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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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저/ 문학동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500여 페이지가 넘는 책이다. 강아지를 키우는 작가가 '강아지를 둘러싼 인간의 책임'을 묻고 답해나가고자 써 내려간 소설이다.







순수해서 명랑한 개, 이시봉. 이시봉은 모르는 이시봉의 이야기는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역학 관계로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사고로 상처받고 방황하는 영혼, '이시습'이 혼란의 한복판에서 '이시봉'과 같이 살아가려는 분투기가 마음을 휘젓는다. 작고 여린 생명, 한없이 순수해서 주변과는 상관없이 명랑한 강아지 이시봉을 향한 시습의 마음이 읽는 내내 애잔하게 스며들었다. 아빠가 살리고자 했던 목숨, 미안함, 죄책감을 채 알기도 전부터 시습에게 '이시봉'은 그냥 '이시봉'이자 함께 사는 막냇동생이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삐끗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와 이시습과 이시봉은 예전보다 더 단단하게 묶였다. 위기를 헤쳐나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아주는, 서로의 존재가 힘이 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둘의 뒷모습에 울컥하면서도 안도하였다. 시습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성장과 변화가 개연성 있게 그려져 공감과 응원 그리고 위로를 받았다.



"우리 시습이가 어떻게 자랄지, 그게 제일 궁금하네.

궁금해, 궁금해…"





이기호 작가가 실제 키우는 반려견이 '이시봉'이라 한다. 그 아이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개와 이어진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다시 개 이야기'로 다가왔다. 늑대에서 개로 인간 친화적으로 변하면서 개는 인류사에 등장하는 동물 가운데 가장 인간과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뜻과는 별개로 인간의 욕구와 욕망에 크게 영향을 받아오지 않았나 싶다. 그중 하나인 '종'의 구분은 사랑일지 욕망일지 명확하게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인위적인 계급을 수반하게 되었다.


"사랑은 예측 불가능한 일을 겪는 거야.

강아지를 사랑하는 건 더 그래."





그냥 '이시봉'이 희귀한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로 고귀한 신분으로 밝혀지면서 긴장과 갈등이 커져가는 현재와 이시봉의 혈통과 뿌리를 쫓아올라 가는 과거가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흥미롭게 진행된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배경으로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의 가장 유명한 선조인 '베로니카 코레데라 히아단스'의 삶을 그려낸다. 왕실에서 태어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베로'와 그의 충실한 집사인 스페인 총리 '마누엘 데 고도이'의 서사는 이야기 속 한 줄기로 극적으로 펼쳐진다. 이 매혹적이면서도 슬프고 인색한 인간과 개의 교류는 몇 세기가 흐른 지금도 현재진행 중이라 애달프고 통탄스럽다.





개를 사랑하는 이와 이용하는 이. 제각각 상황에서도 개와 인간이 나누는 정서적 교감 자체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존재들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은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개와 인간 그리고 그들을 사이에 둔 또 다른 인간과의 미묘한 관계는 시작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힘 있게 받쳐준다. 리다가 이시봉에게 주고자 한 미래가 이시습이 이시봉에게 주고자 한 미래와 다르다라고만 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은 시습의 입장, 리다(하영)의 사정을 다 알기에 드는 것일 테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다시 회복하려고 노력하며, 스스로 두려움을 이기고 다른 삶을 꿈꾸는, 성장하는 이들에게 담담한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고 싶다. 리다의 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라고. 언니도, 이시봉도."



18세기 스페인에서 시작되어 20세기 프랑스 파리를 경유하여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펼쳐지는 대서사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인간과 개의 관계를 정성스럽게 분석하여 인간이 '개'를 어떻게 사랑하고 또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 개를 이용하는 사람 또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개와 같이 살아가는 시간을 그려낸 글로, 먹먹한 울림을 선사한다. 서로 연결되어 원망하면서도 이해하고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끈끈한 개와 인간의 공생이 일그러진 탐욕의 가면을 기어이 찢어버렸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기억하는 것이

사람의 책임이라고."




인간과 개의 유대에 시습과 수아, 정용의 우정, 시습과 리다의 썸, 시습과 가족 간의 이해와 사랑 그리고 태형을 향한 유정의 믿음, 동료에 대한 아빠의 죄책감과 미안함이 더해져 옹골찬 이야기로 거듭났다. 각각의 관계 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결을 훑으면서 괜스레 가슴이 따스해지기도 저릿해지기도 하였다.



나는 그때 왜 미안해하지 않고 억울해했을까?

미안한 것과 억울한 것을 뒤섞지 말 것.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전체 인구의 29.9%에 다다른 오늘날, 이기호 작가는 묵직하고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녁마다 동네 하천 길을 산책하는데, 여러 반려견들과 가족들을 마주치면 인간이 다른 동물들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그의 시선이 떠올라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예전과는 다르게 마음과 관심이 쓰이게 된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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