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의뢰: 너만 아는 비밀 창비교육 성장소설 14
김성민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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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오늘의 의뢰 : 너만 아는 비밀/ 김성민/ 창비교육




[오늘의 의뢰 : 너만 아는 비밀]은 김성민 작가의 신작 장편으로, 청소년 성장소설이다. 가제본으로 사전서평단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제목만 적힌 하얀 표지로 만난 이 소설이 어떤 옷을 입고 정식판으로 출간될지 궁금하다. 하지만, 흰 표지만큼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었다. 작가가 담고 싶은 메시지와 세상을 살아가면서 소중하다 믿고 있는 가치가 이어지고, 이를 잘 녹여낸 작품이었다.

청소년은 자기 주변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면서 성장한다. 곁에 있는 가족, 친구, 선생님에게 영향을 크게 받는다. 오늘날에는 온라인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오늘의 의뢰 : 너만 아는 비밀]의 주요인물은 중학교 2학년 해민, 도경이다. 두 아이를 중심에 두고 청소년들이 자신의 고민이나 문제들을 마주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내가 날 수 있다는 거야."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다.




SNS에 익숙한 세대가 익명성을 전제로 '의뢰'를 통해 해결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자신이 아닌 타인의 손에 맡겨 해결하면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아니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청소년들의 모습 또 의뢰 처리를 몰래 촬영하여 자신의 채널에 올리는 유튜버의 행태 등이 우려를 넘어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해결사이트에 접속하는 청소년들 대부분은 자신의 잘못은 차치하고 타인의 태도나 말 혹은 주변의 상황으로 인한 자신의 문제, 감정만을 우선시하였다. 청소년들은 다분히 자기중심적이고 편협한 사고방식에 갇혀있었고, 무너진 내면 때문에 마음이 심란했다.

그리고 도경과 해민처럼 한부모 가정에 대한 주변의 시선, 편견 혹은 선입견이 현실성 있게 표현되어 환기시켜주었다. 우리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해야 한다. 이는 다양한 삶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되새길 수 있었다. 주변 어른들의 억측과 오해 속에서 되레 좋아하는 일이 확실한 해민과 친절하고 반듯한 도경이 등장하는 여타 다른 청소년들보다 돋보였다.




"네가 무슨 재주로 다 망쳐? 우리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망칠 수 있는 것도 없어.

넌 네가 해야 할 일을 했어.

이제 어른들 일은 어른들이 알아서 하게 놔둬."




청소년들이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크거나 작은 오해와 갈등 혹은 지나친 기대와 사랑으로 인한 고민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는지 지켜볼 수 있다. 지나친 자기합리화로 신체적·정신적·경제적 피해를 서슴없이 의뢰하는 아이들과 그런 의뢰 공간을 온라인에서 개설하고 이용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이 커져갔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자신을 표현하고 찾아가는 해민, 도경, 주영 덕분에 억눌렸던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그리고 서로를 부러워하고 격려하며 채워나가며 성장해나가는 우정의 온기에 주름이 퍼졌다.



"너한테 중요한 건 네 문제니까, 그거나 잘하래.

잠깐은 외면할 수 있지만 결국 마주 봐야 끝이 나는 것,

그게 진짜 자기 문제랬어."



[오늘의 의뢰 : 너만 아는 비밀]은 문제를 마주하고 본인 스스로 힘껏 해결하고자 애쓰는 마음, 그 용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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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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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저/ 문학동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500여 페이지가 넘는 책이다. 강아지를 키우는 작가가 '강아지를 둘러싼 인간의 책임'을 묻고 답해나가고자 써 내려간 소설이다.







순수해서 명랑한 개, 이시봉. 이시봉은 모르는 이시봉의 이야기는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역학 관계로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사고로 상처받고 방황하는 영혼, '이시습'이 혼란의 한복판에서 '이시봉'과 같이 살아가려는 분투기가 마음을 휘젓는다. 작고 여린 생명, 한없이 순수해서 주변과는 상관없이 명랑한 강아지 이시봉을 향한 시습의 마음이 읽는 내내 애잔하게 스며들었다. 아빠가 살리고자 했던 목숨, 미안함, 죄책감을 채 알기도 전부터 시습에게 '이시봉'은 그냥 '이시봉'이자 함께 사는 막냇동생이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삐끗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와 이시습과 이시봉은 예전보다 더 단단하게 묶였다. 위기를 헤쳐나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아주는, 서로의 존재가 힘이 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둘의 뒷모습에 울컥하면서도 안도하였다. 시습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성장과 변화가 개연성 있게 그려져 공감과 응원 그리고 위로를 받았다.



"우리 시습이가 어떻게 자랄지, 그게 제일 궁금하네.

궁금해, 궁금해…"





이기호 작가가 실제 키우는 반려견이 '이시봉'이라 한다. 그 아이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개와 이어진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다시 개 이야기'로 다가왔다. 늑대에서 개로 인간 친화적으로 변하면서 개는 인류사에 등장하는 동물 가운데 가장 인간과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뜻과는 별개로 인간의 욕구와 욕망에 크게 영향을 받아오지 않았나 싶다. 그중 하나인 '종'의 구분은 사랑일지 욕망일지 명확하게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인위적인 계급을 수반하게 되었다.


"사랑은 예측 불가능한 일을 겪는 거야.

강아지를 사랑하는 건 더 그래."





그냥 '이시봉'이 희귀한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로 고귀한 신분으로 밝혀지면서 긴장과 갈등이 커져가는 현재와 이시봉의 혈통과 뿌리를 쫓아올라 가는 과거가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흥미롭게 진행된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배경으로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의 가장 유명한 선조인 '베로니카 코레데라 히아단스'의 삶을 그려낸다. 왕실에서 태어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베로'와 그의 충실한 집사인 스페인 총리 '마누엘 데 고도이'의 서사는 이야기 속 한 줄기로 극적으로 펼쳐진다. 이 매혹적이면서도 슬프고 인색한 인간과 개의 교류는 몇 세기가 흐른 지금도 현재진행 중이라 애달프고 통탄스럽다.





개를 사랑하는 이와 이용하는 이. 제각각 상황에서도 개와 인간이 나누는 정서적 교감 자체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존재들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은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개와 인간 그리고 그들을 사이에 둔 또 다른 인간과의 미묘한 관계는 시작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힘 있게 받쳐준다. 리다가 이시봉에게 주고자 한 미래가 이시습이 이시봉에게 주고자 한 미래와 다르다라고만 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은 시습의 입장, 리다(하영)의 사정을 다 알기에 드는 것일 테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다시 회복하려고 노력하며, 스스로 두려움을 이기고 다른 삶을 꿈꾸는, 성장하는 이들에게 담담한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고 싶다. 리다의 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라고. 언니도, 이시봉도."



18세기 스페인에서 시작되어 20세기 프랑스 파리를 경유하여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펼쳐지는 대서사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인간과 개의 관계를 정성스럽게 분석하여 인간이 '개'를 어떻게 사랑하고 또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 개를 이용하는 사람 또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개와 같이 살아가는 시간을 그려낸 글로, 먹먹한 울림을 선사한다. 서로 연결되어 원망하면서도 이해하고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끈끈한 개와 인간의 공생이 일그러진 탐욕의 가면을 기어이 찢어버렸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기억하는 것이

사람의 책임이라고."




인간과 개의 유대에 시습과 수아, 정용의 우정, 시습과 리다의 썸, 시습과 가족 간의 이해와 사랑 그리고 태형을 향한 유정의 믿음, 동료에 대한 아빠의 죄책감과 미안함이 더해져 옹골찬 이야기로 거듭났다. 각각의 관계 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결을 훑으면서 괜스레 가슴이 따스해지기도 저릿해지기도 하였다.



나는 그때 왜 미안해하지 않고 억울해했을까?

미안한 것과 억울한 것을 뒤섞지 말 것.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전체 인구의 29.9%에 다다른 오늘날, 이기호 작가는 묵직하고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녁마다 동네 하천 길을 산책하는데, 여러 반려견들과 가족들을 마주치면 인간이 다른 동물들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그의 시선이 떠올라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예전과는 다르게 마음과 관심이 쓰이게 된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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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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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정명원 지음/ 한겨레출판사




스스로를 외곽주의자, 비주류, 이끼 같은 검사라 부르는 정명원 검사 아니 작가의 신작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이 출간되었다.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의 결이 좀 더 풍성해지고 농후해졌다.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머문 전문가 다운 굳은살을 지녔으면서도 인간에 대한 낙관을 품고자 애쓰는 그 다정함이 오롯이 전해졌다. 봄날의 햇살처럼 읽는 내내 평온하고 따사로운 시간이었다.

정명원 검사는 '검사'하면 떠오르는 스테레오타입을 허물고 '검사'를 재정의해 준 인물이다. 유무죄의 결과만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범죄 안팎의 서사와 맥락을 이해하려 애쓰는 정 검사와 다른 검사들의 분투기는 '검찰 국가'의 배신으로 무너진 검찰의 위상을 다시 다지게 해준다.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은 이야기꾼이 되고 싶은 한 검사가 전하는 진심이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법에 입각하여 유무죄를 판단하는 냉철한 세계에서 '사람'을, '선의'를 확신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믿으려 애쓰는 마음이 숭고하다. 이렇게 제각각 제자리에서 사람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유지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정명원 검사도 '심쿵 요정'이다.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은 세 개의 꼭지로 구성되었다. 사건 외곽의 풍경들,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시골지청 안단테이다.

사건 외곽에서 피의자를 비롯한 풍경들을 바라본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은 아닐지라도 사건 하나하나 품고 있는 맥락을 들여다보는 정성이 보였다. 범죄를 들여다보니 개인이 보이고, 개인을 들여다보니 기업, 가게, 사회 등 시스템이 보였다. 범죄의 이유와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수고를 넘어 기억에 남는 사건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많이 들어본 이웃 같으면서도 낯선 타인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유무죄 여부를 떠나 해피엔딩을 바라는, 검사들의 염원을 내비친다.



세상 어딘가에 존재해야 마땅한 곳이 구치감인 외국인 여성의 이야기는 시작부터 끝까지 먹먹하게 하였다. 이 서러운 이야기의 결말이 부디 정 검사의 바람처럼 희망적이길 간절히 빌어본다.

장 검사는 의사에서 검사로 전향했다.

"의사로 일할 때랑 검사로 일할 때 가장 다른 점이 뭐야?"라는 질문에 "의사로 일할 때는 환자가 하는 말을 의심하지 않아요. 의심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검사는 진술이 거짓말일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하잖아요. 습관이 안 되어 그런지 그게 참 어렵더라고요."고 답했다. 매일 속는다면서도 끝끝내 진실을 믿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끝내 믿어야 할 지점에 대한 그들의 고뇌가 읽힌다.

'유무죄의 세계의 사랑법'에서는 다양한 시간과 공간의 정명원 검사를 만날 수 있었다. 초임검사로서, 부장검사로서, 직장인으로서, 엄마로서, 개인으로서 인간 정명원을 채워나가는 시간이었다. 검사로서 18여 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원동력 혹은 투지를 엿보았다. 사표를 품고 사는 여타 직장인처럼 꿋꿋이 하루를 채워나가는 그 옆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들어주고, 격려해 주고, 사랑해 주는 동료들, 가족들이 있었기에 회의주의적 친애주의자 정명원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나의 사건이 생겨나 마침내 종결되었다고 하기까지 사건의 길은 멀고 다양하다. 사건의 전체 여정에서 한 사람의 검사가 관여하는 부분은 극히 일부라는 것을 이 책에서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두려워도 기어이 따라가 그 끝을 보고야 만 선배 이야기는 묵직했다. 밀려오는 사건의 파도 속에 적당히 잊어가는 게 보편적인 세계에서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지점을 기꺼이 두려워한 사람' 그리고 '그가 마주할 수 있는 한 단계 다른 도약의 지점'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시골지청 안단테'에서는 상주지청장으로 근무한 시간을 담았다. 상주지청 검사 BTS, 심쿵 요정들, 곶감 시티 상주와 지청의 공생, 징검다리와 스타벅스 등등 7개월 정도의 짧고도 긴 여정 보따리를 소담하게 풀어놓는다. 잘 울지 않는다는 그가 떠나는 마지막 발걸음에 길고 깊은 울음을 토해냈는지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는 동행이었다. 검찰청이 이런 곳인가? 검찰청 사람들이 이런가? 싶을 정도로 정감 어리고 열정적이고 포근한 공간과 사람들이었다.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을 읽다 보니 검찰청이 마냥 차갑게 다가오지 않는다. 검사도 사람이구나. 마냥 고개 뻣뻣이 들고 유죄를 선고하는, 냉혈한은 아니구나. 수많은 사건들이 쏟아지는 매일을 보내면서도 진실을 찾기 위해 기꺼이 배우고 실험하고 파헤쳐 간략하고 명확한 사실관계로 정리하는, 뜨거운 사람이구나.

무너진 곳을 향한 비난의 시선을 거두고, '진창에 처박힌 존재의 안간힘과 함께 기꺼이 일렁이는' 검사가 되려는 그들을 향해 응원과 신뢰를 보내야겠다. 단순히 벌하는 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하늘이 무너지는 일을 막으려 애쓰고, 무너지는 하늘 아래 속수무책 서 있는 누군가의 곁에 같이 서 있으려는 검사를 어찌 외면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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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 ON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이송현 지음 / 우리학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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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스위치 ON/ 이송현 장편소설/ 우리학교





숨 막히는 무더위에 차가운 아이스링크에서 그 누구보다 뜨거운 질주를 하는 십 대의 이야기 [스위치 ON]을 읽었다. 똑바로 서 있기조차 버거운 링크에서 온갖 차별과 경쟁을 온몸으로 부딪쳐 온 열일곱 살 이다온. 자신을 이방인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 따라 경계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아이가 깨어나 스스로의 길을 향해 달려가는 성장소설이다.


"앞으로 살면서 다온 네가 넣어야 하고

내가 막아야 할 퍽은 많으니까.

그러니까 실망하지 말고 '다시' 움직이라고."




이송현 작가는 대학에서 아동·청소년 문학을 가르치며 동화, 동시, 청소년 소설을 쓰고 있다. <내 청춘, 시속 370km>, <일만 번의 다이빙>, <라인>, <나의 수호신 크리커> 등 다양한 소재로 우리에게 힘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번 [스위치 ON]은 캐나다로 이민 온 1.5세대 이다온이 주인공이다. 병치레가 잦던 작고 연약한 아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친구 루크와 같은 꿈을 품고 빙판에서 땀 흘리던 중 차별을 일삼던 팀원과의 충돌로 좌절하게 되었으나, 다시금 일어나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작가 본인이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다양한 스포츠로 주인공의 현실과 목소리를 대변하는 창구로 사용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작은 거북이 내 상처를 보았다고,

이 작은 친구는 내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다고.

그러니 나 역시 너의 상처를 모른 척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민 1.5세대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구축된 소설이지만, 어둡고 부정적이지 않다. 다온이 겪는 차별과 시련 자체보다 다온의 태도와 심리를 세심하게 담아낸다.

자신을 동양인이라 업신여기고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낯선 나라에서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똑같이 맞서 싸우면서 쓰러지고 부러졌던 다온이였다. 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입장인 해인, 크루아상 맛집 카페 주인 안니엔, 이웃 한준이 형과 이블린 그리고 자신을 항상 응원하고 기다려주는 아버지와 루크 등등 주변의 사랑과 응원 덕분에 '스스로에게 흠집을 내고 상처 입히기에 스스럼없었던' 어리석은 과거의 자신에서 일어나 새로운 꿈을 향해 뜨거운 질주를 준비한다. 이송현 작가는 자연스럽고 촘촘하게 인연들을 엮어 이야기에 설득력을 불어넣는다. 특히 앞발이 기형으로 태어난 바다거북 '꼬북'과 쌓아가는 유대는 딱 필요한 물 한 방울이었다. 첨벙~ 두려워하지 않고 바다를 향해 기어가는 작은 생명체의 담담함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렇게 우리 모두 오늘을 살아간다. 참 대견하고 대단하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이고 밝은 면을 향해 고개를 돌릴 수 있다는 건 큰 힘이다. 특히나 자신의 상처에 속으로만 곪던 다온이 주변의 따뜻한 마음을 깨닫고 밖으로 표출할 수 있게 된 점이 큰 변화다. 세상 어느 곳에나 차별과 시련은 있다. 그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다온이, 해인이, 루크가 보여준다. 세상에 완전하고 완벽한 존재는 없다. 제각각 핸디캡을 안고 있지만 당당하게 살아가는 게 삶이라는 걸 다온은 밤바다 모래밭에서 구한 바다거북 '이꼬북'에게서, 루크에게서, 해인에게서, 아버지에게서, 안니엔에게서 배운다.



"이다온. 달리는 걸 멈추지 마라.

넌 혼자서도 충분히 잘 달릴 수 있는 애야."



다온의 팔 깁스에 해인이 그려준 네잎클로버처럼,

다온 엄마와 다온이 쌓아준 초코파이 초콜릿처럼,

아빠를 위해 요리한 치킨마요 덮밥처럼,

이블린을 위한 한 송이 해바라기 꽃다발처럼,

한준이 다온을 위해 꾸며준 웨스트 짐처럼,

인생의 '스위치 온'을 만들어주는 존재와 시간들이 있다. 남들이 뭐라든 뛰고 싶으면 뛰고, 점프하고 싶으면 점프하며, 자신의 속도로 원하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이 세상의 이다온이 많아지면 좋겠다.


읽는 내내 아이스링크를 떠올리며 그 차가운 공간을 가득 채우는 열정과 땀, 눈물을 생생하게 보았다. 워낙 탄탄하고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라 영상화되면 좋겠다. [스위치 ON]이 발산하는 삶의 열정과 투지가 이 무더운 여름을 한층 더 뜨겁게 만들 예정이다.

자, 우리 모두 스위치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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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파리누쉬 사니이 지음, 이미선 옮김 / 북레시피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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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파리누쉬 사니이 저/ 북레시피



여름이면 EIDF(EBS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를 즐겨 시청하곤 한다. 닿지 않았던 세계 곳곳을 비추는 논픽션 영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풍성해지고 깊어져 의미 있는 시간이다. 작년 EIDF 상영작 중 '이란 부인의 이런 남편'도 그런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예전보다 이란, 이슬람 문화권을 접할 수 있는 통로는 다양해졌다. 그렇지만 편하고 익숙하게 다가갈 수 없는 환경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이번에 읽은 파리누쉬 사니이 작가의 장편소설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은 그 허들을 뛰어넘어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란에서 태어나 이란 사회의 억압과 여성의 억눌린 삶을 조명해온 작가가 이란 사회에 번지고 있는 이민과 그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 문제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큰 아들이 이란을 떠난 지 30여 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이 휴가를 함께 보내는 이야기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열흘 남짓. 과연 긴 시간의 부재를 극복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되어줄 것인가. 독자들은 그 감격스러운 재회의 현장에 함께 하는 영광을, 고통을, 위로를 받았다. 각자의 터전을 떠나 모인 공간에서 시간적ㆍ물리적 공간의 거리를 좁히고 정서적 간극까지 허물 수 있을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책 읽기였다.

3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핵가족화가 가속화된 오늘날, 20명이 넘는 대가족이 모여 시간을 보내는 것부터가 아련한 기분이다. 어린 시절 명절이 떠오르는 환대와 기쁨의 출발이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부모-자식, 형제자매간의 감격스러운 상봉이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들의 손주들이자 자식들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아니더라도 얼굴 한번 본 적 없기에 데면데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른들은 점점 대립하게 되고, 아이들은 점점 친밀해졌다.





"아이들에게는 복수심이 없어.

그래서 쉽게 화해하는 거야.

공통의 언어를 찾아내는 방법도 알고.

하느님, 우리 어른들을 구해주소서!"




이란을 떠나 미국에서 공부해 의사가 된 장남 모하마드, 이슬람 혁명 때문에 귀국하지 못하고 여행지에 정착하게 된 장녀 마흐나즈, 탈영 때문에 이란을 떠나야만 했던 막내 메흐디 그리고 떠나간 형제자매들 대신 부모님 곁에 남아 장남 역할을 한 모흐센, 다정한 마리암 또 반체제 조직 활동으로 처형된 하비브까지 6남매의 서사는 이란의 격동기와 오늘을 섬세하게 투영하고 있다.

'정치 문제가 사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란에서는 모두가 정치인이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택시 기사부터 채소가게 주인들까지, 대학교수부터 주부까지. 정치적 이견으로 많은 가족이 풍비박산됐다는 표현이 암시하는 것처럼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사이에 이념 대립이 팽팽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이 긴장은 서로 교류하지 못한 채 힘겨운 상황에서 각자 생존에 외로이 몰두해야 했던 이들의 곪은 상처를 결국 터트리고야 만다.




"우리는 이 기억을 가지고 2,30년 전에 이란을 떠났어.

그래서 고국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이 기억을 떠올리는 거야.

새롭게 덧붙여지는 게 없어. 이 기억을 워낙 자주 떠올리다 보니

우리 마음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거고.

그런데 너희의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있어.

매일매일의 사건들이 몇 주, 몇 달, 몇 년에 걸쳐서

너희에게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내지.

그 새로운 기억들이 오래된 기억을 덮어버리는 거야."




떠난 이들은 남은 이들의 조국에서의 생활을 부러워하고, 남은 이들은 떠난 이들의 자유와 여유를 부러워한다. 이 첨예한 대립은 소

통의 단절로 해체된 이란의 한 가족을 예리하게 분해한다.




"이제는 더 이상 가족처럼 보이지 않아.

그냥 서로 삐걱거리는 낯선 사람들 같아."




타인보다 더 낯선 이들로 서로를 대하는 자식들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느끼는 침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부모를 잃고 할머니 손에 자란 '나' 도키는 악몽을 꾸고 천식 발작을 일으키고, 모하마드의 아들 마이클은 미국인 어머니를 여의고 보살핌의 울타리를 잃어 정체성이 흔들리고, 모흐센의 아들 시루스는 불안과 두려움, 긴장으로 가득 찬 8여 년의 시간을 보내고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깊은 우울에 빠져있는 등 가족들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재회의 자리를 갈등과 분노로 채우게 내몰았다.




"서로 터놓고 대화해야 해.

이 기회를 빌려 서로 다시 알아가야 해.

이렇게 하면 이해와 애정으로 이어질 거야.

이게 바로 오늘 우리가 할 일이야."




파리누쉬 사니이 작가의 해결책은 정공법이었다. 허심탄회한 대화로 미루어 짐작하여 쌓인 견고한 오해와 원망의 벽을 허물게 하였다. '나'라는 화자가 있지만, 이야기를 주도로 이끌지 않는 독특한 방식의 소설은 여정의 마지막에 이르러 마음의 빗장을 열고 함께 하지 못한, 서로의 긴 여백을 진솔한 마음의 목소리로 채워나간다. 인물들의 대화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기발한 구성은 귀를 열게 만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굴곡진 인생을, 파란을 경청하고 또 경청하게 만들었다.




"여러분이 새로운 곳에서 외로워했다면,

나는 내 집, 내 도시, 내 나라에서 외로웠어요."




'어디에나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는 걸 대화로 깨닫게 된 할머니와 가족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그들의 모습은 찬란했다. 몸은 비록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를 응원하고 함께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며 위로하고 격려하는 이별의 마지막 날이 마냥 슬프지는 않는다.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찾은 가족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함께 바라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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