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김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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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종말을 소재로 다루는 영화, 소설 등 다양한 콘텐츠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소혹성(소행성)의 충돌이 가장 흔한 원인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 역시 소혹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종말이 선언되고 네 사람이 남은 한 달을 보내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들여다보는 네 사람은 행복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남으려 애쓰거나 지구 멸망을 바라는 망한 인생의 표본 같은 이들이다. 남은 한 달 동안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멸망이 아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나기라 유 지음/한스미디어


☆ 초등학생 때는 실연으로,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학교폭력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아 SOS 신호를 보내는 에나 유키

- 지구에게 지금 당장 폭발해서 인류를 멸망시켜 주세요.

교내 카스트제도에 순응하여 친구 심부름을 하면서 지내던 유키는 지구 멸망 선언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무리들이 당황하자 인류 멸망 폴더에 '유쾌' 파일을 처음으로 추가했다. 어떤 즐거움이나 구원이 아닌, 어두운 환희로 유쾌한 감정을 먼저 느낀 유키를 보면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곧 현실을 자각하고 '부조리'와 '분노' 파일을 추가한다. 나 또한 믿지는 않지만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을 총동원하여 애원하다가 원망하다가 또다시 매달릴 것이다.

 

☆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부모의 애정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메지카라 신지

그는 젊어서부터 주먹을 쓰면서 살아가는 시시한 인생이다. 마흔의 그가 스무 살 때 심장 바로 위에 새긴 이름을 새긴 여자, 에나 시즈카를 찾아간다. 지구 멸망을 앞두고 그가 보고픈 유일한 존재, 마지막 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그녀를 찾아 떠난다. 지구가 사라지는 그 순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건 선택일 수가 없다.

 

☆ 신지를 떠나 홀로 유키를 낳고 키울 수밖에 없었던 에나 시즈카

시즈카는 자신처럼 어두운 시절을 겪은 신지를 이해하고 진정 사랑하지만, 자신을 때리는 신지가 아이마저 때리는 무서운 일이 벌어지기 전에 그를 버리고 아이를 선택한다. 그렇게 떠나왔던 신지가 찾아와 위험에 처한 아들을 구해준다. 같은 엄마라 그녀의 선택과 결단 그리고 그 선택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깊이 공감되었다.

 

이렇게 완전체가 된 신지, 시즈카, 유키 세 가족은 유키가 짝사랑하는 후지모리 유키에가 가고 싶어 하는 Loco 콘서트를 넷이서 보러 간다.

 

☆ 이 시대의 가희, 아이돌 Loco

<마지막 순간>의 주인공 Loco는 아름답고 실력 좋은 아이돌이지만 이는 소속사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일 뿐이었다. 야마다 미치코는 록 음악을 좋아하고 마을 친구들과 즐기면서 밴드 활동을 하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지구에 소혹성이 충돌하는 그 시간에 고향 마을에서 콘서트를 열기로 한다.

 

 


 

지구의 멸망이 선언되고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다양하다. 결코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하거나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고 분노하거나 끝없이 눈물만 흘리거나 아무 일이 없다는 듯 그냥 일상을 살아간다. 개인적인 발산이 이제는 사회 전체로 퍼져 강도, 방화, 살인이 일어나 가정을 무너뜨리고 마을을, 도시를 불태운다. 지구가 멸망하기도 전에 인류끼리 서로를 없애려는 듯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다. 다 같이 죽는다는 결말은 이렇게나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것인가? 마음을 할퀴는 듯 매서운 바람이 불지만 다행히 세상도 소설 속 이야기도 가혹하지만은 않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주위를 돌보면서 가슴속에만 품었던 마음, 말들을 털어놓는다.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보살펴주고 사랑해 준다. 아이러니하게도 멸망 선언 전에는 암담했던 내일이 따스한 빛으로 다가오는 묘한 설렘이 전해진다.

 

 

담담히 자신의 심정을 말하는 유키의 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보다 나는 내가 훨씬 좋아졌어.

예전 세상은 평화로웠지만 언제나 어렴풋이 죽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지금은 죽고 싶지 않아. 하지만 앞으로 열흘밖에 없어.

슬프고, 무섭고, 최악이지만, 그래도 나는 조금 괜찮게 변한 것 같아.

세상이 그대로였다면 오래 살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런 마음은 모른 채로 죽었겠지.

어느 쪽이 나은 걸까?"

 

멸망을 말하면서 희망과 꿈을 말하게 되는 이 모순 속에서 자신을 좋아하게 되고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있는 이 순간만을 생각하면서 나아가는 사람들이 보내는 마지막 한 달이 우리를 설레게 하고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감동을 전한다. 우리는 아직도 현실 저 너머에서 샹그릴라, 퍼펙트 월드, 엘도라도를 찾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되돌아보면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던 그곳이 바로 그곳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한 달 이상은 남았을 우리는 좀 더 열심히 사랑하고 표현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괜시리 마음이 촉촉해진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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