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파리누쉬 사니이 지음, 이미선 옮김 / 북레시피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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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파리누쉬 사니이 저/ 북레시피



여름이면 EIDF(EBS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를 즐겨 시청하곤 한다. 닿지 않았던 세계 곳곳을 비추는 논픽션 영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풍성해지고 깊어져 의미 있는 시간이다. 작년 EIDF 상영작 중 '이란 부인의 이런 남편'도 그런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예전보다 이란, 이슬람 문화권을 접할 수 있는 통로는 다양해졌다. 그렇지만 편하고 익숙하게 다가갈 수 없는 환경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이번에 읽은 파리누쉬 사니이 작가의 장편소설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은 그 허들을 뛰어넘어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란에서 태어나 이란 사회의 억압과 여성의 억눌린 삶을 조명해온 작가가 이란 사회에 번지고 있는 이민과 그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 문제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큰 아들이 이란을 떠난 지 30여 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이 휴가를 함께 보내는 이야기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열흘 남짓. 과연 긴 시간의 부재를 극복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되어줄 것인가. 독자들은 그 감격스러운 재회의 현장에 함께 하는 영광을, 고통을, 위로를 받았다. 각자의 터전을 떠나 모인 공간에서 시간적ㆍ물리적 공간의 거리를 좁히고 정서적 간극까지 허물 수 있을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책 읽기였다.

3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핵가족화가 가속화된 오늘날, 20명이 넘는 대가족이 모여 시간을 보내는 것부터가 아련한 기분이다. 어린 시절 명절이 떠오르는 환대와 기쁨의 출발이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부모-자식, 형제자매간의 감격스러운 상봉이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들의 손주들이자 자식들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아니더라도 얼굴 한번 본 적 없기에 데면데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른들은 점점 대립하게 되고, 아이들은 점점 친밀해졌다.





"아이들에게는 복수심이 없어.

그래서 쉽게 화해하는 거야.

공통의 언어를 찾아내는 방법도 알고.

하느님, 우리 어른들을 구해주소서!"




이란을 떠나 미국에서 공부해 의사가 된 장남 모하마드, 이슬람 혁명 때문에 귀국하지 못하고 여행지에 정착하게 된 장녀 마흐나즈, 탈영 때문에 이란을 떠나야만 했던 막내 메흐디 그리고 떠나간 형제자매들 대신 부모님 곁에 남아 장남 역할을 한 모흐센, 다정한 마리암 또 반체제 조직 활동으로 처형된 하비브까지 6남매의 서사는 이란의 격동기와 오늘을 섬세하게 투영하고 있다.

'정치 문제가 사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란에서는 모두가 정치인이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택시 기사부터 채소가게 주인들까지, 대학교수부터 주부까지. 정치적 이견으로 많은 가족이 풍비박산됐다는 표현이 암시하는 것처럼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사이에 이념 대립이 팽팽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이 긴장은 서로 교류하지 못한 채 힘겨운 상황에서 각자 생존에 외로이 몰두해야 했던 이들의 곪은 상처를 결국 터트리고야 만다.




"우리는 이 기억을 가지고 2,30년 전에 이란을 떠났어.

그래서 고국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이 기억을 떠올리는 거야.

새롭게 덧붙여지는 게 없어. 이 기억을 워낙 자주 떠올리다 보니

우리 마음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거고.

그런데 너희의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있어.

매일매일의 사건들이 몇 주, 몇 달, 몇 년에 걸쳐서

너희에게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내지.

그 새로운 기억들이 오래된 기억을 덮어버리는 거야."




떠난 이들은 남은 이들의 조국에서의 생활을 부러워하고, 남은 이들은 떠난 이들의 자유와 여유를 부러워한다. 이 첨예한 대립은 소

통의 단절로 해체된 이란의 한 가족을 예리하게 분해한다.




"이제는 더 이상 가족처럼 보이지 않아.

그냥 서로 삐걱거리는 낯선 사람들 같아."




타인보다 더 낯선 이들로 서로를 대하는 자식들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느끼는 침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부모를 잃고 할머니 손에 자란 '나' 도키는 악몽을 꾸고 천식 발작을 일으키고, 모하마드의 아들 마이클은 미국인 어머니를 여의고 보살핌의 울타리를 잃어 정체성이 흔들리고, 모흐센의 아들 시루스는 불안과 두려움, 긴장으로 가득 찬 8여 년의 시간을 보내고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깊은 우울에 빠져있는 등 가족들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재회의 자리를 갈등과 분노로 채우게 내몰았다.




"서로 터놓고 대화해야 해.

이 기회를 빌려 서로 다시 알아가야 해.

이렇게 하면 이해와 애정으로 이어질 거야.

이게 바로 오늘 우리가 할 일이야."




파리누쉬 사니이 작가의 해결책은 정공법이었다. 허심탄회한 대화로 미루어 짐작하여 쌓인 견고한 오해와 원망의 벽을 허물게 하였다. '나'라는 화자가 있지만, 이야기를 주도로 이끌지 않는 독특한 방식의 소설은 여정의 마지막에 이르러 마음의 빗장을 열고 함께 하지 못한, 서로의 긴 여백을 진솔한 마음의 목소리로 채워나간다. 인물들의 대화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기발한 구성은 귀를 열게 만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굴곡진 인생을, 파란을 경청하고 또 경청하게 만들었다.




"여러분이 새로운 곳에서 외로워했다면,

나는 내 집, 내 도시, 내 나라에서 외로웠어요."




'어디에나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는 걸 대화로 깨닫게 된 할머니와 가족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그들의 모습은 찬란했다. 몸은 비록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를 응원하고 함께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며 위로하고 격려하는 이별의 마지막 날이 마냥 슬프지는 않는다.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찾은 가족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함께 바라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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