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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대의
지젤 알리미 지음, 이재형 옮김 / 안타레스 / 202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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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시장에서 많은 여성이 일하고 있으며, 선진국의 경우 전체 노동력의 44%를 차지한다. 그렇지만 일하는 부부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 중 한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통합은 이뤄질 수 없게 된다. 부모 중 누구겠는가? 바로 떠오르지 않는가? 어머니다. 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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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서의 활동은 '비생산적인 것'으로 규정횐다. 게다가 자본주의의 이름으로, 경제학의 이름으로, 가정에 갇힌 여성이 힘들게 일하는 세탁, 요리 다림질, 청소 등의 노동 시간은 국민 총 생산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여성의 이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은 이자벨 라르기아가 강조했듯이 "여성의 부차적인 성적 특징" 같은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이 노동은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
가사 노동은 임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환 가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1972년 11월 8일 오후 1시부터 10시까지 열린 재판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 그대로 기록한 보고서이다. 여성의 낙태와 권리, 성평등에 대해 처음 논쟁이 된 의 사건은 여성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기록이자 역사적 투쟁의 산물이다.
작가이자 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지젤 알리미는, 페미니즘의 행동을 몸소 보여준 혁명적 인물이다. (작가로써는 버지니아 울프가 떠올랐다면, 변호사로써 혁명적 운동을 해나간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지젤 알리미가 아닐까 한다.) 1927년에 태어난 그녀는 당시 여성이라면 당연히 15세(10대 초중반)가 되면 결혼해야 하는 불문율을 깼다. (여성들이 해야 하는 설거지나 빨래를 하지 않고, 결혼 또한 하지 않겠다고 하며, 자신이 태어난 튀니지를 벗어나 프랑스로 가 이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려 했다. 자신의 여동생이 25살이나 많은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지만, 지젤은 공부에 매달린다. )
고등학생도 되지 않는 어린 나이에 결혼은. 폭력이다. (1920년대는 어느 나라든 그랬다고 하지만, 그 만큼 여성들에 대한 성적 폭력과 인식이 너무 거지 같았다. 지금이라면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을 여성들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그건 그저 문화였다.)
"너는 여자야, 그러니 요리와 집안 살림하는 법을 배워야 해, 그리고 최대한 빨리 결혼해야 해. 재는 남자야 그러니 공부를 해야 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부 시킬 거야, 공부해서 나중에 큰 돈을 벌어야해. "
장남에게 모든 기대와 투자가 쏠렸던 그 시대, 지젤 알리미는 장녀로 태어났지만 머리가 좋았다. 지젤은 일찍이 이런 부분들이 문제점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그래서 부모의 도움 없이 공부를 한다. 1등을 하고, 장학금을 받으며, 튀니지가 아닌 프랑스로 가서 자신의 꿈을 펼친다. (될 성 부른 떡잎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미 중학생의 나이에 지젤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한다. 변호사가 되기로 말이다.)
변호사가 된 지젤은 아직 20대였다. 어린 여성이었던 데다 주변에 온통 남자 뿐이었던 법조계에서 행여 재판에 승소하면 마치 여성의 매력에 넘어가지 않을 판사들이 어디 있겠냐는 상대편 변호사의 비하를 들어야 했고, 패소하면 여성이 법을 알면 얼마나 알겠냐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다 한 사건을 맡게 된다. 역사적인 낙태에 대한 최초이자 유일한 정치 재판이었던 "보비니 재판"이 그 것이다. 낙태를 하는 것이 불법이었고, 피고인인 여성들이 낙태에 대해 "잘못했습니다" "범죄 사실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와 같은 말을 하지 않은 유일한 재판이었는데, 낙태 문제는 여성이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소리내어 알렸던 계기이자 시발점이 되는 혁명적 역사적인 재판인 것이다.
마리클레르 재판 또한 지젤 알리미는 승소한다. 마리 클레르는 고등학생이었다. 자동차를 훔친 전력이 상당했던 다니엘이 강간해 아이를 가져버린 마리 클레르는 낙태 수술을 해야 했지만, 돈이 없었다. 그리고 고등학생인 미성년자였다. 엄마인 미셸에게 말했고. 그녀의 지인, 미슐랭 방뷔크에게 낙태 수술을 받았다. 강간을 당해 임신을 해도 낙태수술을 할 수 없었던 그 때, 많은 돈이 들었던 낙태 수술을 할 수 없어 수술 또한 안전한 방법으로 할 수 없었다. 하혈을 하고 응급실에 갔지만, 문제는 다니엘이 유치장에서 편하게 지내려면 뭐라도 흘려줘야 한다 생각해, 마리 클레르가 낙태 수술을 받았던 사실을 털어놨다는 것이다.
그렇게 마리 클레르에게 들이닥친 경찰은 미셸과 르네 소세, 미슐랭 방뷔크를 낙태 공모혐의로 기소시킨다. 이 재판은 큰 이슈가 된다. 프랑스 혁명이래 이런 식의 시위가 벌어진 것이 처음일 정도였다. 재판은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는 이슈가 된다. (그런데 참으로 불공정한 처사다. 쓴 웃음이 난다. 성폭행으로 미성년자를 임신시킨 가해자 남성의 잘못보다 강간해 임신한 아이를 낙태하는 것 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 너무 불편하다. 이 것이 겨우 100년 전의 이야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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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너무 당연하게도...) 마리 클레르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사는 "성폭행을 당했다면 그 즉시 경찰에 신고할 일이지 왜 신고를 하지 않았느냐, 신고하지 않은 것은 떳떳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방증이라는 몰상식한 말을 했다.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면 곧장 경찰서에 갈 수 없다. 여성은 엄청난 트라우마에 사로 잡히며, 방금 당한 일을 안으로 억누르게 된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의 대부분은 신고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보복 또한 두려움 중 하나일 것이다.
침묵이 법칙이었던 그 때, 불법 낙태 혐의로 재판받는 여성들은 어떤 사회 계층에 속했을까?
대개는 전통과 억압이라는 자물쇠로 저소득층 혹은 중산층이었을 것이다. (부유층은 낙태가 불법이어도 가까운 스위스로 가면 낙태를 합법으로 행할 수 있었다.)
성관계에 대한 모든 혐의는 여성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여성의 처사 혹은 행동이 그렇게 불러 들인 것이라는 인식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낙태는 불법으로 행함으로써 여성들의 상당 수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여성이 여성 자신의 몸을 여성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문제 삼는 사건에 지젤 알리미는 <선택>이라는 협회를 만들어 투쟁하기 시작한다. 일상적인 경험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는 남성과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같이 논쟁하는 것이다.
인식을 바꾸려면 행동해야 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것을 이미 지젤 알리미는 알고 있었다. 더구나 남성들이 포진해있는 법조계에서 한 명의 여성 변호인이 만들어 진다는 것은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그 만큼의 힘이 만들어 지는 것 같다. 지젤 알리미가 행동한 자유의 목소리는 읽는 내내 책의 날개 부분을 확인하게 했다. 낙태를 처벌하는 내용의 문제점을 꾸준하게 알렸던 그녀의 혁명적 운동은 그 밖에도 프랑스군에 체포돼 온갓 고문과 성폭행을 당한 스물 두 살 여성 자밀라 부파차의 변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이 책에서는 자밀라 부파차의 내용은 다루지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그녀의 책 자밀라 부파차를 확인하면 된다.) 성폭행을 향한 문제점을 중범죄로 규정할 수 있도록 한 <액상 프로방스 재판>도 그녀의 힘이 크다.
작년 2020년 7월 그녀는 아흔 세번 째 생일이 지난 다음, 영면에 들었다고 한다. 이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 그녀가 담담하게 써내려 간 보고서이자 기록인 여성의 대의는 그녀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페미니스트 였다는 사실을 알림과 동시에 페미니즘이 휴머니즘이라는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우리 세상에는 자연적 자유가 없다. 자연은 정글의 법칙이 지배한다. 제대로 된 안전장치가 없으면 힘 있는 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훼손하게 된다. -PAGE. 17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