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제법 쓸 만한 사람 - 무엇을 하든 그 이상을 하는 작가 생활의 모든 것
김민섭 지음 / 북바이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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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는 모르겠고 쓰는 건 좋아하는지라 쓸만한 것을 찾을만한 선구안이라도 배울까 싶어 덜컥 집어 들었다. 그러다 작가 소갤 읽다는데 눈에 읽은 제목이 있다. 아, <고백, 손짓, 연결>을 읽고 그의 세심한 감성에 한껏 취했던 시간을 기억해 냈다.


책을 쓰고, 만들고, 파는 1인 출판사이자 서점 <당신의 강릉>을 운영하는 작가 김민섭의 책이다. 보잘것없거나 무용해 보이는 대상에도 이야기가 함께 하면 가치 있는 일이 된다는 그의 쓸 만한 삶과 태도가 담겨있다. 그러면서 그의 전작들을 회자하며 작가로 살기까지의 우여곡절에 그간 해왔던 마음 부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덧붙여보자면 평가하는 자와 평가 받는 자, 작가와 쓰는 이의 경계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그리고 읽다 보면 그의 경험이 나의 경험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곳곳에서 등장하는데, 모뎀의 경쾌한 리듬에 들뜨던 고등학생이던 시절과, 그의 망원동이 나의 성내동으로 공간이 확장되는 통에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는 경험을 하게 한다. 그렇게 이 책은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글 쓰는 방법과 기획과 제작, 삶의 태도 변화와 글을 발견 하는 방법에 대해 소나기 퍼붓듯 격하게 쏟아 붓는다.


덧붙여 보자면, 그의 천리안 판타지 소설 게시판은 나의 나우누리 문학 게시판과 연결 됐다. 그가 판타지 소설을 꾸며 낼 때, 나는 <영혼 울림>이란 필명으로 시를 엮어 내고 있었다. 그런 내 글을 우연히 가입한 동호회의 한 누나가 사비를 털어 묶음집으로 만들어 주었었다, 팬이라면서. 그렇게 14.4bps 모뎀은 열일 하고 있었다.



여기 없으면 책이 아니라는 아버지에게 보란 듯 거기(교보문고)에 떡 하니 자리 잡은 책을 보여 드리는 기분은 어땠을까. 그것도 열여덟에. 그런 그의 첫 책이 아주 궁금하지만 열여덟의 서투르고 내밀한 이야기였겠거니 싶어 궁금함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뭐 어차피 구할 수도 없다니 이 나이에 진빼기도 그렇고.


계속 '쓰는' 일을 강조하는 그와는 달리 쓰는 것이 지속 가능하려면 계속 쓸 게 있어야 하는데 그 쓸게 어디서 불쑥 튀어 나와주는 게 아니라서 계속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1인으로 조금 답답하다. 얼마 전 문화센터 글쓰기 선생을 글쓰기 플랫폼에서 첫 구독자로 등록했다. 그가 쓰면 알림이 오는데 매일 두세 편의 알림을 받는다. 얼마나 대단한지 모른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스스로를 기반으로 한 글쓰기가 나오기 어렵다. 충분한 물음표를 던지고 답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독자를 편안하게 할 언어가 발명된다. 모든 글을 쉽게 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쉽게 쓸 수 없는 글이라면 그 대상을 공부하고, 이해하고, 더욱 사랑할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77쪽, 모든 글을 쉽게 쓸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자신에게 맞는 책은 어떻게 읽는 것인지, 어떤 걸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생각에 공감하게 됐다.


100쪽, 모든 글에는 이름표가 있다


"우리가 아는 훌륭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물음표를 만들어 내고 거기에 답하며 성장해 나가는 듯하다." 103쪽, 글쓰기의 시작은 가장 가까운 데서부터


저렇게 정곡을 찌르는 문장 뒤에, 그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때가 온다고 말한다. 한데 그게 정작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거나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했을 때라는 말이 내 종곡을 찔러서 울컥했다. 지금 내가 그래서. 나를 들여다보지 않음으로 타인에게 시선을 떠넘기는, 그래서 뭘 해도 흔들리는 일들의 반복이 있다. 그래서 진지하게 성찰하고 사유하고 물어야 하는데 내가 왜 이런 처지가 되었는지를 묻지 않고 한탄만 하고 있다. 그의 분투가 그냥 스쳐 넘기기 힘듦이 있는 이유다. 나도 모르게 그에 스몄다. 그의 삶을 존중하게 된다.


107쪽, 글쓰기의 시작은 가장 가까운 데서부터​



작가가 쓰는대서 멈추는 게 아니고 잘 팔기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저 돈이나 인지도만 '노리는' 게 아닌, 독자가 자신의 이야기에 좀 더 좋은 표정으로 그리고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하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는 충분히 진심으로 와닿는다.


한편, 노동을 통한 성찰을 글로 써내는 과정은 너무도 묵직하게 다가 온다. 나는 요즘 글 쓰는 것에 얼마간 자신감이 붙어 우쭐대고 있었다. 유명 사회복지기관에서 주최한 에세이 공모에서 대상을 받았다. 심지어 보건복지부 장관상이어서 여차하면 글 쓰는 일'만' 하고 싶다는 생각을 더 자주 했는데, 글 쓴다는 것을 감히 쉽게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일이라 깨닫게 됐다.


164쪽, 기획으로서의 글쓰기


"한 권의 책을 쓴다는 건 그 시절에만 쓸 수 있는 자신의 세계와 만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찾아내고 나면 글쓰기는 노동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을 고백하고 기록하는 일이 된다." 175쪽, 한 공간과 한 시절의 글


울컥하게 만든 그의 망원동 '안경점'은 나의 성내동에는 없었지만 도시가 고향이라는 공간으로 연결 되었다. 내 유년의 거의 모든 시간이 머물러 있는 곳이 성내동이다. 성내 국민학교와 해바라기 아파트 26동 402호, 내가 다닌 초등학교와 집이었다. 스무 살, 대학 입학과 함께 떠났지만 그 속에서 5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하고 있는 깨복쟁이 불알친구들과 더 단단한 이유가 되는 그런 공간이 여전히 숨 쉬고 있다. 1호, 2호, 3호를 외쳐주며 삼 형제 일요일 간식을 책임 지던 거북당 빵집 아저씨의 부러운 미소가 기억난다. 아저씨는 자식이 없었다.


"개인은 이해의 대상이지 변화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과, 사회는 변화의 대상이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185쪽, 글쓰기의 대상은 나-사회, 시대, 그리고 당신


그가 관계의 연결과 확장을 경험하면서 새로이 규정하게 됐다는 이야기에서 스스로 정의롭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타인을 변화시키려 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관계 단절과 혐오의 순으로 나아간다고 지적하는 대목에 내 모습이 선명해졌다.


관계를 정의와 어떻게 연결 지어야 할지는 솔직히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와 생각이 다르고, 잇속에 따라 관계를 맺는 사람을 보면(가만 생각해 보면 이것도 순전히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손절이란 쉬운 선택을 한다. 심지어 전면에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도 없고, 내가 타인의 감정까지 떠안을 필요는 없다는 심리학자들이 조언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한데 그의 나, 우리, 사회로 확장되는 관계의 힘에 흔들렸다.


주제, 소제, 단문, 글감 등 글쓰기 교안 같은 책을 기대했다면 오마이갓을 외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섣불리 덮지는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책들보다 훠월씬 더 많은 것들을, 예컨대 글을 쓰거나 지어내는 감각 같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랬다.


글을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써야 하는지에 대한, 책을 쓴다는 게 좋은 문장만을 쓰는 일이 아니라는 걸, 필요한 것은 결국 스스로 단단하게 잘 살아가는 일이라는 ​그의 철학을 나누는 책이다. 다정하고 다감한 그를 만나게 되어 얼마간은 뿌듯하다. 문득 강릉에 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책뿐만 아니라 블로그든 다른 SNS 플랫폼이든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쓰면 안 되는 일이 글쓰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마음이 얼마간 쪼그라 들었다. 그리고 작가가 이 글을 본다면 무척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책장을 아쉬운 마음으로 덮은 지금,(오해는 마시라 더 읽고 싶어 서니) 떠오르는 한 가지는 '작가들의 작가라 할만 하다'는 김혼비 작가의 글이 읽고 싶어졌다는 거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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