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언제나 돌아와
아가타 투신스카 지음,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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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띠지로 포장되어 도착한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

우리에게도 익숙한 고운 꽃자수가 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띠지가 상하지 않게 조심히 책을 꺼내 살펴봤다.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아가타 투신스카 글/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사계절

 

앞표지에는 여자아이가 인형을 들고 어딘가를 응시한 채 서 있다. 여자아이와 인형은 파란색 바탕에 띠지에 수놓아진 꽃과 같은 꽃들이 프린트된 원단으로 만든 원피스를 똑같이 입고 있다. 뒤표지에는 어느 여인이 방문 너머에서 인형에게 방 내부를 소개해 주고 있다. 푸근한 인상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64쪽의 그림책 형태로 제작된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에서 탈출한 생존자 조시아 자이칙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외형만 봤을 때는 어린이부터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라 생각했건만...... 전쟁의 참상을 그린 이야기인데도 과감하게 그림책 형식을 취한 것은 의도된 제작이었으리라. 조시아의 기억 속 어린 시절은 아이 특유의 순진함과 감수성이 가득한 이야기로 전쟁의 폐해와 참상을 직접적으로 조명하기보다는 지하실에 갇혀 자신만의 세계를 살아간 이중적인 비극이다.

 

이 책의 화자는 조시아 자이칙(야엘 로스너)으로 11살에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오게 된 폴란드계 유대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는 독일에 침공당하여 험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나치 독일은 백인계 아리아인을 우월하다 여기는 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에 입각하여 바르샤바에 게토를 만들어 유대인들을 억압하였다. 다비드의 별이라고 불리는 완장을 차게 하는 등 유대인 표식을 하게 하고 모든 생활을 통제하였다.

그림책을 감싼 띠지는 다비드의 별 완장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그 시절 유대인들을 옭아맸던 죽음의 표식이었다. 하지만 수놓아진 꽃은 어머니 나탈리아가 딸 조시아에게 전해준 희망과 사랑의 증표로, 그 시절 어머니가 가르쳐준 자수는 조시아의 삶 속에서 계속 이어졌다. 단순히 자수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어머니의 사랑을, 실이나 양모같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재료에 대한 존경을 조시아는 잊지 않았던 것이다.

 

 

바르샤바에 게토가 만들어지자 유대인끼리의 통합을 위해 들어가기를 원하는 독실한 유대인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3살쯤 된 조시아를 비롯한 가족들은 게토에 들어가게 되었다. 통제하기 위해 만든 벽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길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친밀한 관계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분명한 의도가 담긴 곳인데 제 발로 들어가다니 그것도 가족 모두를 이끌고! 조시아의 엄마 나탈리아가 아무리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도 듣지 않던 할아버지는 결국 검은 카포타만 남긴 채 돌아오지 않았다. 믿음의 붕괴. 그 균열이 조시아와 그 가족들을 얼마나 힘겹게 했을지 가늠할 수 없다.

 

'좋은 외모'라는 표현이 나온다. 조시아는 "엄마, 나도 이제 좋은 외모가 됐어요?" 물어본다. 여기서 좋은 외모란 나치가 주장한,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순수 혈통 사람 같은 외모이다. 좋은 외모인 엄마가 가족을 위해 게토 밖으로 나가 필요한 물품들을 가지고 오는 걸 보고 조시아는 분명 어른이 되면 자신도 금발에 푸른 눈인 좋은 외모가 되어서 고생이 끝날 거라고 믿는다. 이 순진한 믿음이 가슴을 찢어놓는다. 수년간 게토 지하실에 숨어서 엄마가 알려준 세상만을 접한 채 자란 조시아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현실은 지하실 창문 밖 세상일뿐이었다. 영화처럼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바깥세상은 딱 그만큼이었다. 조시아의 세계는 인형 주지아와 엄마가 채워준 것들이 있는 지하실이 전부였다.

 

"나는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불행하지도 않았다.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 그냥 그런 줄 알았다.

한 번도 지하실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갈 수 있다는 걸 몰랐으니까. "

 

나탈리아는 딸 조시아를 게토 지하실에 꼭꼭 숨겨두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고통받는 아이들을 아리아인 구역으로 빼내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겁을 내지 않았다는 조시아의 기억처럼 그녀는 신념을 따라 용감하게 살았다.

나치 독일에 의해 희생되거나 고통받은 다른 유대인들의 기록과는 결이 다른 조시아의 고백은 아이를 지키고자 했던 엄마의 간절한 바람이 가져다준 기적이다. 나탈리아가 조시아에게 끊임없이 말한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는 조시아를 지켜주는 결계가 되어 게토 지하실에서 조시아와 주지아를 버티게 해주었다. 나탈리아가 조시아 곁에 항시 머물러 힘이 되어주었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던 것이다.

 

지하실에 숨어살던 조시아가 게토를 탈출하여 아리아인 구역으로 가서 엄마 아빠를 만나게 되고 그 이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사는 이모에게 가기까지의 여정이 펼쳐진다. 그 가슴 아픈 여정은 아이 입장에서 경험한 전쟁의 참혹함을 전하고 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아빠를 만났으나 친해지기도 전에 독일군에게 끌려가고, 엄마는 처참하게 맞는다. 조시아는 멀리 보내진 자신을 찾아온 여자에게서 엄마의 냄새를 맡고는 엄마라 받아들이게 된다.

 

"나는 엄마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우리 엄마 냄새가 맞았고, 우리 엄마처럼 말했다.

이제 다시는 혼자 남겨 놓지 않겠다고, 오래 설명했다. 그제야 나는 그러자고 했다."

 

예루살렘을 도착한 이후에도 조시아 자이칙의 슬픔은 계속된다. 엄마, 조국 폴란드, 이름 조시아 자이칙...... 다 떠나보낸다. 정체성이 뿌리째 흔들렸을 그 작은 영혼이 말하는 사랑이, 상처가, 고통이 오롯이 담긴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인간이 저지르는 잔혹한 폭력, 전쟁의 참상을 한 땀 한 땀 새기고 있다. 80살이 넘은 조시아가 여전히 엄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마지막 글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조시아와 주지아를 기억하겠습니다.

 

저자 아가타 투신스카는 인터뷰어로서 조시아가 들려준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려고 노력하였다. 폴란드어를 오랜만에 쓴 조시아의 말투를 살리고, 자신에게 건넨 말을 우리에게 전하기 위해 남겨두었다고 한다. 『어린이의 왕이 되겠습니다』로 익숙한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작가는 참혹한 현실을 조시아의 이야기와 감정선을 담아 슬프지만 그리움이 가득한 아름다움으로 그려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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