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베이비 -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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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문장으로 강렬하게 시작하는 이 소설 『카지노 베이비』, 심상치 않다. 열 살 아이의 목소리로 전하는 내용이 근대화와 투기 자본주의로 몸살을 앓는 땅, 지음과 그 안에서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가는 인생들이다. 버려졌다는 상처를 안고 전당포에서 살고 있는 동하늘의 맑고 순수한 눈동자로 바라보는 세상의 단면을 전해주고 있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하늘이 품고 있는 의문과 신기한 꿈에 대해 답을 달라 재촉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철렁했다. 빠른 흐름의 소설은 아니지만 지음 안에서 벌어진 일련의 역사가 굴곡져 이를 따라가는 여정이 심적으로 녹록지 않아 집중하게 만들었다.





카지노 베이비/강성봉/한겨레출판





 어느 날, 갑자기 전당포에 맡겨진 아이인 동하늘!

전당포 가게에 사는 이들이 식구가 되었다. 할머니 동영진, 엄마 임정희, 삼촌 임정식가 생긴 것이다. 신기하게도 할머니 성을 따랐는데,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이해가 되었다. 셈에 밝은 동 할머니가 어린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 이야기는 무더운 여름밤 끈적거리는 몸을 뚫고 내 안으로 들어와 촉촉한 비를 내리고 따사로운 숨결로 싹을 틔웠다.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몸으로 병실에서 단둘이 시간을 보내면서 하늘이 그토록 궁금해하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늘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리듯 떠올리면서 <할머니의 유산 - 이야기>을 읽어나갔다.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도 부러지지 않고 큰 흐름을 유연하게 타고 넘어갈 줄 알았던 현명함을 지녔던 할머니는 자신을 찾아온 생명에게 그리고 자신을 살려줄 생명에게 그간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둘이 맘껏 땅 위를 훨훨 날아다니는 동안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하늘이 할머니가 전해준 이야기를 얼마나 받아들였을지 모르지만, 한 세대에서 또 다른 세대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큰 울림을 주었다.








 박수 할아버지가 할머니 장례식에서 건넨, 마지막 인사말이 할머니의 고된 인생을 어루만져 주는 듯해서 나도 모르게 울어버렸다. 불씨를 품고 생명이 다하기까지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던 할머니는 생전에 도서관에 하늘이를 데리고 가려던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책에서만 뭘 배우는 건 아니니. 책만 보면 지 혼자만 아는 눔이 되고, 혼자만 되면 절대루 돈을 벌 수 없어. 하늘이를 그런 멍텅구리로 키울 거나? 돈이 어찌 생겨서 흘러가고 써지는지 알믄 그게 시상을 배우는 거 아니겠나."

 


 그리고 돌아가신 후, 지음을 위해 그리고 남은 가족들을 위해 큰 뜻을 남기신다. 고향을 떠나 새로 자리 잡은 '지음'은 할머니에게 평안한 삶을 안겨주지 않았지만, 긴 세월 동안 함께 한 땅과 이웃을 끝까지 어른으로서 보듬어 주었다.








 지음에 탄광이 들어서든 랜드가 들어서든 그 속에서 오가고 생기는 돈은 결코 지음 주민들의 차지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지음 주민들은 그때마다 흐름에 휩쓸리기 바빴다. 특히 랜드가 들어서고는 마을의 명칭도, 거리에 들어선 가게 업종도 크게 달라졌다. 어느 누구 하나 랜드를 거치지 않은 이가 없다. 하지만 여유롭게 태평하게 웃을 수 있는 이도 없다. 도박의 끝은 쪽박공원으로 향한다.

 

 

 한 세대를 아우르는 긴 세월 속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성과 매력이 다채로워 이야기를 힘 있게 끌고 나가고 있다. 특히 강원도 사투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꼼꼼한 사전조사가 돋보이는 탄탄한 구조의 소설로 우리네 근현대사의 사건사고를 적절히 배치하여 공감대를 넓히고 투기 자본주의로 파괴되어가는 시골과 서민을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렇지만 이야기의 골자는 전당포 동 할머니로 시작하여 하늘, 정희, 정식으로 이어지는 지음을 사랑하고 사람을 믿고 돌보는 삶의 자세이다. 할머니가 남긴 유산 세 가지를 하늘, 정희, 정식 이 세명이 얼마나 멋들어지게 해내는지 아니 해낼 걸 알기에 기쁘게 마지막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그저 혼자 걷기 시작했을 때는 그 길이 끝날 때까지 계속 걸어가는 거라고

할머니가 그랬으니까."

"지키는 게 어려운 거야."

 

 

한겨레출판 하니포터4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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