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 첫번째 - 2022 시소 선정 작품집 시소 1
김리윤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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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를 잘 읽지 않는다. 평론서는 더욱이 읽어본 적조차 없다. 나에게 선입견이 있었나 보다. 괜스레 문학평론가를 저어했다. 그리고 문예지를 기다리기보다는 단행본을 즐겨읽었다. 문예지를 통해 찾아가는 문학을 즐기기 보다 보여주는 단행본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자음과 모음』에서 한 계절에 발표된 시와 소설을 각각 한 편 선정하여 그 좋음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시소'라는 코너를 마련하였다. 2021년 첫 번째 봄·여름·가을·겨울 시소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하였다. 시·소설뿐만 아니라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터뷰는 특별하고 뜻깊다. 글이 완성되어 세상에 나오면 독자는 읽고 해석하고 사유하고, 작가는 자식 같은 글이 소화되고 발산되어 회자되기를 원한다. 감동과 여운은 독자의 몫이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 의도가 사뭇 궁금하다. 그리고 작가 또한 독자의 반응을 알고 싶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그런 부분에서 작가와 문학 평론가의 심도 있는 대화는 '시소'를 음미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래서 문예지와 문학 평론가에 대한 호의를 가지게 되었다.


 

시소 첫 번째/자음과모음



2021년도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나온 다양한 시, 소설 중 선택되어 계절을 대표하게 된 시 4편과 소설 4편은 딱히 계절감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소설을 즐겨 읽는지라 소설은 집중해서 읽어갈 수 있었다. 역시나 시는 생각처럼 그 짧은 글이 애를 먹인다. 한번 읽고 두 번 읽고 인터뷰까지 읽어보고 다시 읽어야 빌려온 감성과 느낌으로 얕은 감동에 젖을 수 있었다. 시 행간에 숨어있는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번 찬찬히 읽어봐야 했다. 소설도, 시도 짧은 글일수록 더 어렵다. 그리고 볼수록 끝없이 빠져든다. 고르고 고른 문장 하나가 뿜어내는 빛에 압도된다.

 

8인 8색 작품 모두 제각기 다른 결들과 감성으로 그냥 지나가버린 것만 같아 인생 중 지우개로 지운 듯한 2021년을 우리 곁에 차곡차곡 쌓아준다. 사계절을 1년을 그렇게 선물한다. 고맙다.

 

8인의 작가 중 '최은영' 작가님만 안다. '시소'의 취지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나름 책을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멀었구나.' 생각에 무릎이 꺾기 전에 '이렇게 좋은 작가를 많이 알았네.' 기쁨에 팔짝 뛰어야겠다.

소설, 시 모두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 관계, 자리, 사랑, 성장을 담고 있다. 같은 사람으로서, 같은 여성으로서, 같은 엄마로서, 같은 딸로서 경험의 공유를 떠나 공감하고 아파하고 더 나아가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공간이었다.

 

활짝 핀 꽃은 마르면서 작은 꽃으로 자랍니다.

그냥 배울 수는 없고요

보고 배워야 가능합니다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안미옥 「사운드북」

 

나도 멀리서 보면 별 비슷할까요

그럼 뭐해요

평생 난 나를 멀리서 볼 수 없을 거 아닌가요

...신이인 「불시착」

 

나는 발이 없는 것만이 계속 자란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

프레임 안으로 쉽게 미끄러진 다음

화면 바깥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김리윤 「영원에서 나가기」

 

진심으로와

사랑하다 사이의 간격이 너무나 멀었다

...조혜은 「모래놀이」

 

신기하게도 내가 다 아는 단어들인데도 작가의 손으로 나열하고 배열을 마친 시구는 다른 세상의 언어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가슴을 건든다. 그렇지 않냐? 고, 나는 이런데 당신의 생각은 어떠냐?고 묻는데 기뻤다.

말라버린 꽃을 시든 게 아니라 작은 꽃으로 자라는 시선을 같이 쫓을 수 있어서 기뻤고,

사랑이 절로 솟아나는 감정인 줄 알았는데 많이 보고 배워야 하는, 내가 키워야 하는 감정임을 알고 건조하던 마음이 촉촉해져서 기뻤다.

올려다볼 때는 반짝이는 별이었는데 내려다볼 때는 회색 먼지 뭉치를 굳힌 것 같은 돌, 운석처럼 멀리서 남이 볼 때는 별처럼 반짝여도 멀리서 나를 볼 수 없는 내가 느끼는 착잡함, 불안감, 생경함, 혼란을 무심하듯 툭 투정 부리듯 툭 내비치는 글에서 위로받았다.

「영원에서 나가기」는 형태, 시간, 성장, 영원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담긴 작품으로 형태가 온전한 영원을 바라는 마음을 비우고 그냥 흐름 그대로를 받아들이려는 시선이 청아하다.

진심과 사랑 사이의 간격, 매번 헷갈리는 그 틈을 고민하고 있어서 와닿는 시였다.

 

소설 「답신」은 이모가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이다. 5월의 맑은 날, 스물세 살이 된 조카에게 투영시킨 자신에게 속삭이는 듯한 고백이 담담하게 펼쳐지는 데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결핍된 애정 속에서 서로에게 집중했던 두 자매의 사랑과 희생이 진실되지 못한 이방인 때문에 계속되지 못한 고통이 그려진다. 그리고 언니와 조카 그리고 나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조카와 주고받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인사는 이해할 수는 없지만 좋아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언니에 대한 나의 또 다른 사랑 표현이었다. 부디 세 사람 모두 행복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소설 「프리 더 웨일」은 살아남고자 키워내고자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이야기다. 기혼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 시스템의 폭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집단의 차별과 배제를 그리고 있는 현실성이 강한 소설이다. 싱글맘인 수경은 등단을 한 소설가이나 데뷔작 외에는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고 생계유지와 딸 양육이라는 현실 앞에 학습지 회사에 취업을 한다. 기혼 여성 채용에 불만을 가진 내부 직원들의 비난, 험담, 성추행 등을 철저히 외면하고 회사 다른 직원들과 교류하지도 않은 채 '자리'를 지키려는 노력만 한다. 수경뿐만 아니라 딸아이 또한 어린이집의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부당한 대우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버티는 두 모녀의 모습은 아프고 암울하고 폭력적이다. 수경은 오롯이 품어주던 남편 우상우가 보여주던 다정함이 그립다. 대책 없는 낙관과 무방비한 희망이었대도. 좋은 날, 좋은 기분을 알지 못한다. 그 고백이 씁쓸한 이유는 그녀의 미래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함부로 위로조차 건넬 수 없어서이다.

 

미안하고 슬펐어요. 온 힘 다해 키워낼 거지만, 사랑으로 돌볼 테지만, 이 작은 아기에게 먼 훗날 나를 묻거나 태워달라고 할 생각을 하면……

엄마가 되어 엄마가 걸어온 삶을 다시 살고, 아이를 남겨둔 채 깊고 어두운 땅 아래로 홀로 묻혔다. 죽어서도 무서웠을 것이다. 아이를 기르는 동안에도 이 슬픔이 끝끝내 지속되는 거구나. _369쪽

 

벌써부터 시소 두 번째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만난 8인의 작가들이 앞으로 전해줄 이야기에 귀 쫑긋 기울이면서 천천히 그날을 기다려볼 것이다. '시소' 그 적당한 만남으로 행복한 날이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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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김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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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종말을 소재로 다루는 영화, 소설 등 다양한 콘텐츠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소혹성(소행성)의 충돌이 가장 흔한 원인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 역시 소혹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종말이 선언되고 네 사람이 남은 한 달을 보내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들여다보는 네 사람은 행복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남으려 애쓰거나 지구 멸망을 바라는 망한 인생의 표본 같은 이들이다. 남은 한 달 동안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멸망이 아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나기라 유 지음/한스미디어


☆ 초등학생 때는 실연으로,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학교폭력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아 SOS 신호를 보내는 에나 유키

- 지구에게 지금 당장 폭발해서 인류를 멸망시켜 주세요.

교내 카스트제도에 순응하여 친구 심부름을 하면서 지내던 유키는 지구 멸망 선언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무리들이 당황하자 인류 멸망 폴더에 '유쾌' 파일을 처음으로 추가했다. 어떤 즐거움이나 구원이 아닌, 어두운 환희로 유쾌한 감정을 먼저 느낀 유키를 보면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곧 현실을 자각하고 '부조리'와 '분노' 파일을 추가한다. 나 또한 믿지는 않지만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을 총동원하여 애원하다가 원망하다가 또다시 매달릴 것이다.

 

☆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부모의 애정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메지카라 신지

그는 젊어서부터 주먹을 쓰면서 살아가는 시시한 인생이다. 마흔의 그가 스무 살 때 심장 바로 위에 새긴 이름을 새긴 여자, 에나 시즈카를 찾아간다. 지구 멸망을 앞두고 그가 보고픈 유일한 존재, 마지막 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그녀를 찾아 떠난다. 지구가 사라지는 그 순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건 선택일 수가 없다.

 

☆ 신지를 떠나 홀로 유키를 낳고 키울 수밖에 없었던 에나 시즈카

시즈카는 자신처럼 어두운 시절을 겪은 신지를 이해하고 진정 사랑하지만, 자신을 때리는 신지가 아이마저 때리는 무서운 일이 벌어지기 전에 그를 버리고 아이를 선택한다. 그렇게 떠나왔던 신지가 찾아와 위험에 처한 아들을 구해준다. 같은 엄마라 그녀의 선택과 결단 그리고 그 선택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깊이 공감되었다.

 

이렇게 완전체가 된 신지, 시즈카, 유키 세 가족은 유키가 짝사랑하는 후지모리 유키에가 가고 싶어 하는 Loco 콘서트를 넷이서 보러 간다.

 

☆ 이 시대의 가희, 아이돌 Loco

<마지막 순간>의 주인공 Loco는 아름답고 실력 좋은 아이돌이지만 이는 소속사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일 뿐이었다. 야마다 미치코는 록 음악을 좋아하고 마을 친구들과 즐기면서 밴드 활동을 하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지구에 소혹성이 충돌하는 그 시간에 고향 마을에서 콘서트를 열기로 한다.

 

 


 

지구의 멸망이 선언되고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다양하다. 결코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하거나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고 분노하거나 끝없이 눈물만 흘리거나 아무 일이 없다는 듯 그냥 일상을 살아간다. 개인적인 발산이 이제는 사회 전체로 퍼져 강도, 방화, 살인이 일어나 가정을 무너뜨리고 마을을, 도시를 불태운다. 지구가 멸망하기도 전에 인류끼리 서로를 없애려는 듯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다. 다 같이 죽는다는 결말은 이렇게나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것인가? 마음을 할퀴는 듯 매서운 바람이 불지만 다행히 세상도 소설 속 이야기도 가혹하지만은 않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주위를 돌보면서 가슴속에만 품었던 마음, 말들을 털어놓는다.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보살펴주고 사랑해 준다. 아이러니하게도 멸망 선언 전에는 암담했던 내일이 따스한 빛으로 다가오는 묘한 설렘이 전해진다.

 

 

담담히 자신의 심정을 말하는 유키의 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보다 나는 내가 훨씬 좋아졌어.

예전 세상은 평화로웠지만 언제나 어렴풋이 죽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지금은 죽고 싶지 않아. 하지만 앞으로 열흘밖에 없어.

슬프고, 무섭고, 최악이지만, 그래도 나는 조금 괜찮게 변한 것 같아.

세상이 그대로였다면 오래 살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런 마음은 모른 채로 죽었겠지.

어느 쪽이 나은 걸까?"

 

멸망을 말하면서 희망과 꿈을 말하게 되는 이 모순 속에서 자신을 좋아하게 되고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있는 이 순간만을 생각하면서 나아가는 사람들이 보내는 마지막 한 달이 우리를 설레게 하고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감동을 전한다. 우리는 아직도 현실 저 너머에서 샹그릴라, 퍼펙트 월드, 엘도라도를 찾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되돌아보면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던 그곳이 바로 그곳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한 달 이상은 남았을 우리는 좀 더 열심히 사랑하고 표현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괜시리 마음이 촉촉해진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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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괴물로 가득 찬 날 삐딱한 K의 재습기 2
강경수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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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보는 강경수 작가님!

삐딱한 K의 재습기 시리즈 2번째 권 <학교가 괴물로 가득 찬 날>을 만나보았습니다.

 

삐딱한 K들이 직접 겪을 만한 일상 속 이야기와 개성강한 캐릭터 그리고 신나는 랩까지 재미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잘 갖춰진 시리즈입니다. 강경수 작가님 특유의 삽화가 한층더 생생하게 이야기를 표현해줍니다.


학교가 괴물로 가득 찬 날/강경수/위즈덤하우스

 


<학교가 괴물로 가득찬 날>은 평소 싸움대장으로 친구들을 약골이라 무시하고 빵 심부름을 시키는 유식이가 괴물 학교로 변해버린 학교에서 거꾸로 괴물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등장부터 끝까지 랩과 함께 하는 유식이의 모습에 힙합에 심취한 아들이 흥미를 보이네요. 역시 재미와 유머 포인트를 잘 잡아내는 강경수 작가님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재미있어야 습관을 기를 수 있어요. 삐딱한 K의 재습기 슬로건에 부합하네요. 아무리 좋은 글, 좋은 가르침일지라도 결국 읽어야 전달이 가능하죠. 재밌게 독서 습관, 생활 습관을 기를 수 있는 적당한 시도가 되어줄 희망이 보입니다. :)

 


 

괴롭히던 입장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입장으로 바뀐 유식이는 그동안 자신의 행동을 깊이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마법같은 일이 벌어지죠. @.@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겠다는 유식이의 다짐은 과연 지켜질까요?

라임을 맞춰서 어느 상황이든 랩을 구사하는 유식이와 그를 잘 표현한 삽화가 눈에 띕니다. 특히 괴물로 변해버린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눈물의 랩을 선사하는 유식이와 유식이 손에 들린 마이크, 그 랩에 맞춰 춤추고 디제잉하는 괴물들의 모습은 참회의 시간을 어둡고 무겁게 그리지 않아 유식이의 변화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합니다. 유식이의 반성이 얼마나 진실된 것인지는 끝까지 보면 알 수 있겠죠. 


반성, 사과 그리고 다짐까지 눈물과 함께 했던 유식이의 괴물학교 체험기를 읽고 친구들과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 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놓칠 수 없는 매력 * 삐딱한 K의 단어장 *

책 읽기 전 알쏭달쏭한 단어까지 정리해주는 센스.

친근한 어투로 설명되어 있어서 눈에 더 쏘옥 들어온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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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남자친구와 그의 연인
민지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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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남자친구와 그의 연인/민지형/위즈덤하우스



연애, 남녀가 아니 사랑하는 둘이 만나서 서로 행복하기를 원하는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현실에서는 이렇게 마냥 아름답고 행복하지는 않다. 사람 사는 일에 기쁨, 행복, 사랑, 웃음만 넘칠 수는 없지만 '소유욕'으로 인한 질투, 비난 등으로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고 '결혼'이라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기도 한다.

연애가 지속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연애관이 다르면 힘들 것이다. 비혼이 많아지고 있는 지금, 비혼주의자와 혼인주의자의 연애는 당연히 성립되지 못한다. 시작부터 결혼을 염려에 두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게 아니니 사랑이 깊어지면서 상대방이 결혼을 거론하면 '결혼'을 생각해 본 적 없는 다른 한쪽은 당황하게 되고 그 관계는 균열이 생긴다.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해 연애하고 나이가 차니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고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 나는 사실 깊이 고민을 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았고,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진중하게 상대방과 이야기하면서 맞춰나가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물론 이상형, 미래의 내 가정 등은 떠올려봤지만 그건 외형적인 틀, 규격이었을 뿐 마음을 나누는 방법, 나와 상대방을 존중하며 사랑하는 우리 둘만의 사랑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냥 물 흐르듯이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민지형 작가의 『나의 완벽한 남자친구와 그의 연인』 서평단 모집 소식에 얼른 신청하게 되었다. 새로운 콘셉트의 연애!!! 요즘 세대들이 말하는 사랑이 궁금했다.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우리나라에서 40여 년이 넘게 살아온 내가 납득할 수 있을까? 싶은 의구심과 부정적인 시선이 뒤섞인 호기심이 가득 담긴 손으로 드디어 책장을 넘겼다.

 

『나의 완벽한 남자친구와 그의 연인』

총체적으로 잘 쓰인 글이다.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제인데도 거부감을 거의 느낄 수 없게 독자들이 흡입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그래? 어디? 과연? 굳게 닫았던 마음의 빗장을(원래 그다지 단단한 사람이 아니라 장담할 수 없지만) 스르르 푼 것도 모르게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 - 사랑하지만 오롯이 나를 지켜내는 연애 - 에 대해 예전처럼 불쾌하다, 거북하다 등의 부정적인 시선 대신 힘들지만 사회통념의 연애가 아닌 자신에게 맞는 사랑 방식을 찾아가는 진지한 태도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미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서른다섯 살이다. '최선'의 연애를 바라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에 '차선'을 택하는 타협을 하면서 연애를 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그 차선의 연애를 정리했다.

친한 선배의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되어 '모두의 오피스'라는 공유 오피스에 입주하였다. 그곳에서 매력적인 오피스 매니저 시원을 만나고 그가 호감을 표한다. 그런데 이미 애인이 있다며 오픈 릴레이션십을 제안한다.

 

 

미래 역시 연애에 대한 고민과 갈증이 가득했기에 다양한 정보들을 습득해 '폴리 아모리'나 '오픈 릴레이션십'에 대한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현실에서 접한 적은 없어서 진담인지 바람둥이의 핑계인지 고심하였다. 그러다 시원의 애인 소리까지 만나서 삼자대면을 한다. 최선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은 차선일 수도 있다는 희망과 새로운 콘셉트 연애에 대한 호기심에 미래는 결국 시원과의 오픈 릴레이션십을 받아들이게 된다.

 

미래와 시원 사이의 연애만 보면 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배려해 주는 어여쁜 사랑이다. 미래가 싫어하는 미디어에서 배운 "넌 내 꺼야.", "너밖에 없어.", "우리 영원히 함께하자." 등 사랑의 표현 없이 관계 속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털어놓는다. 물론 처음에는 시원의 또 다른 애인인 소리에 대한 부담과 주위 친구들, 공유 오피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기도 했지만 시원과 소리의 도움을 받아 해결해나간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만큼,

늘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힘들었었다. (p.277)

 

이 소설은 '폴리 아모리'와 '오픈 릴레이션십'을 연애의 정답이라 정하고 강요하지 않고, 현재 연애의 방식이라 규정된 (결혼이 전제된) 이성애 독점 연애에 대한 다른 생각을 풀어내고 있다. 지금 우리 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등장인물들이 오픈 릴레이션십을 접하고 보여주는 다양한 반응들은 독자인 우리의 모습이자 작가가 독자인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다.

결혼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 오픈 릴레이션십에 대한 현저히 다른 남녀의 반응이 펼쳐진다.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 '오픈 릴레이션십'이라는 표현을 남성은 쉬운 여성이라는 편견으로, 여성은 바람둥이라는 편견으로 다가온다. 나 또한 호감을 가진 이가 이런 제안을 했다면 즉각적으로 '바람둥이 아니야?'라고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소설 속 소리와 시원 그리고 미래는 어느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는 데 진지한 사람들이다.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을 오롯이 지킬 수 있는 연애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표현하고 답을 찾아간다.

 

미래의 고민을 들어주고 현실적인 조언과 걱정을 해주는 친구인 하나와 다정 그리고 불안감을 조성했던 전 남자친구 수호까지 작가가 적절하게 잘 배치한 영리한 소설이었다. 미래가 오픈 릴레이션십에 적응해가면서 느끼는 감정들인 혼란, 당혹, 행복, 충만함뿐만 아니라 진정성 있는 오픈 릴레이션십을 하는 이들이 겪을 수 있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부담, 위협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고민에 공감할 수 있었다.

 

힘겨운 사랑 투쟁기인 『나의 완벽한 남자친구와 그의 연인』

불쾌하다는 1차원적인 소감이었던 오픈 릴레이션십에 대해 한결 여유 있고 부드러운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부정하지 말고 하나하나 살펴보고 어떻게 표현하고 해소할 수 있을지 선택해야 비로소 자신에게 알맞은 연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애 독점 연애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은 평등한 관계의 연애와 자기에게 맞는 연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환기시키고 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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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언제나 돌아와
아가타 투신스카 지음,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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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띠지로 포장되어 도착한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

우리에게도 익숙한 고운 꽃자수가 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띠지가 상하지 않게 조심히 책을 꺼내 살펴봤다.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아가타 투신스카 글/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사계절

 

앞표지에는 여자아이가 인형을 들고 어딘가를 응시한 채 서 있다. 여자아이와 인형은 파란색 바탕에 띠지에 수놓아진 꽃과 같은 꽃들이 프린트된 원단으로 만든 원피스를 똑같이 입고 있다. 뒤표지에는 어느 여인이 방문 너머에서 인형에게 방 내부를 소개해 주고 있다. 푸근한 인상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64쪽의 그림책 형태로 제작된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에서 탈출한 생존자 조시아 자이칙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외형만 봤을 때는 어린이부터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라 생각했건만...... 전쟁의 참상을 그린 이야기인데도 과감하게 그림책 형식을 취한 것은 의도된 제작이었으리라. 조시아의 기억 속 어린 시절은 아이 특유의 순진함과 감수성이 가득한 이야기로 전쟁의 폐해와 참상을 직접적으로 조명하기보다는 지하실에 갇혀 자신만의 세계를 살아간 이중적인 비극이다.

 

이 책의 화자는 조시아 자이칙(야엘 로스너)으로 11살에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오게 된 폴란드계 유대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는 독일에 침공당하여 험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나치 독일은 백인계 아리아인을 우월하다 여기는 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에 입각하여 바르샤바에 게토를 만들어 유대인들을 억압하였다. 다비드의 별이라고 불리는 완장을 차게 하는 등 유대인 표식을 하게 하고 모든 생활을 통제하였다.

그림책을 감싼 띠지는 다비드의 별 완장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그 시절 유대인들을 옭아맸던 죽음의 표식이었다. 하지만 수놓아진 꽃은 어머니 나탈리아가 딸 조시아에게 전해준 희망과 사랑의 증표로, 그 시절 어머니가 가르쳐준 자수는 조시아의 삶 속에서 계속 이어졌다. 단순히 자수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어머니의 사랑을, 실이나 양모같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재료에 대한 존경을 조시아는 잊지 않았던 것이다.

 

 

바르샤바에 게토가 만들어지자 유대인끼리의 통합을 위해 들어가기를 원하는 독실한 유대인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3살쯤 된 조시아를 비롯한 가족들은 게토에 들어가게 되었다. 통제하기 위해 만든 벽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길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친밀한 관계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분명한 의도가 담긴 곳인데 제 발로 들어가다니 그것도 가족 모두를 이끌고! 조시아의 엄마 나탈리아가 아무리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도 듣지 않던 할아버지는 결국 검은 카포타만 남긴 채 돌아오지 않았다. 믿음의 붕괴. 그 균열이 조시아와 그 가족들을 얼마나 힘겹게 했을지 가늠할 수 없다.

 

'좋은 외모'라는 표현이 나온다. 조시아는 "엄마, 나도 이제 좋은 외모가 됐어요?" 물어본다. 여기서 좋은 외모란 나치가 주장한,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순수 혈통 사람 같은 외모이다. 좋은 외모인 엄마가 가족을 위해 게토 밖으로 나가 필요한 물품들을 가지고 오는 걸 보고 조시아는 분명 어른이 되면 자신도 금발에 푸른 눈인 좋은 외모가 되어서 고생이 끝날 거라고 믿는다. 이 순진한 믿음이 가슴을 찢어놓는다. 수년간 게토 지하실에 숨어서 엄마가 알려준 세상만을 접한 채 자란 조시아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현실은 지하실 창문 밖 세상일뿐이었다. 영화처럼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바깥세상은 딱 그만큼이었다. 조시아의 세계는 인형 주지아와 엄마가 채워준 것들이 있는 지하실이 전부였다.

 

"나는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불행하지도 않았다.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 그냥 그런 줄 알았다.

한 번도 지하실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갈 수 있다는 걸 몰랐으니까. "

 

나탈리아는 딸 조시아를 게토 지하실에 꼭꼭 숨겨두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고통받는 아이들을 아리아인 구역으로 빼내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겁을 내지 않았다는 조시아의 기억처럼 그녀는 신념을 따라 용감하게 살았다.

나치 독일에 의해 희생되거나 고통받은 다른 유대인들의 기록과는 결이 다른 조시아의 고백은 아이를 지키고자 했던 엄마의 간절한 바람이 가져다준 기적이다. 나탈리아가 조시아에게 끊임없이 말한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는 조시아를 지켜주는 결계가 되어 게토 지하실에서 조시아와 주지아를 버티게 해주었다. 나탈리아가 조시아 곁에 항시 머물러 힘이 되어주었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던 것이다.

 

지하실에 숨어살던 조시아가 게토를 탈출하여 아리아인 구역으로 가서 엄마 아빠를 만나게 되고 그 이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사는 이모에게 가기까지의 여정이 펼쳐진다. 그 가슴 아픈 여정은 아이 입장에서 경험한 전쟁의 참혹함을 전하고 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아빠를 만났으나 친해지기도 전에 독일군에게 끌려가고, 엄마는 처참하게 맞는다. 조시아는 멀리 보내진 자신을 찾아온 여자에게서 엄마의 냄새를 맡고는 엄마라 받아들이게 된다.

 

"나는 엄마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우리 엄마 냄새가 맞았고, 우리 엄마처럼 말했다.

이제 다시는 혼자 남겨 놓지 않겠다고, 오래 설명했다. 그제야 나는 그러자고 했다."

 

예루살렘을 도착한 이후에도 조시아 자이칙의 슬픔은 계속된다. 엄마, 조국 폴란드, 이름 조시아 자이칙...... 다 떠나보낸다. 정체성이 뿌리째 흔들렸을 그 작은 영혼이 말하는 사랑이, 상처가, 고통이 오롯이 담긴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인간이 저지르는 잔혹한 폭력, 전쟁의 참상을 한 땀 한 땀 새기고 있다. 80살이 넘은 조시아가 여전히 엄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마지막 글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조시아와 주지아를 기억하겠습니다.

 

저자 아가타 투신스카는 인터뷰어로서 조시아가 들려준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려고 노력하였다. 폴란드어를 오랜만에 쓴 조시아의 말투를 살리고, 자신에게 건넨 말을 우리에게 전하기 위해 남겨두었다고 한다. 『어린이의 왕이 되겠습니다』로 익숙한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작가는 참혹한 현실을 조시아의 이야기와 감정선을 담아 슬프지만 그리움이 가득한 아름다움으로 그려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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