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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시 Stacy
지피 지음, 강희진 옮김 / 북레시피 / 2025년 4월
평점 :

지피, 본명은 지안 알폰소 파치노티. 이탈리아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 전 세계 다양한 국제 수상전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단편 영화 <지구상의 마지막 남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년>을 감독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최근 <에로토마니 원숭이 행성의 야만인>, <스테이시> 등 작품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습작처럼 거칠고 러프한 선이 가득해서 약간 당황했지만 대머리 남자의 결연한 다짐은 흥미진진했다. 왜 스테이시라는 여자에 대해 발설하면 안 되는지, 그랬다간 응당 가혹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지. 스테이시가 누구길래?
거친 선과는 다르게 닥치는 대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순식간에 빨려 들고 말았다. 멍청한 인터뷰였을 뿐이고 게다가 꿈을 이야기한 것뿐인데 지아니는 배신과 심리적 고문을 당한다.
인터뷰를 보다 지아니를 쫓던 랄라의 눈빛이 화면 가득 줌인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표정을 보고 달갑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림체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한 말은 취소다.

29쪽
“나는 너에게서 태어난 너의 분신이자 폭군이기 때문이지. 나는 너의 분노를 먹고살고 있고, 그 영양분이 고통과 환상을 키워 분노에 끊임없이 불을 지피는 거야. 내가 너의 생각을 읽고 그것들을 내 생각과 뒤죽박죽 섞어버릴 거거든? 그럼 너나 나나 그렇게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보려고 아무리 용을 써봤자 결국 헛수고가 될 게 뻔하고. 이제 나는 네가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하도록 널 부추길 거고, 밤마다 줄곧 따라다니면서 아침이 밝을 때까지 잠 한숨 못 자도록 네 옆에서 쉬지 않고 지껄여 댈 거야.”
57쪽
드디어 존재하게 되는 건가? 스테이시가? 점점 이야기가, 아니 장면인가? 아무튼 지아니가 '말' 한 번 잘못했다가(사실 잘못한 게 맞지만) '똥' 된 상황에서 마구 철학적인 인식의 문제를 넘나들고 자아의 본성이 악마이고 혹시 지아니만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세상 여자와 '그러고' 싶다던 마우로를 보면 그것도 아닌 거 같고 아무튼 이런 인식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 지아니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스테이시, 사람들 속성이 다 그런 것 같아. 친구고 동료고 다 마찬가지야. 그들은 상대가 실패하기만을 고대하며 음흉하게 동정을 살피고 있지.”
120쪽
이 말에 누가 반박할 수 있겠어? 그렇잖나? 우린 모두 지독한 입 냄새를 풍기니까. 어느 순간 지아니와 그의 자아(악마)가 뒤 바뀌는 장면이 우리의 인식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순간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누구나 이성의 끈을 가끔씩 놓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그렇게 연결되는 수백만의 팔로워를 가진 SNS 인플루언서들의 권력은 인식되는 것이고 게다가 지아니의 자아가 태어난 날도 그랬고.

128, 149쪽
정신이나 심리학에서는 타인의 평가나 시선에 자유로워야 한다지만 정작 타인의 말과 평가로 삶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에선 그게 쉽지 않고 게다가 그런 과정에서 음해와 모략 나아가 거짓과 선동이 무분별하게 양산되는 게 현실이고 대체로 그런 건 가상공간을 타고 번진다는 것을 작가는 스스로의 경험을 통대로 꼬집는다.
'영혼은 없다'라는 지아니의 고백처럼 작가는 스스로 검열이 필요한 세상에서 각자 스테이시와의 동거는 안녕한지 묻는다. 세상은 팔로워 수로 연결되고 계급이 정해지며 말로 활자로 살인을 거침없이 하는데 그 위력이 실로 무섭고 참담하다.

263쪽, 옮긴이의 말
생소한 단어였지만 섬뜩했다. '취소 문화' 혹은 '제거 문화'라는 뜻으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배척하는 현상이라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는 어쩌면 인터넷으로 양산되는 이 시대의 반목과 혐오의 배설물이 아닐까.
이 책은 각종 SNS와 메신저, 유튜브 같은 현시대의 온라인 플랫폼의 폐해를 꼬집음과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