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는 요일 (양장)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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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거기 있으니까.

네가 있는 요일에

나도 매일 있고 싶으니까."

 

 

네가 있는 ___ 요일/ 박소영 장편소설/ 소설Y/ 창비



 


『네가 있는 ___ 요일』

이번에도 역시 박소영 작가였다! 『스노볼』을 읽으면서 느꼈던 전율을 소환하였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바탕으로 권력에 의해 포장되고 감춰진 인간의 뒤틀린 욕망을 파헤쳐 나가는 험난한 진실의 여정이 펼쳐진다.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먼 훗날에도 분명 '사랑'일지어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다양하다. 『네가 있는 ___ 요일』은 기후 위기, 인구 감소 등 현재의 위기의식을 고조시키는 쟁점으로 또 하나의 미래 세계관을 구축하였다.

 

 


인간 7부제 동의서
 


《네가 있는 ___ 요일》

일곱 명씩 보디 메이트로 묶여 하나의 신체를 요일별로 공유하는 인간7부제의 시대였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어느 시대가 그렇듯 7부제에 속하지 않는 부류가 존재했다.

 

의료진처럼 사회 필수 인력으로 분류되는 전문직,

17세 미만의 미성년자,

임신부,

36개월 미만의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

'환경 부담금'을 내면서 살아갈 정도의 재력을 가진 자.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인 인간7부제.

책을 읽으면서 '육체와 혼'으로 구성된 인간을 한 인간으로 규정하는 게 육체일까, 혼일까, 둘 다 있어야 할까? 생각이 깊어졌다. 이 세계관에서는 혼이 이 몸, 저 몸을 옮겨 다닐 수 있다. 인간 7부제로 자신의 신체를 포기하기에 그 신체는 또 다른 이들에게 제공되는 것이다. 아는 얼굴을 만나도 그들이 자신의 추억 속 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만약 가족이라면, 사랑하는 이라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시리게 아프고 추웠다. 그런데 이런 고통을 '돈'으로 벗어난 이들이 있다. 실제 지구의 문제가 인류의 탓이고, 대부분 선진국의 무분별한 개발과 소비 때문인데 고통은 후진국부터, 사회취약층부터, 약자부터 감내하고 있는 현실처럼 말이다.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이 사회에서도 내일을 꿈꾸고 살아가는 현울림과 그 친구들이 주인공이다. 할 말은 해야 하는 현울림과 현실적인 김달 그리고 다정하고 따뜻한 젤리(서예찬), 이 3명은 공공 보육원에서 같이 자란 사이다. 서로를 위해서는 다 할 수 있는 관계, 스스로 선택하여 곁을 내어준 이들은 함께 함으로써 시련과 고난을 이겨낼 힘과 지혜를 얻었다. 살아가는 데 이런 우정과 사랑만큼 소중하고 귀한 보물이 있을까. 실제로 울림이 강지나에 의해 살해당하고, 복수를 꿈꿨을 때 그들의 두터운 우정이 큰 도움을 주었다. 현울림과 강지나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친구가 아니었을까 싶다.

 


 


 


『네가 있는 ___ 요일』

수인 현울림이 보디 메이트인 화인 강지나에게 살해를 당하고 이를 복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보통 모르는 이들과 보디 메이트가 되는데 악연인 울림과 지나가 보디 메이트로 엮인 그날부터 비극은 예고된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남에게 탓을 돌리는 이기적인 강지나는 결국 현울림을 죽였다. 그리고 울림은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지나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네가 존재하는 모든 날에 함께 있고 싶어."

 

 

 

그렇게 복수는 시작되고, 하루도 잊지 못했던 인연 앞으로 울림을 이끈다. 인간7부제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않은 무국적자들이 모여 사는 '여울시'로 가 새로운 신체를 구하고 강지나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하기로 하였다. 이 일을 맡은 브로커가 바로 무재였다. 그리고 그가 바로 '강이룬'이었다. 울림의 삶 속에 잠깐 들렸다가 사라져버린 그리운 존재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이제 울림은 강지나에 대한 복수는 물론이고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아야만 한다. 무재가 이룬인지? 이룬은 왜 갑자기 떠났는지? 이룬은 왜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는지?

용감하고 다부진 울림은 이 모든 의문을 풀고 맞이하게 될 진실을 기꺼이 수용할 거라는 강한 믿음으로 울림과 무재의 동행을 응원했다.

 

 

"수요일마다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우리를 진정으로 살아 있게 할 테니까요."

 

 

박소영 작가가 생각하는 가치관이, 주제의식이 잘 녹아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인간7부제, 일주일 중 1일은 오프라인 현실에서 나머지 6일은 가상현실 낙원에서 아바타로 생활한다. 모든 상상이 실현되는 낙원이지만 이를 느끼는 감각은 온전히 자신의 뇌에 기록된 감각에 한하기에 오프라인에서의 하루는 살아 있게 하는 데 필수조건이다.

여울시 또한 외부에서는 무법천지인 두려움과 경계의 공간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비로운 숲으로 자연과 인간과 기술의 조화로 평화로운 공간이다.

강이룬은 뇌과학 연구소의 실험체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아이, 그 아이는 세상에서 사리지고 싶었다. 울림을 만나 일상의 기쁨을 나누게 되기 전에는 말이다. 기억이 사라지기 시작하던 날, 그는 울림을 떠났다, 불행해지지 않도록.

 

이런 섬세한 설정들 하나하나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육체와 혼, 인간과 기술, 삶과 행복. 인간은 무엇일까? 뇌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은 지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실험은 허용될까? 된다면 어디까지 가능할까? 고도로 기술이 발달된 사회에서 인간은 무조건 행복할까? 우리는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그 길이 서로 대립하거나 얽히고설키면서 달라질 수도 있다. 그 길을 걸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길을 누구와 어떻게 걸어가느냐가 더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의 고장 난 뇌가 강이룬은 잊어도

현울림은 기억할 수 있기를 소망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룬이 결정하여 끊어낸 인연이 다시 이어져 진실을 알게 된 울림은 이룬과 맞잡은 손의 온기로 하루하루 행복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울림과 이룬의 이야기, 울림과 지나의 이야기, 울림과 달, 젤리의 이야기. 그 외에도 수많은 삶들의 파편이 모여 『네가 있는 ___ 요일』이 채워졌다.

딸을 위해 365가 돼라 격려했건만 딸이 떠나가는 이유가 되어버렸다. 레스토랑 버스를 운행하며 실종된 딸을 찾아헤매는 최서린, 자기보다 낙원에서 키우는 가상 아이를 더 좋아하는 부모에게 상처 입은 유이레, 자신을 낳기만 하고 돌보지 않아 죽을뻔한 젤리, 낙원에 접속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불링을 판매하면서도 안전을 생각해 꼭 같이 접속한다는 김수민과 서호라, 강지나의 모든 것을 추앙하여 미쳐버린 심해윤까지 다 품어 아우르는 이 이야기는 부당하다, 억울하다 목청껏 외치는 목소리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충돌한 욕망과 욕구, 갈망들이 일으킨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감겨 상처 입은 억울한 이들의 발버둥. 그 몸부림이 조금씩 세상을 바꾸어나가길 소망하는 이룬과 울림의 당찬 발걸음을 응원한다.

 

"내가 매일 말해 줄게.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소설Y클럽 9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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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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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 경성을 대표하는 맛집들을 그 시절 소설로 살펴보는, 이색적인 책 <경성 맛집 산책>

 


경성 맛집 산책/ 박현수 지음/ 한겨레출판


 


일제 강점기 시대를 다루고 있는 여타 책과는 다르게 맛집을 주제로 정했다. 식민지 시대 경성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맛집을 소개하고, 그 공간을 21세기 오늘날로 재소환한다. 근대 소설 속 흔적을 쫓아서 그려지는 10 곳의 맛집을 통해 식민지 시대 서울인 경성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식민지 시대의 유명한 식당과 카페, 다방을 다루기에 박현수 저자는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그 시대를 긍정하거나 옹호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그대로 담아 식민지의 그늘을 주목하여 밝히고자 하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정보와 자료가 많지 않아 힘든 여정이었을 것이다.

그가 문을 열어 보여준 경성 맛집! 당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기도 하다. 경성 내 맛집은 과연 어떤 곳이며, 메뉴와 가격, 주 고객층 등을 살펴보면서 식민지 시대를 다른 필터로 만나보고자 한다.

 





우선 지리에 약한지라 지도가 나와 있어서 맛집 위치 파악이 용이한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리고 많은 작가와 다양한 근대소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소설이 연재된 당시의 신문 지면과 삽화가 더해져 몰입도가 높아졌다.

약간의 과장을 더해 이미지가 없는 페이지가 없을 정도로 당시 사진과 그림, 신문 지면, 광고 등이 실려 있어 시각적 자극을 누릴 수 있다.

 



<본정>과 <종로> 그리고 <장곡천정과 황금정>에 자리 잡았던 맛집 10 곳을 소개하고 있다.

조선 최초의 서양 요리점(청목당),

화목한 가족의 나들이 명소(미쓰코시백화점 식당),

경성 제일의 일본요리옥(화월),

디저트 카페(가네보 프루츠팔러),

경성 유일의 정갈한 조선음식점(화신백화점 식당),

김두한의 단골 설렁탕집(이문식당),

경성냉면(동양루),

조선에서 가장 호화로운 식당(조선호텔 식당),

고달픈 예술가들의 소일터(낙랑파라),

중화요리점(아서원)

 

 


식민지 시대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장면들을 - 핍박받는 민중들의 처참한 생활상, 목숨을 건 숨 막히는 독립운동 - 서양 문화를 즐기는 모던보이, 모던걸이나 예술가 그리고 일본인을 위한 문화 인프라로 대체하는 특이한 시간이었다.

 





백화점, 호텔의 주 고객층 대부분이 일본인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백화점, 호텔 내 메뉴는 그들이 선호하는 음식으로 구성되었다. 그 시대 광고로 유명한 맛집의 외곽을 세우고 소설에 그려진 삽화와 묘사된 글로 내부를 완성하여 메뉴판으로 음식을 선보였다. 박현수 저자는 경성 맛집에서 판매했던 음식의 맛이나 종류뿐 아니라 가격까지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는 시대의 경제 상황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되어준다.

 

 






소설 속 인물들이 먹고 마시는 장소와 음식들을 통해 맛집의 구조와 특징을 파악해나가는 놀라운 작업이 그려진다. 그리고 주 고객층까지 유추해 그 시대 그 경성 맛집이 지닌 의미를 읽어내고 있다. 그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음식 너머, 건물 너머 드리워진 식민지의 그늘을 정면에서 응시한다.

 

 

10 군데의 맛집 중

일본인을 위한, 일본인을 위해, 일본인의 식당 미쓰코시백화점 식당,

혼부라의 필수 코스인 가네보 프루츠팔러,

경성 유일의 정갈한 조선음식점인 화신백화점 식당,

고달픈 예술가들의 소일터 낙랑파라

특히 기억에 남는다.

 


더 읽을거리를 통해 더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 재미를 돋운다.

서신을 전달해 주는 메신저와 백화점 배달 점원, 식당 배달부 등 당시 특색 있는 직업군에 대해서는 궁금증이 커졌다. 또 신문에 기재된 동파육과 팔보채를 만드는 조리법은 중국음식점에서만이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친숙한 음식이 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경성 맛집을 통해 식민지 시대의 번화가를 산책하고 돌아온 기분이다. 지금은 맛볼 수 없는 그 시절 그 음식의 맛과 기운을 잘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혼부라가 되어볼 수 있으랴 싶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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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듀엣
김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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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작가의 첫 소설집 <고스트 듀엣>

 

고스트 듀엣/ 김현 소설집/ 한겨레출판




시와 산문으로 우리 곁을 지키던 다정한 김현 작가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계속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모아 독특한 색채의 소설집을 내놓았다.

 

 

11편의 단편들로 구성된 <고스트 듀엣>은 다양한 소재와 현상을 매개로 죽은 자와 산 자가 공존하는 일상과 사랑 그리고 재난에서 홀로 살아남은 이들의 삶, 성소수자인 청소년의 연애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수월>은 죽은 어머니가 귀신이 되어 딸네에 찾아와 인연을 이어가는 유쾌한 이야기였다. 귀신이 찾아와도 큰 충격 없이 같이 술을 마시고 가게 이야기를 하는 등 이승과 저승의 교류가 신선했다. 이승에서 맺어진 관계가 저승까지 계속 되어 세상 구분 없이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모습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소설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로 사는 동안 그리 애썼으면 되었다. 은숙도 비슷한 심정이어서 서운할 것도, 속상한 것도 없었다. (12쪽)

맑은 술이 담긴 잔이 돌고 돌고 노래할 사람은 노래하고 춤출 사람은 춤추고 갈 사람은 가지 않고 이승에 미련이 없는, 가야 할 귀신이 가고 싶지 않아 해서 산 사람들이 어르고 달래 저승문 앞까지 배웅했다. (33쪽)

 






<고스트 듀엣>은 사랑하는 이가 죽은 후 떠나보내지 못해 홀로그램으로나마 곁에 두는 이들의 이야기다. 살기 위해 죽은 이를 품은 그가 애틋했다. 이렇게 상민의, 우리의 삶이 이어져 빛나는 하늘을 볼 수 있음을 감사하였다.

 

눈빛, 그것은 죽음을 데리고 다니는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는 언어였다. 눈빛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말을 했고, 꼭 해야 할 말을 꼭 하도록 했다. 그들이 살아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83쪽)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존재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해도, 당신 역시 쉬이 눈 감지 말기를.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니까. (85쪽)





<유미의 기분>은 미투를 다루고 있다. 너무 쉽게 생각 없이 내뱉는 말로 인해 상처  입은 영혼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오히려 2차 폭력을 가하고 있다. 그런 어둠 속에서 유미의 숨을 생각하고 사과를 건네는 형석을 보면서 희망을 꿈꾼다.

 

형석은 유미의 등을 천천히, 최대한 천천히 쓸어내렸을 사람을 그려보았다. 누군가를 만만하게 보는 얼굴을. 그는 아마도 유미가 누구에게나 얘기할 수 있도록, 말할수록 유미만 이상한 사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등을 쓰다듬었을 것이다. 아무도 유미의 말을 믿지 않도록, 모두가 유미보단 그런 유미를 생각하도록, 유미의 기분은 유미만이 느끼도록.

"저는 기분이 나빴어요." (117쪽)


 





소설 속 인물들이 서로 엮여있어 단편들이지만 옴니버스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처음에는 개별적인 이야기로 읽다가 겹치는 이름과 배경에 구슬을 꿰듯이 이야기들을 꿰어 세상을 구성하였다.


사랑하면서도 서로의 관계에 대해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숨에 수반하는 고통과 두려움을 이해를 넘어 감각으로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 사랑은 생사를 뛰어넘어 현재진행형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그가 '행복이 불행에게 답하는' 기록은 희망의 빛을 내뿜는다.

연애를 들킬까 불안에 떨었던 어린 연인들이 어깨를 감싸 안으며 자기들 앞에 펼쳐진 세계로 힘차게 한 발을 내딛는 것처럼. 헤어졌던 연인이 저벅저벅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처럼.


김현 작가가 세상에 처음으로 내놓은 소설집 <고스트 듀엣>은 그의 숨으로 수놓은 사랑 이야기였다. 유쾌하다가 아련하고, 다정하다가 애끓는 등 다채로운 감정이 몰아친다. 낯선 듯 하지만 결국 우리의 사랑하는, 살아가는 친숙한 이야기였다.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인생일지라도 무너지지 않은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자주 불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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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몸 -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
희정 글, 최형락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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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한 기록 노동자 희정의 글 <베테랑의 몸>

 


 

베테랑의 몸/ 희정 글 최형락 사진/ 한겨레출판

 



'베테랑'은 한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을 일컫는다. 저자는 각 분야의 베테랑을 나름의 기준으로 찾아 인터뷰한다.

 

저자는 베테랑을 세 가지 관점으로 분류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 균형 잡는 몸

2. 관계 맺는 몸

3. 말하는 몸

 

 

세공사, 조리사, 로프공, 어부, 조산사, 안마사, 마필관리사, 세신사, 수어통역사, 일러스트레이터 · 전시기획자, 배우, 식자공

 

베테랑이 되기까지의 시간이 오롯이 새겨진 몸으로 전하는 이야기는 울림이 되어 마음을 뒤흔든다. 들어봤지만 그 세계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지 못하기에 가지는 환상과 편견을 비로소 멈춰주었다.

 

"어떤 사람이 베테랑이라 생각하세요?"

 

 

각자의 자리에서 소명대로 그 길을 꿋꿋이 걸어온 이들은 베테랑이 되기 위해, 그 노동이 몸에 스며들게 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내어주었다. 자신을 베테랑이라 말하기는 주저하지만 최선을 다하여 지키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였다.

 

내가 아니라 우리가 일한다는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

자존심 지키며 일하는 사람

내 안전 내가 지키는 사람

묵묵히 제 일을 하는 사람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

자기 일에 모르는 것은 없는 사람

말을 이해하는 사람

내 몸 다치지 않게 일하는 사람

준비를 열심히 하는 사람

내가 하는 일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

나에게 올 미래를 적극적으로 상상하며 사는 사람

수많은 활자들 사이에서 길 잃지 않는 사람

 

 

서로 다른 연령 · 성별 · 분야의 베테랑 12인들이 말하는 베테랑을 정리하면서 새삼 깨달았다. 멈춰 서있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배려하고 존중하여 나아가는 이가 바로 베테랑이었다.

 

12명의 베테랑 중 '로프공'과 '수어통역사'의 이야기가 나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무지했던 '로프공'이라는 직종에 대해 베테랑 김영탁에게 배우고, 법이 닿지 않는 곳에 존재하여 자신의 안전은 자신이 지켜야 하는 열악한 작업 환경이 안타까웠다.

 

산업안전법상 발이 땅에서 2미터만 떨어져도 비계나 안전대를 설치해야 한다는데 왜 로프공은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로프에 의지하여 작업해야 하는지 먹먹하다. 저자의 말처럼 왜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는 일에 진심인 베테랑이 이를 악물고 지켜야 하는 걸까.

 


 

 

수어통역사 장진석처럼 대학생 때 수화를 잠깐 배웠었다. 당연히 농인의 언어인 줄 알았던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 괴리를 알았다. 그래서인지 장진석 수어통역사 이야기가 눈에 밟혔다.

구락부에 가서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서 '수어 못하는 불쌍한 젊은 애'로 몇 개월 보낸 일화가 크게 와닿았다. 온몸으로 전하는 언어, 얼굴 표정으로 전하는 언어인 수어를 보고 소통하는 농인의 세계로 한발 한발 내딛는 느낌이다.

농인이 있고, 언어가 있는 자리라면 통역사가 있다. 텍스트 전달에 그치지 않고 맥락과 의미 그리고 분위기까지 전달해야 하는 그의 자리, 얼마나 준비가 필요한 일인지 새삼 무겁게 깨닫는다.

 

 


 

 

12명의 베테랑이 전하는 생생한 현장은 그들의 열정과 자부심에 반짝인다. 그들은 그들의 자리에서 소통하여 지키고자 하고, 생존하고자 노력하고, 공존하고자 상상하고 있다. 그들의 시선과 저자의 시선이 고루 닿은 노동 현장은 인식의 변화를, 개선의 물결을 바라고 있다.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할까? 오랜 시간에 걸쳐 한 길을 쫓아 노동이 새겨진 몸을 지닌 베테랑들이 존중받으며 정당한 대우받는 사회를 바란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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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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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져들어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먼 길 떠나는 아들에게 어미가 들려주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이리도 방대할 수 있다니. 과학적·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이끄는 <악의 유전학>은 달콤 쌉쌀한 초콜릿처럼 매료시킨다.

 

 


악의 유전학/ 임야비 소설/ 쌤앤파커스




 

"현명한 자는 보는 걸 믿고 겁쟁이는 믿는 걸 본다."

 

 

테러로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을 서슴지 않는 극단적인 혁명가 '이오시프'를 조명한 다음, 그의 어머니 '기적의 케케'가 묵혀둔 지난날의 비밀을 내민다. 차디찬 유형지로 떠나는 아들에게 차디찬 그곳에서 살아남은 존재로서 알려줘야 할 의무라는 듯 어머니 케케는 심연에서 어둡고 끔찍한 이야기를 끌어올려 들려준다. 그 이야기 끝에 조우하게 되는 존재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나는 무척 놀랐다.

 

과학은 오랜 세월에 걸쳐 그 모습을 다듬어가고 있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비밀의 장막을 걷어내고 있다. 그중 인간의 진화와 유전에 대한 영역은 큰 논란이자 불가사의였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일으킨 사회적 반향이나 유전법칙과 유전 물질인 DNA 구조를 밝히기 위해 불붙은 연구들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악의 유전학>은 그 흥미로운 유전의 영역에 '악'을 포함시켰다. '과연 악은 유전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파생된 이야기는 지독히도 강렬하고 파괴적이다.

 

 

케케와 베소 그리고 이오시프.

이 세 명이 가족을 이루기까지의 여정을 듣는 일은 인간과 인간이 서로에게 호감을 가져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미래를 꿈꾸는, 아름답고도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참혹함은 아들 이오시프가 인간 백정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일과 그 목적을 나열하는 일로 시작되었다. 그는 왜 이리도 잔인하고 흉포한 것일까. 그 질문의 답을 어머니 케케의 이야기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임야비 작가는 블라디미르 레닌과 함께 차르의 로마노프 제국을 뒤집어엎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을 세운 스탈린을 <악의 유전학> 주인공으로 선택하였다. 레닌조차 그를 당에서 제거하라고 유언을 남길 정도로 흉포하고 잔인하였던 인물, 스탈린. 이제 그의 탄생은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절묘하게 재배열되어 그가 지닌 악의 근원을 드러내고 있다.

 

 

"표를 던지는 사람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표를 세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스탈린이 한 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감정을 고조시킨다. 그가 한 말들이 뿌리내려 구체적으로 형상화될 때 이오시프일 수도, 리센코일 수도, 스탈린일 수도, 그 누구일 수도 있는 악을 마주하게 되었다.

 

리센코 후작은 '획득 형질의 유전'에 심취하여 인간에 적용해 보기로 결심한다. 혹독한 추위에도 견딜 수 있는 '한랭 내성' 형질을 장착하기 위한 기나긴 실험을 시작하였다. 이는 늠름하고 강력한 백성을 가질 수 있다는 설득에 넘어간 차르 알렉산드르 2세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가능하였다. 자신의 목숨을 걸 만큼 열정적이고 굳게 믿었던 리센코 후작은 기한인 20년 후 도망치기에 바빴다.

 

 

"죽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아무도 없으면 문제도 없다."

 

 

사상과 신념은 살아가면서 배우고 깨우치며 받아들이게 되어 따르게 되는 것일 테다. 하지만 분명 그 믿음의 시작부터 그릇되었다면 결과 또한 옳지 못할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비극이라 일컬어지는 '홀로코스트'를 가능케한 우생학처럼 말이다. 이미 결과가 정해놓고 시작한 실험은 의도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한랭 내성 형질 획득은 문서 속에서만 성과가 보이는 실험이었다. 이로 인해 리센코는 열정을 폭력으로, 광기로 폭발시킬 수밖에 없었다.

 

 

"공포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지요."

 

 


 

 

리센코는 백성을 개조하고자 하였고, 스탈린은 세상을 개조하고자 하였다. 원하는 바를 위해 수많은 목숨을 거리낌 없이 희생시키는 이들을 뭐라 불러야 할까. 진정 악은 유전될 수 있는가. 이오시프의 가련한 큰아들 야사를 떠올려본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 수치일 뿐이다."

 

 

 

차르와 귀족들에게 착취당하는 세상을 뒤집으려 했던 이오시프 자신도 결국 공포와 처형으로 인민을 개조하고자 하였다. 생명은 그 자체로 귀히 여겨야 할 존재이다. 진정 지켜야 할 것을 잊어버린 악의 최후는 비루하고 쓸쓸했다.

 

 


 

 

- 한줄평

작가의 상상력으로 탄생한 <악의 유전학>

악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은 서늘하고도 강렬하게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기적의 케케가 가라앉았다 건져올려진 차디찬 연못이 다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 인상 깊었던 부분

케케는 리센코 후작이 죽은 (나타샤와 베소의 딸) 소냐를 위해 흘린 눈물 뒤에 이어지는 먹물 같은 눈물을 보고는 겁을 먹었다. 그 미세하게 떨렸던 검은 눈물이 악과 관련된 것이라 케케가 두려움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베소와의 결혼도 따뜻한 어둠이었고, 베소도 검은 설렘이라 표현되었다. 이미 악으로 가득 찬 어둠 속에서도 따뜻함을, 설렘을, 달콤 쌉쌀함을 느끼며 버텼던 케케는 진정 기적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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