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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의 한 방울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삶은 죽음과 등을 맞댄 채 살아갑니다. 인간의 생을, 동물의 생을, 식물의 생을 또 지구의 생을 살아갑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생이란 죽음과 같다 하겠습니다. 삶이란 태어남이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어느 순간 올지 모를 죽음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으니까요. 허나 우리는 매 순간순간을 살아가면서도, 숨을 쉬면서도, 우리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웃고 떠들면서도 고개를 돌리면 그 사실을 잊고 고통이나 슬픔에 젖습니다. 괴로워하다가 심지어는 자살에 이르기도 합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왜 살아야 하느냐고. 그 의문은 고통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넌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해." "할 수 있어."라는 말은 가끔 인간의 가슴을 찌르는 바늘로 변합니다. 우리의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해서, 더 이상 무엇을 어찌 해야 하냐고 묻고 마침내는 죽겠다는 마음마저 먹게 합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에 빠진 적이 있습니까?
이츠키 히로유키의 '대하의 한 방울'
이츠키 히로유키의 '대하의 한 방울'은 그러한 인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의 목소리입니다. 작가 자신이 지금의 자신이 되기까지 어떤 일을 겪었는가를 이야기하는, 그런 에세이집입니다. 이츠키 히로유키는 대단한 작가입니다. 받은 상 목록이 한 문단이 넘는 작가이며, 나오키상을 받으며 데뷔해 나오키 상 심사의원으로 32년간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허나 그 자신의 역사를 들여다 보자면 소소합니다. 담담합니다. 과연 이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일까 싶습니다. 작가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어른입니다. 헌데 이상하게 매 장 매 장 넘길 때마다 가슴이 아립니다. 한 문장 한 문장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자꾸만 맺힙니다. 울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한 방울 흘립니다. 이 한 방울은 거대한 강의 한 방울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 강의 이름은 이 책을 읽은 수많은 독자들일 테고요.
누구나 쉽게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냥 사는 거다, 넌 별 것 아니다, 세상에 특별한 사람은 없어. 또 누구나 쉽게 하는 말일 것입니다. 넌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될 거야, 넌 특별해, 넌 나한테 하나밖에 없는 아들(딸)이야. 작가는 이 말들이 사람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조근조근 짚어갑니다. 보통 생각하자면 뒤의 말, 특별하다는 말의 편을 들어줄 것 같으나 작가는 다릅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우리는 결코 특별하지 않다. 우리는 아주 하찮은 존재다. 그러므로 얼마나 다행인가. 얼마나 행복한가. 세상에나, 이렇게 하찮은 존재가 지금 살아있다! 넌 정말 대단하다! 지금 넌 숨을 쉬며 살아있어! 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위로를 주는 한 마디인지. 또 이 단순한 이야기를 그토록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란, 어찌나 감격스러운지.
새우젓 담그는 방법을 아십니까, 여러분? 새우젓은 깔대기 모양으로 기다랗게 구멍을 팝니다. 양 옆과 아래쪽에 깊게 구멍을 판 후에 그 위에 새우젓 항아리를 넣습니다. 아래쪽의 빈 공간과 양 옆의 빈 공간을 통해 보다 깊은 숙성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깊은 숙성을 위한 빈 구멍, 이 구멍 속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상상해 봅니다. 만약 누군가 이 구덩이에 빠졌다면 어떻게 될까요. 항아리 아래 깊은 구덩이에 빠져서 "살려주세요!"라고 말해도 새우젓 항아리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면... ...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죽을까요, 살까요? 이제부터 인생게임 시작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 구덩이에 빠지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아래의 보기에서 선택하세요.
1. 죽는다.
2. 산다.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대신 과연 이 구덩이에 빠진 사람이 살아남았다면 어떤 사람일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했느냐고 묻겠습니다. 그리고 대답하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십시오. 찾으십시오. 살아남는 방법을, 깊은 구덩이만큼이나 깊은 절망에 빠졌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읽으십시오. 함께 살아갑시다. 난 여기 있습니다. 당신은 거기 있습니다. 우리 그저, 서로를 느끼며 함께 살아갑시다. 마지막 축제의 그날, 죽음이 우리의 입에 키스하는 그 순간까지 행복하게, 지금처럼 그저 그렇게 나와 함께 웃고 떠들고 슬픔도 고통도 모두 품에 안고 살아갑시다.
그걸로 족합니다.
그저 살아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당신도,
나도,
살아있어 얼마나 행복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