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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모님 말고 사장님이 되기로 했다
소택언니(김지엽).글로공명(이지아) 지음 / 북심 / 2023년 8월
평점 :
처음, 제목을 보고 사모님과 사장님, 단어 뒤에 숨은 의미가 한됫박쯤 담긴 페미니즘 책인가 했다. 그러다 작가 소개를 보고 아닌가? 했고. 고집 세서 사장이 되었다는 소택언니의 화려한 이력에, 월요일마다 상 타러 조회대에 올랐다는 글로공명의 자랑질에 살짝 삐딱해진 채, 그런 둘이 힘을 합쳐 사장이 되라고 부추기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소택언니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막 부추기는 게 응원보다는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조금 더 들었다. '망해도 젊을 때 망하는 게 낫다'라는 응원을 믿고 호기롭게 회사를 차렸다. 무려 8년쯤 하던 애니메이션 제작일이었다. 조금은 성공할 줄 알았지만 1년 만에 쫄딱 망했다.
결국 신혼티도 벗지 않은 집 한 채 날리고 나는 사장 그릇이 아니라는 뼈아픈 가르침만 남았다. 분명 젊을 때 망했는데 다시 제자리로 오지 못했다. 경력에 사장 타이틀이 붙고 나니 다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후배들은 대놓고 그냥 프리랜서나 하지 왜 회사로 오려 하느냐며 거리를 두었다. 마상을 크게 입은 채 그 바닥을 떠났다. 그래서 사장 아무나 하면 안 된다. 자신이 그럴만한 그릇인지 먼저 아는 게 중요하다.
그런 우려의 심정으로, 토돌토돌 소름 돋았다는 소택언니의 말과 글을 글만 잘 쓴다는 글로공명이 다듬어 옮겼다니 조금 더 믿고 읽어보기로 했다.
읽다 보면 사장, 사장을 부르짖으며 혹독한 자기계발을 밀어붙이는 느낌이 든다. 소택언니가 말하는 사장의 의미는 폭넓기는 하지만 성공, 부자에 관심이 덜하고 미래가 불안하긴 하지만 실천적이지 못한 나는 깜냥 자체가 소택언니를 흉내 낼 수 없으니 스스로 몰아붙이는 것 자체가 힘들게 다가온다.
그리고 김대리로 퇴사했다면 김대리로 남아도 되지 않을까. 그들이 나를 김대리로 부르는 것이야 무시하면 되고, 취급이 그렇다면 손절하면 되고. 아무튼 그렇게 불리는 게 싫어서 혼자(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장이라 부르는 건 너무 애처롭다. 부디 자존감 잃지 않은 김대리로 남아 주길.
48쪽, 50은 사장되기 딱 좋은 나이다
아직은 때가 아닌가? 책은 중간을 넘어가는데 여전히 사장이 돼라,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라 응원에 매진한다. 그냥 막연하게 남의 평가와 잣대 속에서만 허우적대지 말라고 하면서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면 언니처럼 당당해지는지가 궁금한데, 그냥 언니처럼 다짐하고 마음만 그렇게 먹으면 되나 싶을 때쯤 본격적인 조언이 시작된다.
고되고 정신없이 지내온 과거의 삶을 토대로 든든하고 지혜로운 현재의 나를 발견하는 일, 그래서 자신을 좀 더 인정하고 다독이며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들에 대한 소택언니의 조언이 이어지는데, 무작정 달리던 자신을 삶을 멈추고 숙고할 수 있는 시간으로 안내한다.
"지나온 삶의 과정 속에 더욱 현명해지고 유연해진 내가 있다. 만약 내가 더 잘 살고 싶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세월과 경험을 더한 나의 잠재력이라는 무기를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겪어야 하는 어려움의 총량이라는 숙제를 일찍 끝내는 것이다."52쪽, 어려운 일은 빨리 겪고 많이 겪을수록 좋다
소택언니는 40대까지 어려운 일과 실패를 많이 경험했다면 50대부터는 성공하는 일만 남았다고 용기를 준다. 하지만 솔직히 이런 일은 안 겪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나는 40대 초 사장이 돼서 집 한 채 날리고 부모님 집에 기생하며 눈치 보던 시간이 생각나 씁쓸했다.
그리고 지금 오십 대 중반의 나이에도 평직원 월급쟁이로 자식뻘의 동료들과 일하며 눈치 보며 버텨내고 있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인지 숨은 잠재력을 찾지 못해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택언니의 응원은 뼈를 때린다. "책은 무조건 옳지만 그렇다고 내용도 옳은 것은 아니"라며, 수많은 자기계발서에 넘쳐 나는 나와는 상관없는 조언들을 잘 새기고 골라서 적용해야 한다고 한다.
74쪽, 우리는 역행자처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라
이 언니, 내 인생 여정을 들여다본 듯하다. 아니면 사람들 인생이 대개 다 비슷비슷 한가? 소택언니의 뒤통수 맞은 얘기는 형이 없는 내가 8년 넘게 친형처럼 의지하던 놈에게 크게 뒤통수 맞았었던 일은 평생 잊지 못하고 남아 있는데 이런저런 자신이 맞은 뒤통수 이야기를 해준다.
"나를 먼저 알고, 어떤 분야의 일이 주어지든지 어떤 아이템을 판매하든지 사장님의 사업 마인드와 확고한 철학이 있다면 이때는 운영이 아니라 경영이라고 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는데 소택언니가 얼굴이 상기될 정도로 열강 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이 책은 4050 여성들의 자립과 자아실현을 돕고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러면서 여전히 새로운 꿈을 꾸고 좇는 일을 멈추지 않는 언니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부럽다. 누구나 사장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의 경험과 경력을 잘 살릴 수 있는 것을 찾고 그것을 잘 다듬어 팔아 볼 것을 조언한다. 사업자등록증만들기, 세금과 소득신고, 직장보험과 연금 및 필수 교육 등에 대한 짧지만 실질적인 조언과 언니와 관계 맺은 이후 사장이 된 사람들의 생생한 후기도 담았다.
기억에 남았던, 열심히 살고 있다는 자부심은 사실 당신의 착각일 수 있다는 지적에서, 어쩌면 열심히'만' 살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한다. 이런 자신을 깨닫는 일이 두렵지 않다면 4050대 여성이 아니더라도 읽어보길 추천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