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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가
김진영 지음 / 반타 / 2026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이 소설은 재산 분쟁을 다루는 이야기로 출발하지만, 읽을수록 그 범주를 벗어난다. 중심에는 한 필지의 땅이 있다. 그러나 그 땅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 법적 명의와 실질적 자금, 그리고 죽은 자의 이름이 동시에 얽힌 장소다. 형진이 대출을 받아 매입한 땅은 어머니 순화 명의로 등기되었고(p.81, p.152), 이후 아버지 상조의 결정으로 형용에게 증여된다. 이 과정은 등기부 확인 장면(p.152)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갈등은 오해가 아니라, 서류와 날짜, 대출 내역 위에 세워져 있다.
하지만 이 갈등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가족 관계다. 형진과 해령의 결혼 생활은 2년에 불과했다. 형은 초혼이었지만, 해령은 재혼이었고 수인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였다(p.37~38). 즉, 상조의 입장에서 보면 해령과 수인은 피로 이어진 가족이 아니다.
형진이 세상을 떠난 이후, 그의 자금으로 매입된 땅이 며느리와 그 자녀에게까지 귀속되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가능성은 충분히 이해된다. 실제로 p.37~38에서는 “걔는 우리 핏줄도 아닌데”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 대사는 상조 세대의 인식을 드러낸다. 법적으로는 손녀가 될 수 있어도, 정서적으로는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간극이 분명히 존재한다.
따라서 상조가 땅을 형용에게 사전 증여하기로 한 선택은 단순한 편애나 음모로만 읽히지 않는다. 핏줄을 중심으로 재산을 지키려는 태도는 어느 가정에서나 충분히 나올 수 있는 판단이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누가 옳은지를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형진의 돈으로 산 땅이라는 점에서 해령의 주장은 근거가 있다.
p.37~38에서는 “걔는 우리 핏줄도 아닌데”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 대사는 특정 세대의 편협함을 드러낸다기보다, 혈연을 중심으로 재산을 바라보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법적으로는 손녀가 될 수 있지만,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재산 분배의 판단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핏줄이 아닌 사람에게 재산이 넘어가는 문제는 적지 않은 갈등을 낳는다.
상조의 선택은 그런 맥락 안에 놓여 있다. 그는 단지 감정적으로 거부한 것이 아니라, 혈연 중심의 소유 관념에 따라 판단한 것이다.
더구나 해령과 형진의 결혼 생활은 고작 2년에 불과했다. 해령의 아이는 형진의 친자가 아니라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다. 법적으로는 가족이 될 수 있지만, 혈연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형진의 아버지 상조에게 그 아이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핏줄 관계가 없는 존재다.
자신의 아들이 남긴 재산이 전혀 피가 섞이지 않은 타인에게 귀속되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리는, 특정 세대의 문제라기보다 인간의 본능적인 소유 감각에 더 가깝다. 상조의 선택은 냉혹해 보이지만, 그 판단의 바탕에는 혈연 중심 사회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재산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여기서 멈추지 않는 것은 오컬트적 징후 때문이다. p.14에서 상조가 발견한 타다 만 5만 원권 아래 붉은 글씨 “李亨鎭(이형진)”은 죽은 자의 이름이 여전히 땅에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돈과 이름이 겹쳐진 이 장면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이후의 전개를 강하게 밀어붙인다. 형진은 사망했지만, 그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윤필석이 형용의 땅에서 올린 우란분재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우란분재가 아귀의 굶주림을 풀어주고 떠나지 못한 영혼이 길을 찾도록 돕는 의식이라 설명한다. 동시에 그는 이 땅을 더 높은 가격에 매입하겠다고 제안한다(p.57). 의식과 거래가 같은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이 소설에서 땅은 단순한 경제적 자산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머물러 있는 장소로 기능한다.
결정적인 장면은 p.219의 외침이다. “오레노 이에다(オレの家だ)!” <이건 내 집이야!!> 라는 선언은 지금까지의 모든 법적, 가족적 논리를 한순간에 흔든다.
형용이든, 해령이든, 상조든 각자의 논리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 외침은 전혀 다른 차원의 주장을 던진다. 소유는 문서로 끝나는가, 아니면 다른 무엇이 남는가.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이 작품이 재산 문제를 도덕극으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조의 선택은 혈연 중심의 가치관에서 보면 자연스럽다. 해령의 분노는 남편의 자금이 들어간 재산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설득력 있다. 형용의 태도 또한 법적으로는 문제없다. 그런데 이 모든 설명이 끝난 자리에서, 죽은 자의 이름과 음성이 다시 등장한다.
김진영 작가의 [여기서 나가]는 공포 소설을 넘어, 역사적 상처와 현대인의 탐욕, 가족의 균열을 치밀하게 엮어낸 심리 호러 스릴러다. 일제강점기 일본 지주의 저택에서 시작된 저주가 현대까지 이어지며, 땅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파멸을 부르는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p.152), "저 땅 때문에 사람이 죽어나갔다"(p.81)와 같은 대사들은 초자연적 공포보다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 더 큰 저주를 불러 일으킨다는 점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주요 등장인물 >
이형용: 주인공. 대기업 퇴사 후 형이 남긴 군산 땅에 카페 '유메야'를 차린다. 형수의 정당한 권리를 알면서도 성공을 위해 외면하다가 점점 땅의 기운에 잠식된다.
해령: 죽은 형진의 아내(형수). 직접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남편이 대출받아 산 땅을 시동생이 가로챘음을 알아낸다. 자기 몫을 찾기 위해 시댁에 맞서는 집요한 인물이다.
유화: 형용의 아내. 카페에서 빵이 썩고 일본 귀신이 나타나는 현상을 보며 가장 먼저 위험을 직감한다. 남편의 욕심과 저주 사이에서 가족을 구하려 애쓴다.
이상조: 형용의 아버지. 핏줄이 아니라는 이유로 며느리 해령을 배척하며, 재산을 차남인 형용에게 몰아주려 한다.
윤필석: 죽은 형진과 공모했던 수상한 남자. 카페 건축을 돕는 척하지만, 사실은 형용을 위험한 곳으로 이끄는 설계자 같은 존재다.
이형진: 사망한 형. 공무원 신분의 불이익을 피하려 엄마 이름으로 땅을 샀다. 무당이 지키던 금기의 땅을 굳이 사들인 비극의 시작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