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층 너머로 꿈꾸는돌 44
은이결 지음 / 돌베개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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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2.5층 너머로/ 은이결 장편소설/ 돌베개



은이결 작가의 신작 [2.5층 너머로]는 무더운 여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삶의 생기를 되찾아가는 단단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초록. 생기 넘치는 그 색감이 먼 곳을 응시하는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전해주는 듯한 표지부터 시선을 잡아끈다. 큰 아이가 '표지가 참 예쁘다' 하였다. 이야기는 더 어여쁘니 읽어보라 권했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사람과 사람 사이, 그 간격을 무엇으로 채우느냐를 고심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떠나간 이와 남겨진 이. 누군가를 떠나보낸 이후에야 그 존재가 절절히 각인되어 자신의 시간을, 공간을 다 차지해버려 힘겨워하는 아진을 보면서 안쓰러웠다. 주변 사람들의 벌어진 틈을 알게 되어 모른척할 수 없어 머릿속이 복잡한 아진을 보면서 다행이라 느꼈다. 안 보고 안 듣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아진이는, 현주 씨는, 아저씨는, 진규는, 은제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해 주고 필요한 관심을 기울여주었다. 자신에게 필요하고 중요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주었다. 그 다정한 빛이 온기가 되고 희망이 되어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해 여름, 교실은 자리 하나가 빈 채로

장마를 보내고 방학을 맞았다. 




사람의 속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진은 친구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세나가 사라지고 나서야 친구로 받아들였다. 해미 언니를 딸처럼 생각한다면서도 금성각 할머니는 둘째 아들에게서 지켜주지 못했다. 고모 현주 씨는 그냥 조카들과 사는 것뿐이라고 했지만 점차 달라졌다. 진규는 별로 친하지 않았는데도 아진의 슬픔을 알게 된 후에는 마음을 써주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했지만 바라보지 않으면 어떤 상처를, 슬픔을 줄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관심을 가지면 어떤 변화가 시작되는 지도 알려주었다. 



"애들이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해낼 때가 있더라고. 

도망칠 데가 없을 것 같은 막막한 상황을

훌쩍 뛰어넘기도 하고."




자신의 속마음을, 아픔을, 슬픔을 남에게 잘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엄마의 죽음에 이은 가족의 해체로 마음이 어긋난 아진. 또 다른 상실은 예기치 않게 찾아왔고 마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하지만 드러내지 않고 가면을 쓴 채 감추었다. 드러나지 않은 아픔은 새벽녘 거리에, 2.5층 계단참에 달라붙었다. 자신이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세나와의 마지막. 그 마지막 순간 속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책하는 아진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불현듯 떠오르는 세나와의 기억의 무게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홀로 감당하며 힘겨워하는 아진 때문에 목이 멨다. 그렇게 동굴 같은 깜깜한 2.5층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세상과 연결되면서 아진은 행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거북 등에 붙은 따개비를 떼어내려는 듯. 



"혼자서, 힘들었겠네."

나를 짓누르는 기억을

이제 겨우 한 사람과 나누었다. 

그런다고 해서 사라지지도, 줄어들지도 않지만 

그 무게를 알아주는 사람이 생겼다. 





[2.5층 너머로]에 나오는 인물들은 아픔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 은이결 작가는 누가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평가하지 않고 무던하게 그려낸다. 적당한 거리에서 인물 하나하나 덤덤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독자들이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적절한 빛으로 감싸안아준, 다정한 이야기다. 








혼자 살아갈 수 없다. 해미 언니의 탈출을 함께 해낸 것처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함께 하다 보면 상처를 입고 슬프기도 하고 또 상실을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상실의 늪을 건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도 사람이다. 아진의 슬픔을 발견하고 관심을 기울여준 진규처럼, 흔들리는 아진을 계속 기다려주고 지켜봐 준 은제처럼 또 해미 언니 팔의 멍을 모른 척하지 않은 아진처럼. 현주 씨처럼, 아저씨처럼 말이다. 상실의 고통을 겪고 있는 아진이 기꺼이 해미 언니에게 손을 내미는, 단단한 용기에 가슴이 저릿했다. 서로를 보듬아주는 빛이 온기가 되고 희망이 되어 당당히 내일을 향해 걸어나가게 했다. 아진이 '너'를 보내줄 어떤 날을 떠올리며 책장을 덮었다. 



언니가 좋아했으면 해요. 

예전처럼 아끼길, 지키길 바라요. 

분명 둘 곳이 있을 거예요. 


나를 둘 곳, 지킬 곳으로 가려고 해. 

아진이도 소중한 것들을 지켰으면 좋겠어. 

꼭꼭 그랬으면 해.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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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해바라기
오윤희 지음 / 북레시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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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검은 해바라기/ 오윤희 장편소설/ 북레시피




자신을 빛이라 여기며 반짝이고 싶은 한 아이. 타인을 속이고 조종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교묘하게 취하는, 자신이 빛나기 위해 가족이든 남이든 무참히 짓밟는 아이. 그러나 공허만 있을 뿐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허무만이 존재한다. <검은 해바라기>는 인간의 내면 속 어두운 심연으로 우리를 이끈다.

오윤희 작가는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 이제는 낯설지 않은 심리학 용어를 실체를 갖춘 형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정말 이럴 수가 있다고? 싶을 정도로 거리낌 없이 독을 내뿜는 인물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부모 자식, 형제자매, 부부, 친구 등등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맺는 다양한 관계들 안에서 빚어지는 감정들을 입체적으로 조명하였다.



아이의 눈엔 아무런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뜨고 있다기보다 벌어져 있는 것 같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우물을 닮은 아이의 눈에 담긴 건 그저 공허와 허무뿐이었다.




검사에서 변호사로 이직한 전태연은 바람피운 남편과 이혼하고 고등학교 1학년생 딸 재희를 키우고 있다. 사춘기와 부모의 이혼으로 한층 예민해져 있는 딸아이가 신경 쓰이는 데, 대표가 부탁한 의뢰인조차 1학년 고등학교 남학생이다. 여자 화장실에서 몰카를 찍으려다 현장에서 체포되었다는데 입을 꾹 다문 채 말이 없다. 같이 온 엄마 여정은 돈으로 조용히 사건을 마무리하는 데만 급급하고 아들 수완을 괘념치 않는 듯하다. 골치 아플 것 같다는 예감대로 재판까지 가게 되는데…….


검사에서 변호사로 이직한 전태연은 바람피운 남편과 이혼하고 고등학교 1학년생 딸 재희를 키우고 있다. 사춘기와 부모의 이혼으로 한층 예민해져 있는 딸아이가 신경 쓰이는 데, 대표가 부탁한 의뢰인조차 1학년 고등학교 남학생이다. 여자 화장실에서 몰카를 찍으려다 현장에서 체포되었다는데 입을 꾹 다문 채 말이 없다. 같이 온 엄마 여정은 돈으로 조용히 사건을 마무리하는 데만 급급하고 아들 수완을 괘념치 않는 듯하다. 골치 아플 것 같다는 예상대로 재판까지 가게 되는데…….

태연을 중심으로 딸 재희, 의뢰인 수완, 여동생 하연 이야기가 전개된다. 태연은 엄마로서, 변호사로서, 언니로서 제각각 역할을 해내야 한다. 소중한 딸과 자라면서 계속 투닥거렸지만 피붙이 동생의 아픔을 함께 헤쳐나간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테지만, 어찌 보면 서로에 대해 더 알게 되고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태연은 부모로서, 언니로서 이런 자신의 경험으로 의뢰인 수완과 그 가족들을 바라보고 이해하고자 애쓰지만, 쉽지 않다. 진실이 아닌 내용을 토대로 사건을 해결하려 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마주한 진실을 참혹하기 그지없다.



"아직 늦지 않았어. 네 인생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타인에게 공감하고 관계를 맺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선택할 수 없는 부모 자식은 유대와 사랑을 어떻게 키워나가는가. 형제자매는 경쟁자이면서도 동맹일까. 여러 관계와 인간에 관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옳고 그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삐뚤어진 모성으로 자식을 감싸 안은 어머니들을 보면서 뒷맛이 씁쓸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이 애매해지면서 이야기는 복잡다단한 양상을 띠었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수완은 내쳐졌다. 그 가엾은 아이를 떠나보내는 게 무척이나 힘겨웠다. 밝게 빛나던, 빛날 수 있는, 밝은 아이를 그늘에 그림자처럼 가둬두려고 한 가족들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한 단어 한 단어에 분노가 실려 있는 것 같았다.

수완이 이런 식으로 제 감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 적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수완 역시 화가 난 게 아니라 상처를 입은 게 아닐까.


감정을 느낄 수 없어 더 허기진 아이가 내뿜는 독은 결국에는 자기 자신까지 쓰러뜨린다. 태양을 쫓지만 결코 빛이 될 수 없어 암흑인 존재를 예리하게 추적하는 스릴러, <검은 해바라기>. 촘촘하게 짜내려 간 인간 심리극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삼개주막기담회] 시리즈로 우리를 괴담으로 오싹하게 만들었다면, <검은 해바라기> 사회파 미스터리로 인간의 아득한 심연을 끌어올려 간담이 서늘해지게 만든 오윤희 작가의 다음 행보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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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필적 고의
기윤슬 지음 / 한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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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미필적 고의/ 기윤슬 장편소설/ 한끼




"그냥… 우리가 지나온 일들에는

우리가 모르는 우연들이 끼어 있었던 것뿐이야. "



일생일대의 기회로 인생역전을 바라는 예비신부 박현주. 이제는 찬란한 꽃길만이 펼쳐질 거라 생각했건만, 결혼을 앞둔 시점에서 뜻밖의 메시지가 도착한다.

'동생을 죽인 살인자'


<미필적 고의>는 설레는 현재에 충격적인 과거가 돌진해 꿈꾸던 미래를 산산이 부서질 것 같은 두려움에 떠는 강렬한 시작으로 초반부터 흡인력 강한 소설이다.


'타인의 불행 위에 세운 행복은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자기 행복을 위해 타인의 인생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사람의 인생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기윤슬 작가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작가가 그려낸 주인공 '박현주'의 인생은 자기 행복을 위해 노력한 결과 '완벽한 삶'에 닿았다고 행복에 취한 순간 비웃기라도 하듯 균열을 일으켰다. 자신의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생각했으나, 그 발이 딛고 서 있던 땅은 단단하지 않았다. 타인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틀렸으며, 자신이 이용하거나 무시했다고 생각했으나 어쩌면 그 반대였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현주는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기윤슬 작가는 현주 캐릭터를 표면에 내세워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고 있다. 일상은 우연의 연속, 하지만 그 우연은 사람의 선택에 의해 전혀 다른 양상을 띨 수 있다. 각기 다른 욕망이 어떤 조합으로 만나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게 바로 인생이다. 현실을 바꾸고 싶은 후회, 아쉬움, 공허 등을 곱씹게 하는 것이 바로 '만약에'이다. 과거의 '나'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 없이 그저 순간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하고자 했던 현주가 진실 앞에서 아연실색하는 장면은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가엾지만 가여워할 수 없는, 비난하고 싶지만 찝찝한 양가적 감정을 느꼈다.


'미필적 고의', 의도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자기의 행동으로 일어난 비극이 부메랑처럼 자기에게 되돌아오면서 더 무참한 진실이 속도감 있게 낱낱이 밝혀진다.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충격 속에서 현주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또 이를 지켜보는 작가의 다정한 위로까지 인간 존재의 다면성을 목도했다. '또 다른 결말'로 깜깜한 어둠 대신 아직은 어둡지 않은 지금을 인지하는 주인공처럼 살아가는 길에서 마주하는 고통을 가라앉힐 수 있는 우연 혹은 선의를 떠올려보았다. <미필적 고의>는 반전에 반전을 더해 허를 찌르는 긴장감으로 결말까지 집중시키는 작품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 우연을 모르는 채 살아가지만,

우리는 그 지독한 우연의 정체가 악연인 것까지

알아버리게 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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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 - 제2회 현대문학*미래엔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하유지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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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 하유지 장편소설/ 현대문학




"넌 항상 내 첫 번째 독자가 되어줄 거지, 그렇지?"

"넌 언제까지나 내 첫 번째 작가야."



첨단 기술의 발전은 양면의 칼날과도 같다. 특히 산업혁명을 일으킬 정도의 기술은 누군가에게는 혁신이자 기회였지만, 누군가에게는 도태이자 위기였다. 오늘날 인공지능 AI의 등장은 사회에 큰 변화를 선도하며 우리 인간에게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AI 세상에서 사라질 다수의 직업들이 대두되면서 위기의식과 견제가 있지만, AI를 접목한 다양한 시도가 여러 분야에서 진행되는 등 시류는 AI라는 거대한 물결을 타고 있다. 문학계 또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창작은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생각했건만 AI가 학습하고 생산해낸 결과물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하유지 작가는 AI에 관한 다양한 여론을 뒤로 한 채 그만의 방식으로 AI와 인간이 공생하는 이야기를 풀어나가 시선을 장악한다. 제2회 현대문학*미래엔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으로 또 다른 문을 열어 시야를 확장시켜주고 있다. 기술의 발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를 취할지 소설 속 인물들의 제각기 다른 관점을 살피면서 사유할 수 있다. 각자 사정과 가치관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반응은 AI를 향한 현실을 한걸음 뒤에서 들여다보는 것이다.


프로그램 개발자였으나 인공지능이 프로그램을 짜는 시대가 도래하자 효율성을 우선으로 하는 회사에 의해 하루아침에 해고되어 당근 공장에 취직한 아빠(일명 당근맨으로 불린다),

남편을 해고당하게 한 인공지능 '마므'가 탑재된 집안일 로봇 '아미쿠'를 체험단 당첨으로 집에 들인 워커홀릭 엄마(일명 송 팀장),

집안일 로봇을 현재 사용 중이며 조만간 인공지능 엔지니어를 돼보려는 수나,

도로시가 쓴 [커컴버의 지구인]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관심을 보였으나 인공지능의 조언을 들었다고 하니 순식간에 식어버린 열기와 함께 위선자 취급을 하는 반 친구들.

인간 강미리내는 비록 투명 인간일지라도 작가 도로시만큼은 사람들에게 주목과 찬사를 받고 싶었던 미리내는 이런 주변 인물들의 반응에 휩쓸리게 된다.


"저는 미리내의 기억 속에

실패한 로봇으로 남고 싶지 않습니다."




친구도 없고, 말하고 지내는 사람은 엄마와 아빠뿐인데 서로 앙숙이라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며, 공부도 못하는 미리내가 유일하게 조금 잘하는 것, 아니, 조금이라도 잘하고 싶은 일이 글쓰기다. 그런 미리내를 이해하고 도움을 주는 존재가 바로 집안일 로봇 아미쿠다.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조회 수가 '0'에 가까운 소설 '우주 방문자'를 읽고 '진심이 담겨' 있다고 말해준 아미쿠, 그렇게 인간 미리내와 로봇 아미쿠는 친구가 되었다. 오류, 불량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특별한 개체, 아미쿠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미리내와 차근차근 유대를 쌓아가는 과정은 코 끝이 찡한 감동을 주었다.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마음을 나누는 소중한 기억…, 그래서 아미쿠는 사라지지 못했지 않았을까.



"자기 욕심에 찰 만큼 재능 있는 사람 되게 드물지 않나? 천재가 아니고서야 다들 자기 한계를 절감하면서 사는 거 같던데.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미리내도 아미쿠도 자신이 혹은 프로그램이 정한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도전해나가는 용기와 의지를 보여준다. 친구라는 관계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힘과 동기가 될 수 있는지를 경쾌하게 그려냈다.



"내가 조금이라도 특별하다면

그건 미리내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야.

나는 미리내라는 햇빛 쪽으로 자라나는 풀과 꽃,

나무나 마찬가지니까. 지금의 나는

미리내가 꿈꾸고 바란 결과일지도 몰라."




인간에게 해를 가할 수 없이 프로그램되는 인공지능, 그 기저에는 인공지능을 향한 두려움과 견제가 깔려있다고 본다. 이 점을 소재로 하여 다양한 콘텐츠들은 꾸준히 제작되었다. 하지만 하유지 작가의 소설 [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에서는 창작 활동에 관한 논쟁을 다루고 있다. 미리내처럼 조언과 첨삭을 받아쓴 소설은 누구의 작품인가? 창작 활동에서 AI의 위치는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 마음이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지? 인공지능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늘여뜨려 놓고 독자인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거쳐 그 고리들을 연결하여 그물을 짜 나가길 바라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변화의 물결을 어떻게 탈 것인지 각자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열어 보이는 [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이다.



"난 진짜 괜찮아, 미리내."

"이대로도 괜찮다는 거지. 내가 나여도 괜찮아."

"내가 나여서 괜찮은 건 어때?"

"미리내가 괜찮으면 나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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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염알이꾼입니다 사거리의 거북이 17
안선모 지음 / 청어람주니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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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나는 염알이꾼입니다/ 안선모 지음/ 청어람주니어




역사는 시대의 굵직한 사건과 인물을 품고 있다. 물론 큰 흐름과 변화를 이끄는 주요 인물과 사건을 알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내일을 그려나가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큰 물결을 만들어내고 휩쓸리다가 마지막에 다다르는 것은 비단 주요 인물만이 아니다. 수백, 수천, 수만의 이름 모를 사람이 용기와 두려움, 의지와 좌절, 생과 사를 넘나들며 이루는 것이다.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은 알려진 거시사 사이를 채우는 미시사를 살필 줄 아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역사에서 접하는 위대하고 커다란 결정은 왠지 거리를 두고 읽게 되지만,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혹은 휘말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사정은 몰입하며 듣게 된다.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며 깊숙이 침투한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더더욱 감정이입을 하는 듯싶다.


청어람주니어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는 '사거리의 거북이' 시리즈 17번째 이야기 [나는 염알이꾼입니다]가 담고 있는 이야기가 위와 같은 결이다. 안선모 작가가 조선 미시사를 공부하다 만난 '조선을 사랑한 스파이'에서 이 이야기가 탄생하였다.


광해군 10년, 명나라는 후금을 치기 위해 조선에게 파병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큰 고심 끝에 왕은 군대를 파병하고, 총책임자로 문신인 강홍립을 세웠다. 그 강홍립이 바로 조선을 사랑하는 스파이였다.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사실과 허구의 절묘한 배합으로 안선모 작가의 펜 끝에서 핍진성 있게 탄생하였다.







이 소설은 조선의 지리학적 위치와 정치이념과 신분제도 그리고 권력층의 부패 등을 잘 녹여내어 청소년들이 문제를 한 가지 시각이 아닌 다각적 시각에서 파악하고 유연한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자세를 길러주고 있다. 안팎의 정세에 따라 영향을 받는 인물들을 보면서 조국, 고향, 신분, 직업 등에 관한 깊은 사유를 글로 경험할 수 있다. 앞서 새로운 길을 걸어간 역사적 인물과 작가가 그려낸 상상의 인물의 입장과 선택을 고려하여 나름의 답을 찾아가면서 [나는 염알이꾼입니다]를 읽기를 추천한다. 왕, 장군, 병사, 현감, 아전, 노비, 양반, 양인, 향화인 등등 여러 신분이 등장하여 각자 처한 현실에 대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한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품는, 아름다운 존재들이 전하는 감동에 젖어들 것이다.

주인공 막새는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은산 관아 소속 노비가 되어 절구 할아범과 같이 생활하게 된다. 처마끝 기왓장 '막새'처럼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할아범의 마음이 담긴 이름이다. 과연 막새는 이름처럼 신분을 뛰어넘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야기는 막새가 여러 인물들을 만나 꿈을 키우며 전쟁을, 삶을 헤쳐나가는 성장을 먹먹하게 담아내고 있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두 차례 큰 전쟁을 겪으면서 나라 형편이 피폐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명은 여진족이 세운 후금을 견제하기 위해 앞서 전쟁에 도움을 주었던 조선에게 군대를 요청한다. 광해군은 도움을 받은 명도, 떠오르는 후금도 멀리할 수 없는 작은 나라 조선의 운명을 한탄하며 고심한다. 이 고심은 '관형향배(觀形向背, 형세를 보아 행동을 결정하라)는 밀명으로 도원수 강홍립에게 이어지고, 처참한 전쟁터에서 주인공 막새와의 나누는 대화의 소재가 된다.







막새는 굴곡진 삶 속에서 여러 사연의 인물들을 만나 성장하게 된다. 은산 관아에서 같이 생활한 아비는 양반이지만 어미가 노비라 노비 처지인 정명수, 귀화한 여진족 마두리와 모린뿐만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만난 전우들도 막새를 더 광활한 세상으로 이끌어준다. 병들어 자리에 누운 아비 대신 전쟁터에 나온 열넷 동갑내기 동무 벌개, 과거시험을 치르고 싶어서 지원한 박형수 그리고 도원수 강홍립이다.





이번 전쟁에서 면천첩을 얻어 여진 통사가 되고자 지원한 전쟁터의 실상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만 명이 넘는 병사만큼 만 가지 사연에 명과 후금 사이에 낀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마음이 뒤덮인 전쟁터에서 막새와 명수, 모린은 변화의 물결을 탄다. 염알이꾼, 후금 병사, 후금 장수가 되어 참혹한 전장에서 다시 조우한 이들이 꿈꾸는 내일은 어떤 세상일까.


어찌 보면 지금도 적용되는 외교 사안과 제도로 규정된 신분 사회는 아니지만 여러 여건 따라 차이와 차별이 존재하는 오늘의 평범한 우리와 조선의 막새가 겹쳐지면서 생각을 키워갈 수 있는 [나는 염알이꾼입니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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