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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모든 심리 - 타인을 읽는 시간 ㅣ 김성규의 문화심리학 읽기 1
김성규 지음 / 책이라는신화 / 2026년 9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트라우마, 색정망상, 외로움, 죽음,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한 권에 묶은 책이다. 영화나 실존 인물 사례로 풀어주니까 읽기 부담은 적은 편이었다. 나는 그중에서 트라우마, 외로움, 나르시스트 이 세 개만 골라서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르시스트 부분부터 펼쳤다..)
이유는 간단하다. 예전에 나르시스트 같은 상사를 모셨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넘쳐서 아랫사람 감정 따위는 아예 계산에 안 넣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 얘기를 책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책은 <굿 윌 헌팅>으로 시작한다. 윌은 MIT 수재들도 못 푼 문제를 청소부 일 하다가 풀어버리는 천재인데, 아동 학대와 가정 폭력의 피해자다. 그래서 자존감이 낮고, 그 낮은 자존감이 타인을 향한 적대감으로 나온다. 상담하러 온 의사들의 논문을 미리 다 읽고 와서 조롱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읽으면서 학대와 타인에게 향하는 감정의 발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션 교수가 윌에게 하는 말이 인상 깊었는데, 미켈란젤로에 대해 줄줄 읊을 수는 있어도 시스티나 성당의 향기는 모를 거라는 말이다. 책으로만 쌓은 지식은 감각이 빠져 있다는 얘기인데, 경험을 통한 배움이 더 중요하다는 말일 거다. 순간 질문이 하나 생겼다. 책의 부제 중 하나인 트라우마에 대한 부분인데,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 심리학 책을 찾아 읽으면 얼마나 도움이 될까?
나는 특정 장소나 냄새, 어떤 기억이 되살아나면 스트레스가 확 올라오는 쪽이다.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쓴 책이거나 혹은 그와 같은 심리서를 찾아 읽으면서 나처럼 괴로운 사람이 있구나 하는 공감과 이해 같은 감정이 심리 치료의 효과를 내지 않을까 싶었다. 일상이 힘들고 견디기 어렵다면 당연히 병원을 가야하겠지만말이다. 윌도 결국 책이 아니라 션이라는 사람 때문에 열렸으니까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윌의 친구 처키가 하는 말이 있다.
<넌 지금 당첨된 복권을 깔고 앉아서 겁먹고 까보지도 못하고 있어.>
진짜 친구는 같이 놀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응원해주는 사람이라는 아들러의 우정 얘기와 이어진다. 평생 혼자 산 사람이랑 결혼했다가 중간에 혼자가 된 사람은 외로움이 어떻게 다를까. 전자는 낮고 길게 이어지는 외로움, 후자는 상실과 애도가 겹쳐, 높고 급하게 오는 외로움에 가깝지 않을까? 어느 쪽이 더 힘든지는 주변에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다. 왜, 내 곁에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나는 살아갈 수 있다고 하지 않나?

나르시스트는 소시오패스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책에 나온 증상을 읽는데 하나하나가 낯익었다. 자기는 대단한 사람이고, 남은 이용해도 되고, 남 입장은 생각조차 안 한다. 심하면 숭배까지 요구한다는데.. 감정을 존중받지 못했던 내 기억이랑 너무 겹쳐서, 읽으면서 그 대상을 생각하게 된다. 잘되면 자기 덕, 안 되면 남 탓이라는 부분은 어의가 없어, 웃음이 날 정도였다. (실제 나르시스트 상사는 내가 만든 정리된 파일도 자신이 만든 것처럼 상부에 보고했었다.)
그런데 저자는 우리가 아는 악독한 사이코패스 이미지가 사실은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증상이라고 한다. 그럴 수가 있나? 그럼 나르시스트가 소시오패스의 한 종류일까? 둘은 겹치는 부분은 있어도 뿌리가 다르다고 한다. 나르시스트는 겉은 세 보여도 속이 약해서 남의 인정이 계속 있어야 버틴다고 한다. 체면에 목숨 거는 것도 그래서라고 한다, 소시오패스는 얘기가 좀 다르다. 규칙 같은 건 애초에 신경을 안 쓴다. 나는 이 설명에 너무 집중이 되었다.
이후에 <하우스 오브 구찌>를 통한 구찌 가문 이야기가 나온다. 이 설명이 제일 재밌었는데, 패트리치아는 자기애에 사이코패스 성향이 합쳐진 포식자, 마우리치오는 "생각 중이야"만 반복하는 의존성 성격, 파올로는 자존감 낮은 자기애로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와 같은 사람을 한 번 이상을 만날 거다. 파올로 설명을 읽는데 "왕년에 내가 말이야" 하는 사람이 떠올랐다. 이런 사람은 비판받으면 반응부터 한다는데, 정작 우리 상사는 파올로보다 오히려 자신만만한 쪽이었다. 같은 자기애인데 이렇게 다르게 나오나. 파올로는 비판받으면 쪼그라들어서 화부터 내는데, 우리 상사는 오히려 비판을 회피하고 상대방의 약점을 들춰 버린다.. 오히려 더 당당했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를 외치는 정마담 얘기도 있다. 주변에 최고만 두고 자기도 최고라고 느끼는 <거울화 기제>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우리 상사가 앞에서는 유능한 척 하면서 자신의 실수는 최소화 시키고, 후배가 실수한 것들은 모두가 듣게 자리에서 지적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나르시스트이면서 통제하려는 성향. 말이다.

책은 마지막에 장 샤를 부슈를 인용한다.
<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그들과 완전히 인연을 끊는 것이다.>
얼어붙거나, 싸우거나, 도망치는 세 가지 반응 중에 도망이 제일 낫다는 얘기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상사는 어떻게 끊나. 그럼 퇴사하라고? 이것도 책의 한계라면 한계다.
상사가 진짜 자기애성 성격장애였는지는 사실 모르겠다. 진단은 내가 하는 게 아니니까.. 뭐 어쨌든 그 사람 앞에서 내가 개구리처럼 얼어붙었던 건 맞는 것 같다. 이게 세 가지 반응 중 첫 번째라는 걸 알고 나니 좀 씁쓸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다음에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행동하게 될지 모르겠다. 다만 나르시스트와는 정말 엮이고 싶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