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끄기 연습 -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
올가 메킹 지음, 이지민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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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끄기연습/올가 메킹 저/다산초당



<생각끄기 연습> 책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책이다.

네덜란드어로 '닉센'이라 부른다.

특이하게 폴란드인인 저자가 네덜란드에서 거주하면서 찾은 네덜란드 휴식법이다.


닉센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다른 이름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멍 때리다'라는 표현으로 불멍, 물멍 같은 말들이 유행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이탈리아의 '돌체 파르 네엔 테'(=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달콤함)이나 지중해 국가(스페인, 프랑스)에서 인기 있는 활동인 '시에스타'(= 더운 여름 대낮에 낮잠을 자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유대인의 '안식일'(= 금요일 해 질 녘에 시작되어 토요일 해 질 녘에 끝나는 안식일은 유대인이 예배, 가족, 공동체에 내어주는 시간으로 일하는 것, 전기를 사용하거나 일체의 스크린을 보는 일이 금지)이 있다. 또, 영국의 '게으름뱅이 운동'(= 이상적인 세상이 자전거를 타고 휘파람을 불며 서로에게 모자를 들어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도 있고, 중국의 '무위'(=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음)도 비슷한 활동이다.


닉센은 단순하고 미니멀한 라이프 스타일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 호소한다.

너무나도 바쁘게 살고 있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미덕이 되어버린 요즘 세상에서

닉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면서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는 바쁘게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가슴 깊숙이 묻어둔 죄책감을 덜어내 줄 수 있는 창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 끄기 연습>은

1. 우리가 제대로 쉬지 못하는 이유 - 우리가 끊임없이 바쁜 이유와 이런 현상이 우리 건강과 사회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본다.

2. 닉센이란 무엇인가 - 닉센과 친해지는 과정을 다룬다.

3.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들 - 닉센의 긍정적 영향에 대해 알아본다.

4. 하루 10분, 생각 끄기 연습 - 닉센을 실질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알아본다.

5. 행복은 멀리서 오지 않는다 - 저자 관점의 네덜란드를 바라보고, 왜 닉센을 수행하기 최적화된 장소인지 확인한다.

6. 생각 끄기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팁 - 닉센을 향한 비판을 살펴보다.


기술의 발명과 발전으로 우리는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손에서 놓지 않는 전자기기 덕분에 우리는 많은 정보를 쉽게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많은 정보들 때문에 주의가 산만해진다. 예전에는 사람과의 유대, 소통 등 관계로 유지되는 생활이 전자 기기나 기술 장치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반 가정에서도 각자 휴대폰, 태블릿pc 등을 사용하여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가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곳에 있지만, 소통하거나 교감하지 않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곁에 두고 온라인상의 사람이나 이슈에 집중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심리학자 도린 도전 머기는 기술이 우리의 대인 관계와 게으름을 부리는 능력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를 연구한다. "내면을 바라보고 자신을 달래며 자신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알아가는 대신 우리는 전자 기기를 바라봅니다. 내적 통제성 대신 외적 통제성을 갖게 된 거죠." 외부 통제성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늘 끊임없이 기기와 연결되기를 바라며 이런 주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더 나은 기분을 느끼기를 바라고 우리 손에 들린 기기가 그러한 기분을 선사해 주리라 믿는다는 것이다.

전자 기기 사용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우리네 가정에서도 코로나19로 더 심화된 갈등이 전자 기기 사용이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자 기기를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우선 닉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갖는 것에 관심을 가져보자.


우리가 바쁘게 활동하면 기분을 좋게 만드는 화학물질인 도파민이 활성화된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면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쁠 때 우리는 생산적이며 삶을 제대로 통제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든다. 사람들은 사회적 동물로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연결되고 소속되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의 성실하고 바쁜 사람들을 보면 응당 자신도 그래야 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면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더 매력을 느낀다.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 대부분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는 바쁘게 설계되어 있기도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기도 한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할 때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일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청소를 하거나, SNS를 하거나, TV 시청을 하거나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닉센을 하기 위해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허락도 받을 필요가 없다.


닉센은

우리에게 휴식을 준다. 사람은 누구나 휴식이 필요하다.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자신을 내려놓는 시간으로 더 활기찬 다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자기 관리의 방법이다. 자아를 지역 공동체와 주변 환경을 향해 열린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므로써 벗어나고 싶지 않은 삶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렇듯 닉센은 특별한 게 아니라 우리 삶의 일상적인 활동으로, 우리도 모르게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할 수 있다.


한번 생각해 보면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잠들기 직전이나 샤워하고 있을 때와 같이 느긋하고 마음이 풀린 상태에서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있는 유쾌한 상태, 바로 닉센을 하는 동안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닉센을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어야 하나? 일단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정하고, 의식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한다. 많은 시간을 할 필요 없이 하루 10분을 투자해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위축되거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이 당당하게 행동하라고 요구한다. 이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사항인 것 같다. 왠지 일을 산재해 있는 데 가만히 멍 때리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죄책감이 기어 나와 나를 돌돌 감쌀 것 같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는 게 선행과제이다. ^^

집에서도 남편과 아이들과 가사 분담을 하고, 아이들에게 바쁜 일정을 강요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가족 다 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는 조금 혹하는 제안이다. 다 같이 쉬고 있으면 맘이 몽글몽글해지고 따뜻해질 것 같다.


생각끄기 연습/올가 메킹 저/다산초당



<생각 끄기 연습>은 무리하게 닉센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 점이 참 인상적이다. 닉센이 좋다고 말하면서 누구에게나 효과적이라고 광고하지 않는다.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기에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지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충전하려는 데 모르겠다 싶으면 <생각 끄기 연습>을 먼저 읽어보면 좋겠다.

닉센에 대한 개념을 알아보고

실천해보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노력을 해보자.

생각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무리하지 않고 만족하면서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닉센'에 도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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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지구 안내서
가와무라 와카나 그림, 후쿠오카 아즈사 글, 김한나 옮김, 소여카이 감수 / 생각의집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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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순환을 보여주는 만다라 같은 그림으로 시작하는 책 <모두의 지구 안내서> 만나러 가볼까요?


모두의 지구 안내서/소여 카이 감수/생각의 집




소여 모험 대장이 부르네요.



<모두의 지구 안내서>는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지구에 대해 색다른 관점으로 알아볼 수 있게 도와주는 책입니다.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고 도전해보고 알아가는 동안, 지구가 더 소중하고 재밌게 느껴질 것입니다.


주제별로 도전 미션과 스토리, 워크시트 등을 통해 어린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아보고 실천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고 있습니다.




먹기는 살아가는 것으로, 본인이 스스로 먹을거리를 키울 수 있는 텃밭을 만드는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어떤 텃밭을 만들지 생각해 설계도를 그리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화분을 만들어 봅니다. 어떤 식물이 좋을지 결정해 심고 비료와 물을 주면서 키워 수확해 먹는 기쁨을 알려주네요.

직접 키워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D 실제로 아이 스스로 키운 채소는 더 잘 먹더라고요.

※ 콤포스트(퇴비통)을 사용해서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바꾸는 방법과 원리도 배울 수 있습니다. 저도 옥상 텃밭을 하고 있는 터라 호기심이 생깁니다.

※ 일본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숲과 밭의 교실> 소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일상적인 교육 환경이 부럽네요.






즐거운 일은 에지에 있다.

종류가 다른 존재가 서로 섞여서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것이 생길 기회가 있는 곳이 '에지'라고 알려줍니다. 길가의 아스팔트 틈새에서 자란 잡초나 민들레를 생각해 보면 길가의 아스팔트가 에지가 되겠네요. 서로 다른 여러 아이들이 모여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는 학교도 에지가 될 수 있겠죠.

우리 주위의 에지를 찾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6월에 마을 동아리 활동으로 EM을 활용한 흙공과 씨앗 폭탄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흙공은 마을 하천을 정화시키는 데 활용하고, 씨앗 폭탄은 마을 곳곳에 던져 수레국화꽃을 피우기로 약속하고 마을 청소년, 주민들과 함께 활동을 했었습니다. 높은 관심으로 방역수칙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 활동들이 계속된다면 마을이 좀 더 즐거워질 수 있겠네요. ^^

게릴라 가드닝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는 <우리 동네는 우리가 직접 만든다!>

모두 모여라! 가슴이 두근거리는 거리를 만든 이야기를 소개해 줍니다.

공공장소는 국가의 소유물이라 바꾸는 것이 힘들지만, 이렇게 마크와 동네 주민들은 행정기관을 끊임없이 설득해서 주민들의 힘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동네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곳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겠네요. 멋집니다.



시티 리페어 이야기/ 마크와 동네 주민들이 만든 '모두의 광장'



어느 아저씨의 밭에 민달팽이가 많이 찾아와서 소중한 채소를 다 먹어버려서 곤경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이웃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당신 밭의 문제는 민달팽이가 아니라 오리가 부족할 뿐이네."

어리둥절한 대답이죠.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민달팽이는 오리가 매우 좋아하는 먹이입니다. 오리를 밭에서 키우면 민달팽이를 먹어치우고 알까지 낳으니 먹을거리가 더 풍성해집니다. 심각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소한 아이디어로 밭을 지킬 수 있고 오리 알이라는 선물까지 얻었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괴롭다', '슬프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문제에는 멋진 가능성의 씨앗이 숨어있습니다. 이런 생각의 전환으로 문제를 받아들이면 '해결책 찾기 놀이'처럼 느껴져 즐거울 것 같습니다.



어른들 세계에서는 살아가려면 무조건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책은 중요한 질문을 던지네요. 인간은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을까요? 살기 위해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게 더 많지 않나요?

물질적인 욕구가 강해지는 요즘, 우리 아이들과 함께 대화 나눠볼 만한 주제라고 생각됩니다.


돈을 쓰지 않는 자연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서로 주는' 행위야.

'서로 주기'의 세계로 가기 위한 첫걸음은 '감사하기'야.

온갖 혜택 덕분에 자신이 살고 있다는 것.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습니다. 그 감각을 잊지 않도록 멈춰 서서 느끼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는 페이지 - 멈추고 살아있다는 느낌에 집중!


세븐 제너레이션

어느 미국 선주민에게는 '세븐 제너레이션'이라고 불리는 가르침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후손 7세대의 아이들까지 생각해서 살자.'

의미 깊은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다면 지금 같은 기후변화를 맞이하지 않았을 텐데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지만 결코 빠르지 않은 지금, 우리의 변화가 절실한 때입니다.


제로 웨이스트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삶이 과연 가능할까 싶지만, 쓰레기는 인간 최악의 발명품으로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겠죠. 이 부분은 저 뿐만 아니라 주위의 인식도 많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비닐 대신 장바구니 사용해서 장을 보고, 종이 영수증 대신 온라인 영수증을 받고, 과대포장을 지양하고, 빈 그릇을 챙겨서 필요한 만큼 구매하는 생활이 차츰 일상이 되어가고 있네요.

이렇게 지구를 위한 변화가 지속되고 내가, 가족이, 마을이, 나라가, 지구촌 모두로 주체가 확장되는 그날을 기대해 봅니다.


지금 어른들의 최선을 뛰어넘는 것이 너희 세대야.

그건 반드시 어른들과 똑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는 말이 아니야.

어른들이나 누군가가 '못해'라고 해도

먼저 자신이 확인해 보는 게 중요해.

그렇게 해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어른을 뛰어넘자.



퍼머컬처



'퍼머컬처'는 지구에서 즐겁게 살아가기 위한 생활의 아이디어를 뜻하는데 전 세계의 선주민, 농사꾼, 동물과 식물들이 해온 일을 정리한 개념이네요.

우리가 자연의 일부로 서로 협력하여 풍요로운 인생을 걸어가며 다음 세대에게도 그 세계를 이어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오늘만을 생각하지 않고 행복한 내일을 꿈꾸며 오늘 지구를 위한 행동을 한다면 그것이 '퍼머컬처'가 아닌가 싶습니다.

<모두의 지구 안내서>는 따뜻한 책입니다. 색감도 따뜻하고, 안에 담고 있는 내용도 따뜻해서 읽으면 뭉클해지고 두근두근합니다. 

힘들다 생각했던 일들이나,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한편에서 실천하고 있다니 왠지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드네요. 승부욕이 아니라, 동지의식, 공감이에요.

불가능하다고 도전 미션 덮지 말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도전해보고, 컬러링도 해보고, 책 안의 생각거리, 질문거리에 고민해 보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해볼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먼저 노력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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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 위의 남자
다니엘 켈만 지음, 박종대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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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틸】은 강렬하게 시작한다.

- 신발 -

지금까지는 우리에게 전쟁이 찾아오지 않았다. (첫 문장)

한 시골마을에 유명한 광대 '틸 울렌슈피겔'이 나타나 한바탕 공연을 펼친다. 공연은 절정에 치달아 틸이 줄을 타고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틸의 재촉에 신발을 벗어던지고 신발을 맞아도 개의치 않고 웃는다. 그러다 틸의 욕설에 눈살을 찌푸리며 자기 신발을 찾아 헤매기 시작하는 데, 신발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동안 쌓였던 숨겨두었던 꾹 눌러두었던 분노, 질투가 폭발하였다. 서로 치고받고 뒹굴고 물어뜯고 우는 난장판이 되었다.

그리고 슬며시 틸은 다시 마차를 타고 떠났다.

이후 아무도 그 난장판을 입에 담지 않았지만 잊히지 않고, 마을 곳곳에 주민 틈틈이 남아 의아함과 두려움을 불러왔다.

1년 뒤 전쟁이 우리를 찾아왔다. (32쪽)


틸이 지닌 광대로서의 능력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타인의 마음을 긁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치부를 드러내게 만든다. 익살스런 시작으로 호응을 돋우더니 어느새 바보, 멍청이 취급을 당하니 사람들이 어리둥절하게 된다. 이런 틸이 전해주는 독일의 30년 전쟁 이야기에 우리는 초대받았다. 이제 초대장을 펼쳐보자.


틸_줄 위의 남자, 차례



틸의 유희 <신발>

유명한 광대 '틸 울렌슈피겔'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그려지는 <공중의 제왕>

30년 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추스마르스하우젠 전투>

30년 전쟁의 발발 동기인 <겨울왕>

틸과 넬레의 고난으로 대표되는 민중의 고통 <굶주림>

종교인의 독선 <빛과 그림자의 위대한 예술>

틸의 각성 <갱도>

30년 전쟁의 끝 <베스트팔렌>



틸, 줄 위의 남자/다니엘 켈만 저/다산책방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소설이 아니기에 더 집중해서 읽게 된다.

중세 민담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광대 '틸'을 중심으로 30년 전쟁의 허상과 이면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그 길고 긴 전쟁 속에서 이름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민중들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30년 전쟁의 사건 곳곳에 틸은 함께 하여 우리에게 피폐해진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민중들이 사는 마을에 수년간 양쪽 군인들이 몰려와 약탈을 반복하고, 어떤 군대에도 속하지 않은 약탈병들까지 등장하여 다 앗아간다. 이런 상황에서도 왕과 제후, 황제는 자신들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전쟁을 이끌기 위해 정치를 하고 궁정광대 틸을 옆에 두고 유희를 즐긴다. 틸은 이 모든 역사의 산증인이고 후대에 남길 이야기꾼으로 노래하고 연극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종교적인 이유로 시작된 전쟁이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각국의 이권 다툼의 장으로 변해버린 30년 전쟁이 낯선 전쟁이었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여느 전쟁처럼 민중의 고통과 한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면서도 틸이 들려주는 익살, 해학이 단순히 무거운 역사만이 아닌 상상력이 펼쳐지는 장이 된다.


외줄타기는 추락으로부터의 도주이다. 


틸이 광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제공한 예수회의 독선으로 가득찬 마녀사냥이 그려지면서 종교의 이름으로 통제, 억압하던 시대의 아픔이 크게 다가온다.

종교인, 왕, 제후 등 기득권층을 꼬집고 비웃음거리로 만드는 데 주저함이 없는 틸을 곁에 두고자 하는 겨울왕과 겨울왕비를 보면서 높은 자리에 있는 그들이지만 진정한 친구를 찾을 수 없는 허전함과 외로움을 엿볼 수 있다. 자기를 비웃고 풍자하는 틸에게 오히려 위안을 얻고 함께 하고자 하는 겨울왕비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에게 틸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말한다.



"평화로운 죽음보다 더 좋은 게 뭔지 알아? 죽지 않는 거야. 그게 훨씬 좋아."

"난 이제 간다. 항상 그래왔어. 어떤 곳이 비좁게 느껴지면 난 떠나. 난 여기서 죽지 않아. 오늘은 죽지 않아. 죽지 않을 거야."



광대의 자유로운 영혼이 안내하는, 판타지와 현실을 넘나드는 30년 전쟁의 서사를 이제 덮는다. 부디 모두에게 틸의 유희가 전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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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와 폐허의 땅
조너선 메이버리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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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체와 폐허의 땅』

: 강렬한 표지와 더 강렬한 추천사로 무장하고 돌아온 조너선 메이버리

시체와 폐허의 땅/조너선 메이버리 저/황금가지



많은 스토리의 단골 소재인 좀비,

우리나라의 킹덤, 부산행, 반도이나 미국의 새벽의 저주, 28일 후, 워킹 데드 등 떠오르는 영상물들이 많다. 스릴러, 추리소설 분야 책을 즐겨있지만,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 묘사는 좋아하지 않아 위의 작품 중 28일 후 만 감상했다. 이렇게 좀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설은 이번 작품 <시체와 폐허의 땅>이 처음이다. 좀비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평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다. 대부분 끔찍한 살육, 서로 죽이거나 죽는 추격전, 극적인 탈출이 주를 이루는 좀비물에 성장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준 이유가 궁금해졌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

좀비의 공격으로 세상이 멸망한 '첫 번째 밤' 이후의 시간을 다룬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좀비가 나타나 발생한 세상의 혼란이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라,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조명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쳐 마을과 시체들의 땅을 분리했다. 이전 시대처럼 편리한 생활을 이루면서 살아가지는 못하지만 근처 좀비들을 처리해서 어느 정도 안정된 상황이라 일상을 누리면서 생활을 한다. 한정된 인원과 자원으로 유지되는 마을이라 14세가 되면 누구나 직업을 가져야 배급을 받을 수 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

좀비의 공격으로 세상이 멸망한 '첫 번째 밤' 이후의 시간을 다룬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좀비가 나타나 발생한 세상의 혼란이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라,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조명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쳐 마을과 시체들의 땅을 분리했다. 이전 시대처럼 편리한 생활을 이루면서 살아가지는 못하지만 근처 좀비들을 처리해서 어느 정도 안정된 상황이라 일상을 누리면서 생활을 한다. 한정된 인원과 자원으로 유지되는 마을이라 15세가 되면 누구나 직업을 가져야 배급을 받을 수 있다.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베니 이무라는 결국 사냥꾼이 되기로 했다.(첫 문장)

벤저민 이무라는 다양한 직업을 경험해 보지만 딱히 맘에 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결국 좀비 사냥꾼을 하기로 한다. 그래서 평소 사이가 좋지 않지만, 유명하고 존경받는 좀비 사냥꾼인 이복형 톰에게 배우기로 한다.


베니(벤저민)은 좀비를 매우 증오한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분노로 가득 차있다. 왜? '첫 번째 밤'에 좀비에게 물려 엄마와 아빠를 잃은 기억이 자신이 기억하는 첫 기억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좀비에게 물린 아빠, 그 아빠에게 쫓기는 엄마, 엄마의 하얀 블라우스와 빨간 소매를 뒤로 한 채 자신을 안고 도망치는 톰이 기억의 파편들로 남아 베니를 괴롭히고 톰을 미워하게 한다.


좀비 사냥꾼이 되기로 한 베니는 톰과 함께 '시체들의 땅'으로 들어가 다양한 일들을 직접 경험한다. 좀비를 만나고, 좀비 사냥꾼들의 만행을 목격하고, 좀비들을 돌보는 수도사를 만난다. 그리고 톰이 행하는 좀비 영결식을 목도한다. 이제껏 자신이 믿었던 진실의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벤저민 이무라는 다양한 직업을 경험해 보지만 딱히 맘에 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결국 좀비 사냥꾼을 하기로 한다. 그래서 평소 사이가 좋지 않지만, 유명하고 존경받는 좀비 사냥꾼인 이복형 톰에게 배우기로 한다.


베니(벤저민)은 좀비를 매우 증오한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분노로 가득 차있다. 왜? '첫 번째 밤'에 좀비에게 물려 엄마와 아빠를 잃은 기억이 자신이 기억하는 첫 기억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좀비에게 물린 아빠, 그 아빠에게 쫓기는 엄마, 엄마의 하얀 블라우스와 빨간 소매를 뒤로 한 채 자신을 안고 도망치는 톰이 기억의 파편들로 남아 베니를 괴롭히고 톰을 미워하게 한다.


좀비 사냥꾼이 되기로 한 베니는 톰과 함께 '시체들의 땅'으로 들어가 다양한 일들을 직접 경험한다. 좀비를 만나고, 좀비 사냥꾼들의 만행을 목격하고, 좀비들을 돌보는 수도사를 만난다. 그리고 톰이 행하는 좀비 영결식을 목도한다. 이제껏 자신이 믿었던 진실의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시체와 폐허의 땅>은 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분명 진실은 한 가지일 텐데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눈에 보이는 사실뿐만 아니라 사실 이면에 감춰진 진정한 진실이나 미처 살피지 못한 사실들로 인해 진실이 달라질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우리가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시체와 폐허의 땅/60쪽



'첫 번째 밤' 톰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에 대한 진실,

마을과 버려진 세계 '시체들의 땅' 사이의 울타리에 대한 진실,

찰리와 해머 일당 좀비 사냥꾼에 대한 진실.

책을 읽을 때 중점을 두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우리의 시선은 어떤 진실을 향하고 있는지 말이다.

책을 읽을 때 중점을 두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우리의 시선은 어떤 진실을 향하고 있는지 말이다.



<시체와 폐허의 땅>은 '좀비'에 대한 시선도 남다르다. 좀비를 괴물로 치부하지 않고, 존중받아야 할 대상으로 본다. 죽은 사람이고 어떤 원인 모를 이유로 저렇게 변해버린 사람이다. 살아있지 않아도,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일지라도,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할 때조차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가족들에게 부탁받아 좀비의 마지막을 보내는 영결식을 수행하는 톰. 그 의미를 이해하면서 베니는 한 단계 성장한다.



그리고 악한 의도 없이 위협을 하는 존재인 '좀비'와 고의로 악의를 품을 수 있는 찰리 일당이 대비되면서 과연 진정 괴물은 누구인가?에 대해 묻고 있다. 물려고 달려드는 좀비는 위험한 존재이지만, 힘없는 이들을 힘으로 지배하고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찰리는 두려운 존재이다. 찰리의 악행은 이미 수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톰과 베니의 선택은 이제 단 하나뿐이다.




톰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을 베니와 함께 매듭지었고, 그 과정에서 '첫 번째 밤'에 대한 오해를 풀고 진정한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가두고 있던 철조망에서 벗어나 시체들의 땅 저편 '동쪽' 미지의 세상으로 떠난다. 언젠가 보았던 비행기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들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는 또 다른 이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란히 걸어갔다.

 






톰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을 베니와 함께 매듭지었고, 그 과정에서 '첫 번째 밤'에 대한 오해를 풀고 진정한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가두고 있던 철조망에서 벗어나 시체들의 땅 저편 '동쪽' 미지의 세상으로 떠난다. 언젠가 보았던 비행기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들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는 또 다른 이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란히 걸어갔다.








<시체와 폐허의 땅>을 읽으면서 가족애를 느끼고, 베니와 친구들, 톰과 친구들의 소중한 우정에 감사하며, 베니와 닉의 사랑을 응원하였다. 박진감 넘치는 액션 묘사에 같이 긴장감이 고조되었고 좀비로 변해버린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마지막 편지에 같이 울컥하고 말았다.


그리고 철조망 안에서 안전하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마운틴사이드 마을 주민들과 새로운 내일을 꿈꾸며 두려움을 이기고 떠나는 톰 일행이 오버랩되면서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다양한 매력을 지닌 소설 <시체와 폐허의 땅>이 영상으로 제작 중이라 하니, 톰과 베니 형제의 케미를 스크린에서도 기대해 본다.


영웅이 된 사람들은 보통 전혀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다가,

어느 순간 자기 내면에서 타오르는 큰 불꽃을 발견한 사람들이었어.

불꽃은 언제나 마음속에 있었겠지만, 발견할 기회가 없었던 거지.

자신이 가장 최악의 시기에 가장 밝게 빛나게 되리라는 것을 평생 모르고 사는 거야. (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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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의 시간 - 제2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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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의 시간』

'불펜'의 사전적 의미

: 야구에서 구원 투수가 경기 중에 준비 운동을 하는 장소



불펜의 시간/김유원 저/한겨레출판사



우리는 어떤 규칙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승부의 세계에 던져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불펜의 시간>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인 준삼, 혁오, 기현을 통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기는 게 중요할까?

얼마나 중요할까?

무엇보다 중요할까?"



"이 주임은 누구처럼 살고 싶어?"

이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질문을 받은 준삼은 한동안 대답을 못 하다가 때마침 TV에 나온 야구선수인 "권혁오요." 라고 답을 합니다.

준삼이 바라는 권혁오처럼 사는 인생은 무엇인지 저자는 <불펜의 시간>을 통해 짜임새 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연출자로서 쌓아온 현장지식이 현실감을 부여해 야구로 대표되는 스포츠, 증권회사로 대표되는 기업, 스포츠 신문사로 대표되는 언론을 배경으로 결과적으로는 '승부'에 집중하는 사회 시스템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제의식은 권혁오 선수의 '볼넷'이 구심점이 되어 확장됩니다.

준삼과 기현은 각자 자신의 직장 안에서 선수로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치열함으로 승부하고 있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기쁨보다 예정된 모욕'을 선택한 준삼은 악취와 모욕을 견디다 모욕을 주는 사람이 되는 끔찍한 일까지 잘 견뎌내 끝까지 회사에 남고 싶습니다.

기현은 편집장의 우호 아래 자신감 넘치는 승부사 기질로 특종을 찾아 헤맵니다. 특종에 촉을 곤두세우는 모습은 사냥을 나선, 먹이를 노리는 굶주린 야생동물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좋은 기자요, 기자의 사명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는,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 이들에게 혁오의 '볼넷'은 이해되지 않는 의문이고, 용납되지 않는 반칙입니다. 준삼은 혁오의 중학교 야구부 동창으로 혁오의 아름다운 투구폼을 동경하였고, 기현은 초등학교 시절 야구를 했으나 경제적인 이유로 그만두어야 했기에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혁오는 타고난 재능을 지닌 투수로 어렸을 때부터 좋은 기록을 세워 주위의 기대와 칭찬으로 촉망받는 에이스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제구가 되지 않아 구원투수로 나갔으나 '볼넷'으로 교체되는 상황은 사회에서 보는 기준으로는 '실패'입니다. 하지만 그가 정한 규칙인 이기지 않는(≠지는) 경기였고, 기쁨이 넘치는 투구였습니다.


불펜의 시간/김유원 저/한겨레출판사


준삼은 혁오의 아름다운 투구폼에 빠져들수록 회사 내 부조리와 악취, 모욕을 견뎌내기 힘들어집니다.

준삼이 회사원 또한 승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선수임을 깨닫고 강박으로 인해 꾸게 되는 꿈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왜 뛰는지 아나요? 아니 생각해 본 적은 있나요? 왜 그렇게까지 뛰어야 하나요? 그 와중에도 준삼은 피범벅이 된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듯한 제스처로 부장에게 생존을 허락받는 장면은 현대 직장인의 처절한 자화상 같아 가슴 먹먹해졌습니다.

기현은 권혁오와의 인터뷰를 통해 기자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특종'을 향한 강박에서 벗어나 사회의 또 다른 고통(의료법 로비)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불펜의 시간을 보내고 그들은 변화를 맞게 됩니다.



패배한 사람의 눈을 응시해서는 안 된다. (38쪽)

혁오야 너의 승리가 다른 사람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해.(38쪽)

추하다. 비열해질 기회까지 잡을 필요는 없다고, 놓쳐도 되는 기회도 있다고

일부러 볼넷을 던지는 사람이 알려주었다. (210쪽)

혁오가 필사적으로 지킨 아름다운 조각이 자신의 조각을 자극했음을.

누구나 아름다움의 조각을 자기고 있으며, 우리에겐 서로의 조각을 자극할 힘이 있음을.

"나도 있다." (251쪽)





이 소설은 매력적입니다.

책을 읽다가 보면 예상되거나 원하는 방향이 있는데, 중요한 대목에서 매번 빗나갔습니다.

내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느새 캐릭터들에게 애착이 생겨서 별 탈 없이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소설 3명의 주인공 중 '준삼'에 눈길이 계속 갑니다. 가장 자기 자신이 보이지 않는 인물이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고민하고 계획 세우는 게 아니라 세상이 제시하는 규칙에 맞춰 기본적인 삶,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직장 내 부조리를 알면서도 무시하며 최대한 버텨보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그는 우리네 보통 사람이 투영됩니다. 악취를 맡을 수 있고 거북해할 수 있는 아직은, 부조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준삼이기에 직장 생활이 더 곤혹스럽고 끔찍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혁오'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느끼면서 변하게 됩니다. 이런 악취를 뿜어내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조각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세 주인공 외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흥미롭습니다. 인생 한방을 노리는 준삼의 아버지나 승리에 도취되지 않도록 당부하는 혁오의 어머니 현숙, 기현의 친구 새롬이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새롬은 협동조합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 일을 통해 쉽게 무너지지 않는 걸 만들고 싶어 합니다. 문제는 언제든지 생길 수 있고, 당면한 문제 해결이 목적이 아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하나의 현상이나 상황이 아니라 다양한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시스템. 그러려면 당면한 문제 해결에만 치중해 쉽게 분노하고 쉽게 설득당하고 쉽게 결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시선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새롬 또한 세상의 규칙 안에서는 성공한 사람은 아닙니다.

저자는 사회가 정한 규칙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길을 다지며 걸어가려고 하는 준삼과 혁오, 기현의 앞길을 밝고 희망차게 그려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SNS 기자로 전향한 기현의 인터뷰에서 접할 수 있었던 여성 기자에 대한 편견, 선발이 된 혁오가 보여준 경기 등이 그렇습니다. 

이제 '시작'이고 그들이 찾은 '아름다운 조각'과 '작고 단단한 것'이 주위에 스며들어 서로를 자극해 함께 나아갈 동료를 만들어가는 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세상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거침없이 웃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그들만의 작고 단단한 것을 꼭 쥐고 공감하는 이들을 서로 자극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한겨레문학상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한겨레문학상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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