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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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퇴마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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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척과 모르는 척. 둘 중에 무엇이 날 망쳐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가려왔던 베일을 벗고 선명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 이면을 발견하고 조명하는 것. 그건 다시 한번 사는 것과 마찬가지였거 나는 언제나 더 많이 살고 싶어했으므로 그건 내게 축복이나 다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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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통 - 제5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이희주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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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의 아주 핵심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상대를 오독할 수밖에 없는 사랑의 속성과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으로 인한 광기를 다룬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 M을 사랑하는 m과 만옥은 조절할 수 없는 충동처럼 내뱉는다. “씨발, 죽어도 좋아”

이 소설에서 M은 다양한 방식으로 호명된다. 사랑에 빠진 m과 만옥은 저마다의 이유로 M을 온전하게 부를 수 없다.

1부는 만옥의 죽음을 전해들은 m이 그녀와 함께한 팬 활동을 회상한다. m은 M을 향한 만옥의 광기 어린 사랑을 진술하는 한편 M에 대한 기억을 온전하게 기록하기 위한 자신의 노력을 이야기한다. m은 M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가난한 언어를 극복하기 위해 소설을 탐독하여 적절한 구절을 인용하고 자기만의 사전을 편찬하는 등 돌파구를 찾는다. 이는 흡사 신격화된 M의 사제가 되어 성서를 받아 적어내려는 사제의 모습과 같은데 사제가 감히 신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것과 같이 m은 M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저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언어로 M을 드높인다.

2부는 서술자 만옥의 유서이다. 2부 초반 만옥은 M을 부르는 실명으로 부르는 것을 망설이는데 이는 M이 여전히 활동 중이기 때문이다. 어느 아이돌 그룹 멤버가 누군가의 유서에 등장하는 것을 반기겠는가. 그러나 만옥은 ‘그 이름을 부르지 않고는 어떤 말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에 그를 호명하고 만다. ‘옥돌 민자에 별 이름 규자를 쓰는 민규’하고. 가득 찰 만에 구슬 옥자를 쓰는 만옥의 생활은 그 이름처럼 민규로 가득하다. 그녀의 시간은 민규를 기다리는 시간과 민규를 만나는 시간뿐이다. 만옥은 민규를 사랑한다. 그러나 만옥의 사랑은 단 한번도 민규에게 가 닿을 수 없고 만옥은 민규 주변의 모든 사람과 사물을 질투하며 광기 어린 눈을 번뜩거린 채 ‘밍그아아악’ 절규할 따름이다.

3부는 만옥을 사랑한 ‘그’의 이야기이다. 2부 내내 만옥의 주위를 맴돌며 일방적인 사랑을 표현하던 ‘그’는 3부의 서술자가 되어 생전 만옥의 행적을 되짚는다. 그 과정에서 ‘그’는 민규에 대한 사랑과 그 사랑을 비웃는 자신으로 인해 만옥이 아파했음을 알게 된다. 만옥은 2부를 서술하며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데,

내가 민규와 사랑에 빠진 사실을 고백하자 그가 물었다.
몇 살인데.
열아홉.
미쳤구나.

만옥이 ‘그’를 이름으로 부른다면 이렇게 서술했어야 한다.

내가 민규와 사랑에 빠진 사실을 고백하자 ‘민규’가 물었다.
몇 살인데.
열아홉.
미쳤구나.

‘그’ 또한 옥돌 민자에 별 이름 규자를 쓴다. ‘민규’가 자신의 사랑을 비난한다고 차마 만옥은 진술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만옥은 사랑하는 민규도 자신을 사랑하는 민규도 또렷하게 부를 수 없다. 전자는 발음이 뭉개지도록 고함쳐 부르지 않으면 조금도 가 닿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고(물론 그렇게 불러도 가 닿을 수 없다는 점이 비극적이다), 후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자신의 사랑을 비난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만옥은 민규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민규가 비웃는 비참한 감옥에 갇혀 있다.

사실 만옥이 처한 비참한 상황은 누군가의 팬이었던 나 또한 맞닥뜨렸던 현실이다. 나의 정체(덕질을 시작하면 거의 모든 여가 시간을 그것에 할애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팬은 나의 정체성과 직결된다)를 알게 된 사람들은 마치 그렇게 대답하기로 프로그래밍 된 사람처럼 말한다. ‘그런다고 걔가 알아줘?’ 악의 없이 편지지의 모서리를 구겨버리는 듯한 말에 늘 그런 것에 구애 받지 않는다는 듯이 대처했지만 그 질문은 상당히 근원적인 공포심을 건드린다. 내 마음은 보답 받지 못할 것이다. 그는 나의 존재를 끝끝내 모를 것이다. 최악의 상상은 그는 나와 같은 존재를 혐오할지도 모른다로 나아간다.

나는 현실의 사람에게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사랑의 감각을 TV 속 인물에게서 느꼈고 그것은 너무나 강렬해서 종교적인 영역으로 넘어간 듯한 느낌을 불러 일으켰다. 안타깝게도 이 사랑은 정확하고 간결하게 진술할 수도 상대방과 교감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해소되지 않은 충동과 고통을 남긴다. 내 마음은 마치 지우개 같은 거라 다 쓰면 없어지는데 이 마음은 도무지 쓸 수가 없으니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냥 시간 속에 풍화되기를 잠자코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최근 정지혜의 수필집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를 읽었다. 작가는 자신의 덕질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삶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끌고 왔으며 인생을 풍부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었다고 말한다. 특히 한 아이돌에 대한 사랑이 여러 방면에서 자신의 삶을 고양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나 또한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나를 얼마나 순수하게 만드는지, 놀이에 빠져드는 아이의 마음으로 데리고 가는지 경험을 통해 알고 있고 그것이 소박한 행복임을 안다.

알지만 그러나 왜 자꾸 작가가 자신의 마음을 변명한다고 느껴지는 걸까. 아이돌 덕질은 그렇게 한심한 일이 아니라고, 나를 위로하고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생산적인 일이라고,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라고 그러니까 이 마음을 비난하지 말아 달라고 세상을 향해 인정을 구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걸까. 내 사랑은 내 삶을 고양한다고 변명해야 하는 사랑인가. 사랑은 사랑일 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이로운 것도 해로운 것도 아니고 그저 사랑일 뿐. 때로는 좋아하는 마음이 나를 구했고 때로는 그 마음이 나를 부쉈다. 세상에 정지혜의 기록이 있다면 이희주의 기록 또한 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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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신체 속의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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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하고 단순하며 사랑스러운 그리고 발랄한 작은 영혼들이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날아다니는 것에 환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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