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고 사랑하고
현요아 지음 / 허밍버드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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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고 ______ 사랑하고/현요아 지음/허밍버드




 

"엄마, 무슨 책인데 그래요?"

 책을 읽으면서 한숨을 내쉬는 나를 보고 딸이 물었다. '아, 신경 쓰일 정도로 한숨을, 감정을 내비쳤구나.' 싶었다. "자살 사별자가 쓴 에세이야.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언니가 세상에 보내는 다정한, 연대의 메시지야. 그런데 동생도, 언니도 큰 불행을 겪어서 많이 지친 부분이 엄마를 할퀴네." "아~." 짧은 대화를 끝맺고 다시 책 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면도 모르는 누군가의 삶, 신문 기사 혹은 뉴스로 접했을 만한 그늘진 삶이 실체를 띠고 나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먹먹해지고 누군지에게 쏟아내야 하는지도 모르는 분노와 화가 솟구쳤다. 존재 자체로 아름답고 싱그러운 청년들이 아닌가. 왜 그들이 이런 고통과 슬픔을 감내해야 하는지 답을 찾지 못해 괴로웠다. 하지만 당사자인 현요아 저자는 오히려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처럼 고통을 겪은 이, 떠나보낸 이, 남겨진 이, 떠나고자 하는 이… 절망하고 포기하려는 이들에게 다정히 편지를 보내고 있다. 그녀의 진심이 담긴 글 한 편 한 편이 물줄기가 되어 온몸을 타고 숨을 이어주고 있다. 불행 울타리를 넘은 자의 사유가, 끊임없이 질문하고 자신만의 답을, 방법을 찾아가는 자의 의지가 지치고 넘어진 이에게 용기를 꿈꾸고 기댈 수 있는 내일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영국의 '외로움 담당' 장관 

이 책에서 처음 듣고는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2018년 1월 16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외로움 문제를 담당할 장관을 임명했다고 한다. 해당 장관은 외로움 관련 전략을 마련하고 폭넓은 연구와 통계화 작업을 주도하며 사람들을 연결하는 사회단체 등에 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메이 총리는 “외로움은 현대 삶의 슬픈 현실”이라며 “노인이나 돌봄이 필요한 이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자기 생각을 나누지 못하고 지내는 것을 막기 위해 모두가 나서자"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일본의 '고독·고립' 장관 

이웃나라인 일본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급증하면서 2021년 2월 고독·고립 장관을 임명하였다. 국가의 책임 아래 고독에 방치된 사람들을 본격 지원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우울증은 현대인의 질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외로움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국민적·사회적 동의는 당연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OECD 자살률 1위로 10대부터 30대는 자살, 40대 이상은 암이 사망원인 1순위이다.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온 나라 전 세계가 우울한 시기를 겪었기에 '코로나 블루 = 코로나 우울'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였다. 이런 추세를 살펴볼 때 저자의 염려와 염원처럼 우리나라도 외로움을, 아픔 어린 사연을, 상처를 드러내도 외면당하거나 비난당하지 않고 위로받고 충분히 애도할 수 있게 도와주고 더 나은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 사회 주도로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살아 있잖아요."

 

 

 

 갑자기 떠나버린 동생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지난한 과정을 읽으면서 현요아 저자의 생명력에 감복하였다. 한 움큼의 약을 삼켜야 버틸 수 있는 하루의 시간. 하지만 자살 사별자가 되어보니 그 상처가 너무 커서 절대 못 떠나겠다고, 오히려 이기적으로 살고 싶어졌다고 고백하는 저자는 큰 사랑을 품은 사람이다. 삶을 지극히 사랑하고 고통 속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탐구하고 묻는 그의 행보를 바라보면서 대단하다고 느꼈다. 상처를 마주 볼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기에 불행 울타리를 벗어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아픈 이들의 편이 되어주려 한다. 혼자가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따뜻하게 내미는 손길과 말들이 쌓여 연대와 공감의 울타리가 되었다.

 

 

버티는 날이 모이면 언젠가는 버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겠지.

 

 

 

충분히 애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사람들이 당신의 경험을 앞세워 그러지 말라고 해도 본인의 마음이 가는 대로 결정하면 행복하다는 사실을 익혔다는 저자의 고백이 인상적이다. 이런 경험이 있기에 현요아 저자는 자신의 문제, 상황, 감정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이 자살 사별자로서 그리고 조울증 환자로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고통에 침잠하지 않고 사회로 돌아오는 여정을 솔직 담백하게 털어놓으면서도 정답이라 강요하지 않는다. 아픈 이들이 스스로 자신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해 주고 손잡아 주고 기다려준다. 그리고 당신들의 편이라 믿음을 심어주고 사랑을 쏟는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책이 동생이 묻고, 저자 본인이 묻고, 우리가 묻는 질문, "왜 살아야 해요?"에 대한 생각을 전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동생의 부재를 온몸으로 부딪쳐 이겨나가고 있는 저자에게 격려와 감사의 안부를 전한다. 책임이 강하고 사랑이 깊어 더 힘들게 몸살을 앓고 있는 가녀린 영혼에게 찰나의 아름다움과 찰나의 행복이 영원토록 깃들기를 바란다. 웃고 싶을 때는 맘껏 웃어요.






 디지털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소통할 수 있는 오늘날을 살고 있는 우리는, 너무도 가까우면서도 너무도 멀어 외로운 것 같다. 온라인 세계에서는 수많은 콘텐츠들을 생산해 내고 보여주고 보고 좋아요??로 서로 쉴 새 없이 교류하는 듯한데 막상 너와 나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우리가 되어야겠다고 약속하였다, 나 자신과.





내가 나에게, 너에게, 우리에게

또 네가 나에게, 너에게,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가 나에게, 너에게,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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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베이비 -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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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문장으로 강렬하게 시작하는 이 소설 『카지노 베이비』, 심상치 않다. 열 살 아이의 목소리로 전하는 내용이 근대화와 투기 자본주의로 몸살을 앓는 땅, 지음과 그 안에서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가는 인생들이다. 버려졌다는 상처를 안고 전당포에서 살고 있는 동하늘의 맑고 순수한 눈동자로 바라보는 세상의 단면을 전해주고 있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하늘이 품고 있는 의문과 신기한 꿈에 대해 답을 달라 재촉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철렁했다. 빠른 흐름의 소설은 아니지만 지음 안에서 벌어진 일련의 역사가 굴곡져 이를 따라가는 여정이 심적으로 녹록지 않아 집중하게 만들었다.





카지노 베이비/강성봉/한겨레출판





 어느 날, 갑자기 전당포에 맡겨진 아이인 동하늘!

전당포 가게에 사는 이들이 식구가 되었다. 할머니 동영진, 엄마 임정희, 삼촌 임정식가 생긴 것이다. 신기하게도 할머니 성을 따랐는데,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이해가 되었다. 셈에 밝은 동 할머니가 어린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 이야기는 무더운 여름밤 끈적거리는 몸을 뚫고 내 안으로 들어와 촉촉한 비를 내리고 따사로운 숨결로 싹을 틔웠다.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몸으로 병실에서 단둘이 시간을 보내면서 하늘이 그토록 궁금해하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늘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리듯 떠올리면서 <할머니의 유산 - 이야기>을 읽어나갔다.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도 부러지지 않고 큰 흐름을 유연하게 타고 넘어갈 줄 알았던 현명함을 지녔던 할머니는 자신을 찾아온 생명에게 그리고 자신을 살려줄 생명에게 그간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둘이 맘껏 땅 위를 훨훨 날아다니는 동안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하늘이 할머니가 전해준 이야기를 얼마나 받아들였을지 모르지만, 한 세대에서 또 다른 세대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큰 울림을 주었다.








 박수 할아버지가 할머니 장례식에서 건넨, 마지막 인사말이 할머니의 고된 인생을 어루만져 주는 듯해서 나도 모르게 울어버렸다. 불씨를 품고 생명이 다하기까지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던 할머니는 생전에 도서관에 하늘이를 데리고 가려던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책에서만 뭘 배우는 건 아니니. 책만 보면 지 혼자만 아는 눔이 되고, 혼자만 되면 절대루 돈을 벌 수 없어. 하늘이를 그런 멍텅구리로 키울 거나? 돈이 어찌 생겨서 흘러가고 써지는지 알믄 그게 시상을 배우는 거 아니겠나."

 


 그리고 돌아가신 후, 지음을 위해 그리고 남은 가족들을 위해 큰 뜻을 남기신다. 고향을 떠나 새로 자리 잡은 '지음'은 할머니에게 평안한 삶을 안겨주지 않았지만, 긴 세월 동안 함께 한 땅과 이웃을 끝까지 어른으로서 보듬어 주었다.








 지음에 탄광이 들어서든 랜드가 들어서든 그 속에서 오가고 생기는 돈은 결코 지음 주민들의 차지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지음 주민들은 그때마다 흐름에 휩쓸리기 바빴다. 특히 랜드가 들어서고는 마을의 명칭도, 거리에 들어선 가게 업종도 크게 달라졌다. 어느 누구 하나 랜드를 거치지 않은 이가 없다. 하지만 여유롭게 태평하게 웃을 수 있는 이도 없다. 도박의 끝은 쪽박공원으로 향한다.

 

 

 한 세대를 아우르는 긴 세월 속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성과 매력이 다채로워 이야기를 힘 있게 끌고 나가고 있다. 특히 강원도 사투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꼼꼼한 사전조사가 돋보이는 탄탄한 구조의 소설로 우리네 근현대사의 사건사고를 적절히 배치하여 공감대를 넓히고 투기 자본주의로 파괴되어가는 시골과 서민을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렇지만 이야기의 골자는 전당포 동 할머니로 시작하여 하늘, 정희, 정식으로 이어지는 지음을 사랑하고 사람을 믿고 돌보는 삶의 자세이다. 할머니가 남긴 유산 세 가지를 하늘, 정희, 정식 이 세명이 얼마나 멋들어지게 해내는지 아니 해낼 걸 알기에 기쁘게 마지막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그저 혼자 걷기 시작했을 때는 그 길이 끝날 때까지 계속 걸어가는 거라고

할머니가 그랬으니까."

"지키는 게 어려운 거야."

 

 

한겨레출판 하니포터4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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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시선 -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
이윤희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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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

 

아이들과 미술관에 가거나 화집을 보다 보면 당황스럽거나 불편한 경우들이 있다.

그 오묘한 감정에 이름 붙이기가 어려웠는데 이 책을 통해 바깥으로 끄집어내 속 시원하게 대변해 주는 통쾌함을 느꼈다. 말로 정확히 집어낼 수 없는 무언가 그것은 명작이라 추앙받는 작품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불쾌하면서도 불편한 느낌이었다. 고전, 명화, 위대한 화가로 역사적 위엄과 명성이 쟁쟁한 실체에 반기를 든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고, 오히려 부족한 내 예술적 소양 탓을 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불편하고 싫은 나의 감상은 끈질기게 남아 미술에 투명한 벽을 쌓았다. 그 벽을 부셔줄 책 <불편한 시선>을 만났다. 



불편한 시선/이윤희 지음/아날로그




이 책은 얼 가지 키워드를 통해 미술사를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의문, 시선, 누드, 악녀, 혐오, 허영, 모성, 소녀, 노화, 위반

 

각 챕터마다 키워드에 알맞은 작품들과 이야기로 차근차근 조목조목 미술사 속에 만연한 차별과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읽을수록 뜨거워지면서도 차분해지게 만드는 재기 넘치는 글 솜씨에 빠져들었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 미술사를 여행하다 보면 어느새 달리 보이는 미술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술 역시 시대의 산물이라는 자명한 사실이라는 부정할 수 없다. 예술이 시대를 선도하기도 하지만 시대적 요구가 적극 반영되기도 하는 것이 예술이다. 그래서 미술사 역시 여성이 겪어온 역사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관객의 요구와 시선에 맞춰 진실을 왜곡·편집하기까지 했다. '예술'이라는 안전장치 안에서 뿌리내린 그들만의 '예술'을 다른 시선으로 읽어보는 색다른 시간을 가져보았다. 『불편한 시선』 누군가에는 인정하기 당황스럽거나 껄끄러울 수도 있지만 피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의 시간이 도래했다.

 

자, 이제 불편한 질문들을 하나씩 시작해 볼까?

의문 -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았는가

시선 - 왜 여성은 언제나 구경거리가 되는가

누드 - 미술 작품에는 왜 벗은 여자들이 많을까

악녀 - 여성은 남성을 괴롭히는 악한 존재인가

혐오 - 여성에 대한 폭력이 영웅적 행위가 될 수 있는가

허영 - 거울 앞의 여성은 아름다움에 눈먼 존재인가

모성 - 현실의 어머니가 언제나 고요하며 아름다울 수 있는가

소녀 - 소아성애는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노화 - 노년의 이미지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공평한가

위반 - 현실의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았는가' 의문으로 시작한다.

타당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인류 역사를 떠올려보면 '왜 존재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답은 이미 명확하다. 역시나 저자의 글도 예상처럼 흘러갔다. 씁쓸하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지금은 더 나아진 건가 자문하게 된다. 언론을 통해 접하는 첨예한 갈등의 현실 앞에 무너지지만, 예전에 비해 더디지만 변화하고 있는 여성의 지위와 인식, 자각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위대한 여성 미술가' 했을 때 뇌리를 스치는 인물은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이었다. 앙겔리카 카우프만, 메리 모저, 소포니스바 안귀솔라, 라비니아 폰타나, 로살바 카리에라,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 아델라이드 라비유기야르, 로자 보뇌르 등 다양한 여성 화가들을 저자가 소개해 주었을 때 기쁘면서도 안타깝고 분노했다. 분명 동시대를 살아간 남자 화가들은 후대에 널리 이름을 떨치는 대화가로 존경받고 있는데, 이들은 그 시대에는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사회의 시선에 맞춰야 했고, 후대에는 미술사에서 잘 거론되지 않아 잊힌 존재가 되었다.





로자 보뇌르는 6개월에 한 번씩 경찰서에 주치의의 진단서를 들고 가 바지를 입어도 된다는 허가서를 받아야 했다는 사실과 바지가 작업복일 뿐 다른 의도가 없다고 말해야 했던 상황을 읽으면서 답답해졌다.





<시선> 편에서는 명화라 사랑받는 작품들에게 느끼는 거북하고 불편한 감정의 이유를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마네의 <올랭피아>와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을 비교 분석해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올랭피아>가 전시될 19세기 중반에는 여자가 바지를 입기 위해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남성의 에스코트 없이 길거리를 혼자 다니는 여성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작품을 보리라고 상정하는 관객은 남성 일반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당대의 부르주아 남성 관객들은 <올랭피아>를 바라보며 왜 분노를 느꼈을까? 아름답지도 않은 벌거벗은 여성, 침대에서 장신구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매춘부 같은 여성이 눈을 똑바로 뜨고 화면 밖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에 아찔해졌다. 관객은 자연스레 올랭피아와 눈이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림을 보는 이는 나인데, 그림 속 여자가 자기를 바라보는 것 같은 황당함을 느꼈을 것이다. 벌거벗고 있지만 부끄러움을 타지도 않으면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올랭피아>는 당시 남성 관객에게 기분 나쁘고 충격적인 작품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시대적 관점에 의해 왜곡되고 변질된 여성에 대한 접근을 분석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이브와 릴리트, 유디트, 살로메 그리고 스핑크스까지 악녀로 그려내는 각색에 앞장선 것은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 연극 등에서 동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19세기 들어서면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신여성에 대한 생경함과 두려움을 이런 팜므파탈 이야기로 떨쳐내려고 한 게 아니었을까.

2009년 우리나라 5만 원권 지폐에 들어갈 요소로 신사임당의 얼굴과 작품이 확정되었다. 조선 시대 남성들만 존재했던 우리나라 화폐에 여성이 더해진 쾌거에 대부분 기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의외로 여성계가 반발하였다. 그 이유는 한국은행이 '신사임당이 현모양처이기 때문에' 선정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사실 신사임당은 생전에 어머니이기 전에 화가로 높이 평가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유교적인 기틀이 확립된 17세기에 이르자 신사임당을 훌륭한 어머니로서 부각시켰다고 한다.





문제가 되는 미술관이나 전시행사에 고릴라 가면을 쓰고 나타나 현장의 운동가로 활동하기도 하고, 미술관이나 전시 제도 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게릴라 걸스' 단체를 주목한다.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단체가 최초로 제기한 누드의 문제, 왜 여성 누드가 이렇게 많아야 하는가, 왜 여성 미술가는 미술계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20세기에 제기한 문제가 21세기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뼈아픈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게 되었다.

 

"훔쳐보지 말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겠다"

 

여성들에게 외모, 노화, 모성이 평가의 잣대로 더 강하게 적용되는지 이유를 알아보고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함으로써 사회가 바라보는 여성의 이미지를 깨부수고 성별을 떠나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자아를 드러내고 있다.

박영숙 작가의 '미친년 프로젝트'처럼 획일화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의심 없이 따라야 했던 관례와 질서에 의문을 품고, 세계의 비밀에 호기심을 갖는 여성, 그들이 '미친년'이라 부른다면 도리어 세상을 의심해야 하는 게 아닐까.




권위 있는 작품과 화가에 대항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불편한 진실을 소명하는 이윤희 작가의 <불편한 시선>

그 의미 있는 행보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가슴 벅찼다. 불편하였지만 침묵을 선택했던 과거와 불편하다고 소리 내는 현재. 우리는 달라질 미래를 꿈꾸고 있다. 왜곡과 혐오, 차별을 넘어 연대와 이해를 노래하는 내일을 말이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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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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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로 점철된 내 인생도 다시 떠오를 기회가 있을까?"


튜브/손원평 지음/창비



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를 읽었다.

다난한 인생사를 훑으면서 그에 대해 알아갈수록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 인생을 반추하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내 인생 영화는 평점 몇 점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소설 속 '김성곤 안드레아'는 내가 되고, 우리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프롤로그 속 글처럼 세상에 그렇고 그런 이야기, 실패한 이야기가 아닌 뭔가를 좋게 바꾸려는 김성곤 안드레아의 이야기를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넘어져도 일어서서 나아가는 그 너머 나를, 우리를 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과 실패', 이런 이분법적인 결론으로 인생을 바라보지 않는 손원평 작가의 통찰 어린 시선을 사회에서 내쳐지고 삶까지 버리려고 한 '김성곤 안드레아'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이 일련의 여정을 함께 하면서 손원평 작가의 문장에 대해 묘한 매력을 느꼈다. 냉소적이다가도 객관적으로 서술하기도 하고 더없이 다정한 위로를 건네는 듯하기도 했다. 이 문장들의 조합들이 모이고 쌓여 완성된 김성곤 안드레아의 이야기는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다가왔다. 누구나 생각하고, 바라고, 시도하지만 포기하기 쉬운 '변화'에 대해 흡입력 강한 스토리텔링으로 독자인 우리를 사로잡는다. 김성곤 안드레아의 삶 속 잊고 있던 인연들과의 재회를 그리면서 '변화'의 가치와 '변화'에 대한 갈망과 의지가 삶을 어떻게 이끄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삶을 지탱하고 이끄는 것은 작은 씨앗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뭔가를 좋게 바꾸려는 김성곤 안드레아의 이야기

이 어떤 삶에 대한 조명은 가슴 뭉클한 위로와 응원을 전하고 있다.

 

잘했다. 아주 잘했다. 잘 산 인생이다.

 

삶을 포기하려고 했던 순간에 '변화'를 이야기하는 사업가 굴렌 굴드의 이야기에 꽂히게 된다. 어떤 지겨운 상태의 영원한 연장일 뿐인 삶, 모든 빛이 꺼져버렸다. 죽음에 대한 이글거리는 열망까지 꺾여버린 순간, 김성곤은 삶 안으로 강제로 밀어넣어졌다. 죽음을 다시 꿈꾸게 될 때까지 버틸 것인지, 암흑 같던 삶에도 찾아온 기회를 잡을 것인지.

 

김성곤 안드레아는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를 바꿨다. 끝없이 세웠던 목표 대신 행동 자체를 목표로 삼았다.

 

자세를 바르게 하겠다.

허리는 위로. 어깨는 아래로. 등은 그 사이에.

Back to the Basic!

 

 

이 목적 없는 단순함이 삶을 지탱해 준 경험은 또 다른 '변화'의 길로 이끌었다. 지금을 벗어나게 도와줄 무언가, 잡고 싶은 지푸라기는 우리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스스로 내리는 처방전이다. 스스로 만든 지푸라기가 커다란 『튜브』가 될 때까지 바람을 넣어주는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바뀌고 싶지만 지레 포기하는 나를 위해 바람을 넣어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지푸라기 프로젝트의 성공이 훈훈하게 그려지지만, 이 성공이 김성곤 안드레아의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변화'를 말하고 있다. 계속 삶을 탐구하는 김성곤 안드레아를 보면서 살아있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영이의 생일날 일화처럼

생각은 바꿔야 한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 그리고 행동까지 바꿔야 한다. 그러면 삶의 자세도 바뀐다.

일상 속 넘쳐나는 감각들을 온전히 느껴보는 것생각의 스위치는 끄고 세상을 그대로 바라보면 아름다움에 벅차오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감각을 깨워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느끼는 상상 만으로도 짜릿해지는 기분이다.





변화는 어렵고 더딜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변화'하며 살아간다. 삶과 대적하거나 삶을 포기하지 말고 삶과 악수를 청해보자.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작은 싹들이 자랄 수 있도록 마음을 키워보고픈 응원을 한가득 받았다. 스스로 수면 위로 당당하게 떠올라 힘찬 인사를 나누는 우리로 이끄는 소설 『튜브』이다.

"바뀌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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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 아저씨
김은주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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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만 반짝하는 선수가 되지 않겠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듯한 친구들을 만났다. 육상 선수인 다연이와 고민을 들어주는 구구 아저씨. 이 놀라운 조합은 우리에게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파격을 안겨주는 동시에 서로의 고민과 꿈을 공유하며 소통하고 교류하는 관계의 정수를 선보인다.



구구 아저씨/김은주 지음/팩토리나인




다연이는 작년 중학교 3학년 때, 혜성처럼 등장해 12초 03의 기록으로 전국 육상 선수권대회 여자 100m 전체 2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올해 전국 체전 예선전에서 5m를 남겨두고 트랙 위로 고꾸라졌다. 왼쪽 발목이 부러지고 무서워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어딘가에 숨어 있던 괴물들이 일제히 사방에서 튀어나와 아우성치며 달려들 것만 같았다.

 

처음 경험한 실패는 다연이를 뒤흔들어 놨다. 부러진 발목은 시간이 흘러 붙었지만, 금이 간 마음은 좀처럼 낫지 않았다. 달려야 할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매일 한강 공원에 나갔다. 그리고 만났다. '구구 아저씨'를. "핫바 한 입만" 추운 겨울 한강의 벤치에 앉아 호기롭게 컵라면을 먹던 다연에게 들려오는 말이었다. "나 진짜 미쳤나 봐."

 

이렇게 이어진 인연으로 다연의 인생 상담을 해주는 구구 아저씨다. 상담료는 핫바, 컵라면, 삼각 김밥, 빙수용 인절미다. 진지한 말투로 조언을 건네기도 하고, 먹을 걸 달라 조르기도 하는 구구 아저씨에게 이제껏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묵은 감정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구구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음을 무겁게 했던 일들이 날아가는 듯했다.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곁에 있어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다행이네. 어떤 문제는 일단 입 밖에 내고 나면 별게 아닌 법이거든."

"누군가를 언제나 진심으로 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그건 마음이 청춘인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야."

"A Better Tomorrow. 내일은 더 괜찮을 거라는 거지. 내일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는 거야."



외할머니와 엄마. 이렇게 셋인 가족 구성원이 특별히 싫은 건 아니었던 다연이에게 갑자기 어렸을 때 헤어진 '아빠'라는 존재가 크게 다가오게 된다. 부상당하고 다시 달릴 수 없는 자신과 1군과 2군을 왔다 갔다 하다 결국에는 2군 코치를 하는 왕년 야구선수 아빠를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힘들었던 아빠를 포기한 엄마에 대한 원망도 커지게 된다. 참 신기한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키워준 엄마한테는 서운하고 미운 감정이 들고, 양육비도 제대로 보내지 않고 다른 이와 결혼한 아빠한테는 유대감과 애착을 보인다.

 





발목은 나았지만 달리려고 하면 아픈 것은 이유가 있다. 이런 다연이의 고민과 걱정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런데 갑자기 멘붕이~ 소중한 전부가 담긴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찾아야만 한다. 이때부터는 소설 장르가 갑자기 바뀌었다. 하나에 꽂힌 열일곱 소녀와 비둘기라면 능히 벌일만한 행동이라 하기에는 엄청난 스케일의 사건이 펼쳐진다. 나 또한 정신 번쩍 차리고 긴장하고 글을 읽었다. 오~ 두근두근. 심장아, 그만 나대렴.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을 만큼 긴장되고 판타지스런 모험이 펼쳐진다. 다연이의 소중한 것을 지키고 찾고자 하는 마음을 응원하고, 구구 아저씨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랬다. 나의 상상력 너머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재밌고 신기하게 다가왔다.

 

 


"나에게도 '구구 아저씨'가 있으면 좋겠다."





'발목 부상'은 다연이에게 큰 시련이자 성장통이었다. 육체적인 회복만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고 깊어지게 했다. 그리고 소중한 인연을 이어주었다.

 

다연이의 성장 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내가 힘을 얻게 되었다. 넘어졌다고 해서, 실패했다고 해서 무조건 새 출발 할 필요는 없는 거다. 충분히 잘 하고 있는 우리는 킵 고잉할 자격이 있다. 나답게 킵 고잉! 너답게 킵 고잉! 우리답게 킵 고잉!

 

유해조류이라고 우리가 터부시하는 비둘기를 특별한 존재로 당당히 등장시킨 김은주 작가의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에 무한한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알려준 대로 길가에서 만나는 비둘기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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