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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
우와노 소라 지음, 박춘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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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모든 단편은 숫자로 기한을 정한다. 어머니의 집 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를 328번으로, 나 자신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횟수도 5번으로, 살 수 있는 날 수도 7000 일로, 모든 상황을 숫자로 한정해 놓는다.
객관적이고 확실한 숫자들은 점점 줄어드는 시간에 조급한 상황을 만드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숫자들은 줄어들고, 각 단편에 해당하는 주인공들은 저마다 다른 발상으로 상황을 해쳐나간다. 어머니의 집 밥을 먹을 수 있는 숫자는 더 이상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음으로, 집 밥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 주인공은
그 상황을 벗어나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집 밥을 먹지 않기로 한다.
차라리. 어머니의 집 밥을 먹지 않으려 하기보다, 내가 집 밥을 만들어 어머니께 대접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어머니를 잃을 이유도, 내 건강을 해치면서 끼니를 거를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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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5번의 횟수는 5년 전 드라마 나인:아홉 번의 시간 여행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드라마의 내용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신비의 향 9개를 얻게 되면서 펼쳐지는 시간 여행 이야기였다.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 현재를 바꾸어 놓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같으나, 과거 혹은 미래로 1분 동안의 통화가 가능하다는 한정적인 부분이 다르다.
전화 통화는 본인에게만 전화를 걸 수 있는지, 통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게 되는 경우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자세한 법칙(?)은 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들이 여러 갈래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도 한다.
여러가지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5번의 통화, 5번의 통화가 가능하다면 나는 어디로 어떤 시기에 전화를 걸었을까.
주인공처럼 잃어버린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용도로 쓰일까. 아니면, 과거의 내 실수를 바로 잡기 위해 쓰이게 될까. 마지막 5번의 통화는 안타까운 삶에 대해 환상적인 스토리를 가미해 가슴이 따듯해 지는 듯한 효과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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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편 들은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스스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글을 읽는데 전혀 지루함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이야기의 흐름도 책의 재미를 더해준다. 방송과 여러 매체로 시간 여행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접해봤지만, 숫자의 한정적인 제약을 걸어 각 단편 하나 하나 다른 내용을 실었던 책은 처음 인 듯 싶다. 단편의 특징 상, 단편 하나가 끝이 나면, 새롭게 시작하는 단편은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읽게 되는데, 이 소설은 밤 늦은 시간에 읽었음에도 두 시간 남짓 한 시간에 완독할 수 있었다.
단편마다 다른 상황에 놓여진 주인공들의 심리, 현재의 상황을 되돌려 놓기 위해. 각자가 행동하는 방향은 기발한 발상을 한 저자의 아이디어 만큼이나 새로웠다. 일본 작가의 소설을 자주 접하지 않았고, 크게 흥미롭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단편집으로 다른 작가의 책도 눈길이 갈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 겠다 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라 추운 겨울에 따듯한 감성을 부르는 아주 잘 만들어진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