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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종말을 위한 안내서 ㅣ 저스트YA 14
이선 지음 / 책폴 / 2026년 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다정한 종말을 위한 안내서/ 이선 장편소설/ 책폴
<다정한 종말을 위한 안내서>
'종말'과 '다정'의 조합이 가능한 일인가. 이선 작가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참신하고도 도발적인 발상인 '종말 설계자' 이야기는 마음을 콕콕 찔렀다. 나 또한 경작 행성인여서 일까. 종말을 시키고자 하는 객체를 다정하게 대하는 마음이라. 그 마음의 진심과 거짓을 가르는 경계는 어느쯤에 있을지……. 읽는 내내 느아와 기픔의 심리를 헤아리고자 집중해 거닐었다.
콱행성인 '느아'는 졸업 시험을 잘 치러서 다정한 종말을 유도하는 종말 설계자가 되고 싶다. "다정한 종말에는 다정한 소녀가 필요하다." 예비 종말 설계자 느아와 종말 도우미 '기픔'은 그렇게 만났다.

미니 행성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종말까지 완성하고자 하는 3명의 콱행성인 느아, 군치, 오호와 그들의 도우미 기픔, 금, 킁흥 그리고 종말 설계 회사 직원 야이보보와 우주선이 등장하는 작고도 광활한 세계를 품은 소설이다. 미지의 우주 공간에서 벌어지는 '종말' 혹은 '반복'과 '순환'을 수용하는 여러 접근점들을 보여주면서 이선 작가는 '다정'을 진지하게 통찰하고자 하였다.

각기 다른 관계를 맺어가는 종말 설계자와 도우미들을 보면서 '다정'에 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되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의문은 종말의 최종 목적인 에너지 수확에까지 다다른다. 안내서에 적힌 다정 계명을 따라 열심히 졸업 시험을 치르던 느아는 기픔을 관찰하고 감정을 살피면서 자신이 믿었던 '다정'의 형태를 되돌아보게 된다. 서로 다른 가치관, 행동 기호를 지닌 존재들이 '다정'을 나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서서히 깨닫게 된다. 기픔 또한 사라진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차츰 달라지게 된다. 현 시스템 내에서는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종말 설계자와 도우미, 느아와 기픔의 다정한 성장 스토리가 마음을 뻐근하게 만들었다.

1등 오호, 야이보보, 느아 부모님이 말하는 '다정'은 감정을 나누지 않는, 않고자 하는, 일방적이고 형식적인 다정이다. 과연 이게 진짜일까?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분히 계산된 다정은 '거짓'이다.
최종 시험 과제는 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오호, 군치, 느아가 치르는 최종 시험을 통해 우리는 종말 설계의 모순을 마주한다. 느아의 다정한 선택이 불러일으킨 변화의 바람은 거대했다. 두 아이의 기도를 들어준 듯 우주신의 기적처럼 시스템의 아이러니와 폭력성을 드러나고 짜릿한 쾌감을 맛보았다.

'모든 감정을 다 이기는 감정' 다정이 보여준 놀라운 기적. 이선 작가가 그리는 반전은 '다정'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닿는다. 느아와 기픔 사이에 다정이 자리 잡기까지의 벨트와 고리들처럼 쉽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진짜 다정은 내내 유영하던 기픔을 땅을 딛고 뛰게 만들었다. '깊은 슬픔'이라 '기픔'으로 불리었던 작은 지구 난민 소녀는 이제 새로운 꿈을 품게 되었다. 한없는 기쁨과 더할 나위 없는 슬픔, '기쁜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일을 하면서 꿈을 이루기 위한 항해를 멈추지 않는다.

<다정한 종말을 위한 안내서>는 종말을 '끝'이 아닌 순환의 일부분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도 다정한 종말을 유도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지구의 종말 그 순간 '최고의 행복'을 느낀 지구인들은 다시 태어났다. 우리는 몇 번의 종말을 반복하고 있는 걸까. 정답을 알 수는 없지만, 이선 작가의 '무조건 절대 다정할 것!'을 실천한다면 마지막 순간의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으리라.

<다정한 종말을 위한 안내서>는 이야기가 가진 힘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고정관념을 흔들어 다각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게 하였다. '종말'이나 '다정'에 관한 깊이 있는 접근을 통해 사유하는 힘을 길러주었다. 또한 개개인을 넘어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을 통쾌하게 그려내었다. 우리를 꿈꾸게 하는, 행동하게 하는 이야기, <다정한 종말을 위한 안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