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쓰는대서 멈추는 게 아니고 잘 팔기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저 돈이나 인지도만 '노리는' 게 아닌, 독자가 자신의 이야기에 좀 더 좋은 표정으로 그리고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하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는 충분히 진심으로 와닿는다.
한편, 노동을 통한 성찰을 글로 써내는 과정은 너무도 묵직하게 다가 온다. 나는 요즘 글 쓰는 것에 얼마간 자신감이 붙어 우쭐대고 있었다. 유명 사회복지기관에서 주최한 에세이 공모에서 대상을 받았다. 심지어 보건복지부 장관상이어서 여차하면 글 쓰는 일'만' 하고 싶다는 생각을 더 자주 했는데, 글 쓴다는 것을 감히 쉽게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일이라 깨닫게 됐다.
164쪽, 기획으로서의 글쓰기
"한 권의 책을 쓴다는 건 그 시절에만 쓸 수 있는 자신의 세계와 만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찾아내고 나면 글쓰기는 노동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을 고백하고 기록하는 일이 된다." 175쪽, 한 공간과 한 시절의 글
울컥하게 만든 그의 망원동 '안경점'은 나의 성내동에는 없었지만 도시가 고향이라는 공간으로 연결 되었다. 내 유년의 거의 모든 시간이 머물러 있는 곳이 성내동이다. 성내 국민학교와 해바라기 아파트 26동 402호, 내가 다닌 초등학교와 집이었다. 스무 살, 대학 입학과 함께 떠났지만 그 속에서 5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하고 있는 깨복쟁이 불알친구들과 더 단단한 이유가 되는 그런 공간이 여전히 숨 쉬고 있다. 1호, 2호, 3호를 외쳐주며 삼 형제 일요일 간식을 책임 지던 거북당 빵집 아저씨의 부러운 미소가 기억난다. 아저씨는 자식이 없었다.
"개인은 이해의 대상이지 변화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과, 사회는 변화의 대상이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185쪽, 글쓰기의 대상은 나-사회, 시대, 그리고 당신
그가 관계의 연결과 확장을 경험하면서 새로이 규정하게 됐다는 이야기에서 스스로 정의롭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타인을 변화시키려 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관계 단절과 혐오의 순으로 나아간다고 지적하는 대목에 내 모습이 선명해졌다.
관계를 정의와 어떻게 연결 지어야 할지는 솔직히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와 생각이 다르고, 잇속에 따라 관계를 맺는 사람을 보면(가만 생각해 보면 이것도 순전히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손절이란 쉬운 선택을 한다. 심지어 전면에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도 없고, 내가 타인의 감정까지 떠안을 필요는 없다는 심리학자들이 조언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한데 그의 나, 우리, 사회로 확장되는 관계의 힘에 흔들렸다.
주제, 소제, 단문, 글감 등 글쓰기 교안 같은 책을 기대했다면 오마이갓을 외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섣불리 덮지는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책들보다 훠월씬 더 많은 것들을, 예컨대 글을 쓰거나 지어내는 감각 같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랬다.
글을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써야 하는지에 대한, 책을 쓴다는 게 좋은 문장만을 쓰는 일이 아니라는 걸, 필요한 것은 결국 스스로 단단하게 잘 살아가는 일이라는 그의 철학을 나누는 책이다. 다정하고 다감한 그를 만나게 되어 얼마간은 뿌듯하다. 문득 강릉에 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책뿐만 아니라 블로그든 다른 SNS 플랫폼이든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쓰면 안 되는 일이 글쓰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마음이 얼마간 쪼그라 들었다. 그리고 작가가 이 글을 본다면 무척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책장을 아쉬운 마음으로 덮은 지금,(오해는 마시라 더 읽고 싶어 서니) 떠오르는 한 가지는 '작가들의 작가라 할만 하다'는 김혼비 작가의 글이 읽고 싶어졌다는 거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