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발견 - 기획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그곳에 아직 발견하지 못한 기회가 숨어 있다
임영균 지음 / 휴먼큐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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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기획자였던가? 그의 책 <너는 참, 같은 말을 해도>라는 책은 분명 화술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책을 읽으며 매번 다언삭궁 하자, 후회를 반복하는 나로서는 많이 반성 했던 기억이 있다. 한데 이번 책은 기획자의 시선이라니 내용이 궁금했다.


그는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쭉 기획 일을 하고 있고 현재는 갓기획의 대표다. 국내 유수의 기업과 관공서에서 기획에 관한 컨설팅 강의를 활발하게 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관련한 책도 다수 썼다.


이 책은 기획자로 그가 현장에서 일하며 삼켜야 했던 눈물의 양만큼 눈이 번쩍 뜨일만한 신박한 사례를 담고 있다. 이 책으로 사례와 같은 기획을 얻을 순 없지만 기획력은 좀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바람도 같이 담았다고 한다. 세상에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기회를 발견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다는 데 나도 그런 눈을 키워 보고 싶다.


새로운 거, 신박한 거를 찾으라는 말에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놔도 자기가 해봤는데 안 된다느니, 예산을 사용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느니 안 될 이유만 찾는 상사 때문에 빡쳐서 이제 아예 입을 닫아 버렸는데, 도로에 칠해진 방향 표시 선의 히스토리는 그때의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우주 최강의 길치 중에 한 명으로 여태 감사하게 이용하고 있는 데 초록은 왼쪽, 핑크는 오른쪽 방향 표시였다는 걸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다.


150쪽, 도로 위에 색이 칠해지면 길치도 눈을 뜬다


기획자의 눈에는 어떨지 몰라도 내 입장에서는 놀랍디 놀라운 세상에 없던 신박한 발견들에 입이 떡 벌어진다. 특히 엘리베이터에 팻버튼을 만든 사례가 그랬다. 예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똬리를 튼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거대한 진돗개를 맞닥 뜨렸다. 입마개도 하지 않았다. 개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지만 선뜻 타기 어려웠다. 당황스러워하자 노부부는 그랬다. "괜찮아요. 우리 애는 안 물어요." 아주 인지한 미소를 짓고 말이다.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진돗개는 단지 산책로에서 주민을 물었다. '물지 않는 애'가 예기치 않게 물어 버려서 노부부는 이사를 가야 했다. 이런 사고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이때, 팻버튼은 기막힌 아이디어 아닌가 싶다. 공동주택에는 다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획은 단순히 선한 의도만 가지고 완성되지 않는다. 철저하게 비즈니스 성과에 기여해야 한다."140쪽, 어린이의,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에 의한 기획


세상을 보던 방식의 시선으로는 새로운 발견이 나올 수 없다는 생각에 완전히 공감하면서 읽었다. 새로움을 발견하는 방법에 역발상 뿐만아니라 경쟁의 의미와 범주를 재해석해 보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그 안에서 새로운 문제가 보이고, 가능성이 있고, 기회가 있다고 한다. 앞서 제시한 5WHy와 더불어 복지 현장에서 접목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데이!는 우리 기관에 도입이 절실한 기획이다.


279쪽, 기획력은 책상머리가 아니라 밥상머리에서 키워진다


이 책은 단순히 뛰어난 기획자의 성공 사례를 풀어 놓은 정도로 치부하기엔 아쉽다. 사례를 참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획자의 생각을 훔쳐 볼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모든 설명과 조언이 간단 명료해서 이해도 쉽다.


일상의 문제에 시선이 닿을 때, 기획은 시작된다! 오늘부터 눈알 좀 굴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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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제법 쓸 만한 사람 - 무엇을 하든 그 이상을 하는 작가 생활의 모든 것
김민섭 지음 / 북바이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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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는 모르겠고 쓰는 건 좋아하는지라 쓸만한 것을 찾을만한 선구안이라도 배울까 싶어 덜컥 집어 들었다. 그러다 작가 소갤 읽다는데 눈에 읽은 제목이 있다. 아, <고백, 손짓, 연결>을 읽고 그의 세심한 감성에 한껏 취했던 시간을 기억해 냈다.


책을 쓰고, 만들고, 파는 1인 출판사이자 서점 <당신의 강릉>을 운영하는 작가 김민섭의 책이다. 보잘것없거나 무용해 보이는 대상에도 이야기가 함께 하면 가치 있는 일이 된다는 그의 쓸 만한 삶과 태도가 담겨있다. 그러면서 그의 전작들을 회자하며 작가로 살기까지의 우여곡절에 그간 해왔던 마음 부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덧붙여보자면 평가하는 자와 평가 받는 자, 작가와 쓰는 이의 경계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그리고 읽다 보면 그의 경험이 나의 경험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곳곳에서 등장하는데, 모뎀의 경쾌한 리듬에 들뜨던 고등학생이던 시절과, 그의 망원동이 나의 성내동으로 공간이 확장되는 통에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는 경험을 하게 한다. 그렇게 이 책은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글 쓰는 방법과 기획과 제작, 삶의 태도 변화와 글을 발견 하는 방법에 대해 소나기 퍼붓듯 격하게 쏟아 붓는다.


덧붙여 보자면, 그의 천리안 판타지 소설 게시판은 나의 나우누리 문학 게시판과 연결 됐다. 그가 판타지 소설을 꾸며 낼 때, 나는 <영혼 울림>이란 필명으로 시를 엮어 내고 있었다. 그런 내 글을 우연히 가입한 동호회의 한 누나가 사비를 털어 묶음집으로 만들어 주었었다, 팬이라면서. 그렇게 14.4bps 모뎀은 열일 하고 있었다.



여기 없으면 책이 아니라는 아버지에게 보란 듯 거기(교보문고)에 떡 하니 자리 잡은 책을 보여 드리는 기분은 어땠을까. 그것도 열여덟에. 그런 그의 첫 책이 아주 궁금하지만 열여덟의 서투르고 내밀한 이야기였겠거니 싶어 궁금함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뭐 어차피 구할 수도 없다니 이 나이에 진빼기도 그렇고.


계속 '쓰는' 일을 강조하는 그와는 달리 쓰는 것이 지속 가능하려면 계속 쓸 게 있어야 하는데 그 쓸게 어디서 불쑥 튀어 나와주는 게 아니라서 계속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1인으로 조금 답답하다. 얼마 전 문화센터 글쓰기 선생을 글쓰기 플랫폼에서 첫 구독자로 등록했다. 그가 쓰면 알림이 오는데 매일 두세 편의 알림을 받는다. 얼마나 대단한지 모른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스스로를 기반으로 한 글쓰기가 나오기 어렵다. 충분한 물음표를 던지고 답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독자를 편안하게 할 언어가 발명된다. 모든 글을 쉽게 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쉽게 쓸 수 없는 글이라면 그 대상을 공부하고, 이해하고, 더욱 사랑할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77쪽, 모든 글을 쉽게 쓸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자신에게 맞는 책은 어떻게 읽는 것인지, 어떤 걸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생각에 공감하게 됐다.


100쪽, 모든 글에는 이름표가 있다


"우리가 아는 훌륭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물음표를 만들어 내고 거기에 답하며 성장해 나가는 듯하다." 103쪽, 글쓰기의 시작은 가장 가까운 데서부터


저렇게 정곡을 찌르는 문장 뒤에, 그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때가 온다고 말한다. 한데 그게 정작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거나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했을 때라는 말이 내 종곡을 찔러서 울컥했다. 지금 내가 그래서. 나를 들여다보지 않음으로 타인에게 시선을 떠넘기는, 그래서 뭘 해도 흔들리는 일들의 반복이 있다. 그래서 진지하게 성찰하고 사유하고 물어야 하는데 내가 왜 이런 처지가 되었는지를 묻지 않고 한탄만 하고 있다. 그의 분투가 그냥 스쳐 넘기기 힘듦이 있는 이유다. 나도 모르게 그에 스몄다. 그의 삶을 존중하게 된다.


107쪽, 글쓰기의 시작은 가장 가까운 데서부터​



작가가 쓰는대서 멈추는 게 아니고 잘 팔기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저 돈이나 인지도만 '노리는' 게 아닌, 독자가 자신의 이야기에 좀 더 좋은 표정으로 그리고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하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는 충분히 진심으로 와닿는다.


한편, 노동을 통한 성찰을 글로 써내는 과정은 너무도 묵직하게 다가 온다. 나는 요즘 글 쓰는 것에 얼마간 자신감이 붙어 우쭐대고 있었다. 유명 사회복지기관에서 주최한 에세이 공모에서 대상을 받았다. 심지어 보건복지부 장관상이어서 여차하면 글 쓰는 일'만' 하고 싶다는 생각을 더 자주 했는데, 글 쓴다는 것을 감히 쉽게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일이라 깨닫게 됐다.


164쪽, 기획으로서의 글쓰기


"한 권의 책을 쓴다는 건 그 시절에만 쓸 수 있는 자신의 세계와 만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찾아내고 나면 글쓰기는 노동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을 고백하고 기록하는 일이 된다." 175쪽, 한 공간과 한 시절의 글


울컥하게 만든 그의 망원동 '안경점'은 나의 성내동에는 없었지만 도시가 고향이라는 공간으로 연결 되었다. 내 유년의 거의 모든 시간이 머물러 있는 곳이 성내동이다. 성내 국민학교와 해바라기 아파트 26동 402호, 내가 다닌 초등학교와 집이었다. 스무 살, 대학 입학과 함께 떠났지만 그 속에서 5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하고 있는 깨복쟁이 불알친구들과 더 단단한 이유가 되는 그런 공간이 여전히 숨 쉬고 있다. 1호, 2호, 3호를 외쳐주며 삼 형제 일요일 간식을 책임 지던 거북당 빵집 아저씨의 부러운 미소가 기억난다. 아저씨는 자식이 없었다.


"개인은 이해의 대상이지 변화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과, 사회는 변화의 대상이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185쪽, 글쓰기의 대상은 나-사회, 시대, 그리고 당신


그가 관계의 연결과 확장을 경험하면서 새로이 규정하게 됐다는 이야기에서 스스로 정의롭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타인을 변화시키려 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관계 단절과 혐오의 순으로 나아간다고 지적하는 대목에 내 모습이 선명해졌다.


관계를 정의와 어떻게 연결 지어야 할지는 솔직히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와 생각이 다르고, 잇속에 따라 관계를 맺는 사람을 보면(가만 생각해 보면 이것도 순전히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손절이란 쉬운 선택을 한다. 심지어 전면에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도 없고, 내가 타인의 감정까지 떠안을 필요는 없다는 심리학자들이 조언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한데 그의 나, 우리, 사회로 확장되는 관계의 힘에 흔들렸다.


주제, 소제, 단문, 글감 등 글쓰기 교안 같은 책을 기대했다면 오마이갓을 외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섣불리 덮지는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책들보다 훠월씬 더 많은 것들을, 예컨대 글을 쓰거나 지어내는 감각 같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랬다.


글을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써야 하는지에 대한, 책을 쓴다는 게 좋은 문장만을 쓰는 일이 아니라는 걸, 필요한 것은 결국 스스로 단단하게 잘 살아가는 일이라는 ​그의 철학을 나누는 책이다. 다정하고 다감한 그를 만나게 되어 얼마간은 뿌듯하다. 문득 강릉에 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책뿐만 아니라 블로그든 다른 SNS 플랫폼이든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쓰면 안 되는 일이 글쓰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마음이 얼마간 쪼그라 들었다. 그리고 작가가 이 글을 본다면 무척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책장을 아쉬운 마음으로 덮은 지금,(오해는 마시라 더 읽고 싶어 서니) 떠오르는 한 가지는 '작가들의 작가라 할만 하다'는 김혼비 작가의 글이 읽고 싶어졌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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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모자, 피노키오를 줍고 시체를 만났습니다 옛날이야기 × 본격 미스터리 트릭
아오야기 아이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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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제목에 홀리고 넷플릭스에 끌렸다. 빨간 모자와 피노키오와 시체라니. 빨간 모자는 늑대를 만나야지 왜 피노키오를 만나야 했을까? 마구마구 궁금해졌다.


이런저런 동화 속 소재와 배경을 섞어 새롭게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 ‘발상의 천재’라 불린다는 아오야기 아이토 작가의 '빨간 모자'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란다. 서양 동화를 중심으로 본격 미스터리 트릭을 결합한 전작 <빨간 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의 후속작이라고 하고. 전작은 읽지 않았지만 충분히 개봉을 앞둔 넷플릭스가 기대된다.


빨간 모자는 우연히 피노키오의 팔을 줍고 살인 사건에 휘말려 목이 날아 갈뻔 했지만 기지를 발휘해 잘 해결한 흥미로운 이야기에 푹 빠졌다. 한편으로 여러 동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소환하는 즐거움도 있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의 모험 여정 같은 느낌이랄까.


"이리하여 빨간 모자는 이 기이한 인형의 몸통과 왼팔, 두 다리를 되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게 됐습니다." 77쪽


백설 공주의 계모이자 어설픈 독사과 마녀의 이름이 힐데힐데였나? 아무튼 힐데힐데가 던지는 독박 육아에 대한 따끔한 지적과 펼치고 싶었던 정책 그리고 백설 공주의 반전은 입이 떡 벌어진다. 그나저나 이런저런 사건을 헤쳐나가는 빨간 모자의 모티브는 명탐정 코난일지도.


139쪽


피리 부는 남자의 사연과 막간 인형극 속 아기돼지 삼 형제와 마녀의 이야기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진짜 이 작가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일지 궁금해질 정도로 빨간 모자와 피노키오의 여정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더욱이 빨간 모자의 여정에 워킹맘의 실태와 경력단절, 출생률, 이주 노동자의 노동 착취 등 산재한 사회문제를 녹여내며 나름 소신 있게 꼬집는 것도 재밌다.


252쪽


주말 오후 이 황금 같은 시간에, 아내의 따가운 눈초리에 등에서 피가 날 지경이지만 "당신의 범죄 계획은 왜 그렇게 허술한가요?"라며 묻는, 시니컬할 것 같은 빨간 모자의 목소리가 귀에 계속 맴도는 듯해서 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책장을 계속 붙잡고 있게 된다.


그리고 인간이 된 피노키오는 과연 계속 행복했을까? 사는 게 재밌었을까? 오늘을 살며 작은 거짓말에 만족했을까? 그렇게 수수께끼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인간으로 사는 거 정말 쉽지 않을 텐데. 왜 빨간 모자는 알려주지 않았을까? 당해보라고?


권선징악이 국룰인 동화를 반전의 묘미가 살아있는 판타지 롤플레잉 게임 같은 이야기로 변신 시켰다. 푹 빠지는데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지만 그림이 있었으면 더 흥미로웠겠다는 생각도 잠시 스쳤다. 아무튼 재밌다. 머릿속을 비우고 싶다면 강추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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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모님 말고 사장님이 되기로 했다
소택언니(김지엽).글로공명(이지아) 지음 / 북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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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고 사모님과 사장님, 단어 뒤에 숨은 의미가 한됫박쯤 담긴 페미니즘 책인가 했다. 그러다 작가 소개를 보고 아닌가? 했고. 고집 세서 사장이 되었다는 소택언니의 화려한 이력에, 월요일마다 상 타러 조회대에 올랐다는 글로공명의 자랑질에 살짝 삐딱해진 채, 그런 둘이 힘을 합쳐 사장이 되라고 부추기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소택언니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막 부추기는 게 응원보다는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조금 더 들었다. '망해도 젊을 때 망하는 게 낫다'라는 응원을 믿고 호기롭게 회사를 차렸다. 무려 8년쯤 하던 애니메이션 제작일이었다. 조금은 성공할 줄 알았지만 1년 만에 쫄딱 망했다.


결국 신혼티도 벗지 않은 집 한 채 날리고 나는 사장 그릇이 아니라는 뼈아픈 가르침만 남았다. 분명 젊을 때 망했는데 다시 제자리로 오지 못했다. 경력에 사장 타이틀이 붙고 나니 다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후배들은 대놓고 그냥 프리랜서나 하지 왜 회사로 오려 하느냐며 거리를 두었다. 마상을 크게 입은 채 그 바닥을 떠났다. 그래서 사장 아무나 하면 안 된다. 자신이 그럴만한 그릇인지 먼저 아는 게 중요하다.


그런 우려의 심정으로, 토돌토돌 소름 돋았다는 소택언니의 말과 글을 글만 잘 쓴다는 글로공명이 다듬어 옮겼다니 조금 더 믿고 읽어보기로 했다.


읽다 보면 사장, 사장을 부르짖으며 혹독한 자기계발을 밀어붙이는 느낌이 든다. 소택언니가 말하는 사장의 의미는 폭넓기는 하지만 성공, 부자에 관심이 덜하고 미래가 불안하긴 하지만 실천적이지 못한 나는 깜냥 자체가 소택언니를 흉내 낼 수 없으니 스스로 몰아붙이는 것 자체가 힘들게 다가온다.


그리고 김대리로 퇴사했다면 김대리로 남아도 되지 않을까. 그들이 나를 김대리로 부르는 것이야 무시하면 되고, 취급이 그렇다면 손절하면 되고. 아무튼 그렇게 불리는 게 싫어서 혼자(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장이라 부르는 건 너무 애처롭다. 부디 자존감 잃지 않은 김대리로 남아 주길.


48쪽, 50은 사장되기 딱 좋은 나이다


아직은 때가 아닌가? 책은 중간을 넘어가는데 여전히 사장이 돼라,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라 응원에 매진한다. 그냥 막연하게 남의 평가와 잣대 속에서만 허우적대지 말라고 하면서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면 언니처럼 당당해지는지가 궁금한데, 그냥 언니처럼 다짐하고 마음만 그렇게 먹으면 되나 싶을 때쯤 본격적인 조언이 시작된다.


고되고 정신없이 지내온 과거의 삶을 토대로 든든하고 지혜로운 현재의 나를 발견하는 일, 그래서 자신을 좀 더 인정하고 다독이며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들에 대한 소택언니의 조언이 이어지는데, 무작정 달리던 자신을 삶을 멈추고 숙고할 수 있는 시간으로 안내한다.


"지나온 삶의 과정 속에 더욱 현명해지고 유연해진 내가 있다. 만약 내가 더 잘 살고 싶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세월과 경험을 더한 나의 잠재력이라는 무기를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겪어야 하는 어려움의 총량이라는 숙제를 일찍 끝내는 것이다."52쪽, 어려운 일은 빨리 겪고 많이 겪을수록 좋다


소택언니는 40대까지 어려운 일과 실패를 많이 경험했다면 50대부터는 성공하는 일만 남았다고 용기를 준다. 하지만 솔직히 이런 일은 안 겪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나는 40대 초 사장이 돼서 집 한 채 날리고 부모님 집에 기생하며 눈치 보던 시간이 생각나 씁쓸했다.


그리고 지금 오십 대 중반의 나이에도 평직원 월급쟁이로 자식뻘의 동료들과 일하며 눈치 보며 버텨내고 있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인지 숨은 잠재력을 찾지 못해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택언니의 응원은 뼈를 때린다. "책은 무조건 옳지만 그렇다고 내용도 옳은 것은 아니"라며, 수많은 자기계발서에 넘쳐 나는 나와는 상관없는 조언들을 잘 새기고 골라서 적용해야 한다고 한다.


74쪽, 우리는 역행자처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라


이 언니, 내 인생 여정을 들여다본 듯하다. 아니면 사람들 인생이 대개 다 비슷비슷 한가? 소택언니의 뒤통수 맞은 얘기는 형이 없는 내가 8년 넘게 친형처럼 의지하던 놈에게 크게 뒤통수 맞았었던 일은 평생 잊지 못하고 남아 있는데 이런저런 자신이 맞은 뒤통수 이야기를 해준다.


​"나를 먼저 알고, 어떤 분야의 일이 주어지든지 어떤 아이템을 판매하든지 사장님의 사업 마인드와 확고한 철학이 있다면 이때는 운영이 아니라 경영이라고 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는데 소택언니가 얼굴이 상기될 정도로 열강 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이 책은 4050 여성들의 자립과 자아실현을 돕고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러면서 여전히 새로운 꿈을 꾸고 좇는 일을 멈추지 않는 언니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부럽다. 누구나 사장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의 경험과 경력을 잘 살릴 수 있는 것을 찾고 그것을 잘 다듬어 팔아 볼 것을 조언한다. 사업자등록증만들기, 세금과 소득신고, 직장보험과 연금 및 필수 교육 등에 대한 짧지만 실질적인 조언과 언니와 관계 맺은 이후 사장이 된 사람들의 생생한 후기도 담았다.


기억에 남았던, 열심히 살고 있다는 자부심은 사실 당신의 착각일 수 있다는 지적에서, 어쩌면 열심히'만' 살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한다. 이런 자신을 깨닫는 일이 두렵지 않다면 4050대 여성이 아니더라도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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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인권 - 돌봄으로 새로 쓴 인권의 문법
김영옥.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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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을 이렇게 생동감 있게 표현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인권 활동의 현장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권을 활자에만 가두고 살아오다 얼마 전부터 인권교육을 받으며 깨닫는 단 하나는 인권은 태어남과 동시에 하늘에서 공짜로 뚝 떨어진 것이지만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제대로 누리며 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여기에 더해 돌봄이 왜 돌봄이고 왜 인권을 떼려야 뗄 수 없는지 명확히 한다. 신입생 티를 아직 다 벗지도 못했던 대학 2학년 때 갑작스러운 사고로 전신마비가 됐다. 말 그대로 무한 돌봄 의존자였기에 돌봄에 인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이 책은 시작도 전에 얼마간의 지침이 있었다.


표지가 예사롭지 않았다. 20개의 숫자는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선으로 서로 엮여 있지만, 어느 것은 선에서 벗어나 있기도 하고 어느 것은 떨어져 독립적이기도 하다. 마치 대한민국 돌봄 사각지대처럼.


이 책은 인권활동가인 두 저자가 돌봄을 인권 위에 올려놓고 철학부터 인식과 현장의 관념을 환기하고 전환한다. 나아가 돌봄을 권리로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든다. 수동적 위치에 놓여 있던 돌봄을 주체적인 권리로 인식하게 해 그동안의 관념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돌봄은 애정, 헌신, 신뢰의 관계인데 이기성이 대결하는 구도를 끌어들이기 싫다는 것이다. 권리를 끌어들이면 돌봄이라는 숭고한 행위가 강제적인 의무나 책무 같은 것으로 격하된다는 감정도 있다."16쪽, 권리를 꺼리는 돌봄?


'출근'과 '출근 밖'을 구분하며 노동의 '가치'와 아울러 다양한 돌봄에서 '권리'를 이야기하는 데 그런 돌봄의 이면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돌봄이 개인에서 '나라를 돌본다'라는 말처럼 국가로 확장될 수 있음도 놀랐다. 사실 장애인 복지 현장에서 경험하는 인권 역시 열악하다.


장애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인간답게 산다는 조건에 '노동'을 필수조건으로 내세우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고, 반면,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욕설에 얻어맞고 물리고 뜯기는 현장에서 “복지사의 인권은 누가 지키느냐"라는 외침이 끊이지 않는 상황의 대척은 비일비재 한 현실을 드러내면서 그로 인한 (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거론하며 돌봄 의존자와 제공자 사이의 권리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권리의 세계는 1인칭과 2인칭뿐 아니라 무수한 3인칭으로 구성되어 있다." 18쪽, 권리는 의무를 부과하는 정당한 힘


권리는 필요 또는 욕구와는 분명 다르고, “타자에게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힘(21쪽)”이 권리라는 자격에 대한 설명은 쉽게 이해된다. 인권이 천부적으로 갖게 되는 것이라는 의미와는 다르게 “인권이 실현될 수 있는 구조와 질서에 따른 주체, 대상(의무자), 내용이라는 점에서 인권은 운동이자 정치(26쪽)”라는 저자의 지적은 눈여겨보게 된다. 어디에서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복지에 정치가 끼어들면 안 된다는 말에 깊숙한 공감이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과연 정치가 끼어들지 않으면 복지는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에서 돌봄 제공자가 갖는 권력은 돌봄 의존자를 수혜자 혹은 지시 수행자의 위치로 전락시킨다. 특히 상시 프로그램 발달장애인 이용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우리 애들”이라거나 “우리 친구들”이라 취급하는데 이런 태도를 의식하지도 못하는 돌봄 제공자가 많다. 이렇게 보호나 수혜를 전제로 한 서비스의 영역은 돌봄 의존자의 영역으로 내모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을 바꿔 누군가 돌봄 제공자를 그런 취급을 한다면 기함하지 않겠나.


TV 드라마에서 파킨슨으로 몸과 기억의 기능을 잃어가는 현실을 인간 존엄으로 연결 짓는 설명은 가슴이 묵직해진다. 그리고 늘 답답함이 있었던 질문을 마주한다. 의식도 없고 가족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옥에게 '인간 존엄'의 선언적 내용이 무슨 의미냐고 묻는 질문은 중증 발달장애인에게 당신은 뭘 원하느냐고 묻는 현장의 딜레마와 유사한 접점이 있지 않을까. 그 역시 무엇으로도 위로도 답도 되지 않는다.




뒤이어 저자는 존엄에 대해 그렇게 '기억하는 능력', '조절하는 능력'을 잃어 가는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감각하고 움직이는 상태를 보완하고 지원하는 타인의 응답 속에서 존재한다고 한다. 즉 돌봄 제공자의 태도에 따라 돌봄 의존자의 존엄이 지켜질 수 있다는 지적은 많은 사유를 동반하게 한다.


또 저자는 돌봄에서의 인정(re-cognition)에 대해 언급하는데, 인정은 언제나 상호 인정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내가 그를 다시 알아본다는 건 그와 내가 서로 타자인 상태에서 만났고 자기에게 다가온 타자의 헐벗은 취약한 얼굴이 송신하는 책임의 메시지를 수신했음을 기억하는 행위다."라고 한다. 다시 말해 "'너를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권력이 내게 있다'가 아니다.(69쪽)"라는 의미를 담는다고 한다. 이 말이 굉장히 따뜻하게 다가왔다.


이처럼 돌봄에서의 호혜성이 포장된 인정은 상호(inter)의 구조를 지닌다고 저자는 못 박는다. 한데 읽으면서 드는 의심은 과연 이런 상호 의존이 주는 인정의 범위가 왜 대부분 가족에 한정되는 가다. 치매(인지기억장애)나 정신을 포함한 신체장애 같은 일시적이 아니라 평생 안고 가야 할 돌봄의 부분에서 드러나는 취약성을 '나'와 '너'가 아니라 '가족'이 짊어지는 현실에서 타자가 포함된 ‘우리’라는 주장은 공염불이 아닐까 싶다. 돌봄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은 과연 상호 의존성을 갖는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슴이 뜨끔거리기 바빴다. 여태 인권적인 삶을 살아본 적이 없던 탓에 부끄럽기도 하고 이제라도 어떻게든 노력할 부분을 찾아보려 사유하게 만든다. 특히 강도영의 사례에서 자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살아 있는’ 의미의 유무를 판단하는 부분에 저자가 던지는, ‘그런’ 상태라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순간 대답을 망설였다. 그리고 멍해졌다.


나 역시 자력으로 숨을 쉴 수 없어 에크모에 의지해 3개월 넘게 숨을 쉬어야 했었다. 만약 그때 엄마가 나를 두고 ‘살아 있는’ 것에 의미를 따졌다면 나는 살아 있을 수 있었을까. 엄마는 아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 됐고 여기서 오는 돌봄의 경제적, 정신적, 체력적 문제를 몰라서 포기하지 않았을까. 돌봄이 인권의 영역에서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를 나는 경험했음에도 잊고 있었다. 저자 덕분에 살아 있는 것의 의미가 완전히 새로워졌다.


또 민폐를 돌봄의 입장해서 생각해 보는 대목 역시 가슴이 먹먹해진다. “폐 끼치지 않으려면 타자와 관계 맺고 어울리는 삶에서 물러 나야만 하는 삶"이라는 지적은 이제는 공공장소에서도 타인에 대한 불편한 말을 서슴없이, 그것도 다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하는, 치매가 한창 진행 중인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발달장애인은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그래서 보통의 돌봄 제공자는 부끄럽거나 혹은 지쳐서 자신은 돌봄 의존자가 된다는 것에서 의식적으로 예외로 두려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나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같은 다짐은 의식적으로 조절이 불가능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누구나 노년의 시기를 겪는다. 의존은 그리고 돌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서 민폐가 아니다.


197쪽, 시민권과 인권으로서 돌봄권


책을 읽으면 알겠지만 온통 밑줄을 그어야 할 만큼 한자 한자 토씨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다. 돌봄이 개인을 넘어 사회 시민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담론은 무조건 옳다. 돌봄이 삶의 어느 한 부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생애 전반에 거쳐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있다. 그 이야기에 연대해야 한다는 마음이 꿈틀댄다. 꼭 읽어 보시라.


솔직히 머리 아픈 어려운 개념들로 가득 차서 더디게 읽혔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돌봄과 인권을 고민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책이다. 가능하다면 아예 통째로 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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