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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숨 섬 - 마음을 찾는 사람들
김한수 지음 / 생각정원 / 2026년 7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요즘 이상하게 이런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 같으면 자기계발서나 재테크 책처럼 당장 뭔가 얻을 수 있는 책에 더 눈이 갔을 텐데, 요즘은 마음이나 쉼, 믿음 같은 단어가 들어간 책을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종교가 깊은 사람도 아니다. 불교든 기독교든 천주교든 어떤 종교를 하나 정해서 믿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적인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힘들 때 결국 붙잡게 되는 것이 어쩌면 종교가 아닐까 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며 살아가는 지가 조금씩 궁금해진다.
그래서 [쉼 숨 섬]이라는 제목도 눈길을 끌었다. 쉼, 숨, 섬. 세 글자는 짧은 단어지만, 여운을 남기는 말이다.
이 책이 특정 종교에 갇혀 있진 않을까 싶었는데, 읽어보니 그건 아니다. 정신과 전문의, 국문학자, 비구니 스님, 만화가, 야구선수, 레퍼, 작가, 구글엔지니어 할 것 없이 27명의 사람이 삶을 회복하는 길을 자신만의 깨달음으로 이야기한다. 능행 스님 파트에 보면 "절과 교회, 성당에 다니는 지인들은 각자의 신앙대로 그를 위한 기도를 해준 것"이라는 구절이 나오고, 이강옥 교수도 "선불교든, 초기불교의 위빠사나든, 가톨릭의 피정이든 모든 수행은 우리를 보다 위대하고 행복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종교 이름보다 <믿음이라는 행위 자체>에 중점을 두어, 불안, 외로움, 상실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전현수 정신과 전문의 이야기는 (정신)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치유를 어떻게 이야기하는 지가 궁금했다. 그는 20년 넘게 명상을 정신의학에 접목해온 사람인데, 세 번이나 병원 문을 닫고 미얀마 수행 센터로 떠난다. 이런 이력부터 눈길이 간다. 보통 직장인이면 상상도 못 할 결단이다. 명상은 생각을 없애는 게 아니라 생각과 나 사이에 거리를 만드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미얀마에서 한 달 간 단기 출가를 하면서 생각을 내려놓으니 괴로움의 99퍼센트가 사라졌다는 부분은 놀라웠다.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그가 환자들에게 들려주는 조언도 인상적이었다. 친한 친구 아버지 상에 문상을 가야 할지 망설이던 환자가 있었는데, 이유가 거기서 마주치기 싫은 동창들을 만날까 봐서였다고 한다. 전 원장은 일단 가서 조문하고 잠깐 앉아있다가, 만나기 싫은 사람들이 오면 그때 자리를 뜨면 된다고 조언했다. 그런데 정작 가보니 그 동창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막연히 두려워하는 미래라는 게 실제와는 다르게 마음속에서 미리 만들어낸 경우가 많다는 걸 보여주는 일화인데, 읽으면서 나도 비슷하게 헛걱정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생각을 현재로 데려오는 방법도 기억에 남는다. 전 원장은 물이 가득 찬 컵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걸 들었다가 소리 내지 않고 다시 내려놓아보라고 한다. 그 몇 초 동안은 온 신경이 컵에만 쏠려서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는 거다. 거창한 명상법이 아니라 이렇게 사소한 동작 하나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도 책 읽다 말고 옆에 있던 머그컵으로 따라 해봤는데,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들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강옥 국문학자 파트는 좀 더 개인적인 서사에 가까웠다. 어린 시절 내내 불안증에 시달렸다는 그가 아들 육아를 하면서 그걸 육바라밀 실천으로 재해석하는 부분은 솔직히 좀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 재우고 밤에 공부했다는 이야기는 뭐 대단하긴 한데, 그걸 다 수행으로 포장하는 게 나한테는 살짝 과하다 싶었다. 그래도 수행을 이발에 비유한 부분은 좋았다. 머리는 한 번 잘랐다고 계속 그 상태로 있지 않는다, 자라면 또 다듬어야 한다는 것. 마음도 똑같다는 이야기인데 어제는 괜찮았다가 오늘 별일 아닌 것에 예민해지는 나를 보면 저 말이 맞는 것 같다.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배움은 멈춘다'며 누가 자신더러 깨달은 것 같다고 하니까 오히려 경계했다는 대목도 인상 깊었다.
능행 스님 이야기는 세 편 중에서 제일 오래 마음에 남았다. 30년 동안 4천여 명의 임종을 지켜봤다는 사람의 말은 무게가 다르다. 사고사와 자연사를 각각 다르게 명상하게 한다는 부분, 특히 자연사 명상 날 점심을 풍성하게 차려주고 저녁엔 단식하며 마지막 오찬처럼 느끼게 한다는 방식이 소름 돋았다. 그리고 임종 후에도 시신을 바로 냉동고로 옮기지 않고 체온이 식을 때까지 최대 8시간을 가족과 함께 있게 한다는 임종실 이야기. 이런 시스템을 30년 전에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싶다. 죽기 하루 전날 5천만원 지폐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주던 환자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편안한 표정으로 스님과 손 하트를 주고받던 그 장면은 나의 마지막을 생각하게 했다. 사람들이 마지막에 후회하는 건 돈을 더 못 번 게 아니라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한 거라고 한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다시 깨닫게 한다. 그리고 사람이 죽기 전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게 청각이라고 하는데, 좋은 말만 하고, 좋은 감정을 전달해야겠다.
읽으면서 자꾸 내 하루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하루에 생각을 몇 번이나 할까, 전 원장처럼 세보고 싶어졌다면 이상한 건가. 죽음을 미리 준비한다는 말이 예전엔 좀 무섭게 들렸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게 삶을 더 잘 살기 위한 준비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책을 덮고 나서도 능행 스님이 마지막에 한 말, 매 순간 이어지는 한숨 한숨이 사라져간다는 걸 알아차리라는 그 말이 자꾸 맴돈다. 믿음이라는 게 꼭 신을 믿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흔들려도 다시 중심을 찾을 수 있다는 걸 믿는 일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