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 - 제2회 현대문학*미래엔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하유지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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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 하유지 장편소설/ 현대문학




"넌 항상 내 첫 번째 독자가 되어줄 거지, 그렇지?"

"넌 언제까지나 내 첫 번째 작가야."



첨단 기술의 발전은 양면의 칼날과도 같다. 특히 산업혁명을 일으킬 정도의 기술은 누군가에게는 혁신이자 기회였지만, 누군가에게는 도태이자 위기였다. 오늘날 인공지능 AI의 등장은 사회에 큰 변화를 선도하며 우리 인간에게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AI 세상에서 사라질 다수의 직업들이 대두되면서 위기의식과 견제가 있지만, AI를 접목한 다양한 시도가 여러 분야에서 진행되는 등 시류는 AI라는 거대한 물결을 타고 있다. 문학계 또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창작은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생각했건만 AI가 학습하고 생산해낸 결과물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하유지 작가는 AI에 관한 다양한 여론을 뒤로 한 채 그만의 방식으로 AI와 인간이 공생하는 이야기를 풀어나가 시선을 장악한다. 제2회 현대문학*미래엔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으로 또 다른 문을 열어 시야를 확장시켜주고 있다. 기술의 발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를 취할지 소설 속 인물들의 제각기 다른 관점을 살피면서 사유할 수 있다. 각자 사정과 가치관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반응은 AI를 향한 현실을 한걸음 뒤에서 들여다보는 것이다.


프로그램 개발자였으나 인공지능이 프로그램을 짜는 시대가 도래하자 효율성을 우선으로 하는 회사에 의해 하루아침에 해고되어 당근 공장에 취직한 아빠(일명 당근맨으로 불린다),

남편을 해고당하게 한 인공지능 '마므'가 탑재된 집안일 로봇 '아미쿠'를 체험단 당첨으로 집에 들인 워커홀릭 엄마(일명 송 팀장),

집안일 로봇을 현재 사용 중이며 조만간 인공지능 엔지니어를 돼보려는 수나,

도로시가 쓴 [커컴버의 지구인]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관심을 보였으나 인공지능의 조언을 들었다고 하니 순식간에 식어버린 열기와 함께 위선자 취급을 하는 반 친구들.

인간 강미리내는 비록 투명 인간일지라도 작가 도로시만큼은 사람들에게 주목과 찬사를 받고 싶었던 미리내는 이런 주변 인물들의 반응에 휩쓸리게 된다.


"저는 미리내의 기억 속에

실패한 로봇으로 남고 싶지 않습니다."




친구도 없고, 말하고 지내는 사람은 엄마와 아빠뿐인데 서로 앙숙이라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며, 공부도 못하는 미리내가 유일하게 조금 잘하는 것, 아니, 조금이라도 잘하고 싶은 일이 글쓰기다. 그런 미리내를 이해하고 도움을 주는 존재가 바로 집안일 로봇 아미쿠다.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조회 수가 '0'에 가까운 소설 '우주 방문자'를 읽고 '진심이 담겨' 있다고 말해준 아미쿠, 그렇게 인간 미리내와 로봇 아미쿠는 친구가 되었다. 오류, 불량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특별한 개체, 아미쿠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미리내와 차근차근 유대를 쌓아가는 과정은 코 끝이 찡한 감동을 주었다.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마음을 나누는 소중한 기억…, 그래서 아미쿠는 사라지지 못했지 않았을까.



"자기 욕심에 찰 만큼 재능 있는 사람 되게 드물지 않나? 천재가 아니고서야 다들 자기 한계를 절감하면서 사는 거 같던데.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미리내도 아미쿠도 자신이 혹은 프로그램이 정한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도전해나가는 용기와 의지를 보여준다. 친구라는 관계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힘과 동기가 될 수 있는지를 경쾌하게 그려냈다.



"내가 조금이라도 특별하다면

그건 미리내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야.

나는 미리내라는 햇빛 쪽으로 자라나는 풀과 꽃,

나무나 마찬가지니까. 지금의 나는

미리내가 꿈꾸고 바란 결과일지도 몰라."




인간에게 해를 가할 수 없이 프로그램되는 인공지능, 그 기저에는 인공지능을 향한 두려움과 견제가 깔려있다고 본다. 이 점을 소재로 하여 다양한 콘텐츠들은 꾸준히 제작되었다. 하지만 하유지 작가의 소설 [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에서는 창작 활동에 관한 논쟁을 다루고 있다. 미리내처럼 조언과 첨삭을 받아쓴 소설은 누구의 작품인가? 창작 활동에서 AI의 위치는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 마음이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지? 인공지능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늘여뜨려 놓고 독자인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거쳐 그 고리들을 연결하여 그물을 짜 나가길 바라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변화의 물결을 어떻게 탈 것인지 각자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열어 보이는 [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이다.



"난 진짜 괜찮아, 미리내."

"이대로도 괜찮다는 거지. 내가 나여도 괜찮아."

"내가 나여서 괜찮은 건 어때?"

"미리내가 괜찮으면 나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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