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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염알이꾼입니다 ㅣ 사거리의 거북이 17
안선모 지음 / 청어람주니어 / 2025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나는 염알이꾼입니다/ 안선모 지음/ 청어람주니어
역사는 시대의 굵직한 사건과 인물을 품고 있다. 물론 큰 흐름과 변화를 이끄는 주요 인물과 사건을 알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내일을 그려나가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큰 물결을 만들어내고 휩쓸리다가 마지막에 다다르는 것은 비단 주요 인물만이 아니다. 수백, 수천, 수만의 이름 모를 사람이 용기와 두려움, 의지와 좌절, 생과 사를 넘나들며 이루는 것이다.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은 알려진 거시사 사이를 채우는 미시사를 살필 줄 아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역사에서 접하는 위대하고 커다란 결정은 왠지 거리를 두고 읽게 되지만,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혹은 휘말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사정은 몰입하며 듣게 된다.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며 깊숙이 침투한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더더욱 감정이입을 하는 듯싶다.
청어람주니어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는 '사거리의 거북이' 시리즈 17번째 이야기 [나는 염알이꾼입니다]가 담고 있는 이야기가 위와 같은 결이다. 안선모 작가가 조선 미시사를 공부하다 만난 '조선을 사랑한 스파이'에서 이 이야기가 탄생하였다.
광해군 10년, 명나라는 후금을 치기 위해 조선에게 파병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큰 고심 끝에 왕은 군대를 파병하고, 총책임자로 문신인 강홍립을 세웠다. 그 강홍립이 바로 조선을 사랑하는 스파이였다.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사실과 허구의 절묘한 배합으로 안선모 작가의 펜 끝에서 핍진성 있게 탄생하였다.

이 소설은 조선의 지리학적 위치와 정치이념과 신분제도 그리고 권력층의 부패 등을 잘 녹여내어 청소년들이 문제를 한 가지 시각이 아닌 다각적 시각에서 파악하고 유연한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자세를 길러주고 있다. 안팎의 정세에 따라 영향을 받는 인물들을 보면서 조국, 고향, 신분, 직업 등에 관한 깊은 사유를 글로 경험할 수 있다. 앞서 새로운 길을 걸어간 역사적 인물과 작가가 그려낸 상상의 인물의 입장과 선택을 고려하여 나름의 답을 찾아가면서 [나는 염알이꾼입니다]를 읽기를 추천한다. 왕, 장군, 병사, 현감, 아전, 노비, 양반, 양인, 향화인 등등 여러 신분이 등장하여 각자 처한 현실에 대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한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품는, 아름다운 존재들이 전하는 감동에 젖어들 것이다.

주인공 막새는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은산 관아 소속 노비가 되어 절구 할아범과 같이 생활하게 된다. 처마끝 기왓장 '막새'처럼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할아범의 마음이 담긴 이름이다. 과연 막새는 이름처럼 신분을 뛰어넘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야기는 막새가 여러 인물들을 만나 꿈을 키우며 전쟁을, 삶을 헤쳐나가는 성장을 먹먹하게 담아내고 있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두 차례 큰 전쟁을 겪으면서 나라 형편이 피폐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명은 여진족이 세운 후금을 견제하기 위해 앞서 전쟁에 도움을 주었던 조선에게 군대를 요청한다. 광해군은 도움을 받은 명도, 떠오르는 후금도 멀리할 수 없는 작은 나라 조선의 운명을 한탄하며 고심한다. 이 고심은 '관형향배(觀形向背, 형세를 보아 행동을 결정하라)는 밀명으로 도원수 강홍립에게 이어지고, 처참한 전쟁터에서 주인공 막새와의 나누는 대화의 소재가 된다.

막새는 굴곡진 삶 속에서 여러 사연의 인물들을 만나 성장하게 된다. 은산 관아에서 같이 생활한 아비는 양반이지만 어미가 노비라 노비 처지인 정명수, 귀화한 여진족 마두리와 모린뿐만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만난 전우들도 막새를 더 광활한 세상으로 이끌어준다. 병들어 자리에 누운 아비 대신 전쟁터에 나온 열넷 동갑내기 동무 벌개, 과거시험을 치르고 싶어서 지원한 박형수 그리고 도원수 강홍립이다.

이번 전쟁에서 면천첩을 얻어 여진 통사가 되고자 지원한 전쟁터의 실상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만 명이 넘는 병사만큼 만 가지 사연에 명과 후금 사이에 낀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마음이 뒤덮인 전쟁터에서 막새와 명수, 모린은 변화의 물결을 탄다. 염알이꾼, 후금 병사, 후금 장수가 되어 참혹한 전장에서 다시 조우한 이들이 꿈꾸는 내일은 어떤 세상일까.
어찌 보면 지금도 적용되는 외교 사안과 제도로 규정된 신분 사회는 아니지만 여러 여건 따라 차이와 차별이 존재하는 오늘의 평범한 우리와 조선의 막새가 겹쳐지면서 생각을 키워갈 수 있는 [나는 염알이꾼입니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