐릭터가 매력적인 그런 작품, 써주실 거죠? 응?"하고 협박 비슷한 기대를 심어 봅니다.

 

우타노 쇼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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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 - 셰익스피어 희곡에서 배우는 정의
켄지 요시노 지음, 김수림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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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여러 분야의 책을 즐깁니다만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공감각적 분야 말입니다. 예를 들어 문학과 음악에 대한 이론을 사조별로 풀어낸던가, 처음엔 분명 양자물리학에 대한 글이었는데 한참 보니 이건 생철학인가? 싶은 책, 혹은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하는 내용인 줄 알았더니 삶을 논하더라, 이런 책들 말입니다. 이런 책들은 한 달음에 읽기가 아쉽습니다. 때문에 저는 야금야금 읽습니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심할 때엔 일 년에 걸쳐서, 혹은 몇 년에 걸쳐서. 즐겁기 때문입니다. 아깝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대한 모든 것과 내가 아는 모든 것과 앞으로 알게 될 모든 것들, 책을 읽고 쉬는 사이에 내가 알게 된 것에 대해 책 속에서 발견한 또다른 자아와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번에 읽은 책은 세 달에 걸쳐 읽은 켄지 요시노 교수의 '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입니다.

    

셰익스피어를 모르고는 문학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던가요? 저는 자주 들었는데 실제로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어쨌든 셰익스피어는 문학을 이야기할 때, 특히 영문학과 희곡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작가입니다. 저 역시 과가 과인 만큼 대학 다닐 때에 교수님께 귀에 딱지가 앉도록 셰익스피어의 대단함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고, 심지어는 방학숙제로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이니 5대희극이니 이런 걸 필사하라는 어마어마한 숙제를 요구받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전 안 했습니다. 당당하다! 와! 와!) 흔히 셰익스피어의 작품 안에는 삼라만상이 모두 담겨 있다고 합니다. 사실입니다. 하도 많은 작품을 쓴 데다가 그 작품의 완성도도 높습니다. 그 안에 숨은 내포의미들이란! 지금 봐도 입을 떠억 벌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 '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는 이런 수많은 셰익스피어의 희곡들 중 아홉 작품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작품은 저도 낯설었습니다. 직접 읽은 적은 없는 '티투스 안드로니쿠스'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미국의 9.11 테러 이후 동해보복,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정당성을 논합니다. 상당히 충격적인 서두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빨려들어가더군요. 두 번째 작품은 너무나 유명한 바로 그 '베니스의 상인'입니다. 재치 넘치는 여인 포샤의 정의로움을 이야기하는데요, 신선하더군요. 과연, 변호사들이란...! 후후. 하고 웃었습니다. 세 번째 작품은 '자에는 자로'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가 변호사의 자질에 대한 이야기라면 세 번째는 판사의 자질입니다. 변호사들의 감언이설에 어찌하면 넘어가지 않고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하는가에 대해 설을 풀고, 네 번째 작품은 오셀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예시된 사건은 O. J. 심슨! 세상에나, 장갑이 손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앗 스포일러다!) 다섯 번째 작품은 헨리아드 중 헨리 5세를 다루며 조지 부시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첫 번째 작품에서도 운을 떼기는 하였으나 다시 한 번 9.11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정당성을 이야기합니다. 여섯 번째 이야기는 멕베스 작품보다 더 유명한 멕베스 징크스를 이야기합니다. 멕베스를 공연할 때마다 안 좋은 일이 되풀이된다는 이야기인데요, 켄지 교수는 이 이야기에 대해 몇 가지 역설점과, 명쾌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형사 전문 변호사이자 법학교수인 앨런 더쇼비츠는 1996년에 발간된 그의 주목할 만한 수필집에서 '삶은 극적인 서사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먼저 '첫 번째 장에서 벽에 총이 걸려 있다고 설명했다면, 두 번째 장이나 세 번째 장에서는 반드시 총이 발포되어야 한다'란 안톤 체호프의 말부터 소개했다. 체호프가 작가들에게 했던 말이다. 더쇼비츠는 체호프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문학적 서사는 우리가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는 세계를 살고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문학적 서사의 세계에서는, '가슴 통증이 있은 다음에는 심장 발작이, 기침을 한 다음에는 폐결핵 증상이, 생명보험을 든 뒤에는 살인이, 전화 벨소리에는 극적인 소식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가슴 통증 뒤에 소화불량이 찾아오고, 기침을 하면 감기에 걸린 것이고, 생명보험을 들면 지긋지긋한 보험료 납입이 따라올 뿐이다. 아, 그리고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마케팅 서비스 업체 직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p.317~8)

 

 

학교 다닐 때 생각나서 "크핫!"하고 크게 웃었습니다. 안톤 체홉의 이야기는 저 역시 학교 수업 시간에 들었던지라.(후후)

 

일곱 번째 이야기는 햄릿입니다. 햄릿은 셰익스피어가 만든 여러 인물들 중 눈에 띄게 몽상적인 인물로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합니다. 복수를 하는 것과 살인을 범하는 죄 사이에서 큰 고민을 한달까요. 그런 인물을 통해 켄지 교수는 완벽한 정의란 과연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면 완벽한 정의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여덟 번째 이야기에서는 마침내 리어왕이 나옵니다. 리어왕을 생각하면 의례 떠올리게 되는 그 말, '정의가 도대체 무엇이지!'를 재점검시킵니다. 쇼킹하달까요, 그 시점이. (이런 분석은 생각치 못했어.)

 

마지막은 템페스트입니다. 템페스트는 여러 해석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적 관점의 분석을 보입니다. 때문에 저는 이 에피소드에서 작년 일본에서 드라마로 방영하였던 드라마 템페스트를 떠올렸습니다. 드라마 템페스트는 오키나와에 있었던 류큐 왕조 이야기를 합니다. 류큐 왕조는 일본이 개항하였을 당시 가장 먼저 그 대상으로 몰렸던 곳입니다. 일본이지만 일본이 아닌 류큐만의 왕이 다스린 곳이었습니다. 때문에 류큐 왕조는 서구, 러시아, 중국, 일본 이 네 곳의 사이에서 교묘한 군형을 이루며 살아야만 했는데요 과연, 이 류큐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나오는 외딴 섬과 그 모습이 닮았습니다. 또 템페스트는 첫 번째 이야기였던 '티투스 안드로니쿠스'와 수미쌍관을 이룹니다. '티투스 안드로니쿠스'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극, 처참한 동해보복을 이야기한다면, 마지막 이야기 '템페스트'는 무한한 용서를 선보입니다. 용서를 통하여 진정한 정의를 꾀하는 아름다운 결말을 제시합니다. 그리하여 에필로그에서 진정한 아름다움, 정의란 무엇인가를 제안합니다.  

 

바사니오님, 소녀는 여기 서 있는 보시는 바 그대로 저올시다.  

저 스스로를 위해서라면 이 이상 더 좋아지려는 야심은 품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위해선 스무 배를 세 갑절한 만큼 훌륭한 여자가 되고 싶고,

천 배나 더 아름다워지고 싶고, 만 배나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베니스의 상인>, 3.2.149~154)

  

에필로그의 시작은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포샤의 대사입니다. 포샤가 연인 바사니오에게 바친 사랑의 헌사인데요, 이 헌사에서 특히 밑줄 친 부분을 봐 주십시오. 이 밑줄 친 부분의 원문에서 '아름답다'의 단어가 'fair'였더군요. fair는 아름답다는 단어 외에 공정하다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즉, <베니스의 상인>의 주인공인 포샤는 정의로워지고 아름다워지고 싶다고 말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는데요, 이 부분이 참으로 공감이 갔습니다. 저 역시 그러했거든요. 누구나 한 번쯤은 실연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처음엔 슬펐으나 조금 지나니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때문에 저는 아름다워지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심각한 비만아였고, 외모도 별로 봐줄만한 수준이 못 됐습니다. 또 어두웠고요. 만화주인공처럼(!) 달라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다이어트도 하고, 외모에 신경도 쓰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 성격도 바꿔보고요. 그러고 나니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더군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며,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스스로를 가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때문에 저는 외면은 물론 내면도 가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기준을 바로 세우고 옳은 것이 무엇인가 그른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그른 것은 행치 않는다,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결코 착한 사람이 되려고 마음 먹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나쁜 사람도 됐습니다. 힘든 때도 있었지만 견딜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내 선택이었으니까, 그 감당도 내 몫이니까. 또, 시간은 내 편이니까. 시간은 그런 것이더군요. 아무리 깊은 생채기가 생겨도 시간이 지나면 웃고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 모든 아픔마저 마음 속에 담았습니다. 차곡차곡 개켜 저 귀퉁이에 모셔 고이고이 두고,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꺼내 들여다보며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할까, 그때의 행동은 옳았을까. 후회를 하고, 다짐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이런 제가 어떤가요, 아름답나요. 아닌가요?

신은 어떤가요. 아름답나요, 아닌가요?

우리, 서로에게 물읍시다.

그리하여 정의를 이야기해 봅시다, 셰익스피어처럼.

정의로워집시다,아름다워집시다, A thousand times more f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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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2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2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나오면 반드시 산다! 예약구매를 한다!' 라는 굳은 각오로 지르는(응?) 책들이 있습니다. 히가시가와도쿠변소라던가 미쓰다신조변소라던가 마쓰모토세이초변소라던가 미미변소, 사강변소, 맥도널드변소, 시마다소지변소...(응? 뒤에 이상한 게 붙었다고? 이해해. 내 애정의 표현이야.) 특히 이번 추석에는 제가 기다렸던 책들이 대거 나와서 와, 추석선물이 제대로 쏟아지는구나! 눈물을 흘리며 좋아했는데요, 아니 이럴 수가! 놓친 신간이 있었습니다. 제가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는 히가시가와도쿠변소의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의 다음 편이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 참, 눈앞에 신간이라고 꽂혀 있는데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습니다. 워낙 잘 나가는 책이다 보니 스테디 셀러로 1편이 늘 꽂혀 있었거든요. 게다가 책표지 디자인이 똑같을 줄 누가 짐작했겠어요! 세상에나, 달라진 건 '2'라는 숫자에 책 표지 색깔뿐이었어요! 이것 참, 이러셔도 되는 겁니까! 얼마나 기다린 2편인데! 그만 놓칠 뻔했다고요!  그러니 부탁드려요. 2를 잘 보이게 앞에 붙여 주세요! (웃자고 하는 소리)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2'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재벌가 영애 호쇼 레이코 형사와 까칠한 매력이 일품인 독설 집사 가게야마가 등장합니다. 약방의 감초 가자마쓰리 경부도 물론 빠지지 않습니다. 이 멤버들이 사건을 접하고 풀어간다...는 단순한 줄거리는 아닙니다. 이 소설은 일종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 액자식 구성을 표방합니다. 가자마쓰리 경부와 호쇼 형사가 함께 사건을 접합니다. (수수께끼 제시) 사건을 전개시키고, 호쇼 형사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본래의 으리으리한 부잣집 영애로 돌아가 우아하게 저녁식사를 하며 낮에 직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집사, 가게야마에게 들려줍니다. 직장이 워낙 특이하다 보니 사람이 죽는 이야기가 주로 나옵니다. 그리고 가게야마는 이 이야기를 듣고... ... 독설을 내뱉습니다.

 

"잠깐 기다려! 누가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해준다고 했어? 이번 사건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야. 마궁에 빠지는 건 나중 얘기야."

"미궁에 들어간 다음에 이야기하는 것이나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이나 결국 똑같다고 생각합니다만."

"뭐, 그건 그럴지도... ... 하지만 싫어! 절대 안 할 거야! 이유는 알겠지!"

레이코는 고개를 픽 돌리듯이 소파에서 몸을 비틀었다. 가게야마는 은색 안경을 살짝 밀어 올리며 말했다.

"혹시 아가씨는 제가 아가씨의 이야기를 듣고서 또 늘 그렇듯이 '멍청이'라는 둥, '눈은 폼으로 달고 다니느냐'라는 둥, '레벨이 낮다'라는 둥, '빠져 있으라'라는 둥, 마음대로 무례한 발언을 연발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 ..."

아니, 추측이고 뭐고, 이미 신나게 연발하고 있다고! (p.47)

 

그러고는 어마어마한 추리를 하여, 다만 '들은 것만으로' 범인을 찾아내거나, 트릭을 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의 제목이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입니다. 올해 초에 방영된 드라마에서는 한 술 더 떠서 아예 결정적인 대사를 덧붙입니다. "아가씨,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하지요."

2편 역시 특이한 사건들이 즐겁게 독자를 찾아갑니다. 히가시가와 도쿠야를 미리 접한 분들이라면 익숙할 유머러스한 대사와 상황들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 '완벽한 알리바이를 원하십니까?'에서는 드라마에서 첫 화를 장식했던 소재이기도 한 '알리바이 깨기'를 선보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살인할 때는 모자를 잊지 마시길'은 말 그대로 살인현장에서 사라진 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세 번째 이야기 '살의 넘치는 파티에 잘 오셨습니다'는 참으로 영상적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드라마로 보았을 때에도 감탄했지만, 소설로 보아도 눈앞에 그 광경이 어른거리더군요. 오, 석양 속 빛나는 그대의 정열! 그리고 네 번째 이야기의 시작은 심란합니다.

 

사건은 십이 월 이십사 일, 식탁에서 일어났다. 그때 호쇼 가의 외동딸인 레이코는 새끼양의 냉온 로스트와 오리고기 소테, 참돔 카르파초, 렌즈 콩 수프에 특제 프렌치토스트라는 평범한 아침식사를 들던 중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상적 광경에 갑자기 균열이 생겼다. 계기는 레이코의 옆에 대기하는 충실한 시종인 집사 가게야마의 섬세함이 결여된 한 마디였다.

"아가씨, 오늘 저녁의 일정은 어찌 되십니까?" (p.185)

 

네 번째 에피소드 '성스러운 밤의 밀실은 어떠십니까?'에서는 아아, 크리스마스는 형사에게도, 집사에게도, 대단한 아가씨에게도 골치아픈 명절이야! 이번 크리스마스는 어쩌지! 적어도 살인은 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을 하게 하고, 다섯 번째 이야기 '머리카락은 살인범의 생명입니다'에서는 제목의 의미가 깊습니다. 보고 나면 "오호라, 정말 그렇네?"라는 감탄사를  내뱉게 합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여섯 번째 이야기는 '완전한 밀실 따윈 없습니다'에서는 제가 뒤집어지게 크게 웃은 세 줄이 나옵니다. 359쪽의 세 줄입니다. 읽으시는 분들은 꼭 제가 웃은 부분을 발견하시길 빕니다.

 

 이상,

매장에서 책 다 읽자마자 쓴 서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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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2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2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행복해요...ㅠㅡㅠ 짱조아 359페이지 3줄... 빵터져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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