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는 온기가 필요해 - 정신건강 간호사의 좌충우돌 유방암 극복기
박민선 지음 / 미다스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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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프로필을 보다가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삶이 느닷없이 바뀌어 버린 사람. 그래서 왁자지껄 수다스럽던 이가 동굴 같은 방으로 들어앉게 된 처지가. 나와 같았다.


작가처럼 유방암은 아니었지만 유도 선수가 목이 부러져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 그런 생채기처럼 장애로 뚜렷하게 남았다. 아픈 날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나와 똑같았다.


이 책은 정신건강 간호사인 박민선이 유방암 환자로 고통을 건너는 과정의 기록이다.


뻔하지만 난 이 병을 이렇게 버티고 이겨냈어,라는 에세이일 줄 알았다. 근데 아니다. 자기계발서다. 그는 맨땅에 헤딩하던 초짜 간호사 시절부터 화려(?) 했던 연애사와 시월드를 거치며 삶이 어떤 식으로든 가치를 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음 자세는 어때야 하는지를 솔직 담백하게 적는다.


맞다. 잊고 있었지만 나 역시 퇴사 후에 내가 일이 얼마나 고팠는지 깨달았었다. 그저 관계에 지쳐 있다고 핑계를 대며 도망칠 생각만 하다가 정작 내게 일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떠나고 나니 나 혼자 스스로를 볶고 있었다. 지친 건 일이 아니라 마음이었는데 얼마든지 다독일 수 있었던 상태라는 걸 알았다. 턱밑까지 몰아쳐 숨을 쉴 수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가까이에선 결코 볼 수 없던 것들이 떠나고 나서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가 적잖이 공감됐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삶에 끌려가는 건 아닐까,라는.


"'오늘'은 선물이었다.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단지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늘'이 소중해졌다." 67쪽


유방암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온 그가 아침에 눈을 떠, '오늘'이 선물이었음을 깨닫는 시간이 내겐 왜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환자실과 병동을 오가며 손가락 하나 딸싹하지 못한 채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채로 숨만 쉬다가 어느 날 영화처럼 손가락이 들썩였을 때 모두들 기적이라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런 기적을 보여 주려면 치아가 부서질 만큼 힘을 짜내야 고작 꿈틀하는 하는 일이 선물처럼 여겨지지 않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는 죽음이 매 순간 '끊고 싶은' 영역의 것이었고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처지는 그마저도 좌절감으로 태풍처럼 몰아쳤다.


그렇게 35년을 견뎌낸 지금도 불편하게 삐꺽거리는 몸뚱이는 여전하지만 '몸에 난 상처보다 마음에 상처를 더 크게 만드는 법'이란 것쯤은 알게 됐으므로 처음부터 내겐 선물이 아니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96쪽


아무튼 힘든 치료를 버텨오며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과정이 제목처럼 훈훈한 온기가 훅하고 끼쳤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어떻게든 이겨내고 살아야 할 이유가 되는 과정이 담백해서 나 역시 담백하게 따라가게 된다.


이 책은 간호사가 아닌 유방암 환자로 지내야 했던 5년간 고통이 일상적이었던 찐한 투병과 그 속에서 깨달은 일상의 소중함을 솔직·담백하게 일기처럼 기록하는데 지나간 상처에 매몰되거나 미화돼서 극복의 서사로 끌고 나가지 않으면서 제목처럼 아픔에는 누구라도 적당한 온기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가 위로를 하는 게 아닌 받는다.


딱히 크고 길게 아파보지 않은 이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아프고 난 후 사람이 달라졌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라는 이야기에 "다치고 나서 사람 됐다"라고 뼈 때리던 친구의 말이 생각나서 한참을 그 문장에서 멈춰있었다.


다들 웃는데 나는 웃을 수 없었던 그 소리는 한참을 괴롭혔었다. 그로부터 이미 30년이 넘은 이야기여서 당시 느낌은 옅어졌지만 아마 짧았던 21년이 부정 당한 느낌이었으려나.


175쪽


이 순간에도 투병 중에 있거나 그 과정을 건넜거나 혹은 잘 모른다 해도 삶에서 느닷없이 아픔을 맞닥뜨리는 일이 견뎌낼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위안과 공감을 준다.


보통의 일상이 특별해지는 마법 같은 책이다. 무엇보다 따뜻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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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의 사회문화적 구성 - 건강한 사람들의 세계에서 병(病)을 가지고 살아가는 교수 이야기
조주희 지음 / 지식과감성#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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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주희는 서울대학교와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현재 총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고려대학교에서 연구원 및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다문화아동청소년학회, 마음경영학회,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의회에서 이사로 비판적 사회학적 관점으로 교육 정책과 실제의 다이내믹, 장애, 공정한 교육을 연구 중이다. <통합교육 시대 교과서를 위한 장애의 왜곡된 이미지 탐구>,<장애의 사회문화적 구성>을 썼다.


얼마 전 읽었던 애슐리 슈의 <불완전한 그대로 온전하게>에서 기술의 발전이 장애를 치료와 고치는 데에 집중한다고 비판한 내용과 궤를 같이하는데, 이 책 역시 장애를 치료와 고침의 대상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개인의 의료적 관점'에서 '사회문화적 관점'으로 전환하는 훌륭한 지침서다.


이 책은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연구(NRF-2017S1A5A8021418) 보고서를 기초로 장애를 단순한 ‘개인의 결함’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당사자 개인의 일상적인 영역이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서 어떻게 ‘장애’라는 범주로 인식되는가를 다각도로 탐구한다. 나아가 저자는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적 시선을 통해 장애인이 어떻게 배제되고 타자화되는지 드러낸다.


장애는 결함이나 결핍으로부터 부모를 포함한 사회 시선은 보호 혹은 배려다. 이런 불편한 사실은 보호만 받았던 장애 당사자 김희주의 삶을 통해 장애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밝힌다. 예를 들면 책에서만 보던 성취감을 부모에게 반항하는 데서 느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장애는 극복도 아니지만 무조건적인 보호도 아니다.


43쪽


내용 중에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는데, 나 역시 어릴 때 많이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한, 사자의 이야기였다. 사자는 새끼를 낳으면 절벽 아래로 떨어트려 무사히(?) 기어 올라온 새끼 사자를 거둔다는 이야기는 절대적인 비장애의 세상에서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세계를 인식하게 하는데 이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불완전하거나 버려지는 존재로 각인하는 장치로 작동하기도 한다는 지적이었다.


104쪽


"장애인이 갖게 되는 사회적 낙인과 고정관념은 삶의 많은 영역에서 그들을 배제 시킨다. 이러한 이유로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삶을 공유하지 못하게 되고, 장애를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138쪽

138쪽


당사자의 삶의 경험을 통해 사회적으로 장애는 어떻게 작동되는가에 대한 연구와 개인 경험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 다양한 사례를 풍부하게 담고 있어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낸다. 다만 학문적 입장을 벗어나지 못해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어 아쉽기도 하다.


그럼에도 장애와 관련 기관이나 종사자에게 이론적·실증적 자료로 활용이 가능하고, 활동가의 폭넓은 시야를, 일반 독자라면 장애를 삶의 경험이 아닌 장애의 경험으로 이해되는 관점을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겠다.


이 책은 보다 공정한 사회를 위한 담론으로 장애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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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안녕
유월 지음 / 서사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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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줄로 정리된 작가 소개가 인상적이다 했는데 여기저기 그런, 오뉴월 걸린 감기에 시도 때도 없이 새는 기침처럼 감탄한 문장이 터져 나왔다.


"인간의 몸 밖으로 나오는 것들은 하나같이 왜 이렇게 요란할까." 11쪽


정말 그랬다. 며칠 전, 호스피스 병원에서 마지막 힘을 짜내고 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앙금이 생각했다. 문득 생각해 보면 별일 아니었을 지도 모를 일들을 마치 피해자인 양 아버지에게 분노와 서운함 같은 것들을 쏟아 내고 말았던 일들이 스쳤다. 말은 확실히 감정에 따라 예리하게 벼른 칼이 된다.


타인에게 관심이 적은 탓이기도 하겠지만 '가사조사관'이란 직업은 드라마 <굿파트너>를 보고 알았더랬다. 이혼전문 변호사인 차은경이 정작 이혼 당사자가 된 후 맞닥뜨린 남편과 아이를 둘러싼 관계의 변화가 많이 공감됐던. 어른들의 일로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애쓰는 그들의 모습이 새삼 떠올랐다.


당황스러웠다. 드라마 속 아이를 둘러싼 그 세심한 공감을 보여주는 그들의 일과 다르게 소설 속 도연의 고단한 일상이 당최 매칭되지 않아서.


조사실에서 고함을 치는 조폭 남자 이야기를 보면서, 그 휘몰이치는 폭언 속에 있는 도연의 무기력함을 느끼면서 복지관에서 상대의 말을 잘라먹으면서 자신의 화만 쏟아내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을 빌런 혹은 진상이라며 피하기 급급했던 시간들이 공감되면서. 마치 내 영혼을 깎아서 그들의 결핍을 채워야 사명감으로 보상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언니는 작은 불씨에도 쉽게 폭발하는 폭탄 같았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 곳곳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도연은 작은 불씨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104쪽


또, 시재의 이야기를 보다가 명치 게가 찌릿해졌다. 나는 관계 맺기가 서툴러진 게 확실한가 보다. 며칠 전 동생과 밥을 먹다가 "이제는 친구 만나는 것도 힘겹다"라고 했더니 형은 원래 엄청난 E였는데 왜 이렇게 됐지?라는 물음 비슷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잠시 멍했던가. 딱히 이유를 찾지 못하다가 서둘러 몸이 불편해져서 그렇다고 얼버무렸다. 하고 나니 이유가 좀 구차해졌다.


"누군가의 관심조차 또 다른 호의로 돌려줘야 하는 빚 같은 거니까." 128쪽


그런 세상에서 살아서일까. 불편한 몸은 시도 때도 없이 배려로 포장된 호의에 노출되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감정이 말라가다 못해 바스락거리는 일이 허다해서 마음이 한동안 가라앉았다.


128쪽


"솔직함이 모든 걸 다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솔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158쪽

"큰 건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사소한 건 관심이 있어야 보이니까." 185쪽


또 직장이라는 공간마저 좁게 느껴지게 만드는​ 선이의 무해한 웃음과 행동에서 일적인 관계로만 선을 긋던 도연이 점차 후회하게 된 일에 나 역시 동료는 직장을 떠나는 순간이면 지인으로 남기도 쉽지 않았던 일이 공감됐다.


207쪽


도연의 말과 생각들 속에서 감정을 무겁게 누르거나 흔들거나 하는 문장들이 자꾸 튀어 올라 과하게 위로받고 말았다면 믿을까.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 아니면 소설로 포장한 에세이 같은 이야기를 보면서 섬세함을 느낀다. 작가의 풍부한 감정이 담긴 표현들과 날카롭게 심리를 관통하는 표현들이 읽는 것을 멈추지 못하게 했다.


이 책은 이별, 상실, 성장, 회복의 과정을 섬세하게 풀어내며, "안녕"에 담긴 복합적인 감정을 다룬다. 관계에서의 자기 회복과 감정 정리를 위한 여정에서 아물지 않은 감정들은 어쩌면 각자의 경험과 맞닿게 한다. 책을 덮고 촉촉한 드라마 한 편을 본 듯했다. 많은 위로가 됐다. 작가의 팬이 될 듯싶다. 그래! 마침내, 안녕!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하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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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광고 인문학 - 광고인의 시선으로 떠나는 유쾌한 인문 여행기
이지행 지음 / J&jj(디지털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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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박성광의 이 유행어처럼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저자는 스스로 B급을 자처한다. 그러면서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B급'이란 타이틀 아래에서 더 자유롭고 유쾌하게 생각하기를 권한다.


'광고의 시선으로 세상을 이야기한다,는 저자 이지행은 스스로 B급 인문학자라 칭한다. 영화 주간지 <씨네 버스>에서 글을 쓰고 영화열차 <씨네트레인>을 기획했다. 20년간 거치지 않은 광고가 없을 정도라는 그는 '놀고 있네'라는 아지트를 만들어 글 쓰고 기획하며 논다.


진지하게 읽지 말 것! 매뉴얼도 있는 독특한 책


시작부터 재밌다. 매뉴얼이 있고 진지하게 읽지 말 것을 당부한다. 스낵 인문서니 진지하지 말 것, 순서에 상관없이 마음 가는 데로 펼쳐도 되고 삐딱, 유쾌, 상상하고 의심하면 땡큐고 B급을 이해하고 고급진 내용을 원하면 냄비받침 정도로 사용을 권장한단다.


이쯤 되면 좀 건방져 보일 수도 있지만, 묘하게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상하게 설득되면서 읽다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


"광고는 결국 인간을 향한다."


짜릿했던 문장 중 하나였다. 광고는 팔아야 하는 물건이 주인공이라 생각했는데, 결국 '인간을 향해야 한다'라는 말이 은근 짜릿하다. 어쩌면 광고의 목적은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설득하고 감동시키는 일이라는 걸 확인 시킨달까. 그런 메시지를 예술 작품에 담긴 역사 속 인물과 사건들에 비춰 풀어내는데, 그 방식이 정말 참신하다.


역사 속 광고천재들의 등장!

책에는 총 6부에 걸쳐 31개의 이야기들이 등장하는데 하나하나 다 흥미롭지만, 특히 마음 가는 데로 펼쳐도 된다는 매뉴얼에 충실해 보려 목차를 둘러본다. 어쩔 수 없는 B급의 향기가 폴폴 풍기다 못해 전성시대를 이끌었다는 프란시스코 고야와 귀스타브 쿠르베가 에두아르 마네와 클로드 모네가 엄청 궁금하고, 상상의 끝을 보여줄 것 같은 히에로니무스 보스, 나쁜 인간의 표상인 아돌프 히틀러가 눈길을 끌었다.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정의로움이 아니라 죄지은 놈은 "걸리면 다 죽이겠다"라는 잔혹한 법률에 가깝다니 좀 충격이었다. 그나저나 남편이 바람피우다 걸리면 갈라서고 아내가 걸리면 강물에 던지네? 아버지가 딸을 덮치면 추방하고 며느리를 덮치면 강물에 던지네? 함무라비 정의롭다더니​ 차별이 좀 심한 거 아님?


26, 27쪽


또 최고의 이야기 꾼으로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를 구라쟁이이자 인류 최초의 예능인이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지만 묘하게 납득이 되고 프란시스코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가 스페인 최고의 티저 광고라고 상상하는 데다가 이야기마다 붙어 있는 '팁 태그'는 마치 광고 기획서의 메모처럼 간결하고 재치 있다. 찾아보게 만든달까, 읽는 맛이 있다.


201~203쪽

146, 208, 265쪽


나름의 주목할 문장

"형제의 우정 예술에 대한 사랑과 낭만이 대중을 홀렸고 그들에게 감정이입했다. 대성공한다. 인스타그램이든 유튜브든 남는 건 기록밖에 없다. 퍼스널 브랜딩은 꾸준함, 꾸준한 기록이다. 명심하자. 우리도 고흐가 될지 모른다." 265쪽, 아를 별 밝은 밤에 압생트 옆에 차고

"광고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이야기다. 단순히 물건을 팔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람을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고, 욕망을 자극하며, 가끔은 위로와 희망을 주는 이야기다. 광고는 삶을 팔지만, 동시에 삶을 비춘다." 336쪽, 나가며: 망할놈의 광고, 빌어먹을 인문학


이런 유의 재치스러운 문장들이 책 전체의 분위기와 철학을 잘 보여준다. 유쾌하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그 미묘한 균형이 담겼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

광고나 마케팅에 관심은 있지만, 이론서는 너무 딱딱하다 느끼는 사람

광고를 어렵지 않게, 인문학으로 재미있게 접해보고 싶은 사람

새로운 시각과 상상력을 얻고 싶은 크리에이터, 기획자, 디자이너들도 좋겠다.


같이 읽으면 좋을 책 추천!

키워드 'B급 감성 + 인문학적 통찰 + 문화 읽기'

《카피책》 – 정철

B급 감성의 정수는 결국 '말맛'이 아닐까? 카피라이터이자 광고인 정철의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언어의 힘을 다루고 있다.

《광고 천재 이제석》 – 이제석

비주류 광고인으로서 B급 정서와 사회 비판을 광고로 구현한 인물로 그의 작업과 사고방식은 이 책과 통하였으니!

《한 우물에서 한눈팔기》 – 창의융합 콘서트 콘텐츠

철학·공학·마케팅·민속학 전문가 13인의 융합 강연을 바탕으로, 분야 간 경계를 넘나드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다.


총평을 해본다면!

처음엔 저자 본인이 하도 B급이라 해서 가볍게 읽으려 했는데, 'B급' 감성과 코드로 예술을 읽고, 그 속에 담긴 인간 심리, 문화, 시대의 흐름까지 광고와 연결 지어 흥미롭게 파고드는 책이다.


읽다 보니 진심으로 몰입된다. 게다가 읽는 순서에 상관없다더니, 시작하니까 결국 끝장을 보게 만든다. 한숨에 다 읽었다. 이런 책, 흔치 않다.


한줄평은 "B급은 무슨, 완전 A급이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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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시 Stacy
지피 지음, 강희진 옮김 / 북레시피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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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 본명은 지안 알폰소 파치노티. 이탈리아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 전 세계 다양한 국제 수상전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단편 영화 <지구상의 마지막 남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년>을 감독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최근 <에로토마니 원숭이 행성의 야만인>, <스테이시> 등 작품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습작처럼 거칠고 러프한 선이 가득해서 약간 당황했지만 대머리 남자의 결연한 다짐은 흥미진진했다. 왜 스테이시라는 여자에 대해 발설하면 안 되는지, 그랬다간 응당 가혹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지. 스테이시가 누구길래?


거친 선과는 다르게 닥치는 대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순식간에 빨려 들고 말았다. 멍청한 인터뷰였을 뿐이고 게다가 꿈을 이야기한 것뿐인데 지아니는 배신과 심리적 고문을 당한다.


인터뷰를 보다 지아니를 쫓던 랄라의 눈빛이 화면 가득 줌인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표정을 보고 달갑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림체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한 말은 취소다.


29쪽


“나는 너에게서 태어난 너의 분신이자 폭군이기 때문이지. 나는 너의 분노를 먹고살고 있고, 그 영양분이 고통과 환상을 키워 분노에 끊임없이 불을 지피는 거야. 내가 너의 생각을 읽고 그것들을 내 생각과 뒤죽박죽 섞어버릴 거거든? 그럼 너나 나나 그렇게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보려고 아무리 용을 써봤자 결국 헛수고가 될 게 뻔하고. 이제 나는 네가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하도록 널 부추길 거고, 밤마다 줄곧 따라다니면서 아침이 밝을 때까지 잠 한숨 못 자도록 네 옆에서 쉬지 않고 지껄여 댈 거야.”

57쪽


드디어 존재하게 되는 건가? 스테이시가? 점점 이야기가, 아니 장면인가? 아무튼 지아니가 '말' 한 번 잘못했다가(사실 잘못한 게 맞지만) '똥' 된 상황에서 마구 철학적인 인식의 문제를 넘나들고 자아의 본성이 악마이고 혹시 지아니만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세상 여자와 '그러고' 싶다던 마우로를 보면 그것도 아닌 거 같고 아무튼 이런 인식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 지아니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스테이시, 사람들 속성이 다 그런 것 같아. 친구고 동료고 다 마찬가지야. 그들은 상대가 실패하기만을 고대하며 음흉하게 동정을 살피고 있지.”

120쪽


이 말에 누가 반박할 수 있겠어? 그렇잖나? 우린 모두 지독한 입 냄새를 풍기니까. 어느 순간 지아니와 그의 자아(악마)가 뒤 바뀌는 장면이 우리의 인식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순간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누구나 이성의 끈을 가끔씩 놓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그렇게 연결되는 수백만의 팔로워를 가진 SNS 인플루언서들의 권력은 인식되는 것이고 게다가 지아니의 자아가 태어난 날도 그랬고.


128, 149쪽


정신이나 심리학에서는 타인의 평가나 시선에 자유로워야 한다지만 정작 타인의 말과 평가로 삶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에선 그게 쉽지 않고 게다가 그런 과정에서 음해와 모략 나아가 거짓과 선동이 무분별하게 양산되는 게 현실이고 대체로 그런 건 가상공간을 타고 번진다는 것을 작가는 스스로의 경험을 통대로 꼬집는다.


'영혼은 없다'라는 지아니의 고백처럼 작가는 스스로 검열이 필요한 세상에서 각자 스테이시와의 동거는 안녕한지 묻는다. 세상은 팔로워 수로 연결되고 계급이 정해지며 말로 활자로 살인을 거침없이 하는데 그 위력이 실로 무섭고 참담하다.


263쪽, 옮긴이의 말


생소한 단어였지만 섬뜩했다. '취소 문화' 혹은 '제거 문화'라는 뜻으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배척하는 현상이라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는 어쩌면 인터넷으로 양산되는 이 시대의 반목과 혐오의 배설물이 아닐까.


이 책은 각종 SNS와 메신저, 유튜브 같은 현시대의 온라인 플랫폼의 폐해를 꼬집음과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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