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듣는다
루시드 폴 지음 / 돌베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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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음악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는 루시드폴의 에세이 《모두가 듣는다》

 

 

모두가 듣는다/ 루시드폴/ 돌베개


 


가수 루시드폴이 전하는, '음악'으로 느끼고 귀 기울이는 세상을 조우하고 차오르는 만족감에 빠져든다. 음악을 향한 그의 진심과 집중과 귀 기울임은 세상을 듣는 행위로 귀결되어 세상을 비추고 있다.

이번 에세이에는 지난 수년간 작업과 녹음 틈틈이 남겨둔 기록인 녹음 수첩뿐 아니라 새 음반 <Being-with>를 위한 라이너 노트가 수록되어 루시드폴의 음악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다. <Being-with>의 '소리'로 떨어져 있는 우리가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기분을 감각할 수 있음은 감사한 일이다.

 


 


 

 

나는 '음악' 듣기에 유독 약하다. 음악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귀로 들어오는 선율을 체화하지 못한다. 같은 노래라도 들을 때마다 처음 접한 노래처럼 들을 수 있는 남다른? 능력이 있다. 그래서 루시드폴 산문집 《모두가 듣는다》의 인도로 닿게 된 세계는 별세계였다. 갓난아이처럼 내가 모른다는 것도 몰랐던 세상의 소리를 듣고 공간을 감각하고 그 안에서 그의 말처럼 춤추고 호흡하였다. 그러면서 그가 찾고자 하는, 갈구하는, 전하는, 뿌리는 '음악'과 '노래'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는 즐거움에 젖어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BGM으로 그의 앨범을 틀어놓았다. 글로 해석해놓은 그의 음악은 어떤 걸까? 이런 과정을 거쳐 맺은 열매의 소리는 어떨까? 궁금해서 들으면서 읽었다. 모듈러 신시사이저로 모은 식물의 노래(Moment in Love, Dancing with Water), 공사장 소리를 미분하여 고통받는 지구(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노래(Mater Dolorosa, Being-with), 떠나간 가족을 위한 노래(Transcendence, Being-with), 기존에 내가 알던 노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눈을 뜨는 듯한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는 '음악은 무엇인가'에 몰두하던 사유를 차츰 '무엇이 음악이 되는가'로 돌리는 흐름을 보여준다. 듣는다, 귀 기울인다. 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향한 삶이자 음악이자 노래를 들려준다.

 


 

우리는 듣는 만큼 보고, 듣는 만큼 느낀다.

- 모두가 듣는다, p.29

 

 

 


세상의 소리는 듣고자 하는 이만 듣는다. 그는 들리지 않는데 대체 뭐가 문제냐고 묻는 이들에게 아무리 "세상은 듣지 않는다" 해도 함께 사는 타자의 몸짓을 애써 듣고, 보려는 사람도 우리 곁에는 정말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애쓴다. 그리고 그 스스로도 분명 존재하지만 누군가는 듣지 못하는 소리를 길어내는 수고를, 마음을 기꺼이 하여 음악으로 세상에 내놓는다. 들어보자고, 귀 기울여보자고 권하는 그의 음악으로 들리지 않았던 나무의 소리도, 바다의 소리도, 지구의 고통 어린 울음도, 바람 소리도, 희귀질환을 앓는 환우의 통증도, 공사장의 소음까지도 다 음악으로 만들어낸다.

 

 

그는 "노래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며, "노래는 이야기가 된"다고 했다.(너머, p.155) 이야기가 된 노래는 어떤 힘을 가지게 될까?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움을 만난다는 건 루시드폴의 말처럼 커다란 축복이다.

필름과 테이프를 내려놓지 못하는 동시대의 음악가, 농부, 작가, 화학자 루시드폴이 만든 노래는 아름다움을 전한다.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은 나를 기울여 세상과 하나가 되어 춤추는 일, 표면에 부유했던 나를 내면 깊숙한 곳으로 끌어당기는 일, 벅차오르는 행복이자 아름다움 그 자체이지 않을까.

 

 


인도 출신 음악가 안수만 비스와스는

'듣는다는 건 세상과 함께 춤을 추는 일'이라고 했다.

다 함께 춤출 수 없는, 말하기 중독에 빠진 세상이 온건 아닐까.

그런 세상은 너무 끔찍해서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분명한 건 듣지 않으면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듣지 않는 말은 쌓이고, 말이 쌓이면 썩는다.

- 나를 기울이면, p.58,9


 

 

시간은 그저 흐를 뿐이고, 인간이 나눈다. 이제 떠나가는 2023년과 떠오르는 2024년의 어느 지점에서 루시드폴의 음악과 사진과 깊이 있는 사유로, 세상의 소리에 나를 기울여보는 아름다움을 누려볼 수 있어 행복한 내가 보내는 초대장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우리, 귀 기울여봐요. 들을 수 있어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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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 - 열 편의 인권영화로 만나는 우리 안의 얼굴들
이다혜.이주현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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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 이다혜ㆍ이주현 지음/
한겨레출판

 

 


 

이번에 읽은 책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다.

2002년부터 꾸준히 인권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는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제작한 영화 10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별별차별>(2012, 씨네21북스)를 발간하였다. 그리고 이번에 2013년부터 다시 10년 동안 세상에 나온 10편의 영화 이야기를 담은 <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를 출간하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라고 하는데 2013년에 제작된 <봉구는 배달 중>, <두한에게>, <얼음강>으로 비춰본 한국 사회와 2022년 작품 <힘을 낼 시간> 속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그다지 큰 변화가 없는 듯하여 씁쓸하다. 그래도 꾸준하게 사회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기에 더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믿는다. 희망한다.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의 고통을, 외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 현실을 담은 상상의 이야기가 지닌 힘이 평화로운 내일을, 다정한 세계를 꿈꾸게 하고 기필코 이루게 할 거라 믿는다.

 

 

 

10편의 영화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숙제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웃을 비추고 있다. 사회경제 변화로 야기되는 상황들을 개인(혹은 가정)의 영역 안에서 해결해야 할 때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와 불안, 부담을 '영화'라는 매체를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10편의 영화는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있다.

청년의 인권과 삶을 다룬 이야기

(메기, 이옥섭 감독, 2018)

청소년의 인권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 최익환 감독,

2015/힘을 낼 시간, 남궁선 감독, 2022)

노인 인권에 대한 영화

(봉구는 배달 중, 신아가ㆍ이상철 감독, 2013)

스포츠 인권에 대한 영화

(4등, 정지우 감독, 2014)

존엄사를 대하는 또 다른 시선

(하늘의 황금마차, 오멸 감독, 2014)

고독사를 다룬 영화

(소주와 아이스크림, 이광국 감독, 2015)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한 이야기

(얼음강, 민용근 감독, 2013)

장애 인권을 담은 이야기

(두한에게, 박정범 감독, 2013)

파놉티콘, 디지털 감시 사회를 다룬 이야기

(과대망상자(들), 신연식 감독, 2015)

 

 

 


 

 

이 10편의 영화가 우리를 찾아오는 시간 동안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해 사회적ㆍ법적 변화가 있었다. 1939년 이래 지난 80년 동안 총을 드는 대신 감옥을 택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수가 1만 9,7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의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에 이어 2020년 대체복무제가 시행됨으로써 감옥에 수감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수가 늘어나지 않게 되었다.

 

책 제목 <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는 민용근 감독의 저서 <그들의 손에 총 대신 꽃을>에서 영감을 얻어 지었다고 한다.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진행 중인 오늘날, 군대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은 충돌하고 있다. <얼음강>이 풀리지 않는 문제에 실마리가 되어줄지 자신의 인생을 걸고 꺾이지 않는 신념을 그린 영화를 직접 보고 싶어졌다.

 

 

 

10편의 작품 중 본 작품이 <4등>뿐이라 아쉬움이 많다. 읽으면서 활자로 만나고 있는 이 작품들을 실제로 관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헛헛한 기분이 커갔다.

 

 


 

청년의 인권을 판타지스러운 구조 안에서 다각적 측면으로 바라본 <메기>, 청(소)년의 인권을 지나친 경쟁과 소비 구도에서 대체 가능한 부속품처럼 버려진(은퇴한) 아이돌들의 여행 서사로 풀어낸 <힘을 낼 시간>, 점점 소외될 수밖에 없는 노인에 대한 사회의 이중적인 시선을 아이와 노인의 하루로 따뜻하게 담아낸 <봉구는 배달 중>, '생과 사를 자연의 섭리'로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으로 로드무비 형식으로 간암 말기 치매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그린 <하늘의 황금마차>, 평소에 의식하고 있는 주제인 디지털 파놉티콘을 과대망상과 연결 지어 중의적인 시선이 담긴 <과대망상자(들)>까지 전문가의 시선으로 톺아본 영화에 그치기에는 서운하다. 상업영화가 아닌 인권 영화와 독립영화, 다큐멘터리를 편하게, 쉽게 관람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영화 '69세'를 보고 노인과 여성의 오늘을 통렬하게 자각한 기억이 있다. 나이, 성별, 장애, 경제력, 학력, 직업 등 그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살아있다' 그 존엄한 사실로 존중받고 살아가는 나를 바란다. 그렇다면 결국 모두 다 존엄한 오늘을 보내는 이 시대의 우리가 되지 않을까. 서로 대립하는 권리가 아닌 병립하는 권리로 자리 잡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교권과 학생 인권을 바라보는, 청년과 노인을 바라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바라보는 시선들에 대한 현명한 해법은 다르다 구분 짓는 게 아니라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전체를 아우르는, 기존과는 다른 열린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

사회에서 낙오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기억 대신 속해있고 존중받는다고 믿을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힘을, 용기를, 관심을 말하는 책이다. 더 나은 내일을 염원하는 우리에게 추천합니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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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일기
권남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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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일기, #권남희,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7기

 

한겨레출판사에서 출간된 일기책을 연달아 읽게 되었다. 아니, 하니포터7기 활동 도서로 직접 선택해서 읽었다. 두 권 모두 일기 형식이지만 저자의 연령대와 일기의 소재가 달라서 각기 다른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는 팟캐스트 <일기떨기>를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30대 세 여자가 일기로 수다를 떠는 형식으로 그 연령대의 보편적 고민부터 개인적 걱정과 상처 그리고 글 쓰는 직업군으로서의 불안과 성취감과 꿈 등을 공감 어린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그들의 인생 분투기에 힘을 얻고 신선한 시선을 배우며 위로받았다. 그리고 이미 그 시기를 건너온 선배로서 절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스타벅스 일기/ 권남희 산문/ 한겨레출판


 

이번에 읽은 <스타벅스 일기>는 번역가이자 수필가인 권남희 작가가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음료와 주위 사람들 얘기를 담은 일기를 엮은 책이다.

딸을 독립시키고 홀로 지내면서 얻은 '빈둥지증후군'을 고치고 일도 할 겸 스타벅스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테이블 간격이 좁아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들리게 되니, 그에 대해 간단한 저자의 생각을 더하여 짤막한 하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

많은 이들이 찾는, 언제나 북적거리는 공간이지만, 나는 잘 찾는 곳은 아니다. 카페 가면 아메리카노만 마시는데 스타벅스 커피가 입맛에 맞지 않아서 선택권이 있다면 스타벅스를 고르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스타벅스 일기>를 읽으면서 이렇게나 다양한 메뉴가 있다고? 음료에 관한 묘사를 읽으면서 왜 사진은 없는 거야? 아쉬움을 느끼다가 그러면 스타벅스 홍보물이지. 자각하는 내가 어이없어 헛웃음이 터졌다.

 

 

겨울에 시작해서 가을까지 1년여의 시간의 흐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일기다. 음료와 번역 일과 스타벅스 오는 사람들로 채워진 이 짧은 글을 읽는 내내 웃음이 피식 터져 나와 즐거웠다. 스타벅스에서 이토록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날 수 있다니 신기한 경험이었다. 혼자 일하러 가서 동행이 있는 일반적인 고객보다는 더 주변 소리에 민감한 덕분이다. 거기에 세상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권남희 저자의 시선이 더해져 사랑스러운 스타벅스 일기 에세이가 탄생했다.

 

 

 


 

 

되도록 안 들으려 하고,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 조심하는 저자가 자기가 관심 있는 대화 주제에 귀를 종긋하는 모습에, 극내향이면서도 아이에게는 무한한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타인이지만 공감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면 예의를 갖춰 마음을 표하는 모습에 훈훈한 온기를 이어받았다. 따뜻한 차 한 잔과 타인들의 대화 소리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켜 글로 재탄생시키는 그는 천상 작가다.

 

딸 정하와 어머니가 자주 등장하는 가족이다. 딸 정하와의 모든 콘텐츠는 내 딸과 하고픈 미래의 모습이다. 당근 마켓에서 사기당할 뻔한 저자를 위해 앞장서 해결해 주고 잔소리하는 딸이지만 아픈 할머니를 돌보느라 지친 엄마를 위해 나고야 효도 여행도 데리고 가고, 여름휴가를 엄마와 함께 가는 사랑스러운 딸이 너무 부러우면서도 내 딸도 그럴 거라 내심 부풀어 오르게 한다.

 

 


 

 

"저승 가는 병원이다."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파킨슨병 진단으로 다니시던 병원에 장기입원하신 저자의 어머니가 요양병원인 줄 알고 친구에게 한 말이다. 얼마나 가슴이 시리던지. 이제 일흔 고개를 넘었지만 사는 내내 종합병원이었던 울 엄마가 떠올라 울컥했다. 생과 사는 하늘의 뜻이라 해도 부디 많이 아프지 마시고 오래 사시길 바랄 뿐이다.

 


 

 

주변의 이야기에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더해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를,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글쓴이 자신에게도, 읽는 이에게도 당부한다.

 

<스타벅스 일기>는 집순이였던 권남희 저자가 스타벅스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찾아온 변화의 결실이다. 스타벅스에 앉아 차 한 잔을 자신에게 선물하며 일을 하고 들려오는 주변의 소리에 감응하는 일이 결국 세상과 조우하는 것이었다.

스타벅스를 오가는 수많은 인파들이 전하는 소리들 중 어쩔 수 없이 들린 그 소리들에 반응하여 솔직 담백하게 오늘을 녹여낸 그의 일기를 통해 삶의 사계절을 음미할 수 있었다. 또한 그가 번역한 책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다양한 음료의 모양과 맛을 상상하는 재미까지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한겨레 하니포터 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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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 일기 쓰는 세 여자의 오늘을 자세히 사랑하는 법
천선란.윤혜은.윤소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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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으로열심히살고있습니다, #천선란, #윤혜은, #윤소진,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7기

 

초등? 아니 국민학교 때 숙제로 썼던 '일기' 외에 자발적으로 일기를 쓴 기억은 첫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키우면서 썼던 2년여의 태교?육아일기가 전부다. 그래서 '일기'로 소통하는 세 여자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끌렸다. 어떤 사이길래 일기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일까? 일기를 소재로 한 팟캐스트를 진행할 생각을 어떻게 한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들을 느낌표로 바꾸기 위해 책을 펼쳐 들었다.

 



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천선란, 윤혜은, 윤소진/ 한겨레출판




 

녹색 계열의 색감이 감싸 안은 차분한 표지 안에는 세 여자를 나타내는 듯한 토끼와 개 그리고 고양이가 서로를 의식하는지, 눈길을 주고받는지 모르겠는, 적당한 느긋함을 드러내고 있다. 왠지 피식 웃음이 삐져나오게 만드는 그림이라 손으로 쓰다듬어주고 책장을 펼쳤다. 읽기 전에는 좀 더 밝은 색감이면 좋겠다 아쉬웠지만, 후에는 차분한 색감이 책이 전하는 질감과 잘 어울린다 느꼈다.

 

 

- 일기 쓰는 세 여자의 오늘을 자세히 사랑하는 법 -

세 여자 중 한 여자를 알고, 그 이름에 이끌려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바로 소설가 천선란이다. 소설로 형성된 소설가 천선란이 아닌 보통 사람 천선란(필명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알았네요. ^^;)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일기'로 '수다떨기' 포맷인 팟캐스트인 만큼 내밀한 이야기가 펼쳐질 거니까.

 

소설가 천선란,

일기 인간 윤혜은,

편집자 윤소진.

같은 학교 동문이며 글과 관련된 직업군 안에 있다는 공통분모로 팟캐스트 '일기떨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세 여자 중 꾸준히 일기를 써왔던 혜은 외에 선란과 소진은 새로운 시도를 한 덕분에 30대 여성들이 내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편안하게 꺼내 보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일기떨기>의 인기가 그 증명일 것이다. 이 시대를 지금 각자의 공간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면서 자기 홀로 감각하고 있지 않다는 동질감을 나누기에 기꺼이 그 수다에 발을 담그는 게 아닐까.

솔직히 수다 떠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세 여자의 정돈된 '일기'보다 순간의 느낌과 감정이 교차하며 엮어지는 '수다'를 읽으면서 저릿저릿 해지는 경우가 많았던 걸 보면 밖으로 털어낼 수 있는 자리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번 생에 임하는 자신의 현 모습을 이야기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나누면서 마음을 다독이는 모습에 괜스레 나도 울컥했다. 혜은처럼 위기 대처 능력이 취약한 나에게 선란의 테트리스 이야기는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청량함이었다. 판이 망했다 생각들 때 막대기 하나만 들어가면 클리어 되는 테트리스를 상상하면서 미소 지었으니까. 위기나 난관은 우리의 삶에 언제나 존재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이기에, 유연하게 대범하게 편하게 게임처럼 깨는 기분으로 한걸음 뒤에서 바라보는 여유를 부려야겠다.

 

알지 못했던 한 사람을 알아가는 일은 단순히 한 사람만큼의 공간이, 세상이 확장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 곳곳에서 느꼈다. 혜은을 알게 되면서 혜은의 부모님과 J를 알게 되고, 선란을 통해 선란의 가족들을 알게 된다. 또 소진을 통해 소진의 가족과 남자친구를 알게 되었다. 모든 부분을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세 여자가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말한 만큼 그들을 알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어땠을지, 미래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 세 여자의 마음이 닿아 표현한 그만큼 그들을 보고 세 여자를 더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들은 나를 모르는데 나만 넓어져가는 앎이 오지랖이 되어 세 여자를 그냥 응원하게 되니 참 묘한 인연이다.

 

 


 

 

엄마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혜은과 선란은 긴 간병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딸을 키우기에 엄마이면서도 딸인 나는 두 마음 모두 짊어지고 읽었다. 부디 그들의 상처가 아물어가기를, 그들이 언제일지 모를 마지막 순간까지 지금처럼 행복과 사랑과 위로를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믿었던 엄마가 발병 후 자신의 이름만 기억한다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했을 선란을 꼬옥 안아주고 싶었고, 자신을 두고 죽고 싶다고 할 만큼 아픈 엄마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고 울었을 혜은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이제 나도 다 컸고 나라도 좀 자유롭게

엄마가 원하는 거, 하고 싶은 거 해도 돼.

나 그런 거 안 해봐서 몰라."

 

 


<엄마의 지구는 우리가 사는 지구보다 작다>편을 읽으면서 어느새 '엄마'에 맞춰진 나의 지구를 감각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좁아져가는 지구를 내년에는 좀 더 의식적으로 넓혀봐야겠다. 제빵도 좋고 캘리그래피도 좋고 배움의 재미를 누려야지.

 


 


"아무런 이유 없이 순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

이제 더는 그 마음에 조급함을 느끼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을 '그냥' 하다가

'그냥' 그만두어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니

그냥 하고 있다는 것, 그냥 좋아한다는 것,

그냥 그만두어도 된다는 것이 참 근사하게 여겨졌다.

그 무수히 많은 '그냥'이 나를

상상도 하지 못한 장소에 데려다주곤 할 테니까."

 

 



세 여자는 돌아가며 일기를 쓰고 관련된 주제로 수다를 떨면서 일상의 모든 것을 덜어내고 나눈다. 글을 쓰면서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그들의 행보는 '엉망'이지만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짙게 묻어난다. 그들이 다른 이의 행보를 보며 위안을 얘기했던 것처럼 오늘 다른 누군가는 세 여자의 행보로 행복과 기쁨 그리고 희망을 꿈꿀 수 있을 테다.

 

정해진 틀 없이 자유롭게 그들이 짊어진 고민과 걱정뿐 아니라 성취와 감격 그리고 꿈꾸는 내일까지 방사형으로 뻗어나간다. 그들이 겪은 다채로운 경험들과 느낀 깊은 감정들이 말과 글로 바뀌어 우리에게 닿아 결국 우리의 것과 어울려 불타오르거나 소멸되거나 몽글몽글해진다. 그리고 내일을 바라보는 다정하고 따뜻한 시선 속에서 위로받고 치유받는다.

 







다른 듯 닮았고, 닮은 듯 다른 세 여자의 목소리가 궁금해지는 책 <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이다. 정리된 글, 활자 너머 생생한 현장의 숨이 녹아있는 <일기떨기>가 궁금해졌다. 유독 듣기에 메마른 나이지만 꽂히면 직진뿐이다.

 

혼자서 잘, 바르게 살기를 바라는 이에게 기대도 좋은 어깨가 있으면 기댈 수 있어야 진정 건강한 상태라는 걸, 괜찮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책, 이 한 권으로 따스한 겨울의 문을 열어보기를 추천한다.

 


한겨레 하니포터 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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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환담
윤채근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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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환담, #윤채근, #문학동네, #역사, #팩션

 

평소 기담이나 괴담을 즐기는 터라 이번에 출간된 윤채근 작가의 <고전환담>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저자는 빈 공간이 많은 역사에 과감한 상상력을 더해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를 창출하고 있다. 배경이 된 역사적 사실을 알든, 모르든 우리는 무언가의 힘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 세계 속 이야기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고전환담/ 윤채근 소설/ 문학동네



 

 

무엇을 보고 느끼게 될지 모르고 떠나는 여행, 그 설렘 가득한 길에 <고전환담>의 윤채근 저자는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고 자기만의 역사적 진실을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하였다. <고전환담>의 환상과 사실이 뒤섞인 세계에서 역사 속 인물과 공명하는, 강렬하고도 놀라운 경험을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주제를 달리하여 색과 결을 달리하는 이야기 모둠으로 구성되었다.

1.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 현장을 무대로 삼아 창조된 유사 현실이 펼쳐지는 <전쟁과 혁명>

2. 판타지 스릴러 형식을 통해 공식 역사 속에서 충분히 소화되지 못한 사건들의 빈칸을 허구로 채워 넣은 <현장의 미스터리>

3.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들에 관한 서사를 재해석하여 기존 관점을 뒤집고자 한 <시간을 초월한 사랑>

 

 


 


 


 

 

역사적 사건에 관한 짤막한 글 형식으로 제법 많은 팩션을 만날 수 있다. 그중 강렬한 느낌을 선사하는 이야기들이 몇 편 된다. 이야기의 서막을 여는 <왜장 와키자카의 고백>을 위시하여 역사적 사실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재창조하여 사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우리를 매혹시키는 작품들이다.

 

우리 국민이 좋아하는 위인을 뽑으라 하면 절대 빠지지 않는 '이순신' 장군이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이순신 장군과 와키자키 야스하루 사이의 인연을 역사적 상황에 바탕을 두고 쓰인 허구의 이야기는 강렬하다. 일본에 보관되어 있는 이순신의 육필 칠언시. 서명과 낙관까지 갖춘 이 필적에 숨겨진 진실을 찾고자 하는 호기심은 놀랍게도 그를 증오하면서도 존경한 왜장의 절절한 고백을 빌어 그려진다. 이순신 장군에게 증오와 분노, 좌절을 느끼면서도 경외를 넘어 추앙하는 왜장 와키자키의 고백으로 '이순신' 장군은 인간을 뛰어넘어 하늘이 내린 존재로 우뚝 서게 된다.

 


정여립의 기축옥사 이후 임진왜란 발발 정황을 배경으로 불온한 조선을 그려낸 <우리들의 위험한 이웃>또한 참신함을 넘은 과감한 행보였다. 기축옥사의 숨은 주역으로 알려진 미궁의 인물 '길삼봉'을 '허균'으로 설정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허균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에 머물렀던 나로서는 놀라웠다. 허균과 광해군, 궁금증이 폭발하는 역사 메이트다. 짧은 이야기 하나가 일으키는 파장은 참으로 크다. 작가가 손에 쥔 정보로 짜 맞춘 새로운 판으로 역사적 호기심이 커지고 있으니 말이다. 진정 이야기의 힘일 테다.

 


 

"도적? 누가 도적이냐? 백성들 주린 배도 못 채워주는 임금이 진짜 도적 아니냐?

이 나라를 누가 세웠더라? 생각해 보거라.

이성계는 삼봉 선생이 만들어준 왕조에 그저 걸터앉았을 뿐이다.

임금은 백성이 필요할 때 만드는 거다.

왕은 아무나 돌아가며 하면 된다."

 

 

 


<고전 환담>은 참으로 다채로운 이야기의 장이다.

정조 시대에 강진에서 벌어진 김은애 사건을 혜경궁 홍씨의 처지와 연결 지어 풀어내고(살인자를 쫓는 밤), 고려의 빼어난 문장가 이규보가 시마(초원의 음유시인)과 계약했다는 설정으로 가질 수 없는 것을 사랑해야만 시인이 될 수 있다는 형이상적인 의견을 선보이기도(시마의 계약)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조선 땅에 남겨진 일본인의 후손을 기녀로 등장시켜 시인과의 인연을 노래하고(칼의 가족), 프랑스 통역관 모리스 쿠랑을 통해 강대국 앞에 놓인 풍전등화와 같은 조선의 위기를 미스터리 형식으로 풀어낸다.(모리스 쿠랑 이야기)

경주에서 발견된 보물 제635호 페르시아 왕실 보검을 고대 페르시아 구전 서사시 [쿠쉬나메]에 담긴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사랑 이야기와 연결시켜 직조한 팩션 <불과 모래의 기억>부터 황진이의 마지막을 시작으로 황진이의 불꽃같은 인생을 담아낸 <여름 여자 가을에 떠나다>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들에 대한 서사 또한 아우르고 있다.

 


 

"이 세상은 본디 크나큰 이야기인 셈 아닌가요?

이 아우는 이야기가 덧없이 끝나버릴까 두려워 잠들지 못한답니다.

혹은 세상이 너무 재미 없어질까 불안하여 밤을 지키는 초병이 되었다라고나 할까요?"

 

 


이렇듯 <고전환담>은 이야기가 생명을 얻어 뻗어나가는 세계의 무궁무진한 힘이 담긴 소설이다. 역사와 문헌을 수집하고 연구하면서 자연스레 품은 호기심과 의아심을 글로 직조하여 또 다른 질문과 상상을 낳고 있으니 말이다.

 

 


"말을 마음에만 품고 산다면 그게 지옥인 거다.

말로 못 할라치면 글로라도 써서 뜻을 전해야 할 것 아니겠느냐?

백성들이 갇혀 있는 무명의 지옥을 우리가 깨트릴 것이다."

"입으로 하지 않은 말은 잠꼬대 같아서 한을 남길 뿐이고

글로 쓰지 않은 말은 봄기운에 녹아버릴 고드름처럼 허무한 것이란다.

아버지께서 만드신 글자로 어미의 마지막 마음을 이렇게 너에게 건넨다."

 

 


윤채근 저자는 역사적 사실을 허구의 필터로 재조명하여 무심히 넘겼던 사건의 이면과 인물의 속내를 담아냈다. 익숙한 역사적 통념을 허를 찌르는 통찰력과 찬란한 상상력으로 무너뜨린다.

 

 

 


 

 


윤채근 저자는 팩션마다 <역사와 문헌>을 제시하여 상상의 씨를 뿌린 토양을 확실히 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상상을 구분하되 재구성되어 퍼져나가는 이야기의 힘을 음미하고 공감할 것이다.

 

그에게 역사는 기록 너머 행간과 맥락 그리고 공백까지도 놓치지 않고 면밀히 살피는 대상이자 어둠의 장막을 거둬 진실의 빛으로 밝히고픈 상대지 않을까. <고전환담>과 함께 한 시간은 그가 던진 역사적 진실에 관한 뜨거운 질문에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찾아가고자 하는 매혹적인 여정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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